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하고 싶은 일은 당장 하세요

"저는 계속 꿈꾸는 사람이에요. 꿈을 실행하는 것도, 그 과정에서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정말 즐거워요."

오은지 폴웨어 디자이너, 폴댄서

인생의 전환점은 대부분 우연히, 그리고 뜬금없이 찾아온다. 평소와 다름없던 어느 날 “꿈이 무엇이냐?”라고 가볍게 툭 던진 후배의 질문 하나에 그의 삶이 완전히 달라졌으니. 열심히 하면 된다고 되뇌며 버티는 것만이 과연 정답일까. 5년의 고민 끝에 폴댄스를 만났고, 비로소 온전히 나를 위해 행복해지기로 결심했다. 10년 차 간호사에서 아마추어 폴댄서 오은지로, 안정적인 직장 대신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쪽을 선택한 것. 이제 막 삼십 대 중반, 아직은 조금 서툴지만 나만의 방식으로 업을 꾸리며 차근차근 꿈을 현실로 만들어 나가고 있는 그는 지금도 한창 성장하고 있다.

작년까지만 해도 병원에서 근무하셨죠. 간호사의 길을 선택하게 된 이유가 궁금합니다. 

2011년부터 2021년 3월까지 근무했으니 간호사로 딱 10년 동안 일했네요. 사실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 입시 미술을 했어요. 미술 전공까지 하고 싶었지만 현실적인 문제로 고민하다가 간호사 준비를 해 보는 건 어떻겠냐는 가족의 권유로 공부를 시작했고, 간호학과에 입학했죠. 처음에는 대학병원 중환자실로 가게 됐어요. 물론 실수도 하고, 힘든 상황도 있었지만 일을 배우는 게 재미있더라고요. 좋은 사람들도 많이 만났고요. 생각보다 간호사 업무가 잘 맞았고, 실제로도 잘 해냈어요.

l 간호사 근무 당시 격리 병동에서
l 병원에서 사용하던 이름표

한 분야에서 10년 넘게 쌓아 온 경력을 뒤로 하고 다른 일을 한다는 게 쉽지는 않았을 텐데. 갑자기 전향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의료인으로서 사람들을 돕는 일이기에 보람도 크고, 간호사는 정말 좋은 직업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이 일을 평생 한다는 생각을 했을 때, 머릿속으로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더라고요. 그냥 해야 하는 일, 익숙하게 해낼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더 컸어요. 저는 그동안 간호사로 일하면서 메르스도 겪었고, 코로나도 겪었거든요. 말 그대로 사명감으로 버텼어요. 근무 시간이 불규칙하고 쉬는 시간이 부족하다 보니 육체적으로도 지치고, 환자 앞에서 냉정해져야 하는 게 감정적으로 버겁더라고요. ‘이 길이 맞나, 이런 마음가짐으로 일하는 게 맞나.’하는 의문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조금씩 꿈틀거렸던 것 같아요.

 

그러다 우연히 중학교 후배와 10년 만에 연락이 닿았어요. 동네에서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는데, 그 친구가 갑자기 저에게 묻더라고요. “언니는 꿈이 뭐예요?”라고. 갑자기 머릿속이 하얘지면서 정적이 흘렀는데, 순간 너무 부끄러웠어요. 그때부터 내 자신을 끄집어 내기 위해 노력을 많이 했죠.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이것저것 다양한 취미 활동을 계속 찾아 다녔고요.

l 공방에서 취미로 만든 석고 방향제

“내가 어떤 걸 좋아하는지, 뭘 잘하는지
사소한 것부터 알아보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즐거움이 생겨났어요.”

자신을 찾기 위해 어떤 경험들을 했나요?

꿈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전까지는 그냥 흘러가는 시간에 맞춰 살았던 것 같아요.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내 적성에 잘 맞는지, 내가 원하는 게 뭔지 한 번도 진지하게 고민해 본 적이 없었거든요. 처음으로 저에 대해 깊이 있게 생각하기 시작하면서, 그 이후로 한 5년은 스스로를 알아가는데 시간을 많이 쓴 것 같아요. 디퓨저나 석고 방향제 만들기, 그림 그리기 등 공방 같은 곳을 정말 많이 다녔어요. 내가 어떤 걸 좋아하는지, 뭘 잘하는지 사소한 것부터 알아보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즐거움이 생겨났어요. 그리고 저는 생각보다 꼼꼼하고 힘이 센 데다가 예쁜 걸 좋아하고 새로운 도전을 즐기는 사람이더라고요. 그렇게 다양한 분야를 경험하는 과정에서 폴댄스를 만났는데 처음부터 ‘아, 이거다!’ 싶을 만큼 재미있고 좋았어요.

“폴댄스를 하면서 자존감을 회복했어요.
어려운 기술을 하나씩 성공할 때마다
성취감이 저절로 차오르더라고요.”

바로 이거다 싶었을 만큼, 폴댄스에 매력을 느꼈던 이유는 무엇인가요.

저는 폴댄스를 하면서 자존감을 회복하는 데 도움을 받았어요. 맨 처음 폴을 잡았을 때는 위로 한 번 올라가는 것조차 안 됐거든요. 아마 경험해 보면 아실 거예요. ‘이게 왜 안 되지? 내 몸이 이상한가?’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아요. 그래도 저는 힘이 세다는 장점이 있었죠. 꾸준히 연습하면서 코어 근육도 더 단단해지고, 조금씩 몸이 유연해졌어요. 그리고 잘 한다, 재능이 있다는 칭찬을 선생님께 많이 들었어요. 어려운 기술을 하나씩 성공할 때마다 성취감과 함께 자존감이 저절로 차오르더라고요. 더 잘하고 싶다는 욕심도 생겼어요.

 

성취감 말고도 폴댄스를 통해 얻게 된 것이 있나요.

폴웨어 디자인까지도 도전하게 된 게 가장 큰 변화에요. 폴댄스에 푹 빠지면서 폴웨어를 정말 많이 샀거든요. 그런데 아무리 봐도 이건 폴댄스를 해 본 사람이 만든 옷이라는 생각이 안 들더라고요. 내가 입었을 때 불편한 부분이나 보완하고 싶은 것들이 생기면서 직접 만들어보고 싶어졌어요. 그리고 내가 직접 디자인한 폴웨어로 브랜드를 론칭하고 싶다는 꿈도 생겼고요. 폴웨어 제작 방법을 알려 주는 곳이 없다 보니 그 대신에 비키니 수영복을 만드는 원데이 클래스를 찾았어요. 매주 토요일마다 수업이 열리는데, 저는 토요일에도 병원 출근을 해야 하잖아요. 지금 생각하니 참 무모한데, 당장 일을 그만두고 디자인 수업을 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퇴사 후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하겠다고 했을 때, 주변의 반응은 어땠나요?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이렇게 확실했던 적이 없었는데, 이 일은 진짜 간절히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나 이거 하고 싶어. 일 그만두고, 내 브랜드 한번 만들어 보고 싶어.”라고 남편에게 말했는데, 망설임 없이 바로 해 보라고 하더라고요. 진짜 너무 좋았어요. 또다시 현실 앞에서 고민하던 저를 믿어 주고 마음으로 든든히 지지해 준 남편 덕분에 결심을 실행으로 옮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폴댄스를 시작한 지 몇 달 지나지도 않았던 때였는데, 지금도 남편에게 진심으로 고마워요. 그때를 생각하니 또 눈물이 날 것 같네요.

l 직접 디자인하고 있는 폴웨어 작업물
l 퇴직 후 일과를 기록한 '시간 쪼개기'용 스케줄러

“체력도 단단해지고 마음에 여유가 생기면서,
성격도 밝고 긍정적으로 변한 것 같아요.”

예전과는 일상이 많이 바뀌었을 것 같아요. 가장 많이 달라진 점이 있다면.

가끔 어두워 보인다는 얘기를 듣곤 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체력도 단단해지고 마음에 여유가 생기면서, 성격도 밝고 긍정적으로 변한 것 같아요. 폴웨어 브랜드 론칭 준비를 하면서 남는 시간을 활용해 최근에는 간호 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도 시작했어요. 제 경력을 활용할 수 있는 데다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만 짬을 내면 되니까요. 나 자신에게 온전히 집중하며 살다 보니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 지금 당장은 안되지만 언젠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판단하고 건강한 선택을 할 수 있게 되더라고요. 요즘에는 나만의 패턴에 맞춰 하루 일과를 정리하고,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어요.

“저는 계속 꿈꾸는 사람이에요.
꿈을 실행하는 것도, 그 과정에서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정말 즐거워요.”

지금은 충분히 행복하다고 느끼시는지. 오은지님에게 행복이란 무엇인가요?

저는 별것 아닌 작은 일상에서 큰 행복을 느끼는 편이에요. 남편과 함께 곱창에 소주 한 잔 마시는 것만으로도 완벽한 행복을 느낄 수 있거든요. 그리고 저는 그냥 계속 꿈꾸는 사람인 것 같아요. 크든 작든 즐거운 상상을 하며 계속 꿈을 꾸는 것도 즐겁고 꿈을 실행하는 것, 그 과정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재미있고요. 이렇게 사소하지만 내가 원하는 것들을 하나하나 현실로 만들어 가는 게 가장 큰 행복이에요.

 

전직을 고민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 있나요?

지금은 폴댄스와 폴웨어를 만드는 것에 집중하고 있지만, 내가 좋아하는 또 다른 일들을 찾으면서 새로운 꿈을 꾸게 될 거라 생각해요. 앞으로의 제 모습이 기대도 되고요. 폴댄스를 평생 동안 해야겠다는 목표를 두고 있는 건 아니거든요.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두려움 없이 계속 찾아 헤매는 시간을 가져 보려고요. 저는 예전에 마흔 살에 은퇴하는 게 꿈이었어요. 하지만 30대 중반의 저는 하고 싶은 게 너무 많고, 앞으로도 계속 새로운 일을 찾아 도전할 것 같아요. 혹시 해보고 싶은 게 있다면 생각만 하지 말고 시간을 자꾸 내세요. 시간을 쪼개면 할 수 있어요.

“사랑하는 사람을 찾듯이 사랑하는 일을 찾아라.” 수많은 실패와 성공을 경험했던 스티브 잡스가 남긴 말이죠. 지금 자신이 사랑하는 일을 하고 있나요? 남들이 좋다고 인정해 주는 직업이 아니라 내가 진짜로 하고 싶은, 남은 인생을 다해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는 일 말이에요. 아직 찾지 못했더라도, 다른 것으로 바뀌어도 괜찮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고민해 보세요.

‘나’를 알아가는 시간

한 번쯤은 나를 돕는다는 마음으로 스스로에게 휴식을 선물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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