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우

덱스터 매치무브 디자이너

불행의 빈도를 줄이는 삶

영화 <기생충> 속 부잣집 저택 2층이 통째로 CG였다는 사실을 혹시 알고 있는지. 우리가 흔히 보는 영화와 드라마, 광고는 매치무브 디자이너의 손을 거쳐 허구라는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할 만큼 감쪽같이 변모한다. 매치무브라는 단어가 꽤 생소하게 들리지만, 실제 카메라로 찍은 영상에 CG를 자연스럽게 합성할 수 있도록 밑그림을 그리는 작업이라고 생각하면 쉽다.

 

개인의 색깔과 상상력을 바탕으로 매번 다른 결과를 만들어 내야 하기에 딱히 정답이 없는 이 업계에서 매치무브는 거의 유일하게 ‘답’이 정해져 있는 파트다. 하지만 아직은 3년 차로 예상치 못한 변수들로 고비가 올 때가 많다. 그렇게 일에서도 인간관계에서도 불확실함의 연속인 가운데 김현우 디자이너는 묵묵히 무던하게 자신만의 정답을 찾아가는 중이다.

“정답이 있는 일이라서 더 매력적이라고 느꼈어요.”

지금의 직업을 선택한 계기가 궁금해요.

대학에서 영화 애니메이션을 전공하면서 3D 프로그램을 만지기 시작했지만 애초에 이 일을 목표로 한 건 아니었어요. 컴퓨터 그래픽의 빛을 다루는 라이팅 분야를 공부하고 있었는데,  같이 공부하던 동생과 함께 우연히 참가한 3D 캠프에서 매치무브에 대해 알게 됐어요. 흥미를 느꼈지만, 학원은 비싸서 엄두를 못 내고 독학을 시작했죠.

아무래도 혼자서 하는 데 한계가 있다 보니 ‘안 되겠다. 내 길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많이 했어요. 하루하루 꾸역꾸역 버텼다고 해야 하나. 하나씩 작업물이 나오고 점점 퀄리티가 좋아지는 게 보이더라고요. 내가 노력한 만큼 결과가 나오니까 더 하고 싶어졌어요. 그러던 와중에 캠프에서 만난 덱스터 스튜디오 실장님을 통해 인턴 기회를 얻었고, 지금의 매치무브 팀에 입사할 수 있었어요. 입사 후 첫 작업이 영화 <기생충>이었고요. 세계적으로 잘 된 작품이라 저에게도 큰 의미가 있어요.

 

요즘 어떤 고민이 있나요?

과거에는 대학교를 어떻게 가야 하는지, 취직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고민했는데 이제 그런 고민은 다 해결했고. 지금은 어떻게 하면 더 일을 잘하고, 더 성장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요.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더 좋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고민해요.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니 공과 사를 철저히 나누는 대신 유연하게 연결하는 쪽을 선택했어요. 어색한 걸 싫어해서 말장난을 많이 해요. 모든 상황이 부드럽게 흘러갔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매번 하고요. 물론 일할 때는 진지하게 하지만, 같이 일하는 분들을 최대한 재미있게 해주려고 노력해요. 크게 밉보이지 않으려 애쓰는 편이에요. 둥글게 살아가는 것,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만드는 것이 좋으니까요.

남한테는 쉬운데, 나에게는 어려운 일이 있다면?

화를 내는 게 어려워요. 화를 내야 할 상황이 오면 ‘이게 화낼 일인가?’라는 생각이 드는데, 막상 시간이 지나고 나면 ‘솔직하게 이야기할 걸 그랬나.’ 싶기도 해요. 괜히 뒤늦게 화를 내봤자 의미가 없는 것 같아서, 그러려니 하고 혼자 속으로 삭이는 편이에요. 타고나기를 그런 감정에 무디다고 해야 하나. 겉으로 화를 잘 내지 않다 보니 가끔 저를 막 대하는 분을 맞닥뜨리기도 하는데, 그럴 때가 참 어렵죠. 마음속에 쌓아 두다가 응어리지기도 하고요.

 

때로 불안함을 느끼는 순간이 있나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갑자기 곁을 떠난다거나, 혹시나 관계가 멀어지면 어쩌나 불안한 감정을 느낄 때가 있어요. 저는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해요. 좋은 사람이라 판단하면 마음을 많이 줘버려서 그만큼 더 크게 상처를 받기도 하고. 상대방이 실망하는 모습이 보이면 불안해져요. 내가 더 이상 중요한 사람이 아니라고 느껴지기도 하고요. 가깝다고 여겼던 누군가와 멀어진다는 게 제일 불안하니까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편해요. 내가 좋은 사람이라 주변에 좋은 사람이 있는 거라 여기고 나중에 후회할 만한 행동을 하지 않으려 조심해요. 말이든, 행동이든.

“저는 무기력함을 그대로 두고 일에 집중해요.

정신없이 일을 붙잡고 있다가 딱 끝내고 나면,

어느 정도 해소가 돼요.”

무기력하거나 우울할 때가 있나요?

학생 때는 공부하고 취업 걱정하느라 항상 무기력함을 달고 다녔어요. 입사하고 나니 “저 <신과  함께> 만드는 회사에 취직했어요.”라는 말 한마디로 그동안의 고생을 싹 청산하는 기분이더라고요. 그런데 일을 하면서 도저히 내 수준으로는 해낼 수 없는 한계에 부딪힐 때, 남들보다 못하는 것 같고 아무리 노력하고 공부해도 발전이 없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는 다시 무기력해지기도 해요.

 

그 무기력을 어떻게 극복하는지.

이런 감정은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거라 인정하고 받아들여요.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해결되는 문제지만, 그 과정은 사실 힘들잖아요. 저는 무기력함을 그대로 두고 일에 집중해요. 시간에 쫓기면서 정신없이 일을 붙잡고 있다가 딱 끝내고 나면, 어느 정도 해소가 돼요. 그래도 아직 할 만하다고 느끼는 거죠. 어려운 일을 한 번 하고 나면, 레벨 업이 된다고 해야 하나. 경험치가 쌓이면서 판단을 할 수 있게 되거든요. 이 장면에서는 이런 방법으로 풀어나가야 한다는 기준이 하나씩 생기다 보니 거기에서 위안을 얻어요.

언제 자신이 성장했다고 느끼나요?

정말 어렵고 힘든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스스로 계속 채찍질해요. 오늘까지는 무조건 끝내고 만다는 독기를 품고 하는데, 그냥 견디는 거죠. 그리고 어떤 방법으로 헤쳐나갔는지 메모를 해놓거든요. 나중에 시간이 흘러서 다른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그 메모를 다시 열어 보기도 해요. 보지 않고 작업할 때도 있어요. 이미 그 기술이 제 머릿속에 들어가 있기 때문에. 그럴 때 느껴요. 내가 성장하고 있구나.

 

‘그냥 견딘다’ 는 게 쉽지는 않잖아요. 계속해야겠다는 동기를 어디에서 찾는 편인가요?

감사하게도 주변에서 도와주시는 분들이 많아요. 처음 입사했을 때 실장님, 팀장님이 모르는 게 있으면 물어보라고 말씀하셨는데 막상 말을 걸기가 쉽지는 않더라고요. 처음이 어렵지 두 번째, 세 번째부터는 뻔뻔할 만큼 질문을 많이 했어요. 지금도 일을 하다가 막히는 부분이 있으면 노하우를 알려주시기도 하고, 사석에서는 조금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눠요. 회사 생활을 하면서 놓치고 있는 부분을 잡아 주세요. 그동안 그분들이 저를 이끌어 주신 만큼 일로 보답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더 좋은 결과를 보여드리고 조금 더 인정받고 싶다는 그 마음이, 힘들어도 버틸 수 있는 원동력이 돼요.

일에 집중하는 비결이 있나요?

일이 어려울수록 집중이 잘 되는 편이에요. 앞서 말했듯이 시간 내에 무조건 끝내고 만다는 목표를 두는 덕인 것 같아요. 매번 같은 텐션을 유지할 수는 없으니,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면서 기분을 억지로 끌어올리기도 합니다. 나만의 노동요라고 할까요. 비트가 강하고 시끄러운 힙합을 많이 들어요. 정신도 번쩍 들고 더 집중하게 되죠. 쭉 집중해야겠다 싶을 때는 재즈도 듣고 가요도 듣고, 상황에 따라 달라요.

일 외에 요즘 가장 좋아하는 건 무엇인가요?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법이 궁금해요.

여가 시간이 많지 않아서 스트레스를 풀고 싶을 때는 운동을 많이 해요. 몇 년 전부터 헬스를 시작했는데, 일주일에 네다섯 번은 꼭 센터에 가요. 같이 운동하는 친구한테 조금씩 배우면서 하다 보니 재미있어요. 제가 술자리에서 대화하는 걸 좋아하다 보니 일주일에 한 번은 꼭 술을 마시거든요. 그래서 건강을 유지하려면 운동을 빠질 수가 없어요. 친구들, 특히 팀장님이랑 워낙 친해서 자주 술을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이것도 스트레스를 푸는 방식이에요. 아, ‘혼술’은 많이 못 먹겠던데요.

 

아무 생각 없이 시간을 보내고 싶을 때는 그림을 그려요. 그리다 보면 시간이 정말 빨리 가요. 한 번 그리기 시작하면 5시간 정도. 머릿속으로 구상한 게 그림으로 잘 표현됐을 때 기분이 정말 좋아요.

“불행하지만 않으면 행복한 것 같아요.”

행복, 불행하지 않은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불행하지만 않으면, 행복한 것 아닐까요. 매일 행복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매일 불행하기도 힘드니까요. 살다 보면 누군가를 떠나보내고, 또 멀어지기도 하면서 더 잘해 줄 걸 후회하는 순간이 반드시 생겨요. 그래서 나중에 후회하지 않도록 다짐해요. 상처 주지 말자고. 그렇지만 누구나 완벽할 수는 없잖아요. 똑같은 실수를 또 반복하지만, 그 빈도를 줄이자고 되뇌다 보면 자연스럽게 상처 주는 말과 행동을 하지 않게 돼요. ‘김현우랑 있으면 재미있고, 무언가 같이 하고 싶다.’는 기분이 들기를 바라요. 그래서 제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더 자주 만나고 그렇게 각인되도록 즐겁게 살고 있어요. 가끔 찾아오는 행복을 제대로 만끽하면서요.

너무 불행해지지 않는 방법은 너무 행복해지기를 바라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사람은 누구나 후회를 하며 살아간다. 하지 못했던 그때에 머무르지 않고 똑같은 후회를 반복하지 않도록 지금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할 때, 비로소 행복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