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런 감정이 들까요?
일과 사랑, 나와 아이, 모두 중요해!
저는 가장 먼저 아랑이랑 님이 경험하고 계시는 불안, 답답함, 막막함과 같은 감정들은 단순히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 사회 구조적 한계 속에서 겪게 되는 복합적인 현상임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경력 단절과 재진입의 불확실성은 여전히 많은 여성들이 경험하는 실질적인 사회적 문제입니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일과 가정을 병행하기 어려운 구조이기 때문이지요. 더욱이 여성의 경력 단절에 대한 인식과 지원 역시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 고립감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의 마음은 환경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사회적으로 정체되어 있고 뒤처지고 있어’라는 불안, ‘내가 다시 사회에 나가 자리 잡을 수 있을까’라는 답답함과 두려움, 또 ‘앞으로 어떤 길을 가야 할까’라는 막막함. 이는 모두 미래 불확실성에서 오는 불안의 종류입니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인해 통제감을 잃게 되어 불안을 경험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프로이드(Freud)는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두 가지가 ‘일과 사랑’이라고 말했습니다. 이게 전부라고도 이야기했지요. 아이를 통해 사랑의 영역에서 충족감을 느낀다고 하더라도, 지금처럼 일의 영역에서 결핍을 느낀다면 우리는 온전히 행복하다고 느끼기 어렵습니다. ‘계획대로 알차게, 성취감, 보람, 자아실현, 능력’이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 아랑이랑 님은 성취감이 매우 중요한 사람입니다. 즉, ‘일’이 삶에서 풍성히 채워져야 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그런데 육아로 인해 자신의 능력을 충분히 발휘하고 인정받지 못하고 있으며,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성도 상실한 상황에 놓여있지요. 게다가 육아는 눈에 보이는 성과가 두드러지지 않는 데다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기 때문에 자기 효능감을 느끼기 매우 어렵습니다. 여러 가지 배울 수 있는 수업들로 성취감을 경험하려고 하지만 잘 채워지지 않는 느낌도, ‘일’과 관련되지 않는다고 여겨 지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역할갈등과 정체성 혼란도 자기 효능감의 저하와 연결될 수 있습니다. 직장인과 엄마라는 두 가지 역할 사이에서 자신이 누구인지, 어떤 존재인지 혼란스러워지는 것이죠. 심리학에서 ‘역할 이론’은 개인이 사회 속 여러 역할을 수행할 때 기대와 책임 사이에서 갈등이 생길 수 있다고 봅니다. 엄마로서, 개인으로서, 혹은 직장인으로서 자신에 대한 기대가 서로 충돌하면 ‘나는 누구인가’라는 혼란과 함께 자기 효능감 저하가 일어난다고 보는 것이지요. 엄마의 역할을 잘 감당하고 싶으면서 동시에 직장인의 역할 또한 잘 해내고 싶은데, 현실에서는 이 두 가지의 기대를 동시에 충족하기 어렵기 때문에 생겨나는 불안일 수 있습니다. 어쩌면 나와 아이, 또 다른 말로 하면 일과 사랑 모두 나에게 너무나 중요하기 때문에, 또 잘 해내고 싶기에 이런 고통을 겪고 계시는 것이지 않을까요.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1) 지금, 여기에 살기
불안은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걱정하며 이를 통제하고 싶을 때 생겨나는 마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잘 살고 싶어서, 미래를 잘 준비하고 싶어서 생겨나는 마음인 것이지요. 하지만 우리의 미래는 언제나 불확실합니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지금, 여기에서 해 나갈 수 있는 것들에 집중하며 사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지금, 여기에서 해 나갈 수 있는 것의 범위는 매우 다양합니다. 아이 등하원 시키기, 식사를 준비하기, 목욕시키기와 같은 육아와 관련된 것부터 시작해도 좋습니다. 사실 이것은 이미 내가 하고 있는 수많은 일들이지요. 중요한 것은 지금, 여기에서 이미 많은 일을 하는 나를 다정한 시선으로 바라봐 주고 주의를 기울여주는 것입니다. 정체되어 있는 것 같아 불안할 때 지금 나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움직이고 있는 나를 바라봐 주는 것이지요. 무엇보다 지금 엄마의 자리에서 하고 계시는 모든 일들이 결국에는 어떤 방법으로든 자산이 된다는 것을 잊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2) 나의 성취 욕구를 채워라
앞서 설명했듯, 아랑이랑 님은 ‘일’이 매우 중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일보다 사랑이 더 중요한 분들의 경우, 엄마가 되고 나서 일을 그만두게 되었을 때 오히려 더 즐겁게 육아를 하는 경우도 종종 봅니다. 그런데 무엇인가를 목표하고 달성해 나가고,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으며, 일로써 자아를 실현해 나가기를 좋아하는 분들은 출산과 육아의 단계에 놓였을 때 우울과 불안을 더 자주 경험하게 되는 것 같아요. 아마도 이것은 개인의 욕구에 따른 차이겠지요.
그렇다면
일의 영역에서 성취 욕구를 채우는 활동을 해봅시다. 앞에서 말한 ‘지금, 여기에 살기’의 일 버전이라고 생각해도 좋습니다. 중요한 것은 작은 일에서부터 성취감을 쌓는 것입니다. 업무에 복귀하는 데 필요한 것은 무엇이 있는지를 탐색하기, 어학 공부하기, chat GPT를 활용하는 방법 배우기, 독서하기, 관련된 유튜브(youtube) 찾아보기, 전시 보기, 포트폴리오 만들기 등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과 관련된 작은 경험치를 쌓아보는 것입니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 있는 동안 배울 수 있는 수업을 신청해 두신 것은 정말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 또한 성취 욕구를 채우는 활동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이러한
배움이 일과 조금이라도 더 관련된다면 더욱 크게 성취감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열심히 배우고, 열심히 채우세요. 그래서 불안을 딛고 일어나 재진입에 꼭 성공해주세요.
3)나는 그냥 나야
내 안의 여러 욕구와 기대가 충돌할 때, 즉
역할 갈등을 느낄 때 어떠한 역할보다 ‘나 자신’에 집중하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중요합니다. 엄마로서의 나, 아내로서의 나, 직장인으로서의 나보다 중요한 것은 그냥 나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나’로서 건강히 기능할 때, 비로소 엄마, 아내, 직장인으로서 건강히 기능할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 일상 속 경계 설정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즉
나만의 시간과 공간을 확보하는 것입니다. 가족과 시간을 나누는 것과 별개로, 자신만의 작은 공간과 시간을 정해서 휴식과 재충전을 해주세요. 일주일에 하루 이상이면 더 좋습니다.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고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며 가장 중요한 ‘나’를 되찾는 것입니다.
더불어
그 시간 동안 자기 돌봄과 긍정적 자기 대화를 해보세요. 불안하고 답답한 감정을 부정하지 말고, ‘지금의 나는 충분히 잘하고 있다’라는 긍정적인 자기 대화를 통해 스스로를 격려하면 좋을 것입니다. 혹시 아나요? 이 시간 동안 일 외에 새롭게 자아실현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될지도 모르니까요.
아랑이랑 님은 아이를 사랑하는 좋은 엄마이자 자신의 길을 찾고 놓치지 않으려는 멋진 사람입니다. 일과 사랑,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아야만 행복하다는 것을 알고 이를 잘 해내고 싶은 지혜로운 사람이지요.
지금 겪고 계시는 심리적 어려움은 더 큰 내가 되기 위한 성장통이라는 점을 꼭 기억해 주세요. 마침내 아이가 다 커서 성인이 되었을 때, 아랑이랑 님을 보며 누구보다 멋진 엄마라고 분명 이야기할 것입니다. 마음 다해 응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