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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RATION

아끼는 마음에도 정리가 필요해

좋아했던 마음을 나답게 남기는 방법

주한나 작가

우리는 오래 사용하지 않은 물건도 쉽게 버리지 못합니다. 쓰다 만 다이어리에는 새로운 시작을 꿈꾸던 마음이, 좋아했던 취미의 흔적에는 그 시절의 열정이 남아 있으니까요. 하지만 모든 것을 끝까지 간직해야만 지난 마음을 소중히 여기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것은 잘 보내주고, 어떤 것은 곁에 남겨두면서 지금의 나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조금씩 알아가기도 합니다.


이번 큐레이션은 『아무튼, 정리』의 저자 주한나 작가와 함께 물건과 마음을 천천히 정리해 봅니다. 쓰다 만 다이어리와 문구, 열정을 쏟았던 취미용품부터 이십 년 동안 간직해온 책까지. 좋아했고, 필요했고, 되고 싶었던 마음들을 하나씩 돌아보며 무엇을 덜어내고 무엇을 남길지 나만의 기준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만나보세요.

1. 끝내지 않은 다이어리

집에 쓰다가 만 다이어리, 혹은 예쁜 노트가 몇 개나 있는가? 나는 수십 개가 있었다. 요즘은 잘 구입하지 않지만, 얼마 전만 해도 앞의 몇 페이지만 쓰고 관둔 다이어리가 내 책장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연말이나 월말에 문구점을 돌아다니다가, 혹은 휴가 기간에 기념품 가게를 둘러보다가 새로운 시작을 희망하며 예쁜 다이어리를 구입하지만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아 바쁜 일상에 치여 “저널링”은 점점 뜸해진다. 그러다 한 주가 더 지나면 오랜만에 만난 학교 동창처럼 어색해진다. 한 달이 지나면 눈 맞추기를 피하게 된다. 첫 만남은 좋았지만 결국 돈만 낭비하고 작심삼일로 끝난 역사를 다시 마주하기 싫어서이다. 그래서 나는 다이어리를 꾸준하게 못 하는 사람인가 보다 하며 자책하고, 나의 실패를 창피해하며 고개를 돌려버린다.


손절하자. 보고 싶지 않아도 다시 열어서 꼭 필요한 정보가 있다면 사진을 찍고, 버리자. 괜찮다. 나는 새로운 시작을 꿈꾸며 계획을 세웠고 짧은 시간이나마 즐거웠다. 실패한 기록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 의욕이 넘쳤던 그 순간을 추억으로 남기고 정리하면 된다.

2. 쓰지 않은 문구, 스티커, 마스킹 테이프

다이어리만 넘치게 있는 게 아니다. 대체로 물욕이 없지만, 한때 꿈이 문구점 주인이었던 만큼, 귀여운 문구를 보면 발걸음을 멈추게 된다. 게다가 생산성 폭발을 일으켜줄 듯한 다이어리 꾸미기용 스탬프, 스티커, 젤펜 등이라면 홀린 듯이 사모은다. 그렇게 집에 가져와서 포장을 풀면 전시되어 있었을 때의 가지런한 아름다움은 흐트러져 사라졌고, 한두 번 쓴 후에는 잡동사니 서랍에 들어간다.


버려도 된다. 물론 그 많은 재료와 도구로 새로운 나를 만들어갈 수도 있다. 그러나 서랍 속에 뒤엉켜 방치된 지금 모습으로는 힘들다. 지난 1년간 그들은 나의 생산성을 높이기보다는 즉흥성과 무질서함을 보여주는 증거로 소중한 서랍의 공간을 차지했다.

3. 입지 않는 옷

옷장에서 지난 한 달 동안 실제로 입은 옷은 전체의 10%나 될까? 그렇다면 지난 1년은? 예쁠 것 같아 사놓고 입지 않은 옷, 행사용으로 샀다가 자주 입을 일이 없어 방치한 옷, 살 빠지면 입으려고 버리지 않고 간직한 옷, 비싼 옷이라 버리기 싫은 옷, 선물 받아서 버리기 뭐한 옷, 좋은 기억이 얽힌 옷들로 내 옷장은 넘쳐난다. 나는 옷을 정말 안 사는 스타일인데도 그렇다.


좋은 옷 몇 벌로 센스 있게 믹스 매치하는 미니멀리스트, 양말과 속옷까지 당장 인스타에 올려도 부끄럽지 않게 정리해 두는 사람.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지만 수십 년째 실패 중인 나는, 당신이 내 베프라 해도 옷장만은 보여줄 수 없다. 어수선하다.


그래서 몇 달에 한 번씩 안 입는 옷들을 정리해서 기증하거나 버리는 습관을 들였다. 깔끔해져야 해서가 아니라, 가짓수가 많은 것이 결정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수백 개의 옷을 다 파악하고 골라 입기는 쉽지 않다. 내가 친숙하고 더 잘 활용할 수 있는 개수로 줄이는 것이 효율적이다. 인스타그램의 친구가 수백 명이라도 정말 친한 친구 몇 명이 있는 쪽이 낫듯이.

4. 읽지 않는 책

책은 무겁다. 공간도 많이 차지한다. 그렇지만 좋은 냄새가 난다. 무엇보다 내 소지품 중 들고 있을 때 제일 자존감이 올라가는 아이템이다. 남들은 나에게 별 관심 없다고는 하지만 카페에서 프랑스어 소설을 읽고 있으면 무한한 뿌듯함이 올라온다. 사실 내 실력으로는 모르는 단어가 많아 사전 기능이 있는 전자책이 읽기엔 더 편하지만, 그걸로는 같은 뿌듯함을 느낄 수 없다.


이십 년 전에 프랑스에서 꼭 읽을 거라며 산 책들을 그 이후로 열 번 넘은 이사를 거치면서도 끌고 다녔다. ‘프랑스어 소설 읽는 사람’이 궁극적인 추구미였기 때문이다. 그 후로 정리를 꽤 한 후에도 여전히 수십 권을 끌어안고 있다.


앞에서 정리하자고 했던 다이어리, 문구, 취미용품, 옷과 다른 점이라면, 이 책들은 내가 가지 못한 길이자 어린 시절의 꿈, 내가 되고 싶었던 모습의 상징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가끔 펼쳐 들기만 해도 행복해진다. 프랑스어 가정법 동사 변화는 가물가물해도 말이다.


그리고 지난해, 결국 프랑스어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이십 년 동안 읽지는 못했어도, 내가 되고 싶었던 모습을 늘 곁에서 일깨워 준 그 책들 덕분이 아닐까.

5. 뜨개실과 남은 재료들

나와 같은 취미 부자라면 온갖 취미를 위한 재료들도 집에 넘쳐날 것이다. 한때 코바늘에 열중했던 나는 고작 나흘 만에 서랍장 하나를 가득 채울 만한 털실과 코바늘, 제품 제작을 위한 가방끈과 인형 눈 등의 부속품을 사모았다. 사실 거짓말이다. 서랍장 두 개 분량도 넘을 것이다.


몇 달 지나 코바늘에 대한 흥미가 시들해지고 나서도 그 서랍장들은 여전히 공간을 차지하고 있었다. 한참이 지나서야 털실을 나눔하고 부속품들을 창고로 옮겼다. 직접 만든 코바늘 인형들은 사진을 찍어서 기록을 남긴 후에 몇 개만 벽 선반에 전시하고 주변 아이들에게 나누어주었다.


누군가와의 인연도 소중했다가 흐릿해지고, 진하고 강렬한 기억도 시간이 덧씌워지면서 빛이 바랜다. 한때 빠져 있던 취미에 대한 열정이 식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미련 없이 정리해도 괜찮다. 정말 다시 하고 싶어지면 그때 다시 사 모으면 된다. 어차피 취미의 절반은 쇼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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