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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RATION

읽씹하는 마음들

답장을 하지 않은 사람과 그 침묵에 상처받은 사람 사이의 아슬아슬한 줄타기

도우리 작가

우리는 종종 메시지 하나를 두고 누가 더 무례했는지를 판단하려 합니다. 답장을 하지 않은 사람과 그 침묵에 상처받은 사람 사이에서 말이죠. 하지만 관계는 단순히 ‘매너’의 문제로만 설명되지 않습니다. 같은 상황에서도 누군가는 자연스러운 거리로 느끼고, 누군가는 단절로 받아들이기도 하니까요.


이번 큐레이션은 <우리는 중독을 사랑해>를 쓴 도우리 작가와 함께, 일상 속 ‘읽씹’의 순간들을 통해 관계를 바라보는 시선을 들여다봅니다. 누가 더 잘못했는지를 가리는 대신, 우리가 서로를 얼마나 다르게 느끼고 있는지 그리고 그 차이가 관계에 어떤 균열을 만드는지 그 미묘한 심리적 온도 차에 주목해보세요.


1. “나 결혼해”

“나 결혼해!” 몇 년 동안 교류가 끊긴 지인으로부터 온 결혼 소식은 마냥 반갑지 않다. 특히 ‘단체 문자’ 수준으로 모바일 청첩장만 전송받은 경우라면 축하보다도 서운함이나 당혹감이 먼저 밀려오기도 한다.


이런 사례 중 온라인 커뮤니티 상에서 유독 화제인 경우가 있었다. ‘안읽씹’ 기간이 무려 8년이었기 때문이다. 결혼 소식을 전한 사람이 잘못한 걸까? 아무리 그래도 8년간 안읽씹은 너무한 걸까? 다만 단편적인 메시지만으로는 누구의 잘잘못인지 완벽히 따질 수 없다는 것을 유념하자. 누가 더 예의 없었는지를 가리는 일보다, 이미 끝난 관계라고 여긴 사람과 아직 초대할 수 있는 사이라고 여긴 사람 사이에 얼마나 큰 온도 차가 있었는지일지도 모른다.

2. “뭐해?”

그 애의 인스타그램 피드를 구경하던 순간. 휴대폰 화면 상단에 알림이 뜬다. “뭐해?” 뭐하긴, 네 여사친들 염탐하고 있지, 라는 속마음을 삼키고 머리를 굴리기 시작한다. 나의 마지막 메시지로부터 연락 텀은 3시간. 화장실 가거나 SNS 구경하는 습관을 생각해 보면 길지만, 아직 퇴근 시간 전이므로 한창 회의 중이었을 수 있던 시간이다. 아니면 ‘밀당’을 위해 일부러 셈해 보낸 답장이거나, 혹은 그만큼 관심이 없거나. 그의 연락을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었다는 한가한 사람 티를 낼 수는 없으니 우선 ‘안읽씹’하며 답장할 타이밍을 고민한다.


관계가 점점 불확실해지는 시대, 그래서 ‘썸’이나 ‘삼귀다’라는 말까지 생긴 시대에, 답장뿐 아니라 답장 텀도 하나의 메시지다.

3. “나 애인이랑 싸웠어”

진동이 울려 휴대폰 화면을 확인하니 익숙한 프로필이 보인다. K다. 오랜만에 온 연락이라 반가운 마음이 든다. 그런데 미리보기 기능으로 메시지를 읽은 순간, 그 마음이 가신다. “나 애인이랑 싸웠어.” 아차차. 왜 K와 연락이 뜸했는지 새삼 떠올린다. K에게 애인이 생긴 뒤로 수시로 하던 연락이나 만남 약속이 사라졌다. 조금 서운했지만 연애 초반에는 그럴 수 있지, 생각하며 넘겼다. 그러다 친구가 애인과 다퉜다는 연락을 받고 몇 시간 동안 상담해 줬다.

 

하지만 K는 곧 다시 애인에게 돌아갔고, 다시 연락이 없는 상태가 지속됐다. 다음에 내가 힘들다는 연락을 했을 때, 친구는 힘내라는 카톡 몇 마디만 건네고 또 사라졌다. 그러던 중 K에게 이번 메시지가 온 것이다. 다짜고짜 애인과의 불화부터 털어놓는 메시지를 받으니, 어쩔 수 없이 ‘감정 쓰레기통’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애인과 가까울 때는 거리를 두는 너에게, 나도 거리가 필요하다. 그래서 ‘안읽씹’한다.

4. “누가 조장하실 건가요?”

드디어 올 것이 왔다. 조 모임 과제가 있어서 피하고 싶었지만, 교양 필수여서 어쩔 수 없이 등록한 강의 시간. 아는 사람이 없어 대충 남는 사람끼리 조 모임이 결정됐다. 다른 조모임은 화기애애한데, 내가 속한 조 모임은 간단한 자기소개 이후 어색한 침묵만 흐른다. 겨우 개설된 단톡방은 그 흔한 이모티콘 없이 용건만 짧게 오가며 냉기가 흐른다. 그래도 과제의 주제나 자료 조사의 범위에 대해 얼추 정했고, 이제 인터뷰나 ppt 제작 등 역할 분배를 정하는 차례다.


그런데 정작 가장 중요한 역할에 대해 아무런 언급이 없다. “누가 조장하실 건가요?” 이 메시지를 보낸 순간, 그전까지는 금방 사라지던 ‘읽음’ 표시가 그대로 남아 있다. 그리고 그 상태로 하루가 지난다. 네 명이 동시에 24시간 동안 카톡을 보지 못하는 기막힌 우연이라도 생긴 걸까? 하지만 학과도, 학년도 다른 조원들은 모두 분명한 사실을 알고 있는 듯하다. 재수강에, 졸업 학기인 내가 가장 목마른 처지라는 것을. 네 명의 ‘안읽씹’이라는 무언의 압박에 결국 울며 조장을 먹기로 한다.

5. “나만 너무 말했나?”

취업난에 어렵게 합격한 첫 회사. 작은 일이라도 잘하기 위해 애쓰고, 혹여나 실수할까 봐 노심초사하는 나날들. 그렇지만 혼자 모니터와 씨름할 때 모르면 언제든 물어보라는 사수나 작은 간식을 건네는 동료 덕분에 버틸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좋은 직장 내 분위기에 어울리는 것도 쉽지는 않다. 회사 단톡방은 업무 이야기뿐 아니라 흥미로운 뉴스나 농담도 오간다. 왜인지 스스로 싹싹하고 밝은 구성원이 되어 기여해야 할 것 같다.


매번 그 기회를 엿보다가, 드디어 말할 타이밍이 온 것 같다. 사무직 직장인이면 모두가 졸음이 쏟아지는 2시, 단톡방에 도파민을 흘려보낸다. “요즘 유행하는 릴스라네요.” 조회수가 높은 영상 중에 고심해 고른 콘텐츠다. 그런데 아무도 답장이 없다. 동료가 비슷한 콘텐츠를 보냈을 때는 다들 잘 웃어 주던데, 내가 보낸 콘텐츠는 읽지도 않는다. 옆자리에도, 파티션 너머에도 다들 컴퓨터만 들여다보고 있다는 걸 뻔히 아는데. 나만 너무 말했나? 그냥 신입사원답게 조용히 있어야 했나? 무엇이든 증명해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단톡방의 소리 없는 ‘안읽씹’은 너무 크게 들려온다.

6. “누가 맞는 걸까?”

“우리 언제 만날까?” 다가오는 주말, 모처럼 소꿉친구를 보기로 했다. 매일 붙어 다니던 어릴 때와 달리 대학교에 진학하고 취직을 하면서 각자 다른 지역에서 사느라 만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그만큼 그리운 인연이다. 그런데 만남 약속을 잡는 카톡을 보낸 지 몇 시간째 답장이 없다. 주말에 볼 일이 있어 미리 동선을 정해야 하는데.


무심코 인스타그램을 켠다. 그런데 인스타그램 상단에 소꿉친구의 프로필 사진이 빨간 테두리로 활성화돼 있다. 곧바로 눌러 확인해 본다. 차양이 잘 드는 카페 내부를 배경으로 찍은 친구의 셀카다. “내 카톡은 안 읽고 인스타 중?” 스토리 답장 기능으로 DM을 보낸다. 바로 답장이 온다. “카톡이랑 인스타는 다르지😅” 메신저 플랫폼에 따른 시간의 상대성 이론이라도 있는 걸까? 카톡은 안읽씹하면서 다른 SNS에서는 ‘칼답’인 친구, 그걸 이해하지 못하는 또 다른 사람. 누가 맞는 걸까?

7. “집단적 독백 단톡방”

“오늘 지나가다 본 고양🐈”, “아 벌ㅆ ㅓ 집 ㄱ ㅏ고 싶ㄷ ㅏ…”, “미쳤음 내 최애 이번 무대 역대 최고임🔥”, “간만에 머리했는데 셀카 골라 줄 사람?” 이 메시지들은 그저 메시지 모음이 아니다. 단톡방에서 실시간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대화’다. 아무도 서로의 말에 호응하지 않고, 각자 하고 싶은 이야기만 늘어놓고 있다. 그런데 어떻게 이 단톡방은 매일 떠들썩한 걸까? 언뜻 ‘안읽씹’ 같지만 실상은 ‘읽고 답장’이니까. 이미 서로 못 볼 꼴 다 보고, 맹렬히 싸웠다가 화해도 해 본 사이. 달마다 모이니까 굳이 서로의 근황을 구구절절 업데이트하지 않아도 알 거 다 아는 사이. 그런 사이에서 서로의 일상과 떠오르는 생각을 필터 없이 쏟아내도 눈치 보이지 않는다.

 

대충 읽고 넘겨도, 답장 없어도 충분하다. 메시지의 내용보다, 서로를 향해 ‘굳이’ 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니까. 우리의 집단적 독백 사이를 단단한 신뢰가 채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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