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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은지
폴웨어 디자이너, 폴댄서
하고 싶은 일은 당장 하세요
2011년부터 2021년 3월까지 근무했으니 간호사로 딱 10년 동안 일했네요. 사실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 입시 미술을 했어요. 미술 전공까지 하고 싶었지만 현실적인 문제로 고민하다가 간호사 준비를 해 보는 건 어떻겠냐는 가족의 권유로 공부를 시작했고, 간호학과에 입학했죠. 처음에는 대학병원 중환자실로 가게 됐어요. 물론 실수도 하고, 힘든 상황도 있었지만 일을 배우는 게 재미있더라고요. 좋은 사람들도 많이 만났고요. 생각보다 간호사 업무가 잘 맞았고, 실제로도 잘 해냈어요.
의료인으로서 사람들을 돕는 일이기에 보람도 크고, 간호사는 정말 좋은 직업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이 일을 평생 한다는 생각을 했을 때, 머릿속으로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더라고요. 그냥 해야 하는 일, 익숙하게 해낼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더 컸어요. 저는 그동안 간호사로 일하면서 메르스도 겪었고, 코로나도 겪었거든요. 말 그대로 사명감으로 버텼어요. 근무 시간이 불규칙하고 쉬는 시간이 부족하다 보니 육체적으로도 지치고, 환자 앞에서 냉정해져야 하는 게 감정적으로 버겁더라고요. ‘이 길이 맞나, 이런 마음가짐으로 일하는 게 맞나.’하는 의문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조금씩 꿈틀거렸던 것 같아요.
그러다 우연히 중학교 후배와 10년 만에 연락이 닿았어요. 동네에서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는데, 그 친구가 갑자기 저에게 묻더라고요. “언니는 꿈이 뭐예요?”라고. 갑자기 머릿속이 하얘지면서 정적이 흘렀는데, 순간 너무 부끄러웠어요. 그때부터 내 자신을 끄집어 내기 위해 노력을 많이 했죠.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이것저것 다양한 취미 활동을 계속 찾아 다녔고요.
꿈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전까지는 그냥 흘러가는 시간에 맞춰 살았던 것 같아요.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내 적성에 잘 맞는지, 내가 원하는 게 뭔지 한 번도 진지하게 고민해 본 적이 없었거든요. 처음으로 저에 대해 깊이 있게 생각하기 시작하면서, 그 이후로 한 5년은 스스로를 알아가는데 시간을 많이 쓴 것 같아요. 디퓨저나 석고 방향제 만들기, 그림 그리기 등 공방 같은 곳을 정말 많이 다녔어요. 내가 어떤 걸 좋아하는지, 뭘 잘하는지 사소한 것부터 알아보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즐거움이 생겨났어요. 그리고 저는 생각보다 꼼꼼하고 힘이 센 데다가 예쁜 걸 좋아하고 새로운 도전을 즐기는 사람이더라고요. 그렇게 다양한 분야를 경험하는 과정에서 폴댄스를 만났는데 처음부터 ‘아, 이거다!’ 싶을 만큼 재미있고 좋았어요.
저는 폴댄스를 하면서 자존감을 회복하는 데 도움을 받았어요. 맨 처음 폴을 잡았을 때는 위로 한 번 올라가는 것조차 안 됐거든요. 아마 경험해 보면 아실 거예요. ‘이게 왜 안 되지? 내 몸이 이상한가?’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아요. 그래도 저는 힘이 세다는 장점이 있었죠. 꾸준히 연습하면서 코어 근육도 더 단단해지고, 조금씩 몸이 유연해졌어요. 그리고 잘 한다, 재능이 있다는 칭찬을 선생님께 많이 들었어요. 어려운 기술을 하나씩 성공할 때마다 성취감과 함께 자존감이 저절로 차오르더라고요. 더 잘하고 싶다는 욕심도 생겼어요.
폴웨어 디자인까지도 도전하게 된 게 가장 큰 변화에요. 폴댄스에 푹 빠지면서 폴웨어를 정말 많이 샀거든요. 그런데 아무리 봐도 이건 폴댄스를 해 본 사람이 만든 옷이라는 생각이 안 들더라고요. 내가 입었을 때 불편한 부분이나 보완하고 싶은 것들이 생기면서 직접 만들어보고 싶어졌어요. 그리고 내가 직접 디자인한 폴웨어로 브랜드를 론칭하고 싶다는 꿈도 생겼고요. 폴웨어 제작 방법을 알려 주는 곳이 없다 보니 그 대신에 비키니 수영복을 만드는 원데이 클래스를 찾았어요. 매주 토요일마다 수업이 열리는데, 저는 토요일에도 병원 출근을 해야 하잖아요. 지금 생각하니 참 무모한데, 당장 일을 그만두고 디자인 수업을 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이렇게 확실했던 적이 없었는데, 이 일은 진짜 간절히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나 이거 하고 싶어. 일 그만두고, 내 브랜드 한번 만들어 보고 싶어.”라고 남편에게 말했는데, 망설임 없이 바로 해 보라고 하더라고요. 진짜 너무 좋았어요. 또다시 현실 앞에서 고민하던 저를 믿어 주고 마음으로 든든히 지지해 준 남편 덕분에 결심을 실행으로 옮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폴댄스를 시작한 지 몇 달 지나지도 않았던 때였는데, 지금도 남편에게 진심으로 고마워요. 그때를 생각하니 또 눈물이 날 것 같네요.
가끔 어두워 보인다는 얘기를 듣곤 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체력도 단단해지고 마음에 여유가 생기면서, 성격도 밝고 긍정적으로 변한 것 같아요. 폴웨어 브랜드 론칭 준비를 하면서 남는 시간을 활용해 최근에는 간호 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도 시작했어요. 제 경력을 활용할 수 있는 데다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만 짬을 내면 되니까요. 나 자신에게 온전히 집중하며 살다 보니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 지금 당장은 안되지만 언젠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판단하고 건강한 선택을 할 수 있게 되더라고요. 요즘에는 나만의 패턴에 맞춰 하루 일과를 정리하고,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어요.
저는 별것 아닌 작은 일상에서 큰 행복을 느끼는 편이에요. 남편과 함께 곱창에 소주 한 잔 마시는 것만으로도 완벽한 행복을 느낄 수 있거든요. 그리고 저는 그냥 계속 꿈꾸는 사람인 것 같아요. 크든 작든 즐거운 상상을 하며 계속 꿈을 꾸는 것도 즐겁고 꿈을 실행하는 것, 그 과정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재미있고요. 이렇게 사소하지만 내가 원하는 것들을 하나하나 현실로 만들어 가는 게 가장 큰 행복이에요.
지금은 폴댄스와 폴웨어를 만드는 것에 집중하고 있지만, 내가 좋아하는 또 다른 일들을 찾으면서 새로운 꿈을 꾸게 될 거라 생각해요. 앞으로의 제 모습이 기대도 되고요. 폴댄스를 평생 동안 해야겠다는 목표를 두고 있는 건 아니거든요.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두려움 없이 계속 찾아 헤매는 시간을 가져 보려고요. 저는 예전에 마흔 살에 은퇴하는 게 꿈이었어요. 하지만 30대 중반의 저는 하고 싶은 게 너무 많고, 앞으로도 계속 새로운 일을 찾아 도전할 것 같아요. 혹시 해보고 싶은 게 있다면 생각만 하지 말고 시간을 자꾸 내세요. 시간을 쪼개면 할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