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런 기분이 들까요?
자신을 제어할 에너지가 바닥난 상태
아침에 매번 못 일어나면서도 일찍 잠드는 게 어려운 건 왜일까요. 잠들기 전 눈을 감고 있을 때 올라오는 수많은 감정들을 경험하는 게 너무 힘들기 때문일 거예요. 아무 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는 것 같지만 실은 내면에서 엄청난 재난이 일어나고 있죠. 혼자 있을 때 느껴지는 감정을 ‘황망함, 공허함, 외로움’이라고 하셨는데, 이 감정들이 복합적으로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것을 감당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방황하듯 휴대폰, 태블릿에 빠져 있는 게 비교적 더 안전하게 느껴지는 것일 테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일을 위해서는 의지로라도 눈을 감고 누워 있어야 잠이 들 텐데, 자신을 제어할 에너지가 바닥나 있어 그마저도 어려운 거죠. 의지력이란 자동차의 기름처럼 한정되어 있는데 이미 소진된 상태로 보여요.
왜 자신을 돌볼 에너지가 매일같이 소진되어 있을까요. 채채님의 무의식 수준에서는 계속해서 어떤 싸움을 하고 있지 않나 짐작해 봅니다. 무의식적인 뇌가 스트레스와 두려움을 소화하는 데에 에너지를 모두 써 버려서 다른 일을 하는 데에 쓸 에너지가 남아있지 않은 거지요. 뇌의 ‘편도체*’라는 부위는 두려운 상황에서 활성화되는, 인간에게는 매우 중요한 부분인데요, 채채님의 편도체가 지나치게 활성화 되어서 심리적 연료가 계속 새어나가고 있어 보여요. 평소 사람들과 지낼 때는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어떤 두려움을 감당하느라 안간힘을 쓰고 있는 거죠. 자각하지 못하는 두려움이 편도체를 계속 자극하고 있으니, 쉽게 피로감과 무기력을 느끼셨을 겁니다.
‘편도체’란?
감정을 담당하는 뇌 부위. 편도체가 활성화되면 두려움을 느끼고, 그 두려움을 통해 위험에 대비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의 생존에 핵심적인 역할을 합니다. 하지만 불필요하게 활성화되면 쉽게 피로해지고 무기력해질 수 있기 때문에 편도체를 적절하게 진정시키는 것 또한 중요하지요.
무의식으로 밀려난 상처와 두려움
내가 의식하지도 못하는 마음 깊은 곳에 있는 두려움은 어디서 오는 걸까요. 이 실체를 파악하려면 어쩔 수 없이 어린시절을 짚어 보게 됩니다. 채채님은 가정불화가 심한 환경에서 성장해왔다고 하셨고, 부모님의 정신적, 신체적 학대도 경험했다고 하셨어요. 구체적인 내용을 알지는 못하지만 어린아이의 입장에서 가정불화와 학대는 생존의 위협을 느낄만큼 어마어마한 두려움입니다. 아이는 자신을 보호하거나 방어할 힘이 부족하기 때문이지요. 인간에게 ‘집’이란 안전하고 안식이 되는 곳이어야 하지만, 어린 채채 님에게는 공포의 장소였을 겁니다.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은 곳이었겠죠.
특히나 당시에 그런 채채님을 이해해주는 존재가 없었다면 혼자서 그 감정을 감당하기는 무척이나 어려웠을 거예요. 때문에 어린 시절 소화되지 않은 큰 두려움과, 그 두려움을 오롯이 혼자서 감당하던 시간의 외로움이 채채님의 마음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을 수 있어요. 성인이 되고 나서는 다른 이들처럼 아무렇지 않은 척, 괜찮은 척 살아가느라 그 두려움은 더더욱 무의식 속으로 밀려났을테고요. 그렇게 의식하지 않고 있지만 무의식 수준에서는 항상 그 두려움과 싸우고 있으니 에너지가 쉽게 바닥날 수밖에요. 또한 그런 감정들을 자신이 품어주지 않을 경우 외부 대상에 투사되기 쉽기 때문에 남자친구를 포함한 인간관계에서도 만족스럽고 건강한 관계를 유지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상처받은 내면아이(Inner child) 재양육하기
어린시절의 상처와 아픔이 만들어 낸 자아가 무의식 속에 자리잡은 것을 심리학에서는 ‘내면아이(Inner child)’라고 합니다. 어린 시절에 해결하지 못한 이슈, 소화되지 못한 감정은 성인이 되어서도 계속해서 영향을 주기 때문에 대인관계 문제와 정서적 고통을 야기하게 된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에요. 채채님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가정불화와 학대 경험에서 아물지 않은 상처들이 현재의 인간관계와 정서적 조절을 어렵게 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해볼 수 있어요. 겉으로는 성숙한 어른의 모습으로 살아가지만, 내면에는 큰 상처를 가진 자아가 치유되고 회복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죠.
결국 이 상처받은 내면아이를 돌보는 것이 근본적으로 해내야 할 과제로 보여집니다. 아물지 않은 과거의 상처를 지닌 자아를 회복하면 어른자아와 통합되면서 자연스럽게 성장 그리고 성숙으로 나아가지요. 쉽게 말해서 나 자신을 완전히 이해하고 더 가까워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시면 좋을 것 같아요.
가장 중요한 것은 채채님의 두려움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입니다. 아마도 자신이 못 보고 있는, 혹은 보지 않으려 하는 큰 부분이 있는 듯 합니다. 너무 거대하고 아픈 상처는 어디서부터 건드려야될지 막막하기 때문에 더더욱 꺼내보기 힘든 것이죠. 스스로에게 ‘내가 가장 피하고 싶은 상황이 무엇이지?’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순간이 무엇이지?’라고 질문해 보세요. 가장 핵심이 되는 두려움을 마주하는 겁니다. 그와 관련된 느낌까지 구체적으로 써보고 그와 관련된 자신의 생각들을 나열해보세요. 그러면서 그 두려움을 떠올릴 때 신체에서 어떻게 느껴지는지 가만히 느껴보세요. 그러면 그 두려움을 가장 처음 유발했던 어린시절의 기억을 떠올릴 수 있을 겁니다. 그 때에 내가 느꼈던 감정을 있는 그대로 경험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감정은 회피하면 커지지만, 있는 그대로 마주하면 흘러갈 수 있어요. 상처받은 어린 채채가 경험한 고통을 어른 채채님이 충분히 살펴봐주고 이해하는 시간이 필요해요. 단번에 되지 않을 수 있고 이런 단계가 쉽지 않기 때문에 정신건강전문의 혹은 심리상담가의 도움을 받아 차근차근히 해보는 것도 방법입니다.
감정을 하나씩 떼어서 보는 연습
두 번째로 평소에 불편한 감정이 올라올 때 감정을 하나씩 떼어보는 연습을 해보세요. 채채님이 감정을 회피하게 되는 건 너무 크고 막막하게 느껴져서 내가 감당할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일 겁니다. 여러 가지 감정들이 뒤섞여 뭉쳐있어서 더욱 어렵게 느껴질 거에요. 그 때에 휴대폰이나 사람으로 도망치지 않고 가만히 마음을 들여다 보면서 감정의 뭉치를 하나씩 떼어내 보세요.
노트를 꺼내서 올라오는 감정에 이름을 붙여봅니다. 명확하게 어떤 감정이라고 명명하기 어려울 때는 그 때 떠오르는 무의미한 단어나 문장들을 모두 낙서하듯 써보세요. 뜬금없이 머릿속을 스치는 말들이 있을 거예요. ‘불편해’, ‘짜증나’가 될 수도 있겠죠. ‘외로워’, ‘누가 나 좀 안아줬으면 좋겠어’, ‘이해받고 싶어’, ‘너무 힘들어’, ‘진짜 왜 사는지 모르겠어’ 등등 앞뒤가 맞지 않는 말들을 토해내듯 꺼내 보세요. 아마 습관처럼 또 휴대폰이나 태블릿을 꺼내보고 싶은 마음이 들 수도 있어요. 그러면 그 마음조차 적어보세요. ‘도망치고 싶어’라는 문장이 될 수 있겠네요. 그렇게 언어화를 하면서 구체적으로 내 마음에 무엇이 있는지 이해해 보는 겁니다.
중요한 건 비판이나 평가없이 내 안에 이런 게 있었구나 하면서 수용해주는 겁니다. 그게 바로 내면아이가 어린 시절에 받지 못했던 공감과 수용이기도 하고요, 지금 채채님의 감정을 피하지 않는 방법이기도 하지요. 이 과정을 반복하다보면 불편한 마음이 올라올 때 그 감정을 회피하지 않아도 충분히 내가 소화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길 겁니다. 또한 두려움을 포함한 다양한 감정을 충분히 소화할 수 있게 되면 불필요하게 에너지가 낭비되는 일을 막을 수 있어 자신을 돌보고 조절하는 것이 한결 수월해질 거예요.
내면아이 다이어리 쓰기
잠들기 전은 마음이 가장 취약해지는 시간입니다. 자려고 누우면 온갖 상념과 불편한 감정들이 올라오기 마련이죠. 낮 시간동안 바쁘게 움직이고 사람들을 만날 때와는 달리 외부자극이 없기 때문에 그제야 진짜 마음이 올라오는 것입니다. 이 때 가장 취약한 자아가 꼭 듣고 싶은 말을 직접 해주는 루틴을 만들어 보세요.
내가 가장 취약할 때 사랑하는 사람에게 가장 듣고 싶은 말이 무엇인가요? 당신을 가장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따뜻하게 품어줄 사람이 있다면 어떤 말이 듣고 싶나요? 매일 밤 자기 전 꼭 듣고 싶은 1~2문장을 다이어리에 써보세요. 반복적인 메시지를 통해 내면아이를 돌보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