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의 쉼표를 찍는 7월, 이훤 작가를 만나 ‘휴식력’을 주제로 대화를 나누고 왔습니다. 시인이자 포토그래퍼, 배우로 활동하며 상반기를 쉼 없이 달려온 그에게 휴식은 어떤 의미일까요? 시, 사진, 연기를 통해 다른 이에게 이야기를 건네는 사람은 마음의 공간을 다시 채우기 위해 어떤 시간을 보내는지, 인터뷰를 통해 확인해보세요.
섬세하고 강렬했던
25년 상반기의 시간들
25년 상반기, 누구보다 바쁜 나날을 보내셨어요. 휴식이라는 단어가 가장 필요한 분인 것 같은데요?
모두 쉼이 필요한 시기 같아요. 저도 평소보다 조금 바쁘게 지냈어요. 보통 한 권을 쓰기 위해 짧게는 2년에서 길게는 5년까지 작업하기도 하는데요. 제작년부터 병행한 책의 출간 시기가 겹치면서 어쩌다 작년부터 세 달에 한 번씩 총 3권의 책을 출간하게 됐어요. 작년 12월에는 「눈에 덜 띄는」이 나오고, 올해 1월에는 「고상하고 천박하게」, 4월에는 「청년이 시를 믿게 하였다」를 마무리했어요. 이어서 6월에는 연극 <엔들링스> 작업과, 7월에는 전시 <공중 뿌리>까지 어떻게 시간을 보냈는지 모를 정도로 상반기를 지나왔어요. 오늘 인터뷰 시간이 제겐 휴식이예요(웃음).
연극배우로 데뷔하기도 하셨어요. 연기자로서의 경험이 무척 강렬했을 것 같은데요. 소감이 궁금해요.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 셀린 송 감독님의 극본 작품, <엔들링스>에 배우로 참여했어요. 연기는 첫 도전이라 겁이 나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참여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현장에서 연습을 하면서 동료 배우들에게 영향을 많이 받았거든요. 마이크 없이 무대를 채워야해서 목소리를 크게 내거나, 표현을 위해 몸을 섬세하게 쓰는 훈련을 하다 보니, 실제로도 외적인 변화가 있었어요. 지금은 다시 차분해져 가고 있지만요.
연기의 경험이 다른 작업에도 영향을 끼쳤나요?
연기를 할 때 연출가와 합을 맞춘 대로 진행하는 부분도 있지만, 저는 그때그때 느껴지는 충동을 따라 움직이는 게 좋더라고요. 다른 작업을 할 때도 제 안에서 뭔가 끓어오르는 것이 있을 때, 그걸 잘 길어 올려서 작업에 녹여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전시 제안이 왔을 때, 평소 같으면 길게 고민하고 망설였을 텐데 “그간 해온 게 있으니 불쑥 만나보자!”라며 충동적으로 진행했어요.
무언가를 성취하거나 완성한 순간보다, “내가 잘 살아가고 있구나”라고 느낀 순간이 있었을까요?
일정이나 약속에 의해서 알게 되는 시간 말고, 주변을 관찰하거나 우연히 마주하는 것들 속에서 시간의 흐름을 감각할 때 잘 살고 있다고 느껴요. 너무 바쁠 때는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르잖아요. 지나면 끝나 있고. 저는 반려묘 ‘숙희’와 ‘남희’의 변화를 관찰하거나, 짝꿍과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나누는 대화 속에서 그런 것들을 느끼곤 해요.
짝꿍인 슬아 작가님과는 원하는 자극의 강도나 결이 잘 맞는 편인가요?
비슷하면서도 달라요. 슬아 작가는 배움이 중요한 사람이라, 새벽 6시 반에 일어나서 크로스핏 하러 가거든요. 댄스 수업도 두 개씩 듣고. 제게는 너무 큰 자극이에요. 그래도 낙수 효과가 있어서, 저도 매일 턱걸이하고 달리기도 하면서 잔잔하게 운동하고 있어요.
나를 돌보는 휴식법
요즘은 잘 쉬는 것도 능력이라고 해요. 작가님은 어떨 때 ‘쉬어야겠다’라고 느끼시나요?
저는 한나절 이상 바깥에 있으면 빨리 집에 가야하는 종이에요(웃음). 휴식이라는 개념이 모호한 측면이 있어요. ’채워지는‘ 시간이 주로 휴식의 감각인데, 어떤 사람들은 일하면서 충만해지기도 해서요. 둘의 경험이 헷갈리는 시기가 있더라고요. 주변에서는 다 번아웃 같다는데, 현장에서 즐거움이 너무 크면 분간이 안되기도 하고요. 저의 경우, 아무것도 욕망하지 않은 채로 일만 하는 저를 경계해요. 주로 너무 많은 걸 병행하는 시기에 그런 상태더라고요. 지금 충동하는 일의 가짓수를 점검하려 해요.
쉬는 게 더 어렵게 느껴질 때도 있잖아요. 작가님에게 ‘잘 쉬는 상태’는 어떤 모습일까요?
마음에 여러 높낮이의 창문이 잘 열려 있는 상태 같아요. 어떤 것들은 내 안으로 들어오고 어떤 것들은 바깥으로 빠져나가면서 순환할 수 있도록요. 그렇게 몸과 마음이 이완된 채로 세상을 주시할 때 잘 쉬고 있다고 느껴요.
작가님만의 휴식 방법이나 의식 같은 게 있을까요? 창작자로서 유지하려고 하는 루틴도 궁금해요.
인풋보다 아웃풋이 많다고 느껴질 때는 전시나 연극을 보러 가요. 시집을 읽는 것도 도움이 돼요. 제가 응시하던 방식과 다르게 세상을 볼 수 있어서 마음이 이완되는 기분이 들거든요. 거창하지 않지만 매일 할 수 있는 방법은 종이에 무언가를 쓰는 거예요. 키보드로 입력하는 것과는 달라요. 하루를 여는 마음 상태와 업무 목록 등을 쓰기도 하고요. 그날 제가 반응했던 장면들을 적어 둬요.
내면의 코어 근육을 단련하기
자주 돌아보는 문장이나, 마음속에 새기고 있는 말이 있을까요? 독자들에게도 위로가 될 수 있는 문장이라면 함께 소개해 주세요.
“중요한 것은 배우가 이미 자기 자신 안에 있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 것이다.”
– 로베르 브레송 감독, 『시네마토그래프에 관한 노트』 중에서
로베르 브레송 감독님이 쓴 문장인데, 창작자뿐만 아니라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데 중요한 자세라고 생각해요. 무대에서 연기를 할 때, 관객의 반응에 의지하다 보면 길을 잃게 되더라고요. 북토크도 마찬가지예요. 관객의 표정이 어둡다거나 의심의 순간이 찾아올 때마다 자기 신뢰의 중요성을 강조한 이 문장을 떠올려요.
번아웃을 겪고 있는 청년들에게 ‘쉼’을 권한다면, 어떤 말을 건네고 싶으신가요?
정신없는 상반기를 보낸 제가 이런 말을 하려니 머쓱하네요(웃음). 불이라는 게, 한 번 타오르면 옆으로 확장하려는 성질이 있잖아요. 그래서 계속 불 끝을 따라가게 되고요. 번아웃의 징후가 보이면 저는 불로부터 잠시 멀어지는 게 도움이 됐어요. 생산적이지 않아도 되는 일을 하며 충분히 하루를 보내거나, 여건상 어려우면 컴퓨터와 휴대폰으로부터 멀어지는 시간을 만들어요. 미흡해서 단계별로 나눠서 연습 중이에요. 일의 목록을 작성하고, 우선순위를 나누고, 과감히 미루거나 미리 조율하기 위해서요. 지루해지는 시간을 확보하는 게 곧 쉼을 분배하는 일 같아요.
이훤 작가에게 마음 성장이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