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런 기분이 들까요?
1. 이상적 자기와 현실적 자기의 불일치
자신을 긍정적으로 바라봄으로써 자존감을 기를 수 있다고 하신 말씀은 백번 옳습니다. 그럼에도 쉬머 님께서 “스스로가 너무 밉다”는 말을 사연에서 무려 3번이나 반복하신 점 깨닫고 계셨나요?
쉬머 님은 아마 굉장히 높은 기준에 부합해야만 스스로를 인정하고 사랑할 수 있다고 여기는 분 같습니다. 그 높은 기준이, 빈틈없이 매끈한 이상적 자기상*으로 굳게 자리 잡은 것으로 보이는데요.
현실적 자기와 동떨어진 이상적 자기를 추구하는 경우, 이상적 자기에 가까워지기보다는 현실의 자신을 미워하게 되고 불안을 느껴 자신감이 떨어지게 됩니다. 이상적 자기를 바라보는 대신, 쉬머 님 자신의 장점과 강점에 집중하시면 좋겠습니다.
‘이상적 자기상’이란?
자신이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하는지,
또 어떤 존재가 되기를 원하는지에 대한 인식.
현재의 경험이 자기개념과 일치할 경우
적응적이고 건강한 성격을 갖지만,
불일치할 경우 괴리감을 경험하게 됨.
2. 주지화 방어기제
쉬머 님께서 부러워하는 당당하고 솔직한 사람들은 평소에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지 않고 자연스럽게 표현해 왔을 것입니다. 긍정적인 감정뿐만 아니라 부정적인 감정까지도요.
불편한 감정을 이성과 논리로 억누르다 보면 당장은 불쾌한 감정을 피하고 안전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감정에 점차 무뎌짐에 따라 정서적 교류에서 어려움을 겪게 되지요.
나의 감정을 홀대하면 상대방의 감정에도 둔해지기 마련입니다. 가슴으로 느끼지 못한 채 머릿속에서 ‘이렇게 반응해야 할 것 같다’고 판단한 대로 자꾸 반응할 경우, 상대방은 쉬머 님을 방어적이거나 재미없다고 느끼기 쉽습니다. 그러한 반응들에는 ‘진정한 자기’ 혹은 개성이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죠.
‘주지화 방어기제’란?
이성이 감정을 억눌러 안정을 찾으려는 심리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1. 감정을 마음으로 받아들이기
일단, 감정에 조금 더 접촉하면서 이성과 감정의 균형을 찾을 필요가 있습니다. 내가 지금 힘든 이유를 찾아 머리로 납득하려 하지 마세요. 마음공부는 이미 충분히 하셨습니다. 지식에 의존하기보다는 힘든 감정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며 그 감정에 오롯이 머물러보세요.
울어도 좋고, 소리를 질러도, 수치심에 떨어도 좋습니다. 감정에 무뎌져 있던 시간이 길었던 만큼 폭발적으로 감정이 흘러나와 두려울 수 있어요. 감정에 잡아먹히는 느낌이 들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 과정을 견디고 나면, 감정의 파도가 지나간 자리에서 진정한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들과 함께 있는 동안에도 순간순간 스쳐 지나가는 나의 감정을 뚜렷이 느낄 수 있을 거예요.
긴장, 불안, 수치심 같은 부정적인 감정의 이면에, 해결되지 않은 나의 욕구가 있습니다. 이기적인 욕구일지라도 그 자체로 존중해주세요. 사람들에 대한 배려는 욕구를 충족시키는 과정에서 이뤄져도 늦지 않습니다.
일기 쓰기의 효과가 별로 없었다고 하셨지만, 특별히 ‘지금 나를 사로잡는 감정’에 관한 일기를 반드시 써보시길 권해 드릴게요. 인터넷에서 ‘감정 단어’를 검색해 찬찬히 들여다보면 지금 내 감정에 꼭 들어맞는 표현을 폭넓게 익혀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쉬머 님 내면으로 파고드는 감정 이외에 다른 사람들과 관련된 감정에도 차례차례 머물러보시기를 바랍니다. 부모님께서 공감을 충분히 해주지 못하셨던 데 대한 원망은 정말로 완전히 해소됐나요? 사회성이 좋아 부러운 사람이 있다면 질투하는 감정에도 휩싸여보시고, 지나간 일이지만 내 반응에 호의적이지 않았던 사람들에 대한 짜증도 느껴보세요.
쉬머 님께서 단 한 명의 동생을 제외하고는 ‘친구’라 칭하지 않고 ‘사람’이라 언급하신 점을 미루어 보아, 친구들과 감정적인 거리감을 크게 느끼는 것 아닐까 짐작되는데요. 왜 그런지도 차분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지금까지 쉬머 님은 부정적이고 불편한 감정이 떠오르면 자신을 탓하는 쪽으로 전환을 해오셨기 때문에, 처음에는 이러한 감정을 느끼고 처리하는 과정이 굉장히 낯설 거예요.
하지만 자신의 감정과 욕구를 일단 인정할 수 있어야 감정을 안전한 방식으로 적절히 표현하는 법도 배울 수 있습니다. 부정적인 감정의 출구가 열리고 나면 긍정적인 감정 또한 자연스럽게 흘러나와 쉬머 님의 삶을 윤택하게 해줄 것입니다.
2. 보편적 인간성에 기대기
자신의 단점과 수치스러운 부분까지 따뜻하게 포용할 줄 아는 일은, 인생을 넓은 관점에서 바라볼 때 단연코 가장 중요한 일에 해당합니다.
‘보편적 인간성(common humanity)’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저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아픔과 고통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삶의 태도를 뜻하지요.
어쩌면 쉬머 님 입장에서는, 타인에게 부족함이 있듯이 내게도 부족함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동일하게 적용해 보는 방식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타인에게 친절한 태도를 자기 자신한테도 확장하는 것이지요.
스스로의 불완전함을 포용하는 사람만이 타인의 불완전함 또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쉬머 님도 스스로에게 가혹한 완벽주의 잣대를 기울이는 사람보다는 스스로에게 친절한 사람에게 조금 더 쉽게 속내를 털어놓을 수 있지 않으시던가요?
우리는 자신의 잘난 부분보다 부족한 진짜 모습을 보여주는 과정에서 서로 공감과 연대를 주고받으며 나아가 건설적인 대인관계를 이룩하게 됩니다.
자신과 타인이 지닌 불완전함에 너그럽게 측은한 마음을 품을 수 있게 되면, 놀랍게도 이전에 느끼셨던 그 평온한 마음이 되찾아올 것입니다.
또다시 힘든 순간이 찾아온다면, 저기 대단해 보이는 저 사람과 여기에 있는 나 자신 모두 행복하고 싶은 일념을 지닌 한 명의 사람일 뿐이라는 사실을 떠올리세요. 한층 너그러운 마음이 일렁이며 유대감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3. 자기 객관화와 강점 계발
단단한 내면의 원천은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능력에 있습니다. 다시 말해, 나의 약점과 강점을 잘 아는 일이 흔들리지 않는 중심을 구축하는 데 중요합니다.
자기 객관화가 잘 되어 있는 사람은 자신의 부족한 점을 외면하거나 회피하지 않습니다. 다만, 부족한 점에 집중하기보다는 이를 상쇄시키기 위해 내가 집중할 수 있는 나의 강점에 시간과 에너지를 더욱 할애하지요.
예를 들어 쉬머 님께서는 사회적 민감성이 높아 사람들 앞에서 이상한 반응을 보이는 모습을 약점이라고 표현하셨습니다. 이를 미루어 볼 때, 쉬머 님은 주변 사람들의 필요에 섬세하게 반응하실 수 있는 분이라 생각되는데요. 감정이 풍부하고 예민한 성격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승화시키면 어떨까요?
논리정연하게 글을 전개해 나갈 수 있는 능력을 토대로 짐작해보기에는, 친구들이 횡설수설할 때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정리해준다든지, 갈등상황을 겪을 때 중재자가 되는 등 특별한 역할을 수행하실 수 있을 것 같아 보였습니다.
이처럼 나의 약점에 대해 확실히 알고는 있되, 내가 어필하거나 살릴 수 있는 강점에는 무엇이 있는지 고민하고 이를 더욱 계발해 보시길 바랍니다. 내가 잘할 줄 아는 일이나 혹은 잘한다고 주변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았던 점은 무엇이 있는지, 하나씩 리스트업을 해보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쉬머 님, 자존감의 원천을 외적인 것에 두면 언젠가 바닥을 드러내게 됩니다. 나를 가치 있게 바라봐 주고 자존감을 높여주는 친구가 있다면 분명 기쁜 일이지요. 하지만 이미 경험해보신 것처럼 나의 자존감을 높여주던 친구가, 학점이, 물질적 풍요가 없어질 때 자존감도 함께 사라진다면 그것이 진정한 자존감이 맞는지에 대해 한번 깊이 생각해보시면 좋겠습니다.
존재 자체만으로 저절로 ‘특별함’이 부여되는 경험이 쉬머 님의 앞날에 함께하길 바라겠습니다. 지금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충분히 아름답다는 사실을 언제나 기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