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런 감정이 들까요?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
사회생활을 시작하면 우리는 더욱 다양한 배경과 성향을 지닌 사람들을 접하게 됩니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들과 나를 비교하게 되기도 하고, 또 ‘나’와 ‘이상적인 나’를 비교하게 되지요. 특히 내가 동경하거나 닮고 싶은 사람을 만날 때, 그 사람의 장점은 더 크게 보이고 나 자신의 부족함은 과장되어 인식되기 쉽습니다. 이 때 무의식적으로 ‘나는 저 사람처럼 성숙하거나 멋지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며 자기비판이 강화될 수 있지요.
‘칼 로저스(Carl Rogers)’는 자기 불일치 이론에서, 이상적 자아와 현실적 자아의 간극에서 심리적 긴장을 느끼게 되고, 이는 결과적으로 지나친 자기검열이나 후회로 나타나게 된다고 했습니다. 즉 내가 되고 싶은, 이상적으로 기대하는 나의 모습이 큰 만큼, 작은 실수나 말 한마디에도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게 되는 것이지요. 어쩌면 납작복숭아 님이 본받고 싶은 사람들을 만났을 때에 자주 후회하게 된다면, 내면에서는 ‘그에 걸맞은 나’가 되어야 한다는 무의식적 긴장을 느꼈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타인의 평가와 사회적 시선에 민감한 사람들은 사회적 상호작용 후 자신의 모습을 다시 재생하며 스스로를 평가하고는 합니다. 이는 사회불안(social anxiety)의 일종인데요. 좋아하는 사람이고 오래 관계를 이어가고 싶은 마음이 크기 때문에, 나의 말과 행동이 상대방에게 어떻게 비춰질지를 반복적으로 되새기며 자책하는 것이지요. 특히, 사회생활을 시작한 뒤 이런 불편감이 생겼다는 점을 보면, 보다 사회적 기대와 평가가 크게 작용되는 맥락이기 때문에 사회불안이 생겨난 것일 수 있습니다.
사회불안이 있으면 상대방과의 대화 내용 자체에 집중하기보다, ‘이 사람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나를 어떻게 평가할까?’에 집중하게 되기도 합니다. 즉 외부의 시선에서 나를 바라보게 되니 자꾸만 의식하게 되는 것이죠. 마치 많은 사람들 앞에서 발표를 할 때에, ‘발표의 내용’이 아닌 ‘발표하는 나’를 의식하면 더욱 긴장되는 것과 동일한 이치입니다.
조금 더 깊이 들어가 보면, 납작복숭아 님처럼 상호작용 후 스스로의 말과 행동을 되짚어보며 후회하고 자책하는 경우 사실 그 감정의 근원은 타인이 나를 비판하거나 거부할 것이라는 가정된 시선일 수 있습니다. 실제로는 타인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내면에 자리한 비판적인 자기상을 타인의 시선에 투사하는 것이지요. 즉, 나 자신의 엄격한 판단과 불안이 마치 타인의 평가인 것처럼 느껴지게 되는 것입니다.
나의 생각이 타인의 생각과 같을 것이라는 착각은 메타인지 오류(meta-cognitive error) 중 하나입니다. 예를 들어, ‘저 사람은 왜 저렇게 불평불만을 하지?’라고 생각했다면, 나도 모르게 ‘그러니까 사람들도 나를 그렇게 생각할 거야’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내가 가진 판단의 틀을 세상 전체의 시각으로 확장시키는 것이지요.
1) 이성적 자아를 재조정하며 나를 수용해 나가자
이상적 자아와 현실적 자아의 간극을 좁혀 나가고자 하는 사람들은 스스로를 성찰하며 더 좋은 사람,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분들이에요. 이상적 자아는 이렇듯 성장의 동력이 될 수 있지만, 현실의 나와 간극이 클 경우 심리적 고통감을 유발하지요. 이상적 자아와 현실적 자아 사이의 간격을 줄이는 작업에 필요한 과정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이상적 자아를 낮추며 재조정하는 것, 그리고 현실적 자아를 수용하며 자기연민을 키워 나가는 것입니다.
이상적 자아를 낮추자고 하면, ‘그럼 저는 성장과 발전없이 이대로 살라는 건가요?’라고 반문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이때 말하는 이상적 자아를 재조정하는 일은, 현재의 나와 조금 더 현실적이고 자비로운 대화를 나누어야 한다는 뜻이에요. 예를 들어, ‘나는 그 사람과의 만남에서 완벽한 모습을 보여야 해’라는 기대 대신, ‘나는 진솔하고 솔직하게 대화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야’ 라는 정의로 바꿀 수 있습니다.
또 다른 과정은 현실적 자아를 수용하는 것인데요. 나의 장점 뿐 아니라 단점이라고 비춰지는 부분에서도 스스로를 괜찮다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실수해도 괜찮은 나, 불평불만을 해도 괜찮은 나, 말을 많이 해도 괜찮은 나’를 받아들이게 되면, 나는 괜찮은 사람이라는 확신이 자리 잡게 되고, 후회보다는 자기수용으로 관계를 돌아보게 될 거예요. 이를 위해 ‘오늘 내가 나를 위해 잘한 일 3가지 써 보기’와 같은 자기자비, 또는 자기연민의 일기를 써보는 것도 도움이 된답니다!
2) 사회불안으로 인해 지나치게 나 자신을 검열한다면, 자기초점 완화를 해보자!
사회불안은 대인관계에서 내가 이상하게 보일 것 같아 생기는 과도한 자기의식과 긴장 상태예요.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더 심해지는 이유는, 그 관계를 잃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강하기 때문에 평가에 대한 민감도가 높아지기 때문이지요. 이럴 때는 타인의 평가에 과도하게 초점을 맞춘 자기의식을 줄이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자기초점 완화’의 과정은 이렇습니다. 대화를 나누는 동안 ‘내가 너무 혼자 말을 많이 했나? 내가 상대방에게 어떻게 보일까?’라는 생각이 들 때, 의도적으로 상대방의 말, 말투, 표정 등에 더욱 집중하는 연습을 해보는 거예요. ‘나’에게 집중된 시선을 타인을 향해 초점을 옮김으로써 불안을 줄이는 거죠. ‘불평불만을 하는 나’에서 벗어나 상대방의 말, 즉 타인에게 집중하며 공감하려고 노력해보세요.
사회불안을 가진 사람들은 만남 후에 사후 반추를 자주 하지요. 내가 의도하고 노력하지 않아도 내 머릿속에서 자동적으로 그때의 상황이 재생되어서 나를 평가하게 되잖아요. 이 때에는 내가 잘못한 점이 떠오르더라도 그것은 잠시 옆으로 치워 두고, 좋았던 점이나 긍정적인 순간만 기록해보세요. 자기평가의 초점을 긍정적인 면으로 옮겨가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답니다.
3)타인의 생각은 내 생각과 다르다
누군가를 보며 ‘좋은 사람이다, 닮고 싶은 사람이다’라고 생각한다는 것은 또 다른 말로 하면 내가 그 사람의 가치를 판단하고 평가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 때 우리는 ‘내가 저 사람을 판단하니, 다른 사람도 분명히 나를 그렇게 판단할 거야’라는 생각의 오류에 빠지기 쉽습니다. 이러한 오류는 대인관계에서 쉽게 나타나고, 특히 사회불안이 높은 사람들에게 자주 발생합니다. 사실 그 사람은 나를 평가하고 있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스스로 만들어낸 ‘상상’이 ‘실제’ 타인의 평가로 착각하게 만드는 것이지요.
가장 먼저 기억해야 할 것은, 타인의 생각은 내 생각과 다르다는 것을 인지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고 기록지(thought record)를 작성하며 메타인지 오류를 줄여 나갈 수 있어요. 예를 들어, 사람을 만난 뒤에 ‘내가 오늘 불평불만을 많이 한 것 같아. 아마도 저 사람이 나를 부정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겠지?’ 라고 느껴질 때, 그 생각을 기록하고, 그것이 사실인지, 어떤 근거가 있는지, 다르게 해석할 수 있는 가능성은 없는지 등을 스스로 질문해보는 거예요. 이 과정을 반복하면 내 상상 속의 시선이었는지, 실제적인 평가였는지를 좀 더 명확히 구분할 수 있게 될 거예요.
더 나아가, 다른 사람을 바라볼 때 나의 판단과 평가를 내려놓아보는 연습도 필요합니다. 내가 타인을 바라보는 시선(안경)으로 나를 바라보게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지요. 내가 타인을 바라볼 때, 좋은 사람/나쁜 사람, 본받을 점이 있는 사람/없는 사람, 긍정적인 사람/부정적인 사람과 같이 가치판단하는 생각을 줄여 나가보세요. 분명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질 것입니다.
후회란 잘하고 싶었던 마음,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잘 유지하고 싶은 마음의 표현입니다. 납작복숭아 님은 스스로를 성찰하며, 관계를 소중히 여길 수 있는 사람이라는 의미지요. 저는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완벽함보다 진심이라고 생각합니다. 납작복숭아 님이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진심을 담아 표현해 보세요. “나 당신을 정말 멋지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좋아하고, 더 친해지고 싶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