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UNSELING

중요한 발표를 망친 뒤, 자괴감이 들어요.

중요한 발표가 있었어요. 한 달 내내 정말 열심히 연습하고 준비했습니다. 그런데 너무 긴장해서 결국 발표를 망쳐버리고 말았어요. 그 생각이 줄곧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아 너무 괴롭습니다.

발표를 듣는 사람들의 차가운 표정, 스스로 생각해도 자신감이 없었던 제 모습, 질의응답을 매끄럽게 진행하지 못했던 것, 돌발 상황에 능숙하게 대처하지 못했던 것들… 못난 제 모습만 떠올라 자꾸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 정도로 연습했는데도 결국 망쳐버린 나는 발표를 해서는 안 되는 사람인가, 라는 생각까지 들고 발표에 더 자신이 없어집니다. 타고나게 발표를 잘 하는 다른 사람들을 보면, 스스로가 더 작아지는 느낌이고요. 아무리 최선을 다 했어도, 결국은 발표를 망쳤다면 다 소용없는 것 아닐까요.

스스로 더 무서운 건, 계속 죽고 싶다는 생각이 끊이지 않고 죽고 싶다는 말을 실제로 입으로 중얼거리기도 한다는 거예요. 어떻게 하면 이 생각에서 떠날 수 있을지, 그리고 발표를 할 때 긴장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진우 발표 공포증에 시달리는 회사원
카운슬러 김혜령의 편지

진우님, 저 또한 사람들 앞에 서는 일에 긴장을 많이 하는 편이라 공감하며 사연을 읽었습니다. 괴로운 감정이 강하게 와 닿아서 마음이 아팠어요. 열심히 노력한 일을 내가 망쳐버렸다는 생각으로 인해 상당한 좌절감을 느끼고 계시네요. 게다가 자신의 못난 모습만 자꾸 떠오른다면 그 때마다 얼마나 괴로울지 감히 상상하기조차 어렵습니다.

왜 이런 기분이 들까요?

 

잘 하고 싶은 마음은 때로 결과에 집착하게 만들어요

진우님의 포커스가 온통 발표가 있었던 ‘그 날’에만 집중되어 있네요. 구체적으로는 그 날 기대에 못 미쳤던 자신의 모습과 타인의 시선이겠지요. 시간은 그 때를 지나 계속 흐르고 있는데, 진우님의 생각은 자꾸 그 날로 되돌아가고 있어요. 왜 그럴까요? 시간과 에너지를 많이 쏟아 부었고 그만큼 중요한 발표였습니다. 무엇보다 진우님은 그 발표를 너무너무 잘해내고 싶으셨던 거에요.

 

열망이 강하면 결과에 집착하게 됩니다. 결과에 집착하면 불안이 높아지고요. 왜냐면 ‘결과’는 내가 다 통제할 수 없거든요. ‘최선을 다하는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지만 1등을 한다거나, ‘발표를 완벽하게 진행해내는 것’은 여러 가지 변수들이 개입되기 때문에 내가 만들어낼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제 생각엔 진우님이 최선을 다하셨다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여요. 그럼에도 진우님은 그 날의 아웃풋에만 조명을 비추고 계시니 부정적인 감정이 커질 수밖에 없을 겁니다.

 

자신을 평가하는 눈으로만 보면 괴로워집니다

또, 그 때의 상황과 자신을 평가적으로만 해석하고 계세요. 자신을 무서운 감독관의 눈으로 보고 있는 거죠. 남들이야 진우님의 발표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쉽게 생각할 수 있지만, 그것을 해낸 자신만큼은 남들이 보지 못하는 많은 것들을 알고 있습니다. 노력한 시간들, 반복해서 했던 연습, 긴장감에도 불구하고 부딪혀 보았던 용기, 그리고 남들의 시선에 두려워하는 여린 마음까지. 그런 것들을 다 알고 있는 입장에서 그저 ‘망했다’라는 한 문장으로 그 날을 단정지을 수 있을까요.

 

‘죽고 싶다’는 생각은 어쩌면 그 가혹한 감독관의 시선이 만들어낸, ‘발표를 완벽하게 해내지 못하면 살 가치가 없다’라는 메시지의 연장선이 아닐까 싶어요. 즉, 내가 나를 보는 시선에 대한 문제라는 겁니다.

 

‘내가 어떻게 보일까’에 너무 몰두해 있어요

특히 발표 상황에서의 긴장감 아래에는 타인이 나를 안 좋게 평가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있습니다. 즉, 타인의 시선에 대한 두려움이지요. 한편으로 이것은 나의 포커스가 ‘나’에게 몹시 집중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사실, 발표 내용에 강하게 집중할 수 있다면 내가 어떻게 보일지에 대한 생각을 잊게 됩니다. 어느 정도의 긴장감은 있지만 발표가 진행될수록 긴장도가 낮아지지요. 하지만 자신에게 과도하게 몰두할수록 ‘타인의 눈에 비친 나’를 의식하게 되니 긴장감이 높아질 수밖에 없어요. ‘내가 어떻게 보일까’에서 ‘발표 내용을 어떻게 더 잘 전달할 수 있을까’로 포커스가 맞춰져야 자연스럽게 긴장도 덜 하고 발표도 더 효과적으로 할 수 있겠지요.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1. 나에게 너그러울수록, 오히려 성과도 높아져요

누구나 긴장을 하면 자신이 가진 매력이나 능력을 제대로 보여줄 수가 없습니다. 긴장은 두려움으로 바꿔 말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극도의 불안은 사람을 얼어버리게 하기 때문에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만들어요.

 

긴장을 낮추고, 좋은 성과를 가져올 수 있는 방법이 있어요. 바로 ‘자기자비(self-compassion)’ 연습입니다. 자기자비는 자신을 따뜻하게 바라보고 이해하면서 평가하지 않는 태도예요. 자신을 다그치는 대신에 격려해주고, 평가하는 대신에 수고를 알아주세요.

 

사람들은 보통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자신을 엄격하게 대하고 채찍질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자기자비’와 관련된 수많은 연구는 자신에게 친절하게 대하고 연민 어린 눈으로 바라봐줄 때 더 좋은 아웃풋이 나온다고 알려주고 있어요.

 

생각해 보세요. ‘정신 차려! 긴장하지 말고 똑바로 해’ 하면서 밀어붙이는 부모 아래에서 큰 아이와, ‘잘하고 있어. 꼭 1등이 아니어도 되니까 최선을 다 해보자.’라고 따뜻하게 응원해주는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 중 누가 자신의 실력을 남김없이 잘 보여줄 수 있을까요. 전자는 너무 긴장해서 잘하던 것도 못하지 않을까요?

 

2. 긴장하는 나를 그저 알아차려 보세요

발표는 긴장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받아들이셔야 합니다. 자아에 몰두해서 ‘긴장하는 나’를 의식하면 그 때문에 더 긴장하게 되는 현상이 생기는데요. 발표는 누구에게나 긴장을 불러 일으키는 상황이므로 긴장하는 자신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 보세요. 타인의 시선으로 ‘긴장하는 자신’을 발견하는 순간마다 부정적인 평가 대신에 ‘아 내가 긴장하고 있구나’하고 그저 알아차려 주세요. 그리고 발표 내용에 다시 집중하는 겁니다.

 

3. 자신감 있는 발표자 캐릭터를 연기해 보세요

발표 상황을 하나의 게임, 혹은 영화 장면처럼 상상하며 임하는 것도 좋습니다. 당당하고 매끄럽게 발표하는 발표자의 역할로 연기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 보세요.

 

이게 가능한 이유는 뇌는 상상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특징이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감 있는 척, 의연하게 발표를 하는 척 말하다 보면 어느새 내 태도도 좀 더 힘이 들어가 있습니다. 뇌는 이미 ‘아 이건 두려운 상황이 아니구나’ 라고 받아들이기 때문이지요. 일종의 뇌를 속이는 방법입니다.

 

나에 대한 자아상을 완전히 바꾸는 것이 어렵게 느껴진다면, 발표 때마다 ‘자신감 충만한 발표자 역할’의 연기를 한다고 생각하고 잠깐의 쇼타임을 즐겨 보시기 바랍니다. 평소 그런 모습의 자신을 구체적으로 시뮬레이션 하는 것도, 뇌를 속이는 좋은 방법입니다.

 

내 안의 따뜻한 자아를 키워주는 자기자비 연습

내 안에는 뭐든 성공적으로 해내고 싶은 자아도 있지만, 성과와 상관없이 내가 편안하기를 바라는 자아도 있습니다. 그 따뜻한 자아의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봐주세요. 나만 아는 시간, 노력, 정성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나만이 인정해 줄 수 있습니다. 습관적으로 부정적인 생각이 떠오를 땐, 내게 힘을 주는 문장으로 바꾸어 말해보세요. ‘죽고 싶다’는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잘하고 있어, 정말 애쓰고 있어’라고 되뇌어 보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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