PEOPLE

잘하고 싶은 마음보다 일단 ‘시작’하는 마음으로

“작은 목표를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다 보면 ‘끝’도 있더라고요”

서귤 작가

서귤 작가는 직장인이자 만화가이며, 에세이스트와 소설가를 오가는 N잡러입니다. 2019년 작가가 직접 쓰고, 그린『판타스틱 우울백서』는 작가가 오랫동안 정신건강의학과를 다닌 경험을 바탕으로 낸 책입니다. ‘최선을, 최선을 다해야 해. 이 책을 내고 만약 내가 죽으면 이게 내 처음이자 마지막 책이 되는거야’라는 마음으로 책을 냈던 작가가 어떻게 계속해서 새로운 ‘시작’에 임하고, 또 해내는 지에 대해 들어보았습니다. 

누구도 아닌 나를 위한 ‘시작’, 책 쓰기

첫 책인 『고양이의 크기』를 만들면서 ‘유작이 될 수도 있다’라는 생각을 하셨다고요

첫 책을 준비하던 당시 저는 3년 차 직장인으로 서른을 목전에 둔 시기였는데요. 지금은 정신건강의학과 치료를 받으면서 내가 ‘양극성 기분장애’라는 것을 인지하고, 관리하며 지내고 있지만 그때는 아니었습니다. 감정 기복이 심한 날이 많아졌고, 극도로 예민해져서 잠을 못 자는 날도 늘어났죠. 극단적인 충동이 자주 찾아오면서, 언제 어떻게 생을 마감할지 모르겠다는 불안이 잇달아 찾아오더라고요. 그래서 ‘무엇이라도 내가 좋아하고, 의미 있는 것을 남기고 싶다.’라는 생각으로 책을 만들었습니다.

 

왜 책이었나요? 

손에 잡히는 ‘물성’이 있는 것이 필요했어요. 사실 요즘은 워낙 다양한 채널과 매체를 통해 내가 전하고자 하는 바를 전할 수 있는 시대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오랫동안 창작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요. 제가 그전까지 냈던 작업물들이 이렇다 할 반응을 받지 못하는 것을 보면서 이 애정을 보답받지 못한다는 생각을 오랫동안 했습니다. 일종의 짝사랑 같은 것이었죠. 그래서 ‘책’이라는 것을 통해 확인받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판타스틱 우울백서』는 더 많은 독자들에게 작가님을 알리는 계기가 된 책이기도 합니다 

제가 그 작품을 SNS에 연재하던 때가 지금 ‘인스타툰’이라고 부르는 작품들이 한참 대두되던 시기였는데요. 그때만 해도 정신질환이라는 소재는 입 밖으로 잘 꺼내지 않던 이야기였어요. 그래서 이 이야기를 시작하기까지 많은 고민이 있었습니다. ‘너무 개인적인 얘기 아닐까?’, ‘너무 어두운 얘기 아닐까?’ 같은 생각들이 끊이지 않았죠. 그런데 막상 연재를 시작하고 보니 생각보다 반응이 너무 뜨거워서 약간은 얼떨떨했어요. 

‘혹시 나, 생각보다 평범한가?’

홍길동전의 호부호형 같은 에피소드가 있으셨다고요

『판타스틱 우울백서』를 연재하면서 굉장히 많은 응원도 받았지만 동시에 물음표를 갖게 되는 일도 경험했는데요. 계정을 잠시 비공개로 전환한 적이 있었는데 저를 팔로우 하지 않고, 작품을 보던 분들이 꽤 많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제 계정을 팔로우 했다가 누군가 팔로우 목록에서 서귤 계정을 발견했을 때 자신이 정서적으로 불안한 사람이라고 여길까봐 팔로우는 하지 않고, 매번 제 계정을 찾아와 작품을 보셨던 거죠. 펀딩을 통해 출판을 했을 당시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는데요. ‘책을 사고 싶은데 표지나 송장에 책 제목이 적나라하게 드러나지 않게 배송해 줄 수 있냐’는 요청을 주신 분도 계셨어요.

 

복잡한 기분이 들었을 것 같습니다

네,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을 동시에 봤죠. 우울증을 비롯한 정신질환이 나만이 가진 문제는 아니구나라는 점에서는 긍정적인 부분이었고요. 동시에 우울한 감정이나 상태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이렇게 어렵구나라는 것을 동시에 느꼈던 것 같습니다.

 

작품을 연재하던 당시와 지금을 비교했을 때 달라진 점이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당장, 저 만해도 그때 그런 책을 내고 나면 회사에서 잘릴 줄 알았는데 지금도 회사를 잘 다니고 있다는 점이…(웃음). 사실 아직도 많은 사회적 논의와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때와 비교하면 달라진 점이 정말 많다고 느낍니다.

 

일단 우울증으로 뭉뚱그리던 다양한 정신질환을 증상에 따라 디테일 하게 구분하더라고요. 제가 우울백서를 연재하던 당시만 해도 ‘조울증’이라던가 ‘양극성 기분 장애’와 같은 질병의 인지도도 높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ADHD’를 비롯해 다양한 성격 장애를 구분 짓고, 또 구분하기 위한 실천적 노력들이 있는 것 같아요.

 

당사자들이 이야기할 수 있는 분위기나 다양한 증상에 대한 논의도 그때에 비하면 많이 발전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쉬운 시작이란 없기에

모든 시작과 시도는

칭찬받아 마땅하다

무언가를 계속해서 ‘시작’ 할 수 있는 힘은 어디에서 오나요?

작은 성취에 기뻐하는 마음입니다. ‘시작’이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너무나 잘하고 싶은 마음’에서 기인하는 것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멋진 결과물을 만들고 싶은데 그걸 내가 해낼 수 있을까? 가 한 묶음이라, 그게 시작을 어렵게 만드는 거죠. 그래서 스스로에 대한 기대를 조금 많이 내려놓고 주문을 외워요. ‘어차피 지금 나의 역량은 여기까지니까, 일단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하자.’라고요.

 

조금 더 자세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제 작업을 예로 들어볼게요. 장편 소설을 완성했을 때 얻는 성취감은 약 10만 자 정도를 써내야만 얻을 수 있는 성취감이죠. 멀리 있고, 닿기 어렵게 느껴져요. ‘회사에 가서 A라는 보고서를 완성해낸다.’는 것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이 큰 목표들을 아주 작은 단위로 쪼개는 거에요. ‘목표를 회사에 가자.’ 정도로 잡으면 일단 출근에는 성공한 사람이 되는 거죠.  소설이라면 주 단위로 써야 할 글자 수, 더 쪼개면 일일 목표 글자 수로 쪼개요. 그렇게 쪼개면 하루에 써야 하는 양이 아주 적어지는데 그걸 이루면 당연히 좋고, 목표의 반절만 해내도 저를 막 칭찬하는 식입니다. “너무 대단해 서귤, 아무것도 안 할 수도 있었는데 100자나 썼잖아?” 이렇게요(웃음).

 

원래 세웠던 목표를 제대로 달성해 내면 스스로 포도알 스티커 붙여줘요. 가상의 포도알이 아니라 진짜 스티커를 붙여 주는 게 포인트입니다. 그렇게 내가 이룬 성과를 눈으로 확인하면서 동기 부여를 하는 거죠. 

작가님께도 기억에 남을만큼 힘들었던 ‘시작’이 있었나요? 

제가 정확히 어떤 상태인지 몰랐을 때, 생활의 아주 일상적인 것들이 너무 힘들었어요. 지금처럼 기분장애를 관리하지 못했을 때 무기력증이 찾아오면 말 그대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더라고요. 씻기나 밥 챙겨먹기 같은 것들이요. 생각해 보면 이런 것들이 스스로를 돌보는 행위인데 너무 오랫동안 방치한 채로 살아왔더라고요.


무기력을 의지의 문제로 보는 시선이 많은데 사실 무기력은 우울증을 비롯한 많은 정신질환의 대표적 증상 중 하나입니다. 단순히 ‘하기 싫다’와는 양상이 완전히 다르죠. 이 증상 때문에 등교나 출근처럼 기본적으로 해야만 하는 사회 생활에도 문제가 생겨요. 이럴 때 본인의 탓을 하기보다 그러한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 적극적인 도움을 받으셨으면 좋겠어요. 주변에 적극적으로 자신의 상태를 알려 미리 양해를 구하는 것도 방법일 수 있고, 전문가를 통해 약물의 도움을 받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어떤 ‘시작’ 앞에서 망설이거나 힘들어하고 있는 분들에게 건네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사실, 시작이 쉬운 사람은 없다고 생각해요. 물리학적으로도 어떤 물체를 움직이게 하려면 처음에 가장 많은 힘이 필요하다고 하잖아요. 이런 것이 세상을 돌아가게 하는 기본 원리라면 오히려 조금 어깨에 힘을 빼고, 가볍게 생각할 수 있는 생각의 전환점이 되어 준다고 생각합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어요.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무엇이든 아주 작은 시작이라도 하는 것이 낫단 마음으로 움직일 용기를 내보시면 좋겠습니다.

지금의 나를 있는 그대로

‘긍정’ 하기

작가님에게 시작이란 어떤 의미인가요? 

‘일단 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닌 것’. 그리고 ‘끝’과 연결되어 있는 것이라는 개념이 생각납니다. 무엇이든 시작이 있으면 반드시 끝도 있는 것 같아요. 무언가를 시작하는 순간은 그걸 망설였던 순간의 끝이기도 하고, 어떤 끝은 또 다른 무언가의 시작이기도 하니까요. 나중에 ‘끝’이라는 주제를 하게 되면 또 이야기 나누면 좋을 것 같습니다.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마음 성장에 대한 정의를 내려본다면 무엇일까요?

‘긍정’ 인 것 같아요. 많은 분들이 긍정과 낙관을 혼재해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비슷해 보이지만 뜻을 들여다보면 완전히 달라요. 긍정의 사전적 정의는 ‘그러하다고 생각하여 옳다고 인정함’입니다. 낙관은 ‘인생이나 사물을 밝고 희망적인 것으로 봄’이라는 뜻이죠.

 

저에게 긍정은 현재고, 낙관은 미래에요. 지금 내가 무엇도 시작하지 못하고 있다면 그러한 나의 상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태도가 긍정이죠. 낙관도 좋지만, 긍정이 제가 생각하는 성숙한 삶의 태도 같아요.

실패도 성공도, 쌓이면 토대가 돼요

“실패를 해봤기 때문에 요리라는 재능을 찾을 수 있었어요.”

김봉경 요리사

내 페이스대로 그려가는 내 길

"내가 하고 싶은 걸 하고 싶을 때 할 수 있는 게 행복인 것 같아요. 누구에게도 휘둘리지 않고 내 페이스 안에서 할 수 있는 거 그게 저에게는 가장 큰 행복이지 않을까 싶어요."

최고요 나이키 스토어마케팅 담당

이어지는 삶 속에서 새로 발견한 것

“나만의 목표를 갖고 작은 시도를 계속 해보는 게 중요해요”

박찬종 크리에이터, 패러사이클링 선수

온전히 내 생각을 따르는 삶

“남들이 해주는 어떤 말도 제가 납득하지 못한다면 의미가 없는 것 같아요.”

정지음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