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이 되면 일단 시작해 봅니다 - 플레이라이프

강재규

플로리스트, 조경 인테리어 디자이너

고민이 되면 일단 시작해 봅니다

고마움과 행복이 자라는 꽃집 ‘그로우’를 운영하고 있는 플로리스트 강재규는 이름에 담은 뜻대로 아직도 조금씩 자라고 있다. 얼핏 투박해 보이지만 섬세하고 여문 손끝으로 꽃을 다루는 그는 조경 인테리어라는 새로운 분야로 한창 발을 넓히는 중. 생사의 기로에서 꿈을 포기하고 선택한 일이기에 시작이 조금 늦은 감은 있다. 하지만 눈 앞에 두 갈래 길이 나왔을 때, 고민하지 않고 무작정 걸음을 내딛고 본다는 그는 ‘단순하게’ 사는 사람이다.

 

조금 돌아가면 뭐 어떤가. 이 길이 아니면 다시 돌아와서 반대편 길로 가면 그만인 것을. 세상 모든 꽃들이 한 번에 피었다가 한 번에 지지 않는 것처럼, 사람마다 제 날개를 펴는 시기는 각자 다르다. 뜻하지 않은 대로 흘러갈지라도 단순하고 단단하게 매일 자라나는 그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예전에 크게 아팠다고 들었어요.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요?

저는 대학교에서 체육을 전공했어요. 어릴 때부터 운동을 좋아했고, 활동적인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 졸업을 앞두고 경찰 간부 시험을 준비하기 시작했죠. 그러던 어느 날 병원에 갔는데 폐에 이상이 있다며 큰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아보라고 하더라고요. 두 달 정도 대학병원을 다녔는데, 문제가 없다는 소견을 받고 돌아온 그날 저녁 폐동맥이 터졌어요. 때마침 아내가 집에 들렀다가 피를 토하고 있는 저를 발견했고 병원에 실려갔어요.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의식을 잃었다가 눈을 떠보니 중환자실이었어요. 그렇게 중환자실에서 한 달, 일반 병실에서 한 달, 1인실에서 한 달을 있었어요. 당시에는 생사를 오갈 정도로 꽤 심각한 상태였는데, 다행히 큰 후유증 없이 넘어가서 지금은 잘 지내고 있어요.

“힘들어해봤자 나만 손해니까,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지에만

집중했어요.”

갑자기 쓰러지고 나서 많이 힘들었을 텐데.

퇴원 후에도 6개월 넘게 매일 약물 치료를 받았는데, 약이 워낙 독해서 계속 잠만 오더라고요. 집에서 자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점점 힘도 빠지고, 의욕도 사라졌어요. 그렇지만 크게 좌절하지는 않았어요. 힘들어해봤자 나만 손해니까 상황 자체를 그냥 받아들였죠. 아팠던 건 과거일 뿐,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지에만 집중했어요. 그리고 이 무기력함을 이겨내야겠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어요. 1년 만에 집 밖을 나가 목적지 없이 지하철을 탔는데 두 정거장쯤 갔나, 갑자기 너무 답답하고 숨이 안 쉬어지는 거에요. 나중에 보니 그게 공황장애 증상이라고 하더라고요. 그 후로 멀리 가는 건 엄두도 못 내고, 결국 또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었어요.

 

꽃을 접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지금 내가 왜 이럴까 혼자 곰곰이 생각하다가 인터넷에 우울증에 대해 검색해 봤어요. 그런데 ‘꽃’이라는 글자가 눈에 들어왔어요. 이건 내가 한 번도 안 해봤으니까, 새롭게 시작해 볼 수 있겠다 싶더라고요. 당장 집에서 걸어 다닐 수 있는 거리에 있는 학원을 찾았고, 그때 처음 꽃을 접하게 되었어요. 꽃을 만지면서 마음을 다스리는 치료 원예 과정이었거든요. 매일 걸어서 학원을 다녔는데, 어느 순간 제가 자연스럽게 지하철을 타고 가고 있더라고요. 꽃이 일종의 치료제가 되었던 거죠. 갑자기 쓰러지면서 몸이 크게 아팠고 모든 걸 다 포기할 수밖에 없었잖아요. 처음에는 체육을 전공한 사람이 꽃을 만진다는 게 저 스스로도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막상 해보니 저는 의외로 섬세하고 꼼꼼한 사람이더라고요. 적성에도 잘 맞았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푹 빠질 정도로 즐거웠어요.

l 강재규 님의 작업 꽃다발

독일 플로리스트 마이스터 자격증을 취득하셨다고요.

꽃 학원을 6개월 정도 다녔을 때, 선생님께서 학원에서 같이 일을 해보겠냐고 말씀하셨어요. 과연 내가 일을 할 수 있을까 잠깐 고민하다가 일단 해보자는 판단을 내리고 일을 시작했어요.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을 해도 괜찮더라고요. 몸이 어느 정도 정상으로 돌아왔구나 싶었어요. 이제는 제대로 해봐야겠다 싶어서 한국에서 3년 정도 준비했고, 독일에 머물며 시험을 치고 마이스터 자격증을 받아 왔죠.

 

주변 반응은 어땠나요.

당시에 제가 아팠다는 걸 사람들이 잘 몰랐어요. 그래서 플로리스트 준비를 한다고 했을 때 다들 의아해했죠. “네가 왜 그 일을 해?”라는 반응이 불편해서 꽃집을 처음 차렸을 때 일부러 주변에 알리지 않았어요. 저는 그냥 제 일을 할 뿐이고, 굳이 지인들에게 도와달라 말하고 싶지 않았거든요. 사실 아직까지도 제가 이 일을 하고 있다는 걸 모두가 의아해하고 있어요.

l 강재규 님의 플랜테리어 작업

“일단 무작정 시작합니다.
그리고 하나하나 헤쳐나가는 거죠.”

인테리어와 조경은 어떻게 시작하게 된 건가요? 

카페나 사무실에서 식물을 활용한 인테리어를 많이 하잖아요. 실내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식물을 집안에 들여놓는 분들도 점점 늘고 있고. 가게 근처 카페에서 꽃과 나무로 인테리어를 해달라는 요청이 들어오면서 조경 사업을 시작했어요. 조경을 하다 보니 저의 감각을 인정해 주시는 분들이 생겼고, 아예 인테리어 단계부터 꾸며 보라며 믿고 맡겨 주시면서 최근에는 인테리어와 조경 쪽 일에 집중하고 있어요. 가게가 학교 앞에 있어서 교직원 고객도 찾아오는데, 그분들의 제안으로 학교 여기저기 나무를 심고 관리하면서 인연을 계속 맺어가고 있어요.
아무래도 오프라인 행사가 많이 줄어들다 보니 덩달아 일거리가 많이 줄어서 꽃집 운영이 어려웠는데, 자연스럽게 새로운 기회를 잡게 돼서 여러가지 일들을 벌이고 있어요. 요즘은 꽃, 조경, 인테리어 이렇게 명함을 3개나 들고 다녀요.

 

시작이라는 것에 두려움이 없는 분 같아요. 

네, 일단 무작정 시작합니다. 어떤 제안을 받았을 때 도저히 안 되겠다 싶은 일은 과감히 포기하고요. 조금이라도 고민이 된다 싶으면 일단 시작해요. 그리고 하나하나 헤쳐나가는 거죠. 어려움에 처했을 때, 탓할 대상을 찾는 것보다는 해결할 방법을 찾는 게 맞다고 봐요. 잘못된 선택을 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없어요. 어차피 제 선택이니까요.

l 꽃, 인테리어, 조경 3가지 일을 하고 있는 강재규 님의 명함

세 가지 일을 동시에 하느라 바쁘겠어요. 휴식도 중요할 것 같아요.

1년에 단 일주일이라도 무조건 한국을 떠나야 해요. 해외에 나가 있으면 일이 생겨도 어쩔 수 없이 쉴 수밖에 없으니까요. 마음은 조금 불편해도 몸은 쉴 수 있으니까 항상 그랬던 것 같아요. 그런데 최근 2년 동안은 해외를 못 나갔으니 쉬는 날 없이 계속 일만 했네요. 그 대신 힘들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게 더 열심히 일을 합니다.

 

일에만 집중하고 있는 듯한데, 요즘의 삶에 만족하시나요?

입으로는 그만하고 싶다, 이제 그만해야지 하면서도 몸은 계속 일하고 있어요. 일 중독이라기보다는 할 일이 너무 많아서 계속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따로 취미 생활이나 운동을 못 하고 있어요. 시간이 날 때는 아이들이랑 놀아주는 것 정도. 그런데 지금 하고 있는 이 일이 정말 재미있거든요. 일 자체가 즐겁고, 지금 현재에 충실하게 하루하루 사는 것에 만족해요. 

 

혹시 아프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생각해 본 적은 없는지. 

‘했더라면’이란 표현을 잘 쓰지 않아요. 어차피 돌이킬 수 없는 일이니까, 과거를 떠올리며 후회하는 건 저에게 의미 없는 일인 것 같아요. ‘내가 아프지 않았더라면 다른 일을 하고 있지 않을까. 지금의 인생과 많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을 딱히 해본 적이 없어요. 내 인생은 바로 지금 현재의 인생이니까요. 과거와 현재를 비교해 봐도 별로 달라진 점이 없어요. 그런 철학적인 고민을 깊게 해보지 않았고. 미래에 대한 고민도 크게 하지 않습니다. 오늘을 열심히 살다 보면 미래도 좋아지겠지 이런 막연한 마음으로 매일 살아가고 있어요.

“오늘의 고민을

하나하나 줄여 나가다 보면

언젠가는 행복해지지 않을까요.”

바쁜 일상 속 언제 행복을 느끼시나요?

행복이란 걱정이 없는 거라고 생각해요. 오늘의 고민을 하나하나 줄여 나가다 보면 언젠가는 행복해지지 않을까 싶어요. 사실 저는 시간에 쫓기지 않고 맛있는 거 먹을 때가 제일 행복해요. 먹고 싶은 걸 마음껏 먹을 수 있으면 더 행복하고요. 퇴근 후 집 현관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딸들이 달려 나와 인사하며 저를 반겨주는 순간도 참 행복하다고 느끼죠.

 

마지막으로 나를 한 줄로 표현한다면. 

저는 고민을 오래 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두 갈래 길이 나왔을 때 이쪽으로 갈까 저쪽으로 갈까 고민하기보다는 짧게 생각하고 어느 길이든 가보는 편이에요. 선택의 기로에서 고민을 오래 하면 할수록 가는 길이 더 늦어지잖아요. 일단 갔다가 아니다 싶으면 돌아와서 다른 길로 가는 거지, 갈림길 앞에서 결정을 해야 하는 순간이 오면 그 자리에 오랫동안 머물러 있지만은 않을 것 같아요. 예측할 수 없는 일들을 걱정하지 않고 맞닥뜨려 보는 거죠. 때로는 단순하게 생각하고 앞으로 걸어나가면서 하나씩 해결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니까요.

하루쯤 늦어도 괜찮아. 조금 돌아가면 어때, 이런 단순한 마음으로 세상을 과감히 마주해 보자. 원래 인생은 계획대로 되는 게 아닌 법. 지극히 평범한 일상을 충실히, 오늘을 무던히 버텨내는 매일매일이 쌓여 단단한 나를 만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