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는 연대라는 주제에 대해 할 말이 없을까?
연대라는 주제로 글을 쓰는 일이 이렇게 어려울 줄 몰랐다. 사실 나의 글쓰기 신조는 ‘어떤 주제에 대해서도 쓸 수 있다’는 것이다. 믿을 수 없다고? 나에게 레버리지나 핵무장이라는 주제를 던져보시라. 나는 그것에 대해서도 한 편을 쓸 수 있다. 그러니까… 그 문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토대로 어쨌든 쓸 수는 있다는 말이다.(당연히 그 글이 좋은 글이라는 보장은 못한다.) 아무튼 나에게 글쓰기란 생각을 표현하는 수단이 아니라, 생각을 더듬고 다듬어 나가는 과정이다. 사실 내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것에 대해 쓰는 일은 얼마나 지루한가?
그나저나 무엇이든 쓸 수 있(다고 주장하)는 나, 지난 한 달간 온갖 방식으로 연대에 대해 써보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계속 실패했다. 이럴 수가! 마감일이 다가오고 있다. 어쩌면 좋지? 초조하다. 쓰고 지우고 쓰고 지우기를 며칠째, 문득 이런 질문이 떠오른다. 대체 나는 왜 이 주제에 대해 쓰기가 이렇게 힘들까? 그래, 거기서부터 시작해 보자. 연대에 대해 딱히 할 말이 없다는 것, 그것에서부터 시작해 내 생각을 더듬고 다듬어 나가보자.
오히려 내게 너무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게, 나는 왜 연대라는 주제에 대해 할 말이 없을까? 관심이 없기 때문에? 그럴 리가. 나는 사실 연대라는 것에 ‘아주’ 관심이 많다. 최소한 몇 년 전까지는 엄청나게 많았다.
오지랖 넓은 개인주의자를 알고 있는가? 사람을 좋아하는 내향인을 알고 있는가? 그게 바로 나다. 내 오지랖은 어릴 때부터 유명했다. 이를테면 친하지도 않은 같은 반 남자아이의 형편이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자 굳이 그 애를 내 생일파티에 끌고 간다거나, 동네 아이들과 클럽을 결성해 일요일 아침 7시에 모여 동네 청소를 한다거나, 따돌림당해 누구도 과학 실험조에 끼워주지 않으려던 전학생을 매번 같은 조에 데려온다거나 하는 오지랖.
2000년대 초반에 갓 20대가 된 나는 뜬금 없이 1960년대의 히피와 공동체 문화에 매료되었다. 다 함께 부지런히 일하고 다 함께 나눠 먹는 이 건전함이라니! 내친 김에 인도 남부의 폰디체리라는 도시에 있는 공동체 마을로 여행도 떠났다. 사람들과 함께하기를 너무 좋아해서라기보다는, 그 당시의 나로서는 도무지 이 험난한 세상을 혼자 살아나갈 자신이 없어 빌붙을 데라도 찾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내가 그 오래된 히피 마을에서 얻은 것은 오토바이 사고로 인한 발등의 화상과 열사병, 그리고 내가 낯가림이 무척 심하며 에어컨과 쇼핑몰 없이는 못 사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확인한 것뿐이었다.(무척 중요한 발견이긴 했다.)
그렇게 고생을 한 후에도 내 병은 쉽게 고쳐지지 않아서, 30대에도 나는 연대의 삶에 대한 환상에 빠져 있었다. 마침 개인주의와 소비주의에 염증을 느낀 사람들이 공동체 문화로 눈을 돌리던 시점이었다. 함께 아이를 키우고 함께 즐거운 일을 하고 함께 어려운 일을 겪어 나간다. 모두가 함께인 생활은 얼마나 즐겁고 든든할까? 그래서 나도 개인적으로 크고 작은 실험들을 해봤다. 이웃의 아이를 돌봐주기도 하고, 협동조합 활동을 하기도 하고, 동네에 커뮤니티 카페를 차리기도 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생각보다 성가신 존재들이었다. 그들과 즐겁게 어울리면서도 속으로는 집에 돌아가 문을 닫아걸고 TV나 보고 싶었다. 많은 이들과 어울려 지내려면 그들의 무례함이나 불쾌함도 눈감아줄 줄 알아야 했다. 좋은 마음으로, 이상을 좇아 야심차게 출발한 공동체 생활이 얼마나 구차하게 마감되는지도 지켜 보았다. 인간은 그렇게 훌륭한 존재가 아니었고, 그 중에서도 나는 특히나 훌륭한 인격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결국 두 번이나 절교를 하고, 공동체 대안학교에서 아이들을 빼내고, 살던 동네를 떠난 후 연대의 삶에 대한 내 환상은 깨끗하게 사라져 버렸다. 아니, 잠깐. 그런데 왜 나는 이사온 동네에서도 여기 저기 기웃대느라 바쁜 거지?
혼자 있는 걸 좋아하지만 외로움을 못 견디는 나. 사람을 귀찮아 하면서도 동시에 사람을 그리워 하는 나. 나이 들어 자식도 떠나고 친구도 사라져 혼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종종 사로잡히는 나. 내 걱정도 모자라서 혼자 사는 친구들의 노후 걱정까지 하는 나.
내 오지랖은 동전의 반대면 같은 약점을 지니고 있다. 남 걱정을 너무 한 나머지 어느 순간 그들을 미워하게 되는 것이다. 대체 왜 나는 시키지도 않은 남 걱정을 하고 있을까? 그들에 대한 책임감이나 연민의 마음 때문에? 아니, 그걸로는 다 설명이 되지 않는다. 어쩌면 나는 스스로에 대한 불안감을 그들에게 투사한 것이 아닐까? 내게 삶이 여전히 어렵고 두려워서 대책 없는 내 친구들을 보며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게 아닐까?
타인을 연민하지도 않고 미워하지도 않으면서 함께 살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들을 돕고, 또 그들에게서 도움을 받으며 살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때 내 마음은 어떠해야 할까? 아아, 여기까지 쓰고 정리하는 데도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왜냐하면 이 문제에 대해 나는 아직도 답을 찾지 못한 채 고민중이기 때문이다. 이 문제가 나에게 관심 밖의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내게 너무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함께 걷는 법을 익혀나가는 것
오늘 문득 김연수의 <산책하는 이들의 다섯 가지 즐거움>이라는 단편 소설이 떠올랐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지독한 불면증에 시달리는 남자인데, 어느 잠 못 들던 밤 우연히 ‘암환자를 위한 생존전략’이라는 책을 집어들게 된다. 그는 이 뜬금 없는 책에서 산책을 한 날에는 숙면을 취할 수 있다는 구절을 발견한다. 암환자는 아니지만 숙면이 목표인 그는 그날 이후 밤마다 산책을 하기 시작한다. 매번 다른 친구들과 함께. 친구들은 어리둥절해 하면서도 기꺼이 걸어주지만, 잠 못 드는 그의 고통을 완벽히 이해하지는 못한다. 그러다 그는 ‘암환자를 위한 생존전략’을 쓴 그 작가를 만나 함께 경복궁 산책을 하게 되는데, 암에 걸린 순간부터 수많은 고비를 넘긴 이 사람과의 산책이 끝날 무렵 그가 생각한 것은 이런 것이다.
혼자 걷기 시작할 때,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곳에서부터 걷기 시작한다. 저처럼 한낮과 다름없이 환하고도 파란 하늘에서, 혹은 스핀이 걸린 빗방울이 떨어지는 골목에서, 분당보다도 더 멀리, 아마도 우주 저편에서부터. 그렇게 저마다 다른 곳에서 혼자 걷기 시작해 사람들은 결국 함께 걷는 법을 익혀나간다. 그들의 산책은 마치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동물들과 함께하는 산책과 같았다. 그들의 산책은 마치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동물들과 함께하는 산책과 같을 것이다. 앞으로도, 영원히.
–<산책하는 이들의 다섯 가지 즐거움> 중에서
그들이 경복궁을 빠져나와 거리로 나왔을 때 마주한 것은 경찰차와 살수차, 그리고 그 너머의 거리를 점거한 이들이 지르는 함성이었다. 저마다 다른 곳에서 혼자 걷기 시작해 결국 함께 걷는 법을 익혀나가는 것. 자신만의 고통 속에 갇혀 있던 이가 마침내 타인의 고통을 헤아려보게 되는 것. 자기 자신으로부터 출발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과 함께 걷는 것. 연대라는 건 결국 이런 것이 아닐까? 그저 타인의 고통을 이해해보려는 노력만으로도, 고통받는 이와 함께 걷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거 아닐까?
인간이라는 운명이 지닌 기쁨과 슬픔에 대한 연대
전에도 쓴 적이 있지만, 작년에 나는 남동생을 심장마비로 갑자기 잃었다. 그리고 내게는 10년쯤 전에 남동생을 사고로 잃은 친구가 있다. 내가 친구의 슬픔의 무게와 질감을 조금이라도 헤아려 볼 수 있게 된 것은 같은 일을 겪고 난 후부터였다. 그러기에는 10년이라는 시간으로도 부족했던 것이다. 얼마 전 그 친구를 만났다. 비슷한 일을 겪어도 우리의 상황과 감정 같은 것들은 많은 부분에서 달랐다. 다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나는 우리에게 어떤 연대의 감정이 생겼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느 자리에서건 분위기가 무거워질까 차마 꺼내지 못하는 이야기들, 괜찮지 않아 보이고 싶지도, 괜찮아 보이고 싶지도 않은 모순적인 감정, 자식을 잃은 부모에 대한 연민과 살아남은 자식이 되었다는 부담감, 또 비슷한 일을 겪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그 무엇보다 이런 일을 겪어보지 않고서는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감정들 속에서 홀로 허우적대는 외로움. 그럴 때 내게는 그 친구가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힘이 되었다. 내가 지금 어떤 어둠 속에 있는지 이해할 수 있는 이가 있다는 사실이 나를 지탱해 주었다.
그제야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이들이 내 주변에도 꽤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린 아들을 잃은 친구도 있고, 어린 남동생을, 20대의 여동생을 잃은 친구도, 30대의 아내를 잃은 친구도 있었다. 그들이 내게 전한 위로는 하나같이 각별했다. 힘내라는 단순한 말 한 마디에도 수많은 감정들이 꾹꾹 눌려 있는 듯 느껴졌다. 그것을 슬픔의, 상실의 연대라 불러도 될까? 우리 중 누구도 그런 연대 속에 존재하기를 원치는 않았겠지만.
나는 사람이 붐비는 곳이라면 질색이라서 백화점이나 쇼핑몰도 잘 가지 않는데, 딱 한 군데 일부러 돈까지 내고 찾아가는 곳이 있다. 클래식 공연장이다. 나는 그저 그곳에 있는 것이 좋다. 이 많은 사람들이 수백년 전의 음악가들이 만든 곡에 다 함께 귀를 기울이고 있다는 사실이 짜릿하다. 우리가 시대를 초월해 같은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리고 내가 이 사람들 중의 하나라는 사실이,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이 문득 경이롭게 느껴진다. 결국 우리도 모차르트나 베토벤, 드보르작이나 바그너처럼 사라지게 될 거라는 사실에 새삼스럽게 숙연해진다.
우리는 모두 약하다는 것, 눈에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라든가, 얕은 시냇물에도, 작은 오토바이에도, 혈관 속의 혈전에도 한순간에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존재라는 것, 그리고 우리의 생에는 반드시 끝이 있다는 것, 그러니까 인간이라는 운명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나는 그들과 하나인 것이다. 그것이 바로 인간으로 살아가는 일의 기쁨과 슬픔에 대한 연대라고 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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