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스러운 것, 소소한 것, 즐거운 것 - 플레이라이프

하림

음악가

자연스러운 것, 소소한 것, 즐거운 것

가수라는 오랜 꿈을 이뤘지만, 하림 님이 마주한 감정은 공허함이었습니다. 도피하듯 떠난 유럽 여행, 길 위의 예술가들과 다양한 삶의 방식에서 스스로도 알지 못했던 상처를 위로받았죠. 결국 그를 움직이는 일은 마음이 먼저 이끌리는 일임을 깨닫고 오늘도 하림 님은 자신만의 행복을 찾아나가고 있습니다.

하림 님이 찾은

마음 성장의 세 가지 단서

• 소소한 것의 힘

제 청년 시절을 돌아봐도, 힘든 시절을 버틸 수 있었던 건 ‘친구들이 사주는 밥 한 끼’ 같이 소소한 것들이었어요. 거창한 해결책보다 소소한 것들의 힘을 믿어요.

 

• 불안할 때는 글로 쓰라

마음이 불안할 때는 글로 써내려가요. 떠오르는 생각보다 글을 신뢰하는 편이에요. 글은 좀처럼 나오지 않거든요.

 

• 즐거움의 효용

기쁨을 되찾는 게 중요해요. 저는 고민하는 후배들에게 ‘연습하기 싫으면 안 해도 된다.’고 이야기합니다. 음악은 즐거울 때 가장 효용이 커지거든요.

“걸으면서 보게 되는 풍경들은 평소보다 더 느리고, 세밀해요.

그 경험으로 음악의 주제들이 조금 더 넓어졌어요.”

음악의 ‘아마추어리즘’을 되찾은 유럽 배낭여행

21살에 처음 데뷔했어요. 대학 입학하고 나서 휴학하고 음악을 함께하기로 했던 형과 같이 골방에서 음악을 만들어서 ‘VEN’이라는 이름으로 데뷔했죠. 고생을 많이 했어요. 이후 군대에 갔다 제대한 뒤 ‘하림’으로 데뷔하고 방송 활동을 시작했죠.

 

음반 활동이 제 마음대로 잘되지 않았어요. 활동이 끝난 후 도피 반, 공부 반으로 모아놨던 돈을 탈탈 털어서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떠났죠. 여행에서 수많은 아마추어 음악가를 만났고, 내가 방송활동을 하면서 지쳤던 게 저런 아마추어리즘을 잃어버려서 힘들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저는 관객보다 내 성장을 위해서 활동을 해왔는데, 여행하면서 본 음악가들은 음악을 정말 즐기고 있더라고요. 스스로도 알지 못하는 상처를 치유하게 되는 계기였어요.

 

‘중요한 건 곁에 있었다’ 깨닫는 순간 긴 여행이 끝났어요

여행하면서 관심사가 늘어났어요. 여행은 많이 걸어 다니게 되잖아요. 걸으면서 보게 되는 풍경들은 평소보다 더 느리고, 더 세밀해요. 그런 경험으로 음악의 주제들이 조금 더 넓어지고, 깊어지고. 노래하고 싶은 게 늘어났죠. 음악이 조금 더 단순해지고, 경계가 느슨해지면서 그 경계 속에 여러 가지 생각들이 스며들 수 있게 되었어요.

 

돈이 모이면 계속 여행을 가던 시기가 있었어요. 그때도 악기를 사고, 배우고, 버스킹도 하면서 지냈는데, 어느 순간 남의 집 빨래를 사진에 담고 있는 저를 발견했어요. 제 사진기에 들어 있는 사진을 보니 다른 나라의 노인들, 다른 집 담벼락들이더라고요. 갑자기 부모님이 생각났어요. ‘진짜 중요한 건 곁에 있었구나.’ 생각이 들었죠. 어떻게 보면 쉬운 해답인데, 그걸 마음에 새기기까지 수년의 시간이 걸린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여행을 ‘잃어버린’ 순간이지만, 저는 만족합니다.

“일단은 노래를 같이 부르면 사람들의 마음이 뜨거워지고,

문제가 직접적으로 해결되지 않아도 조금은 괜찮아져요.”

함께 부르는 노래의 힘은 실재해요

여행을 다니며 만난 수많은 사람들, 여행자로서 제가 겪었던 외로운 같은 감정들을 생각해 봤을 때 이주노동자들에게 노래가 필요하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국경 없는 음악회’라는 프로젝트를 2~3년간 진행했어요.

 

일단은 노래를 같이 부르면 사람들의 마음이 뜨거워지고, 문제가 직접적으로 해결되지 않아도 조금은 괜찮아져요. ‘국경 없는 음악회’를 진행하면서 그런 모습을 제 눈으로 확인했죠. ‘함께 부르는 노래의 힘이 실재하는구나.’를 확인하면 할수록 이런 활동을 좀 더 해보고 싶다고 생각해서 함께 노래를 부르는 프로젝트를 계속 진행했던 것 같아요.

 

자연스럽게 마음이 움직이는 이야기들이 있다

관심이 생기는 구체적인 사건이 있을 때마다 움직이게 된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아프리카를 여행하면서 비틀즈의 노래를 신나게 부르다가 때마침 그곳이 영국 식민지였다는 걸 알게 되고 미안한 마음에 시작한 게 ‘기타 포 아프리카’ 프로젝트였어요. 국경 없는 음악회에 함께해주신 분들은 가족을 위해서 이곳에서 일을 하는 사람이잖아요. 그런 마음이 이어져서 지금의 ‘우사일’ 프로젝트 를 진행하게 되었어요. ‘우리는 모두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일을 합니다’라는 노래를 함께 부르는 운동이었죠. 일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이 위태로워지고, 마음이 공허해질 때 함께 부르면 힘이 날 수 있는 노래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누구나 쉽게 익혀서 부를만할 노래를 만들었어요. ‘우사일’ 프로젝트 이전에는 ‘그 쇳물 쓰지 마라’가 있었고요.

 

‘내가 하고 싶어서’라기보다는 제가 듣는 음악과 제가 노래를 부르는 어떤 자리가 저를 그런 이야기를 하게 만들어요. ‘그 쇳물 쓰지 마라’를 부르다가 ‘우사일’이 나온 것처럼 자연스럽게 마음이 움직이거든요. 그렇게 시작된 프로젝트들은 뭔가 일로서 받아들여지지 않고, 그냥 저의 인생과 함께 가는 느낌이 들어요. 어떠한 방해를 받아도 끄떡없죠. 누군가에게 저게 마음에 걸릴 것 같다 싶으면 그걸 좀 노래로 해결해 주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저는 밥 먹고 나면 마음이 달라진다고 믿어요.

마음이 복잡할 땐 따뜻한 식사를 먼저 드시라고 권하고 싶어요.”

힘들 때 필요한 건 거창한 해결책이 아니라 소소한 것들

‘위로의 말은 누가 해주나요’라는 노래는 대상이 명확한 노래였어요. 힘든 시기를 겪고 있는 청년들이었죠. 스스로 생각했을 때도 그런 노래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기에 작업했어요. 학교에서 20대 초반의 아이들과 함께 음악을 하고 있는데, 그들의 삶이 결코 쉽지 않거든요. 저의 청년기를 생각했을 때도 쉽지 않았고요. 생각해 보면 힘든 시절을 버틸 수 있었던 건 친구들이 그냥 나한테 밥 사주는 것과 같이 소소한 것들이었어요. 그 당시 무엇이 나에게 위로가 되었을까를 곡으로 담담히 기록해 나갔어요. 곡을 통해 무언가 거창한 해결책이 있는 게 아니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었어요. 그 노래는 다행히 지금도 여기저기서 부르고 다니고 있습니다.

 

저는 밥 먹고 나면 마음이 달라진다고 믿어요. 힘든 일 있는 친구가 보이면 ‘밥부터 먹자, 밥 먹고 생각하자’고 얘기하곤 해요. 마음이 복잡할수록 따뜻한 식사를 먼저 드시라고 권해드리고 싶어요.

“떠오르는 생각보다 글을 신뢰하는 편이에요.

글은 좀처럼 나오지 않거든요.”

고민이 생기면 책 속으로 도망가요

나 자신을 가장 확실하게 벗어나는 방법은 여행과 독서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어요. 사람이 아주 많고 복잡한 대형 서점에서도 마음에 드는 문장이나 위로를 주는 목차를 발견하면 그 순간은 집중하게 되고, 그 순간이 오랫동안 지속돼요. 그 문장을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그 느낌이 남아서, 고민이 해결되기도 하고요.

 

스치는 생각보다는 손끝에서 나온 글을 믿어요

글을 쓰며 오히려 지금에 집중하는 것 같아요. 그냥 백지, 메모장, 식탁에 놓인 이면지에 글을 막 쓸 때가 있어요. 지금 나의 상태, 지금 나의 문제, 지금 나의 행복 같은 것들을 기록해요. 그러면 거기에다가 아내가 답을 써놓기도 하고요. 그 기록을 통해서 ‘어제보다는 조금 오늘 나아졌구나.’ 이런 것들을 다시 확인하게 되더라고요.

 

일기를 쓰면서 위로를 받는 편이에요. 생각하는 것과 손으로 기록하는 것은 확실히 차이가 있거든요. 그래서 마음이 불안할 때는 뭔가 씁니다. 프로젝트를 하면 여러 가지 감정을 느껴요. 좋고, 싫고, 때로는 허무하고. 그런데 글을 썼을 때는 ‘이걸 할 때 내 모습이 제일 자랑스럽다.’ ‘끝나고 나니까 행복하구나’. 그런 글이 나오더라고요. 떠오르는 생각보다 글을 신뢰하는 편이에요. 글은 좀처럼 나오지 않거든요.

“후배들에게 ‘연습하기 싫으면 연습 안 해도 돼.’ 얘기합니다.

음악은 즐거울 때 해야 효용성이 제일 커지거든요.”

음악은 즐거울 때 해야 효용성이 커져요

음악가에게 음악이라는 것은 늘 즐겁지 않을 수도 있어요. 코로나 시기에는 관객이 사라지다 보니 노래할 이유가 없어졌어요. 어느 날 제가 신발 끈을 묶고 있는데 제 입에서 ‘어떡하지?’ 이런 말이 나오더라고요. 저도 스스로 놀랐어요. ‘큰일 났다.’ 생각했죠. 상담을 받으러 가기도 하고, ‘내 인생에서 노래하는 시간이 얼마나 될까?’ 고민하기도 했죠. 그것들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가 도움이 됐지만, 스스로 연습에 대한 기쁨을 찾으면서 해결되기도 했거든요.

 

제 주변에 조언을 구하는 후배들, 제자들에게 ‘열심히 하지 않아도 된다.’라고 얘기하는 편이에요. ‘연습하기 싫으면 연습 안 해도 돼. 네가 지금 즐거운 걸 먼저 해도 된다.’라고 얘기합니다. 음악은 즐거울 때 해야 효용성이 제일 커지거든요.

“나 자신이 진짜로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는 일이

저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음악 말고도 좋아하는 것을 찾고 있어요

옛날에는 음악이 저의 가장 큰 취미이고 큰 행복이었는데, 살다 보니까 그렇게 하다 보면 남들 다 하는 무슨 운동이나 다른 취미를 못 할 것 같았어요. 조금 생각을 좀 바꿔봤죠. 그러다 보니까 결혼도 하게 되었고요. 음악 연습만 할 때도 행복했지만, 다른 걸 하면서 보내는 시간도 굉장히 행복해요. 우연히 프리다이빙을 하게 되었는데 완전히 다른 세계였어요. 물속에 들어가면 아무런 소음도 없고 짧은 순간이지만 굉장히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죠. 바다는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져요.

 

그러다 보니까 ‘음악보다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다른 곳에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하게 됐고, 인생은 기니까 ‘또 다른 직업은 없을까?’ 생각도 하게 돼요. 그렇게 나 자신이 진짜로 좋아하는 것이 무언가인지를 찾는 일이 저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하림 님의 ‘내 마음을 성장시켜 준 것들’

• 드렐라이어

음반 활동을 마치고 여행을 갔다가 드렐라이어라는 악기를 배웠어요. 가면을 쓰고 드렐라이어로 버스킹을 했는데 그 당시를 떠올리면 저에게 큰 위로가 되더라고요.

• 사회적 활동

사회적 활동으로 시작한 프로젝트는 뭔가 일이 아니라 그냥 저의 인생과 함께 가는 느낌이 들어요. 지금 스튜디오에도 ‘우사일’ 프로젝트 엽서 세트가 와 있는데, 이런 걸 보면 행복감을 느껴요.

• 다이빙

‘나는 왜 음악 말고 좋아하는 게 없지?’ 생각하다가 우연히 시작한 취미예요. 물속에 들어가면 자유롭고, 저 자신에 더 깊게 다가가는 느낌이 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