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히 내 생각을 따르는 삶 - 플레이라이프

정지음

작가

온전히 내 생각을 따르는 삶

작가 정지음님의 마음성장 키워드

#기록 #자기이해 #감정조절

남들의 말에서 자유롭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것이 나를 위한 조언일 때는 더욱이요. 그러나 남의 말에 지나치게 귀를 기울이면 내 안의 목소리를 놓칠 수 있습니다. 작가 정지음 님은 남의 말과 자신의 생각을 구분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틈틈이 내 감정을 기록하고, 그 기록을 지우면서 나쁜 감정도 함께 지워버리지요. 그 과정을 통해 상처받지 않고 누군가를 좋아할 수 있는 단단한 자아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존재 자체만으로 이해받는데,

저는 항상 설명을 해야 했어요.”

ADHD 진단 전, 마음속은 항상 투쟁이었어요

ADHD를 진단받기 전에는 마음속이 항상 투쟁에 가까웠어요. 사회에서 이야기하는 보편적인 ‘정상성’을 느끼는 나와 그걸 절대 맞추지 못하는 나, 두 명이 있는 느낌이었거든요. 어렸을 때는 많이 혼나기도 했어요. 상대방은 한 마디라고 해도, 그게 하나씩 모이면 세상 모든 사람이 나한테 뭐라고 하는 기분이 들어요. 다른 사람들은 존재 자체만으로도 이해를 받는데, 저는 항상 설명을 해야 이해받을까 말까 하는 게 참 힘들었어요.

<젊은 ADHD의 슬픔>이라는 책을 냈지만 전문 의료인은 아니에요. 당연히 ADHD와 동반질환에 대한 관심은 많지만 그냥 일반인이거든요. 전문가처럼 보이지 않도록 조심하고 있어요. 정신과 선생님이 식당 주인이라면, 저는 음식을 잘 먹는 먹보인 셈이니까요.

 

힘든 시기를 겪어야만 할 수 있는 ‘성장’이 있어요

명확한 진단명이 나오면 해방감을 느낀다는 분들도 계시지만, 저는 낙오감을 더 많이 느꼈어요. 사회의 마지막 기준에 매달려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조차 아니게 된 거잖아요. 어떻게 보면 오만했던 거에요. 내가 정상이 아닐 리가 없다는 생각이 오히려 큰 배신감으로 다가온 거죠.

ADHD 진단 이후 힘든 시기를 겪고 보니 배운 게 많다는 생각도 들어요. 나쁜 상황을 통해서만 할 수 있는 성장이 있거든요. 힘든 시기를 이겨낼 수 있는 비법 같은 건 없더라고요. 그냥 시간이 흐르고 보니 지난 세월을 다르게 느낄 수 있는 내가 되어 있는 거죠.

“스마트폰 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해 시작한 글쓰기가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어요.”

스마트폰 중독에서 벗어나려 글쓰기를 시작했어요

2011년에 스마트폰이라는 개념이 등장한 후로 폰 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했어요. 콤플렉스가 될 정도로 중독이 심해서, 이걸 통해 생산적인 활동을 해야겠다는 접근을 했어요. 폰을 몸에서 떨어뜨릴 수는 없었거든요. 하필 글쓰기였던 이유는, 다른 것엔 소질이 없었거든요. 할 수 있는 것 중에 제일 할만한 거였어요. 별생각 없이 시작했지만 그 작은 생각이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고요.

기록을 나쁜 감정을 지우기 위한 용도로 활용해요. 좋은 생각들은 주로 샤워할 때 떠오르더라고요. 그래서 기록하기가 힘들어요. 대신 평소에 악감정이 들면 메모장에 일단 써요. 스스로의 화를 인정하고 알아주는 과정인 거예요. 그리고 지워버려요. 글을 지우면서 화난 감정 또한 지워버리는 거죠.

 

물리적인 거리를 줄이면 기록이 쉬워져요

기록하는 습관은 사실 태도보다는 물리적인 거리에 달린 것 같아요. 신체와 기록 수단 사이의 거리를 줄이면 도움이 되더라고요. 시간을 정해서 컴퓨터 앞에서 글을 쓰겠다고 마음먹는 건 지키기 어려워요. 그런데 내가 떠오르는 즉시 휴대폰 메모장을 켜겠다는 다짐은 누구나 할 수 있을 거예요. 글을 쓰다 보면 반드시 글을 쓰지 못할 이유가 생겨요. 글쓰기가 겉보기보다 그리 즐거운 활동은 아니다 보니 하기 싫다는 생각을 하는 거죠. 하기 싫다는 감정을 이겨낼 수 있겠다고 생각하면 좀 더 오래 쓸 수 있어요.

“과거의 기록을 읽다 보면, 내가 모르던 스스로를 알 수 있어요.”

예전 글을 보다 보면 몰랐던 저를 알 수 있어요

해야 할 일이 있는데 하기 싫을 때 과거의 기록을 찾아봐요. 어릴 때 썼던 기록들을 통해 삶의 궤적을 돌아보는 걸 좋아하거든요. 저에게 암흑기라 부르는 시기가 있었는데, 그 시기의 기록을 돌아보니 지금은 낼 수 없는 에너지가 있었어요. 이렇게까지 되는 일이 없는데도 다양한 시도를 하고 살았구나 싶었죠. 저는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는데, 기록으로 그 의견이 뒤집힌 거예요.

자기가 썼던 예전 글을 계속 보다 보면 생각보다 일관적인 사람이라는 걸 발견해요. 성인이 되고 네일 아트를 하는 취미가 생겼는데, 알고 보니 어렸을 때부터 손톱 꾸미는 걸 좋아했더라고요. 중학생 때도 손톱이 항상 뭔가로 꾸며져 있었어요. 나도 스스로를 다 모른다는 사실을 기록으로 발견하게 된 거죠.

l 정지음 작가의 반려묘 맷돌이

“맷돌이는 제 삶의 구심점 역할을 해요.

사실 맷돌이가

저를 돌봐주는 것 같아요.”

반려 고양이를 돌보며 생활의 중심을 잡아요

고양이 맷돌이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생후 한 달 경에 저희 집에 왔어요. 엄청 숙고하고 데려온 건 아닌데, 지금은 제 삶의 구심점 역할을 해요. 맷돌이가 오기 전에는 밖에 나가서 사흘 넘게 집에 안 돌아올 때도 있었는데, 지금은 어디를 가더라도 돌아오는 게 당연해졌어요. 집에서 저를 기다리는 생명체가 있으니 혼자 사는 집인데도 ‘가정’이 되기 시작했다는 느낌이 들어요. ‘마이너스 과몰입’이라고 부르는 상태가 있거든요. 몰입이 너무 심한 나머지 스스로를 해치는 상황인데요. 먹지도 씻지도 않고 뭔가에 몰두하는 거예요. 맷돌이는 밥을 주고, 물을 갈아주고 하면서 챙겨줘야 하는 생명체잖아요. 그래서 맷돌이가 마이너스 과몰입을 깨주는 역할을 해요. 제 생활이 망가지는 걸 막아주는 거죠. 사실 맷돌이가 저를 돌봐준다고 할 수도 있겠네요.

 

화가 날 때는 그냥 걸어요

사실 걷는 걸 싫어하는 편이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걸을 때가 있는데, 화를 풀기 위해서예요. ‘에스키모 분노 해소법’이라는 게 있더라고요. 에스키모인들은 화가 나면 화가 풀릴 때까지 걷다가 화가 풀린 지점에서 다시 되돌아온대요. 따라 해 보니 화가 빨리 풀리더라고요. 계속 화를 내고 싶어도 다리가 너무 힘드니까 ‘화를 그만 내고 여기까지만 하자’고 스스로 합의를 해요.

그리고 걸음 수를 통해 나도 몰랐던 감정의 크기를 알 수 있어요. 처음에는 1,000걸음만큼 화가 났다고 생각했는데 걸어보니 7,000걸음 넘게 화가 났다던가 하는 식의 깨달음을 얻을 수 있거든요. 이렇게 걸으면서 하는 생각 자체가 저와의 합의이기도 하고, 좋은 운동이기도 해서 다른 분들도 따라 해 보면 좋을 것 같아요.

“남들이 해주는 어떤 말도

제가 납득하지 못한다면

의미가 없는 것 같아요.”

지치고 힘들 때는 감정을 있는 그대로 마주해요

저는 뭔가 하고 싶은 걸 할 수 없을 때 지치더라고요. 감정적인 접근보다는 내가 뭘 원하고 있고, 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지 이성적으로 접근하는 태도가 필요해요. 그 상태를 더 극적으로 끌고 가기도 해요. 저는 성격이 급하고 싫증을 잘 내서, 지치고 힘든 상태로 오래 머물러있을 수 없더라고요. 감정이 소진될 때까지 계속 파고들면, 이제 이러고 있기도 힘들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게 감정을 소진해야 나중에 과거를 되새김하는 일이 없더라고요. 당장 나쁜 감정을 직시하지 않고 미뤄두면 반드시 돌아오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나쁜 감정일지라도 현재에 충실하려고 합니다.

 

남의 말을 들으면 남 탓을 하게 되더라고요

무언가 결정할 때 남의 생각인지, 내 생각인지 구분하려는 노력을 해요. 어떤 시기에는 뭘 해야 된다는 판단이 들 때 내가 하고 싶은 건지, 아니면 은연중에 누군가 나에게 주입한 생각인 건지 구분하려고 노력해요. 그렇게 분리를 하고 나면 삶의 의무가 많이 줄어들어요. ‘이 나이 때는 이렇게 해야지, 이 정도는 해야지’라는 척도를 스스로 설정하는 게 중요하더라고요.

남의 의견을 따라가고, 남의 말을 들으면 결국 나중에 남 탓을 하게 돼요. 정말 가까운 사람이라고 해도 내 인생을 책임질 수는 없잖아요. 결과가 좋지 않으면 책임을 그쪽으로 돌리고 싶게 되는 게 사람 마음이기 때문에 남의 말을 잘 듣지 않으려고 해요. 제가 납득을 하지 못한다면 나쁜 말도, 좋은 말도 의미가 없는 것 같거든요. 그래서 사람을 더 좋아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다른 사람이 상처를 주려고 하거나, 저를 맘대로 조종하려고 해도 소용이 없기 때문에 그 사람을 미워하지 않을 수 있어요. 그런 것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게 사람을 좋아하는 하나의 방법이에요.

다른 사람들의 말이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닐 겁니다. 저마다의 경험에서 비롯된 조언은 다 나름의 근거를 갖고 있지요. 하지만 한편으로는 남과 자신의 생각을 구분할 때 더 명확해지는 것들이 있습니다 남의 의견을 수용하는 유연함도 중요하지만, 때로는 온전히 나만의 생각을 따를 용기가 필요합니다.

조금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한 매일 쓰기

매일 쓰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사람이 될 가능성이 있다면, 그건 훗날 돌아볼 기록이 과거를 반성하게 해주어서가 아니라 현재에서 나와 마주 앉는 시간을 꾸준히 보내기 때문일 거예요. 그리고 그 시간은 인생에서 내게 그리 중요하지 않은 것들에 쓸데없이 힘을 빼지 않도록, 반대로 내게 중요한 것들은 지키며 살 수 있도록 도와줄 것입니다. 나라는 사람이, 다른 누구도 아닌 나로서 잘 살아갈 수 있도록 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