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박하지만 분명한 행복 - 플레이라이프

이동훈

이커머스 브랜드 마케터

소박하지만 분명한 행복

소박한 일상에서도 풍요롭고 행복해질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말하며 맑게 웃어 보이는 이동훈은 기분 좋아지게 하는 묘한 힘이 있다. 나긋하게, 꺼내기 힘든 속내를 꾸밈없이 털어놓는 목소리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이유는 나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는 공감이 담겨 있기 때문. 처음 사회에 나오면 날 선 한 마디에 더러 생채기가 나고 덧나기도 하지만 그건 사실 누구나 겪는 일이라고, 괜찮다고 토닥여 주는 듯하다.

 

행복이란 끊임없이 쟁취해야 하는 것이라 누군가 말했던가. 가만 들여다보면 일상 구석구석 작은 행복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꼭 거창한 것이 아니더라도, 행복의 역치는 저마다 모두 다르니까.

어떤 계기로 마케팅 업계에 발을 들이게 되었는지.

지금까지 20년 넘게 ‘요요’를 취미로 하고 있어요. 한번은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서 요요 공연을 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이후로 막연히 공연과 관련된 일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한 것 같아요. 운이 좋았는지 취업 준비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공연 사업을 하는 회사에 들어갔어요. 공연 티켓 판매를 목표로 하는 B2B 마케팅 부서였고요.


사실 저에게 마케팅이란 뭔가 사람들을 속이는 일처럼 느껴졌어요. 마케터라면 트렌드를 잘 따라가야 하고, 세련된 감각이 있어야 할 것 같은데 나는 그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고 생각했죠.

맞지 않는다고 여긴 일을 10년이나 하고 계시는데, 우여곡절은 없었나요?

첫 직장이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지는 않아요. 주변을 둘러보면 나는 여전히 부족한 것 같고 자신감이 떨어져 가던 와중에, 팀장님이 “너는 사회생활이 잘 안 맞는 것 같다.”는 피드백을 계속하셨어요.

 

부정적인 피드백을 계속 듣다 보니 저도 자신을 의심하게 됐어요. 조직 생활을 어떻게든 해나가고 있지만 ‘이 끝에 남는 건 과연 무엇일까.’라는 고민이 되더라고요.

감정이 바닥까지 간 이후 부정적인 상상을 반복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바로 병원에 가게 됐죠. 그렇게 우울증 치료를 1년 정도 받았어요.

심적으로 많이 힘들었을 것 같아요.

힘들었죠.

그래도 우울증 치료가 도움이 많이 됐고, 이직하면서 생각을 전환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블랭크 코퍼레이션이라는 이커머스 마케팅 회사로 이직을 했거든요. 일도 회사도 사람도 너무 좋았고, 이 회사를 사랑한다고 말할 정도로 애착이 컸죠.


바쁘게 일하다 보니 우울감을 잊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어느새 또 전과 비슷한 상상을 하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사내 상담 선생님에게 심리 상담을 받았어요. “마케팅을 오래 했는데도 힘든 걸 보니 이 일이 나와 안 맞는 것 같다.”고 말씀드렸는데, 선생님이 그러셨어요. 어떤 일을 5년 이상 해서 살아남았다는 건, 기본적으로 적성에 맞기 때문이라고. 그때 마음에 울림이 느껴졌어요.


‘아, 내가 생각보다 마케팅을 좋아하고 있구나.’ 손에 잡히는 물건을 다루고, 사람들이 그 물건을 사게 하는 과정을 즐기고 있다는 걸 깨달았죠. 하고 싶어서 시작한 일이 아니다 보니 좋아한다고 인정하는 게 자존심 상했던 것 같아요. 이만큼 경력을 인정받는다는 건 실제로도 잘하고 있단 뜻이란 걸 깨달은 거죠.

“기억조차 나지 않을 걱정에 사로잡혀서
매 순간 불안해할 이유가 없다는 걸 알았어요.”

지금은 그런 고민에서 벗어났는지.

3년 전부터 틈날 때마다 한두 줄씩 일기를 쓰고 있는데, 얼마 전 쭉 읽어 보니 내용이 계속 반복되는 거예요. 우울하고 힘들었던 감정들이 습관이었던 거죠. 그동안 삶에 대해 부정적인 상상과 걱정을 시도 때도 없이 반복했어요. 어느 날 갑자기 해고를 당하고, 거리에 나앉아 외롭게 살아가다 파국을 맞이할 것이라는 상상을요.


그런데 뭐 때문에 그토록 힘들었는지 기억이 안 나더라고요. 기억조차 나지 않을 걱정에 사로잡혀서 매 순간 불안해할 이유가 없다는 걸 알았어요. 그리고 지금은 평정심을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서 할 수 있겠다는 마음의 여유가 조금 생긴 거 같아요.

 

 

마음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요.

하루 10분 이상은 무조건 명상을 하려고 해요. 2년 정도 됐는데, 명상을 습관적으로 하다 보면 확 와 닿을 때가 있어요. 오늘 어떡하지, 내일은 어떡하지 이런 고민은 마치 심장이 내 의지와 상관없이 뛰는 것처럼 뇌가 생각을 만들어 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요. 가만히 눈을 감고 있다가 그걸 한번 눈치채고 나면 진짜 마음이 평화로워져요.

“생각해 보니 저는

행복의 허들이 높지 않은 사람이더라고요.”

어떤 순간 행복을 느끼나요?

세 번째 직장을 갑자기 퇴사하고 대책 없이 한 달을 쉬는데, 그게 너무 행복한 거예요. 아침에 알람 없이 일어나고, 집 청소 싹 해 놓은 다음 햇볕 쬐고, 고양이 삐루 만져주고, 동네 산책하고, 내가 읽고 싶은 책을 쌓아 놓고 읽고, 친구들 만나고 싶을 때 만나서 밥 먹고. 이런 것만 해도 마음이 너무 풍요롭고 행복한 거예요. ‘행복해지는 게 별로 안 어려운데? 내 삶을 소박하게 꾸려나가면 행복해지는구나.’라는 기준이 생기니까 든든해졌어요.

 

일할 때는 열심히 하고, 일이 잘 안 풀리거나 마음이 지칠 때는 집에 와서 행복을 느끼면 된다는 자신감이 생겼어요. 쉽게 언제든지 행복해질 수 있으니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자 다짐하면서.

21년 8월, 퇴사를 앞둔 휴가 중

어떤 면에서 든든함을 느낀 걸까요.

일할 때는 열심히 하고, 일이 잘 안 풀리거나 마음이 지칠 때는 집에 와서 행복을 느끼면 된다는 자신감이 생겼으니까요. 쉽게 행복해진다는 걸 알았으니, 앞으로는 내 상황에 대해 객관적인 인지를 가지고 행복의 길을 찾아 나갈 수 있지 않을까요. 언제든지 행복해질 수 있으니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자 다짐하면서. 일이 없어진다고 해서 내 인생이 불행해지는 게 아니니까 회사에서 힘들어도 무너지지 않고, 천천히 성장해나가면서요.

일상 속에서 행복을 찾는 비결이 있다면.

‘가난한 어부’라는 우화를 떠올려요.


한 사업가가 해변을 지나다 고깃배에서 졸고 있는 어부를 보고 한창 일할 때인데 왜 자고 있냐, 지금 고기를 많이 잡으면 큰 배를 살 수 있고 몇 년 후에는 더 큰 부자가 될 수 있을 텐데! 라고 호통을 쳐요. 어부가 그 후에는 어떻게 되느냐고 되물었고, “부자가 되고 나면, 멋진 해변에서 아름다운 바다를 보며 한가롭게 꾸벅꾸벅 졸 수 있다.”는 사업가의 말에 웃으며 이렇게 대답해요. 그게 바로 당신이 여기 오기 전까지 내가 하고 있던 일이라고.


어릴 때는 별생각 없이 읽었던 이야기인데, 요즘은 절절하게 다가오더라고요. 출근 전 30분, 퇴근 후 주어지는 8시간, 그리고 주말 2일 동안 행복하지 않으면 앞으로 뭘 해도 행복해질 수 없겠다고. 짧은 순간에도 행복해질 수 있는 힘을 스스로 발견하게 돼요.

앞으로의 10년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싶나요?

어떤 역경이 와도 이겨낼 수 있는, 자신감 있는 사람이 되는 게 목표예요. 위기 상황을 이겨내고 나면 역량이 상승했다고 느껴지잖아요. 복잡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결국 내 안에 남아 있는 불안감이 끝날 것 같아요.


지금도 행복해지는 방법을 알지만 일과 삶의 균형을 맞추며 성장해 나가다 보면 더 탄탄하게 행복해질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지나간 시간에 연연해 하거나 아직 오지 않은 내일을 습관처럼 불안해하며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닌지 한 번쯤 돌아볼 필요가 있다. 오늘 주어진 평범한 하루를 즐기는 것, 그리고 사소한 것에도 기쁨을 느낄 줄 아는 것. 그게 행복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