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잘 하는 게 있으니까 - 플레이라이프

조이

브랜티스트 브랜드 디자이너

나도 잘 하는 게 있으니까

20대 초반에 시작해 햇수로 7년. 실패해도 잃을 게 없다는 생각으로 뛰어든 디자인 프로젝트는 어엿한 브랜딩 회사로 자리 잡았다. 제품의 이름을 짓는 일부터 공간 디자인, 홍보 영상과 이미지까지. 여러 예술가들이 모여 다양한 브랜드를 만드는 브랜딩 아티스트 그룹 ‘브랜티스트’를 이끌어 가고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삐뚤빼뚤 힘을 뺀 아트워크, 있는 그대로의 자연스러움을 좋아하는 그의 취향이 고스란히 녹아든 집에서 조이를 만났다.

 

디자인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요?

어릴 때부터 컴퓨터를 가지고 노는 걸 좋아했어요. 특히 컴퓨터 게임을 하면서 사람들이랑 대화 나누는 게 너무 재미있더라고요. 공부는 뒷전이고 게임에만 빠져 있으니 부모님은 걱정이 되셨나 봐요. 그럴 거면 웹디자인을 해보는 건 어떻겠냐는 엄마의 제안에 미술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어요. 그림에는 소질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친구들이랑 어울려 공부하다 보니 또 재미가 붙었어요. 그렇게 입시 미술을 거쳐서 미대에 진학했죠.


대학 입학 후 학업과 프리랜서 디자인 일을 병행했어요. 아는 선배의 부탁으로 리플릿 디자인을 맡게 되었는데, 그때 사진을 찍어 주셨던 분과 처음으로 협업이라는 걸 하게 됐어요. 그리고 그분의 제안으로 다른 디자인 프로젝트를 계속 이어 갔죠. 수업이 끝나면 매일 출근 하듯 작업실로 가서 다 같이 밥 먹고 프로젝트 논의하고, 친구처럼 이야기도 나누며 시간을 보낸 것 같아요. 그게 브랜티스트의 시작이고, 그때 함께 시작한 동료들과 7년째 회사를 운영해 오고 있습니다.

창업 후 7년이라는 시간 동안 많은 일이 있었을 것 같아요.

저는 대구에서 나고 자랐고, 대구에 있는 대학교를 다녔어요. 창업 초기에는 학교 동아리방에서 작업했고, 일이 늘어나면서 대구에 첫 사무실을 마련했어요. 그렇게 3년 정도 회사를 운영하다가 더 넓은 세상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에 서울로 사무실을 옮기기로 결심했지요. 놀이터처럼 여러 사람들이 오가는 곳, 예술 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는 동네인 연남동에 자리를 잡았고요.

사실, 가족과 친구들을 두고 타지로 떠난다는 게 쉽지는 않았어요. 처음 서울에 올라왔을 때는 제 조건에 맞는 집을 못 구해서 한 달 동안 게스트하우스를 전전하며 생활했어요. 물론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함께 있으니 두려움이 조금은 잊혀졌지만, 그래도 나를 보듬어 주는 공간이 없으니 마음이 헛헛하더라고요. 그때 정말 힘들었어요.

l 조이님의 회사 사람들

“저는 회사를 성장시키면서

더 좋은 가치를 사람들에게 

전하기 위해 늘 고민해요.”

어린 나이에 회사 운영을 한다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직장인 친구들을 보면, 주말에는 잠깐 스위치를 껐다가 월요일이 되면 다시 스위치를 켜는 것 같아요. 저는 회사를 성장시키면서 더 좋은 가치를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거든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주말에도 일 생각을 하고 회사에 대한 고민을 계속 이어갑니다. 좋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동료들과 나누고, 그러면서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계속 만들어 낼 수 있는 것 같아요.
온전히 제 능력으로 회사를 이끌어 가야 하는 입장이다 보니 책임감도 많이 느껴요. 20대 때는 얼마를 버는지가 중요하지 않았어요. 그냥 옆에 있는 친구들과 같이 뭔가를 만들어 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는데, 주변에서 다들 걱정을 하니까 저도 모르게 불안했던 것 같아요. 회사 식구들이 점점 늘어나면서 앞으로의 방향성이나 회사가 그리는 이미지를 알려 주는 역할도 부담이 됐고. 때로는 단호하게 말을 정확히 전달해야 원하는 걸 얻을 수 있는데, 우유부단한 성격이라 아직도 그게 잘 안돼서 열심히 훈련하고 있어요.

 

동료들과의 마찰은 없었나요?

친구끼리 동업하는 게 아니라는 말이 처음에는 이해가 되더라고요. 아무래도 성향이 다르다 보니 커뮤니케이션 과정에서 힘든 때가 많았고, 그만두고 싶은 순간도 있었어요. 그럼에도 지금까지 함께 올 수 있었던 이유는 서로를 신뢰하기 때문이에요. 몇 년 전, 개인적으로 안 좋은 일이 연달아 몰려왔던 시기가 있었어요. 제가 사람을 정말 좋아하는 성격인데 그때는 대인기피증까지 올 정도로 힘들었어요. 그때마다 지금 같이 일하고 있는 친구가 항상 옆에 있어줬거든요. 하나씩 해결해 보자며 용기도 줬지만, 실제로 직접 나서서 도움 준 일들이 많아요. 덕분에 불안을 이겨내고 저의 원래 모습을 조금씩 되찾을 수 있었어요.

브랜딩 프로젝트 중에 얻는 것도 있었을 것 같아요.

예전에는 사람들이 봉사 활동하는 모습을 보면서 굳이 정기적으로 시간과 돈을 투자할 만한 일인가 하는 의문을 품고 있었거든요. 그러다 회사의 공익 사업 프로젝트를 통해 필리핀에 있는 마을을 찾아가게 되었어요. 물조차도 공급이 되지 않는 가난한 판자촌이었죠. 창업 초기이기도 했고 금전적인 지원은 많이 해 줄 수 없었기 때문에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우리가 잘 하는 예술 활동으로 그들을 도와주기로 했어요. 가족사진을 찍어 주고 그걸 인쇄해서 선물하기로요.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채워주겠다고 생각했던 스스로를 진심으로 반성하게 되더라고요. 사진을 받는 순간 너무나도 밝고 순수한 웃음으로 고마워하는 그들을 보면서 나는 저런 작은 것에 감사하면서 살았던가, 오히려 몰랐던 것을 가득 채우고 돌아오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봉사란 내가 남을 도와주는 게 아니라 서로 채우고 채워주는 것, 나에게 꼭 필요한 일이란 걸 깨달은 계기가 되었어요. 

“초록빛 식물로 집을 꾸민다던지,

제철 식재료로 요리하는 일처럼

제가 잘 하는 것들을 하면서 마음을 회복해요.”

l 조이님의 그림

때로는 자존감이 낮아지기도 한다고. 그 순간을 어떻게 극복하는지?

사수가 있는 상황이 아니다 보니 제 역량을 스스로 개발할 수밖에 없잖아요. 대학교를 다니는 와중에 창업을 했으니 배움에 대한 목마름이 많아요. 다양한 작업물을 참고하거나 다른 스튜디오에서 일하는 분들의 인터뷰를 많이 찾아보곤 하는데 ‘아, 이 사람들 정말 잘한다.’ 싶을 때가 있어요. 그에 비해 나는 아직까지 많은 사람들로부터 공감 받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 자존감이 떨어지기도 하죠.

 

그럴 때면 ‘나도 잘하는 게 있다.’는 생각을 계속 주입해요. 초록빛 식물로 집을 꾸민다던지, 제철 식재료로 요리하고 예쁘게 플레이팅하는 일처럼 제가 잘 하는 것들을 하면서 마음을 회복해요. 지치고 무기력할 때는 집에 와서 모든 소음을 차단하고 그냥 하룻밤을 꼬박 자요. 잠들기 직전까지는 큰 문제인 것 같고 절대 해결할 수 없을 것만 같은 두려움이 찾아오는데, 자고 일어나면 아무 일도 아닌 때가 많더라고요. 이런 경험을 몇 번 하고 나니 누군가 저처럼 힘들어하면, 아무 생각 하지 말고 일단 잠을 자 보라고 조언해 주기도 해요.

집 꾸미기를 즐기시는 것 같아요. 가드닝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저는 취향을 함께 나누는 걸 좋아하는데, 나만의 공간이 생기니까 친구들을 집에 초대하고 그걸 보여줄 수 있는 장을 만들게 된 것 같아요. 집들이 올 때 꽃이나 화분을 사 오는 경우가 많은데, 그전까지 식물을 제대로 키워본 적이 없었거든요. 금세 시들어 버리게 되니 마음이 불편하더라고요. 집에 있는 아이들이라도 한번 잘 가꿔보자는 책임감으로 가드닝을 시작하게 됐어요. 홈 가드닝을 하다 보니 딱히 멀리 나가지 않아도 숲속에 있는 듯한 편안한 기분을 느낄 수 있고, 어릴 때 시골에서 살던 추억도 떠올리게 돼요. 식물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같은 주제로 공감할 수 있다는 것도 감정적으로 많은 부분을 채워주는 것 같아요. 내가 좋아하는 걸 소비하고, 수집하면서 그것들을 한 공간에 모두 모으다 보니 ‘아, 이게 내 취향이구나.’라는 걸 깨달았고, 그러면서 나 자신에 대해서도 더 잘 알게 되었어요.

보리와는 언제부터 함께 살고 있나요? 

어릴 때부터 늘 강아지가 집에 있었기 때문에, 나중에 독립하면 반려견을 꼭 키울 거라 생각하고 있었는데요. 그러던 중 번식장에서 구조돼 임시보호를 받고 있던 보리를 데려왔고, 2년째 함께 살고 있어요. 서울 생활을 시작하면서 스스로를 돌아볼 여유가 없었는데, 보리를 위해 동네 산책을 하면서 자연스레 저의 고민이나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어요. 산책 도중에 보고 싶던 사람들에게 전화를 걸기도 하고, 하루를 의미 있게 마무리할 수 있게 된 거죠. 그리고 저의 눈빛이나 목소리의 작은 변화를 보리가 바로 알아채더라고요. 힘들 때 축 늘어져 있으면 옆에 와서 가만히 같이 누워 있어 주고, 그럴 때마다 보리에게 큰 위로를 받아요.

“일상 속에서 느끼는 벅찬 감정을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랑 나누는 것,

그게 행복인 것 같아요.”

조이에게 행복이란 어떤 의미인가요? 

제가 생각하는 행복은 아주 일상적이고 작은 것 같아요. 요즘 흔히들 말하는 소확행이라고 하잖아요. 사계절을 감각할 때, 산책하면서 바람을 느끼거나 길가에 피어난 들꽃을 보며 보리와 함께 속도를 맞춰 걷는 순간들, 집에 앉아서 오후 햇살을 맞는다던지 하는 행동 말이에요. 그리고 내 감정을 오롯이 챙기면서 나에게 필요한 음식이나 향기, 음악을 알아차리고 스스로 채울 때. 그러한 벅찬 감정을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랑 나누는 것, 그게 행복인 것 같아요.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살고 싶나요?

미래에도 여전히 따뜻한 시선으로 사계절을 만끽하면서 보리와 함께 이 동네의 터줏대감이 되는 상상을 하고 있어요. 그리고 과거의 나처럼 마음의 여유가 부족한 이들에게 기쁨을 채워주고 나눠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래서 조금 더 건강하고 이로운 가치를 따라 살아가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아직 발견하지 못한 세상 속 다양한 이야기를 찾아내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며 살아가고 싶다는 꿈을 꾸면서요.

스스로를 쓸모없다고 느끼는 사람은 나를 사랑하기도, 남을 사랑하기도 어렵다고 하지요. 지금 내 자신에게 ‘괜찮아’라고 말해 보세요. 어떤 상황에 있든지 나를 소중히 돌보고 아껴 주세요. 이 글을 보고 있는 당신이 행복한 하루를 보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