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오로지 내 탓으로 인한 중독은 없다

"불안하고 소심하고 연약하고 무능할 수 있지만 그 자체가 나라는 걸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하는 거죠."

박미소 작가

10년 기자 생활을 하며 박미소 님에게 술은 일상과도 같았습니다. 하지만 불안이 큰 상황에 직면해 보니 내가 망가지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게 됐죠. 치유를 마음먹고 돌아보는 과정에서 생각지 못한 중독의 이유를 발견합니다. 불안이 많은 내가, 완벽하기 위해 스스로를 몰아붙여왔던 것을요. 여전히 불안은 얼굴을 내밀지만 이제 회피하거나 술에 의존하지는 않습니다. 나를 다그치기보다 사랑해야 한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까요. 날씨처럼 바뀔 수 있는 불안의 감정을 받아들이고 오늘도 그 파도를 넘어섭니다.

박미소 님이 찾은

마음 성장의 세 가지 단서

• 꾸준한 치료의 힘

일단 병원에 가면 제 상태를 객관적으로 진단해주고 관리 감독해주는 사람이 있으니까 실망시키면 안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 때문에 완전히 무너지지 않을 수 있었어요.

 

• 나를 인정하고 사랑하는 것

중독이 다 온전히 내 탓이 될 순 없어요. 사회 탓, 환경 탓도 좀 하며 스스로에게 관대해져야 해요. 부족해 보이는 내 모습도 용서하고 사랑해야 중독에서 빠져나올 힘이 생기거든요.

 

•불안을 다스리는 마음가짐

부정적인 감정이 스멀스멀 올라올 때 똑바로 직시하고 매일 영양제 챙겨 먹듯이 건강한 방식으로 스스로에게 처방을 내려주는 게 좋은 방법인 것 같아요.

“고립된 상태에 있을 때 중독에 빠지기 쉬운 것 같아요.

마음 한구석에서 본인 스스로가 수치스러운 상태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약속도 잡지 않고 가족과도 말을 많이 하지 않거든요.”

나에게 나타난 중독의 전조

대학생 때도 술을 워낙 좋아했고 직업도 기자였기 때문에 과음이 일상이었어요. 게다가 기자를 그만두고 새롭게 시작한 사업이 잘 풀리지 않아서 술에 더 의존했어요. 바쁘게 살다가 한순간에 백수가 되면서 느낀 공허함을 술로 메우려고 한 거죠.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술을 아무리 많이 마셔도 기분이 좋아지지 않더라고요. 기분이 좋아지고 편안해지는 감각 때문에 술을 마시는 건데 그 느낌이 오지 않으니 초조한 마음에 더 많이 마셨어요. 하지만 예전 같은 효과는 더 이상 없다는 걸 깨달았을 때, 나에게 뭔가 문제가 있구나 생각이 들더라고요.

 

주방에서 홀로 술을 마시는 키친드링커

치료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눈뜬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아침부터 혼자 술을 마신 날이었어요. 성취감을 느끼지 못하는 시간 동안 괴로움을 견뎌내기 위해 혼자 저녁마다 반주를 걸치던 게 시간이 점점 앞당겨지더라고요. 결국 해가 창창하게 떠오른 아침 9시부터 술이 생각나서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 주고 돌아오자마자 술을 계속 마셨어요. 그렇게 만취를 하고 오후 내내 숙취를 느끼다가 이건 정말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어 치료를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사람이 고립된 상태에 있을 때 중독에 빠지기 쉬운 것 같아요. 마음 한구석에서 본인 스스로가 수치스러운 상태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점점 약속도 잡지 않고 가족과도 말을 많이 하지 않거든요. 특히 저처럼 반주를 핑계 삼아 집에서 혼자 술을 마시는 게 처음에는 식도락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사실 가장 위험하다고 생각해요. 혼자 하기 쉬운 일일수록 중독되기도 쉬우니까요.

“밖에서 멀쩡히 생활하고 있으니 문제 없지 않나? 싶을 수도 있지만

오히려 그게 위험할 수 있어요.”

겉으로는 문제없어 보였지만, 그게 더 큰 문제였어요

저는 기자 생활을 10년간 하면서 단 한번도 마감을 펑크내거나 취재원과의 약속에 늦어본 적이 없어요. 하지만 일이 끝나면 매일 밤 자정까지 술을 마셨고 언제나 과음했죠. 술을 너무 좋아하고 자주 과음하면서도 일상생활은 잘해 나가는 것 같은 그런 사람을 적응형 알코올중독자라고 하는데 제가 전형적인 적응형 알코올 중독자였던 거예요. 밖에서 멀쩡히 생활하고 있으니 문제 없지 않나? 싶을 수도 있지만 오히려 그 점이 위험할 수 있어요. 이 사람이 문제를 품고 있다는 것을 주변에서 눈치채지 못하잖아요. 그럼 쓴소리하거나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게 도움을 줄 수도 없는 거고요. 그러다 보면 속에서 곪게 되고 갈수록 더 심해지거든요.

“사회 탓, 환경 탓도 좀 하며 스스로에게 관대해져야 해요.

나를 용서해야 중독에서 빠져나올 힘이 생기니까요.”

내가 술에 의존하는 진짜 원인은 불안

사람들은 제가 자신감 넘치고 강단 있다고 생각하지만 내면에 억눌린 불안이 컸어요. 기자라는 직업이 매일 과로에 시달리며 결과물을 내야 하고 매 순간 평가받아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다 보니 스트레스가 많았거든요. 돌이켜보면 유치원 시절, 불안할 때마다 자꾸 머리카락을 뽑는 발모증이 있기도 했고요. 그런데 겉으로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 강해 보이고 싶고 프로다워 보이고 싶었기 때문에 그런 불안을 드러내기 싫었어요. 결국 타고난 불안도가 높은 사람이 불안한 직업을 하다 보니 안정감을 느끼고 싶어서 술에 의존했던 것 같아요.

 

스스로에게 관대해져야 해요

보통 기분 좋아지고 싶어서 자제력 없이 술을 마시다가 알코올에 중독되었다고 한심하게 여기는데 스스로를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사실 어떤 사람들은 타고나기를 결핍된 부분이 있어서 그걸 채우기 위해서 술에 의존하기도 하거든요. 저 같은 경우에는 그게 불안과 우울이었고요. 결국 중독이라는 상황이 벌어진 건 온전히 내 탓이 아니에요. 어쩌면 사회적 요인이 8할일 수도 있는 거죠. 하지만 중독 상태에서는 다 내 잘못처럼 느껴질 수 있어요. 저도 처음엔 핑계 대는 것 같았지만 책을 쓰려고 이것저것 찾아보니 사회적 요인이 정말 크다는 걸 알 수 있었거든요. 중독자들은 보통 자기혐오가 심한 경우가 많잖아요. 그럴수록 상황을 전체적으로 조망하면서 사회 탓, 환경 탓도 좀 하며 스스로에게 관대해져야 해요. 나를 용서해야 중독에서 빠져나올 힘이 생기니까요.

“책을 쓰면서 조금씩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었어요.

글 쓰는 행위 자체가 자기 객관화 과정이거든요.”

전문가의 도움과 치료가 중요해요

계절을 많이 타는 편이라 장마철이나 가을로 접어들 때 술에 다시 의존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치료 중에도 술을 많이 마시는 시기가 있긴 했어요. 그렇지만 한 달에 한 번 의무적으로 병원을 꼭 갔는데 그게 중독에서 벗어나는 큰 힘이 되었던 것 같아요. 일단 가면 제 상태를 객관적으로 진단해 주고 관리 감독해 주는 사람이 있으니까 실망시키면 안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 때문에 완전히 무너지지 않을 수 있었어요. 의사선생님의 조언도 도움이 됐어요. 치료 중에 절대 술을 마시면 안 된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고 하셨거든요. 조금씩 마셔도 되니까 차츰 줄여나간다고 생각하고 약을 복용하면서 개선해보자고 말씀하시더라고요. 덕분에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치료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저는 약도 큰 효과를 봤어요. 치료 전에는 술이 절대적으로 쾌감을 주는 대상이었다면 금주 약을 복용하면서 술로 인한 쾌감을 많이 덜어낼 수 있었거든요. 지금은 약을 복용하진 않지만, 술을 마셔도 전만큼의 쾌감은 없어요. 오히려 기분이 좋아진다 한들 일시적일 뿐이고 그 뒤의 불쾌감이 길다는 생각 때문에 마이너스라고 생각하게 되었죠.

 

중독을 치유해 준 두 가지, 글쓰기와 달리기

책을 쓰면서 조금씩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었어요. 글 쓰는 행위 자체가 자기 객관화 과정이거든요. 술에 의존하게 된 요소를 하나하나 찾아가면서 결국 불안과 우울이 원인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으니까요. 알고 보니 알코올 중독의 근본적인 원인은 대부분 우울이더라고요.

 

그래서 우울감을 떨치기 위한 방법으로 달리기를 추천해요. 격하게 하지 않아도 좋으니 일단 밖으로 나가서 신선한 공기를 들이켜고 햇볕을 쬐는 게 정말 큰 도움이 돼요. 달리고 나서 느끼는 충만감이나 자기효능감으로 술이 주는 쾌감을 대체할 수 있기도 하고요. 게다가 달리는 동안에는 술을 마실 수 없으니 더 효과적이죠.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 채로

긴 여정을 함께 지켜봐 주는 게 가장 중요해요.”

덤덤하지만 가장 큰 응원

알코올 중독 치료를 받고 있다고 했을 때, 남편은 정말 대수롭지 않게 반응했어요. 마치 변비 탈출했다는 얘기를 듣는 것 마냥 순수하게 잘 됐다고 축하해 줬어요. 저는 오히려 남편의 그런 반응이 좋더라고요. 가장 가까운 사람이 나를 판단하려고 하지 않아서 마음이 편했죠. 만약 가까운 사람이 지나치게 간섭했다면 아마 부정적인 정서로 이어져서 결국 술에 의존하고 싶었을 것 같아요.

중독이라는 건 수치심이 결부된 영역이라 주변 사람이 지나치게 간섭하기보다 관심을 갖고 지켜보며 그 사람에게 맞는 방법을 찾도록 하는 게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해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 채로 긴 여정을 함께 지켜봐 주는 게 가장 중요할 것 같아요.

”매일 영양제 챙겨 먹듯이

건강한 방식으로 스스로에게 처방을 내려주는 게

좋은 방법인 것 같아요.”

부족하더라도 그 자체가 나라는 걸 받아들였어요

타고나길 기준이 높고 욕심이 많은 성격이라 쉽지는 않지만 조금씩 불만족에 적응해 나가는 과정을 밟고 있어요. 불안하고 소심하고 연약하고 무능할 수 있지만 그 자체가 나라는 걸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하는 거죠. 내가 너무 미워서 술을 마시고 중독에 빠졌던 거구나 깨달았거든요. 저뿐만 아니라 중독자들 중에 완벽주의자가 되게 많고 그 불안함과 불만족 때문에 술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더라고요. 어찌 보면 좀 자학적인 면이 있는 거죠. 자책으로부터 빠져나와서 좀 더 객관적이고 관대한 시선으로 스스로를 볼 수 있게 되면 중독에서 헤어나갈 힘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저는 확신할 수 있어요. 그래서 모든 중독자들이 스스로를 좀 더 사랑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불안을 거스르기보다 그날의 불안을 타고 넘어가요

불안은 날씨 같아요. 정확히 예측할 수도 없고 애를 써도 쉽게 변하지 않죠. 그래서 그냥 불안한 마음이 들 땐 그날그날 다독이면서 천천히 나아가려고 해요. 불안을 완전히 이겨낼 수는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파도를 거스르기보다 그날의 파도를 타고 넘어가는 거죠. 부정적인 감정이 스멀스멀 올라올 때 똑바로 직시하고 매일 영양제 챙겨 먹듯이 건강한 방식으로 스스로에게 처방을 내려주는 게 굉장히 좋은 방법인 것 같아요. 달리기나 글쓰기처럼 나를 좀 더 괜찮은 사람으로 만드는 것으로요. 이런 노하우들이 중독에서 치유되는 경험을 통해서 제가 얻은 중요한 부분이죠.

“저는 저의 글을 쓰기로 마음을 먹었기 때문에

앞으로도 글로 저의 생각과 경험을 전하고 싶어요.”

프로 중독러의 노하우를 담아

일단 저는 저의 글을 쓰기로 마음을 먹었기 때문에 앞으로도 글로 저의 생각과 경험을 전하고 싶어요. 특히 저는 제가 갖고 있는 불안이나 결핍에 대한 글들을 계속 쓰게 될 것 같아요. 지금 준비하고 있는 두 번째 책도 그런 이야기고 그 글이 각자가 안고 있는 문제를 반추해 볼 수 있는 글이 됐으면 좋겠어요. 제가 그랬듯이 다른 사람들도 나의 글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는 글을 쓰는 게 지금의 목표예요.

박미소 님의 ‘내 마음을 성장시켜 준 것들’

• 캐롤라인 냅의 <드링킹>

여성 알코올 중독자의 내밀한 경험을 담은 에세이로, 공감도 많이 되고 스스로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어요.

• 달리기

적어도 뛰고 있는 순간은 술을 마실 수 없다 보니 중독에서 탈출하는 시간이었어요. 건강한 쾌감과 성취감도 느낄 수 있었고요.

• 스케쥴러 형식의 다이어리

시간대 별로 할 일을 정해두고 하나하나 실천하면서 생활이 단정해졌어요.

불안한 마음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만큼 나의 삶을 충실히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니까요. 그러니 문득문득 불안이 찾아올 땐 스스로에게 건강한 위로를 전해주세요. 잘 다독인 불안들은 더 여유로운 나를 완성할 거름이 될 거예요.

슬픔도 괴로움도 언젠가는 과거가 된다

현재의 슬픔에 매몰되지 마세요. 다가올 미래를 위해 지금을 포기하지 마세요.

임화선 변호사

손에 쥘 수 있는 작은 기쁨

“서랍을 열 때마다 손에 쥘 수 있는 작은 기쁨이 있다는 사실이 참 뿌듯한 것 같아요.”

구달 에세이스트

계획보다 중요한 건 회고예요

“늘 잘해야 하고, 성공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나의 실수를 다시 되돌아볼 수 없어요.”

고은지 서점 <오키로북스> 기획자

누구나 멍때릴 시간이 필요해요

“중요한 건 자기의 속도를 찾는 것 같아요. 모두 같은 박자로 달릴 필요는 없잖아요?”

웁쓰양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