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런 감정이 들까요?
건강한 책임감에서 과도한 책임감으로
뚜뚜 님은 자신의 질병으로 인해 주변 사람들이 걱정하거나 힘들어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 사려 깊고 책임감이 큰 분 같습니다. 이러한 성향은 타인의 감정과 필요를 세심하게 살피고, 자신의 어려움보다 가족의 안녕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지요. 어쩌면 어려서부터 걱정이 많은 엄마를 가까이서 지켜봤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신체 및 정서적 고통을 표현하지 않고 내면에서 혼자 감당하려는 태도가 반복될 경우, ‘정서적 억제suppression’ 또는 ‘억압repression’이라는 대처 방식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특히 가족의 걱정과 불안까지 자신의 책임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과도한 책임감으로 이어져, 뚜뚜 님의 아픔을 돌보고 회복하는 데 필요한 심리적 자원을 소진시킬 수 있지요.
이러한 마음은 사랑하는 사람을 보호하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된 자연스러운 반응입니다. 그러나 가족의 정서적 안정과 행복은 온전히 뚜뚜 님에게 책임이 있지 않습니다. 즉, 뚜뚜 님의 질병과 가족의 반응은 구분해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가족이 걱정하는 마음을 없애는 것보다, 서로의 불안을 함께 나누고 각자의 자리에서 감당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픔을 표현하고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부담을 주는 행동이 아니라, 가족 안에서 돌봄을 주고받는 건강한 방식입니다.
걱정 속에 담긴 사랑의 마음
뚜뚜 님이 가족을 걱정하는 마음은 가족이 뚜뚜 님을 걱정하는 마음과 참 닮았습니다. 결국 같은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지요. 사랑하는 사람이 아프거나 힘들어할 때 걱정이 생기는 것은 자연스러운 반응입니다. 그 안에는 소중한 사람을 보호하고 싶은 마음이 담겨 있죠. 엄마가 뚜뚜 님의 건강을 반복적으로 확인하는 것은 딸을 지키고 싶은 엄마의 사랑 방식입니다. 마찬가지로 뚜뚜 님이 엄마의 건강을 걱정하는 것 또한 같은 마음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서로는 어쩌면 같은 모양의 사랑을 주고받는 것 아닐까요?
가족의 걱정을 없앤다는 것은 사랑을 없앤다는 의미로도 해석될 것 같아요. 가족이 뚜뚜 님의 아픔을 나눠지는 것 역시 사랑의 한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걱정을 뚜뚜 님 혼자 짊어지기보다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를 지지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아픈 사람이 있는 가족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습니다. 질병이 가족의 모든 일상과 행복을 결정하지 않도록, 아픔이 있지만 행복도 함께 존재하는 삶을 만들어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가족은 서로에게 기대어 살아가는 관계
가족은 서로 독립된 개인들의 단순한 합이 아니라, 서로의 감정과 상태에 영향을 주고받는 하나의 관계 체계입니다. 가족 중 한 사람이 아플 때 다른 가족들도 함께 아픔을 느끼는 것은, 그만큼 서로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지요. 따라서 가족의 도움을 받는 것을 부담이나 피해가 아닌, 서로 의지하고 돌봄을 주고받는 과정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는 심리학에서 말하는 ‘건강한 상호의존’과도 연결됩니다.
서로가 의지할 수 있다는 것은, 관계 안에서 함께 살아가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의미니까요.
왼쪽 다리를 다쳐 발을 디딜 수 없다면, 오른쪽 다리가 자연스럽게 더 많은 무게를 감당하게 됩니다. 이때 왼쪽 다리가 해야 할 일은 미안한 마음에 아프지 않은 척하는 것이 아니라, 도움을 요청하고 충분히 쉬며 회복하는 것일 겁니다. 가족 역시 구성원 모두가 건강하게 살아가기를 바라는 ‘한 몸’이기 때문에, 한 사람이 어려움을 겪을 때 다른 구성원이 돕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뚜뚜 님의 취약함을 받아들이고 가족에게 온전히 의지할 수 있을 때, 오히려 서로 지치지 않고 오래 함께할 수 있습니다. 미안함보다는 고마움을 주고받으면서요!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가족의 감정까지 모두 책임지려 하지 않기
뚜뚜 님이 가족의 걱정과 불안을 자신의 책임처럼 느끼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을 보호하고 싶은 마음과 높은 책임감에서 비롯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심리학적으로 건강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정서적 분화’가 필요합니다. 정서적 분화란 가까운 사람의 감정을 공감하면서도, 그 감정이 자신의 책임이나 의무가 아니라는 사실을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엄마가 걱정하고 불안해하는 것은 엄마의 감정입니다. 뚜뚜 님이 그 감정을 없애거나 조절해야 하는 것도 아니며, 할 수도 없습니다. 가족을 사랑한다는 이유로 상대방의 감정까지 모두 책임지려 할 때, 정작 자신의 아픔을 돌보는 데 필요한 에너지를 잃을 수 있습니다.
가족의 걱정을 줄이기 위해 자신의 힘든 모습을 숨기기보다, 각자의 감정과 역할을 존중하는 연습을 해보면 어떨까요? 엄마의 걱정은 엄마의 것. 뚜뚜 님의 감정은 뚜뚜 님의 것. 뚜뚜 님은 엄마의 걱정이 아닌, 자신의 휴식과 회복에 집중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거예요. 엄마가 걱정하더라도, “엄마. 나 오늘 너무 힘드네.”라고 표현하는 것도 좋습니다. 가족의 불안을 대신 짊어지는 대신, 자신의 상태를 솔직하게 알리고 필요한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뚜뚜 님이 자신의 몸과 마음을 돌보는 일 역시 가족을 사랑하는 중요한 방법 중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걱정과 사랑의 공존
가족의 걱정이 없어야 모두가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걱정이라는 감정 자체보다 그것을 없애려는 노력 때문에 오히려 더 큰 부담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수용전념치료(이하 ACT)에서는 불편한 감정이나 생각을 통제하거나 제거하려는 과정을 ‘경험 회피’라고 설명하는데요. 뚜뚜 님이 엄마의 불안을 달래기 위해 자신의 아픔을 숨기는 것도 경험 회피의 한 형태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걱정과 불안은 사랑하는 사람을 향한 자연스러운 감정이기 때문에, 없애야 하는 대상도 아니고 없앨 수도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걱정이 존재하더라도 그 감정에 압도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음을 받아들이는 것이지요.
ACT에서는 불편한 감정을 없애는 데 집중하지 말고, 그것이 존재하는 가운데서도 자신에게 중요한 삶을 살아가는 ‘수용’과 ‘심리적 유연성’을 강조합니다. 가족이 서로의 걱정을 인정하면서도 함께 웃고, 평범한 일상을 보내며,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가능한 이유이지요. 희귀병이라는 아픔이 뚜뚜 님의 삶에 있다는 사실과 행복한 순간을 경험하는 것은 서로 모순되지 않습니다. 아픔이 행복과 함께 존재할 수 있도록 허락하는 것, 그것이 사랑하는 가족과 오래 건강히 살아가는 하나의 방법이 될 것입니다.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기꺼이 감당하기
건강한 상호의존은 한 사람이 모든 것을 희생하거나, 다른 사람이 모든 책임을 떠안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서로의 상황과 한계를 고려하여 어떤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을지 솔직하게 가족과 이야기 나누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건강 상태에 따라 병원 동행하기, 집안일 담당하기 등 구체적인 역할을 나누고, 가족 구성원 각자의 일상과 휴식도 존중해보며 서로의 부담을 조절해 본다면, 긴 투병 여정 가운데 덜 지치며 더 사랑할 수 있습니다.
제 개인사를 조심스럽게 개방하고 싶어요. 저희 엄마는 제가 중학생 때 암 투병을 하시다가 돌아가셨어요. 당시 아빠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엄마의 간병을 도맡아 하셨지요. 엄마는 그 당시 너무 고통스러워서 ‘모두에게 너무 미안하지만 빨리 하늘나라에 가고 싶다’라고 말씀하실 정도였고, 아빠는 사별 이후 우울증을 겪었습니다. 한참이 지나 그때를 떠올리며 아빠는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아빠는 그때가 인생에서 제일 행복했어.”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사랑하는 사람을 곁에서 걱정하고 돌볼 수 있다는 것은 정말 행복한 일이구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기꺼이 감당하기. 냉장고에 크게 붙여 놓고 가족 모두 마음에 새겨봅시다!
다른 그 누구의 평가도 망빙 님의 모습이나 가치를 결정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세요. 남이 바라보는 나에서 ‘내가 바라보는 나’로 시선을 옮기고, 어떤 모습의 나도 소중하게 대하며, 불안한 마음속에서도 스스로를 믿고 지켜주며, 결국 ‘나는 지금 이대로도 충분히 괜찮은 사람’이라는 감각을 회복해 나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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