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예상치 못하게 찾아오는 불안을 어떻게 관리하고 계시나요? 저는 그럴 때마다 ‘불안’이라는 감정을 기록합니다. 외출 중이라면 손에 잡히는 휴대폰에, 집에 있다면 저의 태블릿을 열고, 이 기분 나쁨과 불안한 상황을 거침없이 적어 내려가요. 이렇게 만든 불안 노트는 부정적인 감정을 건강하게 배출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불안 노트는 언제 어떻게 쓰는 걸까요? 저의 이야기를 통해서 소개해 볼까 합니다.
저는 어떤 일을 새롭게 시작할 때마다 약간의 불안을 느껴요. 한 번도 써 본 적이 없는 글이나,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주제의 강연을 하러 가면 긴장이 되고 마음도 불편해요. 그래도 그런 불안은 일을 마치고 나면 사라져서 그나마 괜찮아요. 그런데 제가 정말로 해결할 수 없는 불안은 주로 대인관계에서 일어나요. 제가 좋아하고 의지하는 사람이 저에 대한 마음이 변한 것 같다고 느낄 때, 저를 은근히 밀어내고 있다고 생각이 들 때 불안해져요.
예를 들어, 대화 중에 상대방이 차가운 표정을 짓거나 관심이 없어 보일 때, 상대에게 답장이 없거나 전화를 해도 콜백이 없을 때, 또는 약속을 취소하고 다시 잡을 의향이 없어 보일 때 신경이 많이 쓰이더라고요. 제가 특별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이런 행동을 보이면 저는 불안해지고, 생각을 계속하게 돼요. 자신을 괴롭힐 정도의 크고 강한 불안들은 사실 굉장히 어릴 때부터 형성된 신념과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떨쳐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1. 노트나 휴대폰에 실시간으로 감정 기록하기
저는 이렇게 해결할 수 없는 불안을 느낄 때 불안 노트를 씁니다. 노트든 휴대폰이든 태블릿이든 부정적인 감정을 적을 수 있는 모든 곳에 적어요. 그 상황과 함께 느끼는 감정을 실시간으로 기록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실망했을 때는 거침없이 그 사람을 욕하기도 해요. “00아 네가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 있어? 넌 정말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야. 아주 차갑고 무심한 사람이야. 나한테 이런 상처를 주다니…” 사실 이보다 더한 말도 써요. 어쩔 때는 제 마음의 취약한 부분을 한탄하는 말을 쓰기도 해요. “나란 인간은 도대체 언제까지 이런 일로 신경 쓰고 고민하며 살아야 하는 걸까? 난 정말 이렇게 살기 싫은데.’ 하면서요. 일기가 때로는 불안 노트가 되기도 합니다. “00년 0월 0일 학교에서 00가 나를 소외시키는 것 같다. 나에게 한 그 말이 너무 차갑다.”라는 소심하고 유치한 모든 말들을 다 적습니다.
저는 불안 노트를 쓸 때 무조건 실명을 적어요. 저만 보는 거잖아요. 솔직할수록 불안 노트의 효과가 발휘돼요. 정제되지 않고, 필터링하지 않은 감정을 그대로 배출하기 때문에 불안을 가라앉히기 좋거든요. 감정은 모른척하거나 억압하면 무의식에 들어가서 비슷한 상황이나 사람을 만났을 때 계속 올라옵니다. 하지만 감정을 그때그때 잘 배출하고 해소하면 자연스럽게 흘러가지요. 감정 배출을 사람에게 일일이 할 수 없잖아요. 그 누구도 나의 감정 쓰레기통이 될 수는 없으니까요. 그래서 나와 너를 모두 안전하게 지키며 감정을 배출하기 위해 불안 노트를 쓰는 거예요.
2. 감정을 적기 어려울 때는 음성으로 남기기
가끔은 감정이 커서 글을 쓰는 것도 손이 떨리고 버거울 때가 있어요. 저는 누가 저에게 인신공격을 하거나 심한 비난을 했을 때 심장이 빨리 뛰고, 눈물부터 나서 글을 쓰기 힘들더라고요. 그럴 때는 음성을 글자로 변환하는 기능을 켜고 말로 합니다. 현재의 감정을 모두 실어서 소리도 지르고 울기도 하면서 있는 그대로 격정적으로 말을 해요. 그렇게 하고 몇 시간 정도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평온함을 되찾더라고요. 감정을 잘 배출했기 때문이죠.
만약 불안하고 스트레스받고 힘든데, 제 감정을 애써 누르면서 교양만 챙겼으면 어떻게 됐을까요? 몸에 부정적인 감정이 쌓여서 무의식에 깊이 박혀 있을 거예요. 누군가에게 내 마음을 말하는 것도 감정을 배출하는 좋은 방법이지만, 때로는 아무 필터링 없이 논리 없이, 체면 차리지 않고, 스스로와 대화하면서 배출하는 것도 매우 좋습니다. 그걸 도와주는 것이 불안 노트고요.
3. 감정을 기록하면서 불안의 원인을 파악하기
저는 태블릿에 불안 노트라는 폴더가 따로 있습니다. 그 폴더는 잠겨있어서 저 말고는 아무도 볼 수 없어요. 그렇다고 제가 글에다가 욕이랑 짜증만 잔뜩 쓰는 것은 아닙니다. 좋은 말을 쓰기도 해요. 불안하다는 것은 주로, 내가 원하는 상태가 있는데 그렇게 되지 못할 때, 혹은 그렇게 되지 못할까 봐 생기는 감정이거든요. 그런데 생각보다 사람들은 자기가 무엇을 원하는지 구체적으로 생각하지 않아요. 불편한 감정에 매몰되어서 초조함이나 경직된 상태로 옴짝달싹 못하죠. 그러면 불안은 해소되지 않아요. 불안 노트에 감정도 마구 적으면서 ‘그래서 나는 무엇을 바라는 거지? 어떻게 되길 원하는 거지?’라는 물음에 대한 답을 적어야 불안의 원인을 파악할 수 있어요.
저는 제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변한 것 같아 불안이 몰려올 때 “그 사람도 우리 관계를 나만큼 소중하게 생각하면 좋겠다”라든지, “상대방이 어떤 반응을 보이든 나는 신경을 안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라든지. “인신공격을 받아도 손 떨리지 않고 선 긋고 영향받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어.” 하면서 상황이 어떻게 풀리기를 원하는지, 혹은 내가 어떤 사람이 되기 원하는지 적어요. 물론 원하는 것이 실현 가능성이 없는 환상일 수 있어요. 바랄 수 없는 것을 바래서 괴로우면 그 감정도 노트에 기록합니다. 그것도 의미가 있거든요. 그런 환상을 원하는 내 마음은 도대체 무엇이 결핍되어서 이토록 바라고 있는 건지 자신의 결핍된 욕구를 생각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기 때문이에요.
이처럼 불안 노트를 기록하는 일은 나의 결핍된 욕구를 알고, 환상이 아닌 현실적인 방법으로 나아가는 데 도움을 줍니다. 감정을 마구 쏟아내다가 원하는 소망을 구체화해보고, 나의 결핍과 욕구를 생각하고, 그에 맞는 현실적인 해결책을 모색해가는 과정을 거치거든요. 불안 노트를 쓴다고 해서 나의 근본적인 상처나 불안이 아주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아주 어릴 때부터 형성된 결핍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어쩌면 죽을 때까지 가져가야 하는 것일지도 몰라요. 하지만 순간적으로 올라오는 불안은 해소할 수 있습니다. 자신을 지혜롭게 돌보면서 살아가는 방법을 찾는 것이지 근본적으로 불안에서 해방될 수는 없어요. 불안이 전혀 없다면 인간은 아무 발전도, 보호도 할 수 없을 테니까요.
저처럼 불안 노트 기록을 통해 불편한 감정이 건강하게 흘러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자고요. 아, 노트 잠그는 것을 잊지 마세요. 그래야 더욱 날 것 그대로의 내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을 거예요
상담심리사 웃따가 알려주는
불안 노트 기록 TIP
• 노트, 휴대폰, 태블릿 등에 실시간으로 감정 기록하기
불안, 분노 등 부정적인 감정이 몰아칠 때, 노트든 휴대폰이든 태블릿이든 실시간으로 감정을 기록해요. 손으로 적기 어려우면 음성으로 남겨도 좋아요.
• 불안 노트 보안은 철저히, 상황과 감정은 솔직하게 적기
불안 노트는 스스로만 볼 수 있게 보안을 철저히 하고, 상황과 감정을 세세하게 적으세요. 솔직하게 적을수록 불안 노트의 진가가 드러나요.
• 감정을 기록하고, ‘무엇을 바라는 거지?’에 대한 답을 적기
노트에 감정을 가감없이 적었다면 ‘그래서 나는 무엇을 바라는 거지?’ ‘이 사람(상황)과 어떻게 되길 원하는 거지?’라는 물음에 대한 답도 함께 적어요. 이런 과정은 불안의 원인을 파악하고, 현실적인 해결책을 찾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어요.
글. 웃따(상담심리사)
18만 구독자를 보유한 유튜브 채널 ‘상담심리사 웃따’를 운영 중인 상담심리사이자 작가. 채널 이름처럼 구독자들에게 ‘웃긴데 따뜻한 심리학 솔루션’을 전하고 있다. 상담하면서 쌓은 지식과 오랫동안 자신의 상처를 보듬으며 깨달은 인생의 지혜를 심리 에세이 <인생을 숙제처럼 살지 않기로 했다>에 녹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