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런 감정이 들까요?
나의 경계가 침범 당할 때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반응
우리는 모두 자신만의 경계(boundary)를 둡니다. 이 경계는 ‘나’와 ‘너’를 구분해 주는 일종의 울타리인데요. 이를 통해 나를 보호(방어)하기도 하고, 또 타인 및 세상과 소통하기도 합니다. 경계가 튼튼히 자리 잡고 있을 때는 문제가 되지 않지요. 그런데 누군가 나의 경계를 침범하는 상황에서, 보호와 방어가 무너질 수 있습니다. 지금 옥수수수염차님은 직장 상사의 예측할 수 없고 인신공격적인 언행으로 인해 나를 보호하는 방어막이 무너진 것으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더 이상 울타리 안의 공간이 안전하지 않게 느껴지는 것이지요.
게다가 이런 침범이 ‘업무’가 아닌 ‘존재(가족, 외모, 성별, 주거지)’에 대한 비난일 때 더 깊은 개인적인 상처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만약 상사의 말들이 일에 대한 피드백이었다면 충분히 수용하고 개선하기 위해 노력할 수 있었을 거예요. 그러나 업무가 아닌 옥수수수염차님에 대한 비난이었기 때문에 존재 자체에 대한 부정으로 받아들여졌을 겁니다. 이로 인해 ‘자기(self)’가 위협받고 ‘나는 괜찮은 사람인가?’, ‘나는 여기에 왜 있는 걸까?’와 같이 존재적 혼란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죠. 날카로운 말은 언제 들어도 아픈 법인데, 존재의 측면을 건드렸기 때문에 감정을 조절하기란 더욱 어려운 일입니다.
우리의 몸과 마음은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옥수수수염차님이 경험한 요동치는 감정은 몸의 반응인 심장 두근거림, 떨림 등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어떤 위험에 노출될 때 우리 몸은 생존 본능에 따라 ‘투쟁-도피 반응(fight or flight response)을 자동으로 작동시킵니다. 심장이 두근거리고 식은땀이 나며, 생각은 흐려지고 머리가 몽롱해지고, 도망치고 싶은 충동이 드는 것은 이런 반응에 해당하지요. 그러니 옥수수수염차님은 지금 이 상황을 ‘나의 존재를 위협하는 상황’이라고 온몸과 마음으로 지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반응이 아주 자연스럽고 정상적인 것이기 때문에 스스로를 자책하거나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1) 먼저, 몸의 반응을 다루기
강한 불안이나 분노가 올라올 때는 이성적으로 대처하기가 어렵습니다. 감정의 파도가 나를 휩쓸었기 때문이지요. 이럴 때는 먼저 몸의 반응을 진정시키면 좋은데요. 앞서 말했듯 몸과 마음은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먼저, 날카로운 말이 마음에 박히는 순간, 내 몸에서 나타나는 반응을 살펴봐 주세요. ‘아, 나 지금 심장이 쿵쾅쿵쾅하는구나.’, ‘호흡이 가빠지고 있네.’와 같이 말이죠. 두 손을 꽉 맞잡아보거나 발바닥을 바닥에 꾹 누르며 느껴지는 감각에 집중해 보는 것도 좋습니다. 나를 위협하는 상황 속에서 상사의 말들이 아닌 내 몸의 반응에 주의를 기울여보는 것입니다. 현재의 공간과 나를 연결하는 이 ‘그라운딩’ 기법은 감정의 파도 속에 떠내려가지 않고 중심을 잡는 데 도움이 됩니다. 이와 더불어 ‘가슴이 쿵쾅거리는 걸 보니, 내가 지금 이 상황에 큰 위협을 느끼고 있구나.’와 같이 파도의 한가운데가 아닌 파도 밖에서 나를 객관화해 바라보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옥수수수염차 님이 이미 시도해 보신 ‘3초 기다리고 심호흡하기’도 몸의 반응을 다루는 것과 관련이 있어요. 심호흡하면 들숨과 날숨을 통해 몸이 이완되어 부교감 신경계가 작동하게 됩니다. 각성해 있는 몸을 원래의 평온한 상태로 돌아오게 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런 방법은 평소 일상에서 꾸준히 훈련해서 감각을 익히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미 극심한 스트레스 상황에 놓이면 막상 조절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에요. 침대나 소파와 같은 안전한 공간에서, 위협이 예상되는 상황을 떠올리며 심호흡을 연습해 보는 것도 좋습니다. 당장은 효과가 없게 느껴질 수 있답니다. 하지만 꾸준히 해나간다면 스트레스 상황에서 내 몸의 반응을 자동으로 조절함으로써, 내 마음도 조절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는 날이 올 거예요.
2) 비난의 대상을 나와 분리해서 바라보기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이 상황이 옥수수수염차님의 잘못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기분에 따라 수시로 변하는 상사의 태도, 업무와 관련 없는 인신공격적인 언행이 문제지요. 이 자체에 대해 부당하고 불합리하다는 인식을 우선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내가 감정을 조절 못 해서 생긴 문제’라고 생각하기보다 ‘지금 나는 안전하지 않은 상황에 있다’고 정리하는 게 좋습니다.
감정에 구체적인 꼬리표를 붙여보세요. 감정의 실체를 파악하는 것만으로도 감정이 약간 가라앉고 객관화가 되면서 감정을 조절하기가 수월해집니다.
‘이건 내 잘못이 아니다. 이건 저 사람의 문제다’ 라고 스스로에게 계속 말해주세요.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 이야기도 계속 들으면 ‘그런가보다’ 하고 생각하게 되는 법이죠. 처음에는 스스로 잘못한 것이 없다고 생각하더라도, 지속적으로 반복해서 비난을 들으면 나도 모르게 나에게서 문제를 찾기 쉽습니다. 이럴 때 가능하다면 믿을 수 있는 사람에게 지금의 상황을 털어놓고, 외부의 시선으로 다시금 돌아보세요. 상사의 비난을 나와 분리해서 바라볼 수 있을 거예요.
만약 그럼에도 계속 상사의 말들에 크게 흔들리고 ‘자기(self)의 위협’을 받는다면, ‘나는 왜 비논리적이고 제멋대로인 상사의 말들에 이렇게까지 상처를 받는지’, ‘분명 저 사람의 문제인데 자꾸만 왜 나의 문제인 것처럼 받아들이게 되는지’ 나의 이슈를 살펴보는 것도 좋습니다. 지금의 상황과 비슷한 과거의 상처가 있을 수도 있고, 완벽주의적인 성향이 있어 내가 나에게서 자꾸 문제점을 찾는 것일 수도 있고, 혹은 무조건적인 지지와 응원이 부족했던 것일 수도 있어요. 심리상담이 이를 찾아가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니, 그 문을 두드려보는 것도 좋습니다.
3) 나를 안전히 지키는 경계를 설정하기
상사의 침범으로 잠시 무너진 경계를 다시 바로 세우면, 즉 울타리를 튼튼하게 만들면 다시 안전한 나의 세상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간단한 방법부터 시작해 봅시다. 먼저 일과 일상의 경계를 분명히 분리해 볼 수 있어요. 직장에서의 생각들을 집에까지 가져오지 않으려고 노력해 보는 것이지요. 퇴근 후에는 스위치를 끈다고 생각하고 일상을 취미나 즐거운 활동들로 열심히 채워보세요. 직장에서 들은 상사의 말이 자꾸만 머릿속에서 되풀이될 때, 뜨개질에 집중해 보거나 유튜브를 보며 주의를 돌려보는 거죠. 나를 바닥 끝까지 내리치는 말들을 곱씹지 말고 내 일상의 경계 밖으로 뻥 차버리는 겁니다.
직장에서는 비난의 자리를 잠시 떠나보는 것도 경계를 설정하는 방법이 됩니다. 상사에게 공격적인 말을 들었던 자리에서 일어나 잠시 화장실을 다녀오거나, 바깥에 나가 바람을 쐬고 오며 나에게 시간을 주세요. 상황이 바뀌면 나의 감정도 환기가 되기 때문이지요. 만약 업무와 관련되지 않은 일들로 상사가 나를 공격하며 몰아붙인다면 휩쓸리지 않고 ‘잠시만 생각 좀 정리하고 오겠습니다.’하고 자리를 떠나보는 것도 좋습니다. ‘여기까지는 괜찮지만 이 선을 넘어오면 안 돼’와 같이 분명한 경계 설정을 통해 옥수수수염차님의 존엄을 지킬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옥수수수염차 님, 부디 지금의 어려움을 ‘내가 감정을 조절하지 못해 생긴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부당한 말들을 지금껏 견뎌온 스스로를 다정하게 바라보고 토닥여주시면 좋겠어요. 지금 요동치는 감정들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신호임을 기억해 주세요. 무엇보다 옥수수수염차님의 마음의 건강을 먼저 잘 지키고, 존중받아야 할 존재임을 잊지 않으시길 빕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