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런 기분이 들까요?
우리나라 고3의 대학 진학률은 약 70%에 이른다고 해요. N수생까지 포함해도 청년 과반수가 20대 초반을 대학에서 보낸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전공에 확신이 없더라도 당장은 내 앞에 무한한 가능성이 펼쳐져 있는 것 같죠. 중고등학교 시절의 관성으로 틈틈이 놀며 공부하다가 20대 중반에 들어서면, 불현듯 내가 아직 사회로 나갈 준비가 많이 안 되어 있다는 점을 깨닫습니다. 이제 내 앞에 놓인 선택지가 현실적으로 몇 개 안 되는 것 같이 느껴져요. 그마저도 오랫동안 탐색하고 인턴으로 근무해 본 곳이 아닌 이상, 업무나 근무 환경을 직접 경험할 수 없어서 답답하고 막연하기만 합니다. 나만 사회에서 낙오되는 것 아닌지 걱정되는 마음에 일단 이곳저곳 지원서를 넣어봅니다. 이처럼 취업 준비생의 상당수는 이 길이 내게 적합한 진로인지 확신할 수도 없고, 지원한다고 취업에 성공하리라는 보장도 없는 이중 불안에 시달리고 있는 현실입니다.
불확실성(Uncertainty)의 정도가 상승하면 우리가 심리적으로 느끼는 불안감과 두려움이 덩달아 높아집니다. 그러면 막막함에 압도되어 일을 손에서 완전히 놓아 버리거나, 모든 일을 과도하게 통제하려는 양극단의 반응이 나타날 수 있는데요. 햇빛 님께서 깡소주만 들이켜는 행동은 전자의 경우처럼 불확실성을 회피하려는 시도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불확실성으로 인한 불안감에 대처하는 또 다른 방식은, 꼬리에 꼬리를 물며 과도한 걱정을 하는 것인데요. 걱정이 지나치다 보면 종국에는 스스로에게 의구심을 품게 되기도 합니다. ‘내가 과연 사회에서 쓸모 있는 존재가 맞을까?’ 하고 말이에요. 햇빛 님께서도 자꾸 자책하게 된다고 말씀해 주셨지요. 그때마다 ‘내게 불안한 마음이 있구나’라고 햇빛 님의 심리 상태를 인정하며 수용해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불안을 두려워하는 대신 수용할 수 있어야, 불안을 관리하고 성장의 발판으로 삼는 것 또한 가능해지거든요.
불확실성으로 인한 불안에 대처하는 네 가지 유형
회피, 지나친 통제, 과도한 걱정, 수용 및 관리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1. 진로를 결정하는 기준 세우기
우선, 햇빛 님께 진로는 무엇을 의미하는지 종이에 적어 보시면 좋겠습니다. 단순한 밥벌이 수단, 혹은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하기 위한 자금의 원천일 수도 있고요. 가까운 사람들의 인정을 받거나 사회적인 지위를 확보하는 의미를 가질 수도 있지요. 취미나 여가를 제대로 즐기기 위한 보조 활동, 나 자신을 세상에 증명해 드러내는 일, 지금까지 공부하거나 투자한 시간에 대한 보답, 갈고닦은 능력이나 재능을 발휘하는 공간, 공동체에 기여하고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통로 등, 사람들에게 진로의 의미는 제각각 다릅니다. 그리고 이렇게 적은 내용은 진로를 통해 내가 얻고 싶은 점과도 일맥상통하지요.
무엇을 얻고 싶은지가 명확해졌다면, 이제 그에 부합하는 직업을 탐색하고 필요한 계획을 세울 차례입니다. 일단 현재 고려하고 있는 직업군을 추려보세요. 첫째로 국제무역학 전공을 살려 취업할 수 있는 곳 두세 가지, 둘째로 햇빛 님께서 꿈꾸셨던 앱 개발 기획자, 셋째로 관심이 가는 또 다른 직업군을 두세 가지 적어보세요. 그리고 각 직업의 장단점을 옆에 써볼게요. 특히 장점을 적고 평가할 때는 다양한 관점을 포함하면 좋겠습니다. 직업이 안겨주는 보람, 개인적인 성장 가능성, 미래 전망, 돈, 사회적 지위, 주변 사람들의 인정 등을 말이지요.
이제 각 직업의 장점에 대해 점수를 매겨봅니다. ‘내게 전혀 중요하지 않은 점이다’ 0점, ‘내게 무척 중요한 점이다’ 4점을 기준으로요. 다음으로 각 직업의 단점을 햇빛 님께서 감내하실 수 있는지, 솔직하게 자문자답하는 시간을 가져봅니다. ‘절대 감당 못 한다’ 0점, ‘쉽게 또는 온전히 감당할 수 있다’ 4점을 기준으로 0~4점으로 점수도 매겨보세요. 총점이 높을수록 나와 잘 맞는 직업일 가능성이 크지만, 추가로 고려해야 할 사항도 많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특정 직업인의 삶의 패턴이나 마인드는 내가 그 세계에 속하게 되면 똑같이 따르게 될 가능성이 큽니다. 관심 있는 직업에 종사하는 선배들을 만나서 조언을 듣는다든지, 신문이나 유튜브에서 해당 직업인의 인터뷰를 찾아보면 이를 확인하는 데 도움이 될 거예요. 이와 같이 작업한 것들을 기준으로 삼아서 진로를 지혜롭게 결정하고, 필요한 준비를 해나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미지의 세계에 발을 디딜 때 우리는 다시 어린아이로 돌아간 것처럼 약간 불안해지기 마련이에요. 그럴 때마다 가족이 서로에게 든든한 심리적 지원군이 되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복잡한 심경을 내색하지 않으며 우선 “너를 믿는다.”고 말해준다면 얼마나 감격스러울까요. 그 믿음에 보답하고 싶어서라도 최선의 최선을 다할 텐데, 그 마음을 왜 아직도 몰라주시는 걸까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아버지께서 햇빛 님의 앞날을 진정으로 걱정하시는 마음도 느껴졌습니다. 아버지 세대의 경험에 비추어볼 때는 햇빛 님이 꿈꿨던 앱 개발 기획자라는 직업이 모호하고 불안정하게 느껴졌을 가능성이 큽니다. 자녀가 최대한 안전한 길로 다니기를 바라는 부모의 마음은, 정도만 달라질 뿐 자녀가 다 큰 후에도 여전하거든요. 아마도 아버지께서는 햇빛 님이 전공을 살려서 좀 더 안정적인 무역회사나 공기업에 취업하기를 바라셨겠지요. 그런데 앱 개발 기획을 배운다니, 아버지의 시각에서는 햇빛 님이 멀쩡한 길을 놔두고 막다른 길로 돌진하는 듯 보였을지도 모릅니다.
문득 이러한 아버지의 진심을 제대로 이해하고 나면, 햇빛 님께서 진로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부담감을 덜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자식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감사히 받아들이되, 햇빛 님은 햇빛 님의 인생을 사십시오. 선택도 책임도 햇빛 님께서 져야 할 몫입니다.
2. 회복탄력적 마음가짐
우리의 마음가짐에 따라, 현재의 역경을 훗날 다시 도약하기 위한 디딤돌로 삼을 수 있습니다.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 스프링처럼 다시 튀어 올라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을 ‘회복탄력성(Resilience)’이라고 하는데요. 졸업이 한 학기 밀리는 실수를 했을 때 자책하며 주저앉을 수도 있지만, 이왕 이렇게 된 거 추가로 주어진 한 학기를 알차게 보내서 더 자신감 있게 취업전선에 뛰어들자고 결심할 수도 있어요. 회복탄력성이 높으면 후자의 경우처럼, 스트레스 사건이 발생하더라도 변화에 유연하게 적응하며 대처하게 됩니다.
회복탄력성을 높이기 위해 햇빛 님께 구체적으로 제안하고 싶은 바는, 낙관적인 사고를 연습하는 거예요. 좋을 것 하나 없어 보이는 일도 평소와 전혀 다른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보면, 긍정적인 부분을 발견할 수 있거든요. 얼마 전 SNS에서 유행했던 아이돌 장원영의 “완전 럭키비키잖아.”가 낙관적 사고의 좋은 예시인데요. 앞 사람이 자신이 사려던 빵을 다 사 간 탓에 조금 기다려야 하는 상황에서, 장원영은 불평하는 대신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앞 사람이 제가 사려는 빵을 다 사 가서 너무 럭키하게 제가 새로 갓 나온 빵을 받게 됐지 뭐예요?” 낙관적 사고는 이처럼 참신한 발상과 약간의 창의력까지 동원해 가며, 내게 주어진 상황에서 긍정적인 점을 찾아내고자 적극 노력하는 삶의 방식입니다. 낙관적 사고가 가능해지면 스스로 긍정적인 정서를 유발할 수 있고, 부정적인 사건을 극복할 힘이 생기지요.
햇빛 님께서는 앱 개발 기획자가 일대일 수업을 받아줬기 때문에 해당 분야에서 일하게 될 나의 모습을 더 구체적으로 그려볼 수 있었던 것 아닌가요? 보통의 취업 준비생처럼 학원에 다니거나 인강을 듣는 데 그쳤다면 앱 개발 분야에 대한 핑크빛 전망만 들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일대일 수업을 통해 내게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는 점을 미리 알았으니, 장기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다행스러운 일이 아닌가 싶어요. 이에 일대일 수업을 들을 수 있었던 당시의 여건에 대해 감사할 수 있습니다. 더불어 답답한 상황에서 조언을 구할 수 있는 주변 형들이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상대방에게 그 마음을 표현할 수도 있겠네요. 이처럼 어려운 상황에서도 낙관적인 사고로 버티고 감사하고 웃다 보면, 더 높이 뛰어오를 날이 분명 올 거예요.
3. 대안적 내러티브 구성(알찬 삶)
낙관적 사고와 더불어 긍정 에너지를 충전시킬 방법으로써 신체의 기능 수준을 끌어올리는 일을 권하고 싶습니다. 햇빛 님께서는 한꺼번에 몰아치는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깡소주만 들이켜고 있다고 언급해 주셨는데요. 음주는 다 아시다시피 순간의 해방감만 줄 뿐 근본적으로 문제를 전혀 해결해 주지 못합니다. 더군다나 다음 날 숙취로 인해 괴롭고 일의 효율도 저하되어 자책하게 만들지요. “힘이 안 나서” 아무것도 할 수 없고 다시 스트레스를 받는 악순환을 지속시킬 뿐이에요.
이에 햇빛 님께 여쭤보고 싶습니다. 과거 알차게 살 수 있었던 힘의 원천은 어디에 있었나요? 알차게 살았던 나의 모습 중에 특별히 기억나는 행동은 무엇이 있나요? 이제부터는 술 생각이 날 때마다 이 행동들을 대신해 보면 좋겠어요. 제가 개인적으로 자랑스럽게 기억하는 저의 모습은, 지치고 힘들어도 몸을 일으켜 동네를 한 바퀴 뛰고 땀 흘리며 돌아오는 모습, 아침에 목욕재계하며 하루를 상쾌하게 시작하는 모습, 간단하지만 달걀과 비엔나소시지, 채소 두어 가지를 넣고 달달 볶아서 아침밥을 차려 먹는 모습이 있습니다. 햇빛 님께서도 스스로 자랑스럽게 기억하는 과거의 ‘알찬 내 모습’을 떠올리고 이를 현재로 다시 끌어오면 좋겠어요. 행동이 바뀌면 생각도 바뀝니다. 앞으로는 자책을 멈추고, 햇빛 님의 인생을 긍정적인 새로운 내러티브로 써 내려가면 좋겠습니다.
햇빛 님의 사연을 읽으며 과거의 제가 고시원에서 준비하다 포기했던 시험공부 생각이 났습니다. 당시에는 그 길만이 삶의 전부인 것 같아서, 저 역시 좌절감에서 헤어나기까지 부단한 노력이 필요했는데요. 언젠가는 햇빛 님도 현재 힘든 시기를 버텨내고, 스스로에게 잘했다고 칭찬할 수 있는 날이 분명 올 거예요. 내가 가진 잠재 능력을 단편적인 일화 때문에 과소평가하지 않으면 좋겠어요. 앞으로 구체적으로 어떤 삶이 햇빛 님 앞에 펼쳐지게 될지 모르지만, 기대하는 마음으로 정진해 나가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