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한 나의 욕망을 안다면 - 플레이라이프

박지완

영화 감독, 작가

정확한 나의 욕망을 안다면

‘영화를 만든 적이 없는 영화감독’. 8년이라는 시간이 지나 첫 영화 <내가 죽던 날>이 개봉하기 전까지, 박지완 감독은 오래 불안과 싸워야 했습니다. 백상 시나리오상을 수상하고도 자기 의심과 자책은 질기게 따라다녔죠. 기약도 없고 결과도 빨리 나오지 않는 영화라는 장기전을 치르며 그가 체득한 ‘일하는 마음’은, 내 삶을 돌봐야 한다는 것, 그리고 내 욕망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박지완 님이 찾은

마음 성장의 세 가지 단서

• 일과 나를 분리하기

일에 대한 지적이 나를 비난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면 피드백을 받아들이기 훨씬 수월해요. 문제점도 더 잘 보이고, 나도 덜 상처받을 수 있어요.

 

• 일상의 평온과 소소한 보상

불규칙한 일을 하다 보니 일부러 일상의 루틴을 만들고 시간을 주도적으로 관리하려고 노력해요. 일과 상관없는 단기적인 목표로 스스로에게 보상을 주기도 해요.

 

• 불확실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정확한 욕망

나의 욕망을 정확히 알면 길을 잃었을 때 명확한 지표가 되어줘요. 욕망을 알고 흔들리지 않는 원칙을 세운 덕에 불안한 시기를 잘 버틸 수 있었어요.

“완벽하게 뭔가를 해내야만 끝이 아니고,

내가 스스로 챕터를 나눠서 적절히 끊어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죠.”

아무것도 안 한 것 같다는 공허함을 견디기 위해 일기를 썼어요

고등학교 때부터 계속 영화를 하고 싶었어요. 내가 영화를 할 자격이 있을지 많이 고민했죠. 영화사에 일하던 중 27살에 한국영화아카데미에 들어갔어요. 그 이후에도 감독으로 데뷔하기까지 많은 과정이 있었죠.

 

혼자 쓴 시나리오가 영화가 되기 전까지는 제 노트북 안에만 있잖아요. 아무도 그 존재를 모르는 거죠. 시간은 계속 흐르는데 아무 결과도 만들지 못한 것 같다는 생각에 마음이 술렁이기도 했어요. 그 공허함에만 붙잡혀 있으면 나도, 나의 영화도 제자리걸음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내 영화를 위해 노력하는 만큼 내 인생도 잘 돌봐야겠다.’고 다짐했어요.

 

매일 일기장을 펼쳐서 아침으로 무엇을 먹었는지, 누구에게 전화가 왔는지와 같은 사소한 순간을 기록했어요. 결과물이 없다고 하루를 의미 없이 흘려보낸 게 아니라는 걸 눈으로 확인할 수 있어서 큰 위로가 되었어요. 덕분에 자연스레 내일을 계획할 수 있었어요.

 

완벽하지 않은 시나리오, 영원히 세상에 내놓을 수 없을 것 같았어요

시나리오를 쓰다 보면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는 생각 때문에 영원히 남들에게 보여줄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완벽한 시나리오를 쓰고 싶어서 계속 손에 쥐고 있었는데, 그 욕심이 제 마음을 더 무겁게 하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적어도 이때까지는 최대한 완성해서 누군가에게 보여줘야지.’라는 나만의 데드라인을 정하고 지키고자 애썼어요.

 

막상 피드백을 받고 나면 되게 유용했던 경우가 많았어요. 완벽하게 뭔가를 해내야만 끝이 아니고, 내가 스스로 챕터를 나눠서 적절히 끊어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죠.

“제가 원하는 건 유명한 감독이 되거나

천만 관객의 영화를 만드는 것이 아닌

‘내 손으로 좋은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었어요.”

내 정확한 욕망을 알고 원칙을 세우는 것

첫 장편영화 ‘내가 죽던 날’은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쓰고 싶어서 혼자 쓴 시나리오였어요. 제 시나리오를 보고 ‘이러한 방향으로 고쳐서 함께 작업해 보면 좋을 것 같다.’라는 제안을 해주신 분들도 많았죠. 당시 인기가 많았던 영화의 사람들이 좋아했던 지점을 제 시나리오에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신 것 같았어요. ‘이게 정말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인가?’를 계속 고민했고, 결국 거절했어요. 지금은 잘한 결정이라고 생각하지만, 당시에는 괴로운 고민이었어요. ‘영화를 만든 적이 없는 영화감독’은 되게 미미한 존재예요. 제가 정할 수 있는 건 스스로의 태도밖에 없었죠. 내가 영화를 어떤 마음으로 만드는지를 확실히 하려고 노력했어요.

 

불안이 찾아와도 좋은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기댈 수 있는 원칙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스스로의 속마음을 깊게 들여다봤어요.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무엇이 자꾸 나를 휘두르는지 생각했죠. 생각 끝에 제가 원하는 건 유명한 감독이 되거나 천만 관객의 영화를 만드는 것이 아닌, ‘내 손으로 좋은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그 마음을 저의 원칙으로 삼고 나니 어떤 제안이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에 이로운지, 아닌지 판단이 서기 시작했어요. 나의 정확한 욕망을 알고 흔들리지 않는 원칙을 세운 덕에 불안한 시기를 잘 버틸 수 있었어요.

“이 또한 영화가 좋아지기 위한 과정이니까

‘아무렇지도 않아요, 계속 피드백해 주세요.’라며 괜찮은 척했어요.

결국 촬영 전에 되게 크게 아팠죠.”

나와 내가 만든 것을 동일시하지 않는다

영화를 같이 제작할 분들을 만난 뒤에는 들떴어요. ‘이제 진짜 뭔가가 되려나 보다.’ 싶었죠. 사실 영화를 만드는 일의 관점에서는 시작에 불과했어요. 계속해서 다른 사람의 피드백을 받아야 했어요. 저와 같은 생각이었던 사람도 작품에 욕심이 있다 보니 “다 좋은데 이건 고쳤으면 좋겠어요.” 하며 의견을 주죠. 모든 사람이 저에게 얘기하는 상황이 버거웠어요. 하지만 그 과정 또한 영화가 좋아지기 위한 과정이니까 ‘아무렇지도 않아요, 계속 피드백해 주세요.’라며 괜찮은 척했어요. 결국 촬영 전에 되게 크게 아팠어요. 스스로 괜찮다며 최면을 걸었지만 사실 상처를 받았고, 마음보다 몸이 더 정직했던 거죠.

 

어떤 피드백이든 내가 어떻게 소화하는지가 중요한 것 같아요. 그래서 나와 내가 만든 것을 너무 동일시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어요. 일에 대한 지적이 나를 비난한 것은 아니라는 걸 계속 상기시켰어요. 그 태도를 굳건히 하면 피드백을 받아들이기 훨씬 수월하더라고요. 피드백이 뼈아프다면 ‘사실 알고 있었던 문제인데 내가 모른 척했던 건 아닐까?’, 너무 좋은 피드백만 받으면 ‘혹시 딱히 할 이야기가 없었나?’ 하는 식으로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힘이 생겼어요. 결국 일과 나 자신을 분리하는 것이 일을 오래 할 수 있는 원동력인 것 같아요. 문제점도 더 잘 보이고, 나도 덜 상처받을 수 있으니까요.

“‘이 장소에 모인 사람 모두가

더 좋은 영화를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 마음을 가지고 임했어요.”

함께 일하는 사람을 100% 믿으려고 노력했어요

촬영에 들어가면서 더 많은 변수가 생기고, 더 많은 의견과 부딪혔어요. 제가 할 수 있는 건 저의 태도를 더 확실히 하는 것뿐이었죠.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100% 믿으려고 노력했어요. 완전히 믿었기에 더 솔직할 수 있었죠. ‘이 부분은 무조건 이렇게 가야 한다.’ ‘이 부분은 솔직히 어떻게 진행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같이 솔직함을 내세워서 더 효율적으로 소통할 수 있었어요.

 

실수를 수습해야 할 때도 함께 일하는 사람을 믿고 안 믿고의 차이가 너무 크더라고요. 그 사람을 믿지 못한다면 같은 실수에도 ‘그러면 그렇지.’라는 생각이 들어서 악순환이 생겨요. 반면 그 사람을 믿고 있다면 실수의 원인을 찾아서 원인을 해결하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어요. ‘이 장소에 모인 사람 모두가 더 좋은 영화를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다.’라는 마음을 가지고 임하면 그 마음이 다른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에너지로 전달되더라고요.

 

팀워크가 좋아지면서 덩달아 저의 불안도 낮아졌어요. 바쁜 스케줄 속에서 예상치 못한 일들이 계속 일어났지만, 우리가 한 방향으로 간다는 걸 잊지 않았기 때문에 건강하게 촬영을 마칠 수 있었어요.

“영화가 개봉한 뒤 제가 잘못한 것만 생각났어요.

이런 마음은 빨리 다음 영화를 찍어서

까먹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지난 실수는 새로운 실수로 잊어버려야 한대요

영화가 개봉한 뒤 3개월까지는 제가 잘못한 것만 생각났어요. 내가 숨기고 미뤄왔던 고민이 영화에서 드러날 것만 같았고, 발가벗고 있는 기분이었죠. 코로나가 유행하던 시기여서 관객의 존재를 숫자로만 확인할 수 있었는데, 그 수가 적다는 것도 무서웠고요. 사실 ‘백상예술대상’ 시나리오 상을 받을 때 제 마음은 되게 쪼그라들어 있었어요. 아쉬운 부분이 너무 많은데 과연 내가 받을 자격이 있나 싶었죠. 다 함께 만든 작품인데 스포트라이트는 저만 받으니까 쑥스럽고 미안한 마음도 컸고요.

 

다른 감독님들께 여쭤보니 이런 마음은 ‘빨리 다음 영화를 찍어서 까먹어야 한다.’고 하시더라고요. 어차피 실수는 계속할 수밖에 없기도 하고, 세상에 완벽한 영화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다음 영화를 찍으며 새로운 실수를 하다 보면 잊힌다고요. 결국 ‘다음 영화를 만들어야만 이 모든 것을 이겨낼 수 있겠구나.’ 생각했죠. 지금은 빨리 새로운 영화를 만들고 싶어요.

“제 인생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면

제 영화도 좋기 어려울 거예요.”

우리 인생이 영화보다 크다

영화라는 게 결과물만 중요해 보이지만, 사실 만드는 사람들은 과정이 더 크고 본질적이라는 걸 알아요. 김혜수 배우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선배님께서 “우리 인생이 영화보다 훨씬 크다.”라는 말씀을 하셨어요. 그렇기 때문에 영화가 잘 안되더라도 내 인생을 위해서 모든 것을 쏟아 더 열심히 영화를 만들고자 한다고 하셨는데, 그 말이 계속 기억에 남아요. 그때 저에게 정말 필요했던 말이었거든요.

 

항상 ‘인생과 영화의 균형을 잘 맞춰야겠다.’고 생각해요. 제 인생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면 제 영화도 좋기 어려울 테니까요. 생각하는 것만큼 시나리오가 잘 안 써질 때는 우울과 불안에 빠지지 않도록 스스로를 좀 더 들여다보고 보살피려 해요. 영화가 어떻게 되는지를 제가 통제할 수 없지만, 그 영향으로 내 인생까지 기울어지지 않도록 매 순간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 갑작스러운 기회가 와도 언제든지 해낼 수 있도록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관리하고 있어요. ”

일에 대한 애정을 유지하는 건 체력과 호기심

저는 기본적으로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에요. 영화를 만드는 과정 자체가 즐거워요. 그런데 결국 이 애정을 유지하는 것은 체력과 호기심 같아요. 영화는 다른 사람에게 관심이 있어야 할 수 있는 일인데, 제가 좀 건강하고 여유 있는 상태여야 남들을 들여다볼 수 있겠더라고요.

 

갑작스러운 기회가 와도 언제든지 해낼 수 있도록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관리하고 있어요. 매일 강아지와 산책하며 걷기도 하고, 작년에는 조깅도 열심히 했어요. 내 몸의 한계를 확인하는 일은 생각보다 즐겁더라고요. 그리고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유지하는 것도 결국 이 직업의 한 부분이잖아요. 나이가 들고 취향이 확고해지면서 영화나 책을 보는 영역이 정해졌다는 생각이 들어서 새로운 이야기가 나오면 어떻게든 도전해 보려고 하는 편이에요.

“욕망이 나쁘다고 생각했던 때도 있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제 욕망이 곧 저예요.

그걸 알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명확하게 보이거든요.”

일부러 일과 상관없는 단기적인 목표를 세워요

기본적으로 언제 완성될지 기약이 없는 불규칙한 일을 하다 보니 일상을 평온하게 유지하고 루틴을 가지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도서관에 가는 날짜나, 강아지와 산책하는 시간을 정해서 루틴을 만들고 시간을 주도적으로 관리하려고 노력해요.

 

때론 일부러 일과 상관없는 단기적인 목표를 세우기도 해요. ‘일본어를 공부해서 몇 달 뒤 시험을 통과하자.’ 같은 목표를 만드는 거죠. 영화는 결과물이 잘 나오지 않는 직업이잖아요. 이렇게 단기적으로 결과가 나오는 일을 찾아서 저에게 소소한 보상을 주고, 건강하게 일하려 해요.

 

나의 욕망이 내 삶의 지표가 되어준다

욕망을 갖고 드러내는 것이 나쁘다고 생각했던 때도 있었어요. 영화감독이 되고 싶다고 하면 허황된 꿈을 꾸는 사람처럼 보일 것 같았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제 욕망이 곧 저예요. 지금의 나를 가장 잘 설명하는 것은 ‘지금 내가 무엇을 바라는가.’라고 생각해요. 왜 내가 이걸 원하는지, 진짜 이걸 원하는 게 맞는지 마음의 꼬리를 쫓아가다 보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명확하게 보이거든요.

 

나의 욕망을 똑바로 아는 것은 정확한 행동으로 이어져요. 일을 하다 막히더라도 욕망이 다른 방법을 찾아가는 명확한 지표가 되어주거든요. 덕분에 일하면서 느끼는 불안이 많이 줄기도 했어요. 불안한 마음이 큰 사람일수록 자신의 욕망을 더 자세히 들여다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박지완 님의 ‘내 마음을 성장시켜 준 것들’

• 일기장

그냥 떠도는 생각인 것 같은데 글로 적어 보면 명확해지는 것이 많아요. 별일이 아닌 것도 일기에 적고 나면 스스로에게는 특별한 경험이 되기도 하고요.

• 산책

강아지와 산책하며 세상을 관찰하다 보면 하루하루가 새롭게 느껴져요. 그리고 심란한 일이 있을 때 긴 산책을 하고 나면 조금 편안해져요. 걷다 보면 생각이 자연스럽게 정리되거든요.

• 도서관 서가 서성이기

저한테 너무 특별한 공간이에요. 내가 모르는 무한한 이야기들이 존재하고, 내가 전혀 몰랐던 세계에 대해서 알게 되기도 하죠. 나의 세계를 넓히는 좋은 방법 같아요.

어떻게 하면 피드백을 더 잘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애정이 많이 담긴 일일수록 나 자신처럼 느껴지다 보니, 평가에 아파하고 상처받을 수도 있어요. 그럴수록 나의 일과 나 자신이 다르다는 것을 되새겨 보세요. 나를 향한 비난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면 내가 사랑하는 일 또한 더 잘 해낼 수 있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