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터 반지수님의 마음성장 키워드
#나다움 #독창성 #기록
눈앞의 일상을 살아가다 보면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무엇을 잘할 수 있는지 놓치기 쉽습니다. 바로 옆에 더 나은 길이 있어도 시선을 돌릴 생각 자체를 하지 못할 수도 있고요. 가수 폴킴의 유튜브 채널 애니메이션 제작과 소설 <불편한 편의점> 등 베스트셀러의 표지를 그리며 일러스트 작가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반지수 님은 자신의 일상을 기록한 ‘생각 노트’를 통해 스스로를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기록을 나침반 삼아 그림이라는 목표를 찾아냈습니다.
“처음 그림을 그리기로 했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고,
많이 고독했어요.”
그림을 그리기로 마음먹었을 때는 고독하기도 했어요
일러스트레이터, 애니메이터, 작가로 활동하고 있어요. 원래는 정치외교학을 전공했고, 23~4살쯤에 그림을 그리기로 결심했어요. 내가 가장 즐겁고 집중할 수 있는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이렇게 그림을 먹기로 마음먹고 힘들었던 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거였어요. 늦은 나이에 다른 일로 진로를 변경한 사례를 찾기도 힘들었어요. 주변에 조언을 구해도 “취미로 하는 게 좋지 않아?” 같은 대답들이 많았어요. ‘내가 이상한 사람인가?’ 고민도 많았고 고독하기도 했던 것 같아요.
인터넷으로 ‘전공이 아닌 일 하기’ 같은 키워드로 검색을 해보니, 시대나 국적을 불문하고 그런 사람들이 있긴 있더라고요. 저와 비슷한 사람들의 인터뷰나 살아온 이야기를 읽으면서 마음을 가다듬었어요. 계속 되새기면서 나도 이렇게 돼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사람은 선형이 아니라 계단식으로 성장한다고 하더라고요
지금은 그림이 익숙해졌지만, 처음에는 너무 어려웠어요. 완성도 있는 그림을 그리고 싶은 마음은 있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실력이 느는 속도도 더딘 것처럼 느껴졌어요. 빨리 그림을 잘 그리고 싶은데 목표가 가까워진다는 느낌이 없었어요. 그래서 많이 힘들었는데, 어쨌든 해가 갈수록 실력은 좋아지더라고요. 결국 열심히 하는 것이 방법인 것 같아요. 사람은 선형으로 성장하는 게 아니라 계단식으로 성장한다고 하더라고요. 정체기가 중간중간 있는데 그때 포기를 안 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슬럼프가 와도 마음을 다잡고 꾸준히 하는 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
“남을 의식하고 따라가기보다는
자신의 속도를 지켜야
오래갈 수 있어요.”
다른 누가 되기보다, 가장 나다운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해요
저도 창작자인 한편 문화의 소비자잖아요. 존경하는 예술가들이 정말 많거든요. 하지만 누군가를 목표로 하지는 않아요. 저도 그 사람들이 부러우니까 어떻게 하면 저렇게 될 수 있을까에 대해서 생각했었어요. 제가 내린 결론은 어차피 다 다른 사람들이고 다른 길을 갈 수밖에 없다는 거였어요. 그 사람들은 그 사람들만의 인생사가 있고, 저는 저만의 환경과 조건이 있으니까요. 누군가를 목표로 삼기보다는, 가장 나다운 사람이 되고자 생각하고 노력해요.
요즘엔 사람들이 주변의 이야기에 너무 많이 노출되어 있잖아요. 자기 자신에 대해 의심하거나 타인과 비교하기 쉬운 환경이라고 생각해요. 이럴 때 자기만의 지도대로, 자기만의 속도로 가는 게 중요해 보여요. 남이 무얼 하고를 의식하고 따라가기보다는 자신의 스타일과 속도를 지켜야 흔들림 없이 오래갈 수 있는 것 같아요.
솔직하게 요구할 수 있는 실력을 쌓으려고 해요
작가로 활동하다 보면 저와 맞지 않는 의뢰를 받을 때가 있어요. 어떤 풍경을 그린다고 할 때, 인물이 들어가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인물을 꼭 넣어 달라고 요구한다거나 하는 식으로 제 판단과 다른 방향의 요구를 받을 때 힘들어요. 심하면 제 그림의 색채 같은 요소를 동의 없이 바꾸는 경우도 있고요. 사실 ‘그냥 하면 되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림 그릴 때 스스로의 기준이 있으니까 그 차이에 대해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아요. 이런 스트레스에 대해 완벽하게 극복하는 방법은 없는 것 같아요. 그냥 견뎌내고, 참으면서 일을 마치고 있어요. 하지만 긴 시간을 두고 본다면, 명확한 나의 스타일을 내세우고 클라이언트에게 솔직하게 얘기할 수 있는 실력을 쌓는 게 방법 같아요. 포트폴리오가 쌓이다 보니 클라이언트 측에서 저를 믿고 제 해석에 맡기는 빈도가 늘고 있거든요.
“기록을 읽고 자신을 이해하니,
내 부정적인 모습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어요”
저에게 기록은 자연스러운 충동이에요
기록이 내 천성이 아닐까 생각이 들어요. 어릴 때부터 기록하는 걸 좋아했고, 기록을 하지 않으면 뭔가 붕 뜬 느낌이 들어요. 기록하는 것은 저한테는 굉장히 자연스러운 충동이에요. 초등학교 때는 일기를 써오라는 숙제를 받으면 그날 있었던 일을 몇 페이지씩이나 썼어요. 숙제가 아니어도 계속 일기를 썼고, 어렸을 때부터 용돈 기입장 같은 걸 쓰는 것도 좋아했어요.
‘생각 노트’에 마음을 정리해요
어렸을 때 오빠 방에서 ‘생각 노트’라는 걸 발견했어요. 물어보니 학교 숙제라고 알려줬는데, 저는 그 단어가 너무 좋더라고요. 그래서 그 이름이 기억에 남았어요. 대학생이 되고 시골에서 서울로 올라오니 환경이 갑자기 바뀌었고, 그러다 보니 고민이 많아졌어요. 자연스럽게 고민을 기록하기 시작했는데, 어렸을 때 기억을 떠올려서 이름을 ‘생각 노트’로 정했어요.
제가 감정 기복이 심해요. 어느 날은 기분이 좋았다가 어느 날에는 수렁에 빠지듯이 힘들 때도 있어요. 그런 감정을 생각 노트에 계속 기록했더니, 나중에 복기하면서 제가 항상 그렇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렇게 자신을 이해하고 나니 힘든 일이 와도 금방 괜찮아지겠지, 이렇게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되고 나서 나의 나쁜 모습이나 부정적인 모습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어요.
“힘듦을 극복한 기록이
나중에 새로운 일을 도전하는
힘이 되는 것 같아요.”
실제 작업량을 기록해 보니, 열심히 하고 있다는 건 제 느낌일 뿐이었어요
프리랜서 활동을 하던 어느 날 자신을 합리화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하루는 열심히 일하고 며칠을 그냥 놀았는데, 하루 열심히 한 걸 가지고 ‘나 요즘 진짜 열심히 하고 있어’라는 식으로 생각하게 되고 합리화를 하는 거예요. 스스로의 감각을 믿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진짜로 내가 하루 몇 시간 그림을 그리는지 알기 위해서 분 단위로 그림 그리는 시간을 기록하기 시작했어요. 결과를 보니 제 생각보다 너무 적더라고요. 기록을 하니 작업도 훨씬 열심히 하게 되고, 내가 소화할 수 있는 최적의 작업량과 패턴을 파악했어요. 좋은 전환점이 된 것 같아요.
기록을 돌아보며 내가 성장한 걸 느끼면, 도전할 수 있는 힘으로 이어져요
제가 기록을 하는 이유는 다시 읽어보기 위함이기도 해요. 하루하루 썼던 글이 일상의 기록으로 남아있는 거잖아요. 기록을 돌아보면 제가 성장했다는 걸 느끼고 깜짝 놀라기도 해요. 몇 년 전 기록을 보니 스케치하고 구상하는 게 너무 어렵다고 써져 있더라고요. 지금은 스케치할 때 어렵다고 생각하면서 하지는 않거든요. 몇 년 만에 이만큼 성장했다는 게 느껴져서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생긴 것 같아요. 지금 글쓰기를 도전하고 있는데, 이야기를 구상하는 게 어렵거든요. 스케치도 잘하게 되었으니 이야기를 구상하는 것도 하다 보면 잘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무언가를 도전할 때 이런 기록이 근거가 되고 힘이 되는 것 같아요.
“나이가 많은 할머니가 되어도
그림을 그리는 사람으로 살고 싶어요.”
산책을 하면 좋은 생각이 차오르는 느낌이 들어요
산책을 정말 좋아해요. 세상을 관찰하는 걸 좋아하거든요. 산책을 안 하면 집에만 계속 있는데, 생각이 계속 맴도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일단 집 밖에 나가서 눈앞에 보이는 환경을 계속 바꾸고 몸을 움직이면 신기하게도 긍정적인 생각들이 떠오르더라고요. 나간다는 행위에 용기가 필요하기도 하지만, 일단 신발을 신고 나가면 안 좋은 생각이 걷어지고 좋은 생각이 차오르는 느낌이 들어요. 산책을 끊을 수 없는 것 같아요. 저한테 굉장히 좋은 습관이거든요.
그림 잘 그리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어요
일러스트레이터로서 활동이 즐겁기도 하지만 의뢰받는 작업만 하다 보면 제가 진짜 하고 싶은 것이 뭔지 잊기도 해요. 그래서 장기적으로는 의뢰받는 일보다는 제가 온전히 창작하는 일을 하고 싶어요. 그림책을 쓰거나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그림을 가지고 제 안에서 나온 이야기를 만드는 일을 하며 사는 게 저의 목표예요.
과장이 아니라 머릿속의 99%가 그림으로 가득해요. 주위 사람들이 저를 볼 때에도 그냥 ‘그림 잘 그리는 사람’으로 봐주면 좋을 것 같고요. 나이가 많은 할머니가 되어도 그림을 그리는 사람으로 살고 싶은 바람이 있습니다.
나만의 길을 찾아가는 여정은 즐겁기도 하지만, 고독하기도 합니다. 굳게 마음먹고 나아간다고 해도 주변의 도움을 받지 못한다면 금세 지칠 수도 있겠지요.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부족하거나 나만이 나를 위로할 수 있을 때, 소소한 일상에 대한 기록은 위기를 견딜 수 있게 하는 버팀목이 되어줄 것입니다.
일하는 자신을 돌아보는 틈새일기
하루 중 한 가지 작업에서 다른 작업으로 넘어갈 때마다 기록을 남겨라. 일기에 방금 무슨 일을 했는지 간략히 적은 다음, 이제 또 무슨 일을 할지 적으라. 틈새 일기는 틈틈이 잠시나마 자신을 돌아보고, 우리 뇌가 하나의 일에서 다른 일로 전환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전에 한 작업의 잔상을 종이에 옮겨 적으면 우리 머리가 그 작업에 대한 생각을 멈추기 쉬워져서 앞으로 할 일에 대한 마음 준비를 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