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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워도 계속 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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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을 줄인다고 더 행복해지지 않는다

불행을 줄인다고 더 행복해지지 않는다

불행의 요인들을 줄이는 것은 마치 찬물 꼭지를 잠그는 것과 비슷하다. 이것으로 샤워물이 덜 차가워질 수는 있지만 더 따뜻해지지는 않는다. 우리가 인생에서 추구하는 많은 삶의 조건들은 이 샤워기의 찬물 꼭지와 비슷하다. 물을 덜 차게, 즉 삶을 덜 불편하게 만드는 효과는 크지만, 물을 뜨겁게 만드는 데는 한계가 있다.

playlife talk

즉, 고통을 피하는 것만으로는 행복해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저 덜 차가운 물이냐, 더 차가운 물이냐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요. 이 찬물 꼭지를 완전히 잠가 버릴 방법도 없습니다. 고통을 제거할 수는 없잖아요. 우리의 삶을 훈훈하게 만들 방법은 찬물을 잠그는 것이 아니라 뜨거운 물을 더 충분히 부어주는 데 있습니다. 나는 언제 행복한 사람인지를 알고, 내가 행복할 수 있는 조건을 적극적으로 찾아나서고, 행복의 요소들을 더 자주 공급해 주는 일 말입니다.

우리가 고통을 피하려 할수록

우리가 고통을 피하려 할수록

우리는 모두 고통으로부터 도망치려 한다. 어떤 사람은 약물을 복용하고, 어떤 사람은 방에 숨어서 넷플릭스를 몰아본다. 또 어떤 사람은 밤새 로맨스 소설을 읽는다. 우리는 자신으로부터 관심을 돌리기 위해 거의 뭐든지 하려 든다. 하지만 자신을 고통으로부터 보호하려는 이 모든 회피 시도는 고통을 더 악화시킬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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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에게 전류 자극을 가할 수 있는 버튼 외에 아무 것도 없는 환경에 사람들을 두었더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평균 12분만에 버튼을 눌렀다는 실험 결과도 있지요. 그만큼 우리 인간은 지루함을 견디지 못합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우리의 머릿속에서 벌어지는 온갖 번뇌를 견디기 어려워하죠. 하지만 본질적인 고통을 외면하려는 모든 행위는 고통 그 자체를 해결해 주지 못합니다. 오히려 새로운 문제에 우리를 빠트리죠. 하릴없이 낭비해 버린 시간, 중독 같은 문제들 말이에요.

나쁜 느낌만을 피할 수는 없다

나쁜 느낌만을 피할 수는 없다

어쩌면 당신은 모든 느낌들을 회피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단지 나쁜 느낌만을 피하려 애쓰는 것뿐이라고. 그러나 모든 파도를 피하지 않고 나쁜 파도만 피할 수는 없다. 안타깝게도 어떤 파도가 당신을 덮칠지는 선택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바다에서 헤엄친다는 것은 모든 파도에 나를 노출시키는 것이다. … 모든 파도를 평가해서 오직 좋은 파도만이 밀려들기를 바란다면 바다에서 수영하는 것이 여전히 재미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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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찾아오는 것입니다. 막으면 막을수록 더 큰 파도가 되어 돌아올 뿐이에요. 좋은 감정만을 취사선택할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좋은 감정에도 내성이 생기기 때문이에요. 쾌감만이 계속될 때는 점점 더 그 느낌에 무뎌지는 거죠. 불쾌한 감정도 거르지 않고 느껴야, 그 뒤에 오는 기쁜 감정을 더 잘 느낄 수 있습니다.

기쁨은 쾌감과 불쾌감의 칵테일

기쁨은 쾌감과 불쾌감의 칵테일

기쁨은 고통이나 불편이 동반된 쾌감을 말하며 정신적인 것이다. … 밤잠을 쫓아가며 공부해서 좋은 결과가 나왔을 때 우리는 기쁨을 느낀다. 즉, 이 기쁨이라는 것은 순수한 쾌감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불쾌감을 거치고 난 후의 쾌감이다. 쾌감과 불쾌감을 아우르는 칵테일 감정인 것이다. 이 불쾌감은 만족의 지속에 중요한 연료가 된다. 단, 이 불쾌를 자발적으로 선택한 것일 때 그렇다. 즉, ‘자발적 불쾌’가 있을 때 쾌는 깊어지고 길어진다. 즐거움은 쉽게 휘발되지만, 기쁨은 오래 지속되는 이유다. 복잡하게도 인간은 ‘감정적 낙차’를 좋아하도록 진화해 온 것이다.

playlife talk

불편한 감정을 피하려고만 할 것이 아니었습니다. 더 오래, 길게 지속되는 만족감을 위해서는 불쾌감을 자발적으로 선택할 필요도 있는 것입니다. 쉽게 얻어진 즐거움은 허무한 뒷맛을 남기지만, 공들여 성취해 낸 기쁨은 빛이 바래지 않지요.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입니다만, 그 뒤에는 우리 인간이 '감정적 낙차'를 좋아하도록 설계된 동물이라는, 진화론적 근거가 숨어 있었네요.

자신감을 갱신해주는 용기

자신감을 갱신해주는 용기

자신감은 반복된 노력이 잘 풀릴 때 생기는 것이라 생각한다. 뭔가를 노력하고 그것이 성공적이면 다시 시도해도 성공할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 거듭된 성공이 자신감을 낳는다. 나는 용기를 갖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처음 시도하는 일은 그 일에서 성공한 경험이 없어 더 두려움을 갖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용기가 자신감보다 중요하다. 왜냐하면 용기가 있으면 새로운 일을 해볼 수 있고 안락한 울타리 밖으로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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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감이 여러 번 시도해 본 경험으로부터 오는 것이라면, 용기는 해 본 적 없는 일을 시도하게 해 주는 동력입니다. 근거 없는 자신감일지라도, 그것이 용기를 북돋는 데 도움이 된다면 일단은 부려 볼 일입니다. 반복된 경험 없이 자신감의 근거를 쌓을 방법은 없고, 용기를 내지 않는다면 경험할 기회도 없을 테니까요.

부러진 연필을 다시 깎는 것처럼

부러진 연필을 다시 깎는 것처럼

내 강연 중 하나에서 나는 연필을 꺼내 들고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그 연필을 부러뜨렸다. 그것이 삶이 우리에게 하는 일이기도 하다. 인간관계가 때때로 그렇고, 삶의 상황이 그러하기도 하고, 실패도 그렇다. 그것들은 우리를 무너뜨리고, 우리를 부러뜨린다. 때때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실수 때문에 스스로에게 너무 많은 벌을 가하고, 그래서 내면에서 부러진다. 그런 다음 나는 연필깎이를 꺼내, 부러진 연필의 나머지 절반을 깎기 시작했다. 부러졌다고 끝은 아니다. 그렇지 않은가? 그렇다, 우리는 실수를 했다. 그렇다, 우리의 약한 순간을 겪었다. 그렇다, 우리의 마음과 삶에서 미끄러졌다.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정말 중요한 것은 일어나서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살아 나가는 일이다.

playlife talk

그 실수를 하지 않았더라면, 그 실패를 겪지 않았더라면... 삶에 시련이 닥쳤을 때,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이런 생각들에 사로잡힙니다. 하지만 이는 이미 부러진 연필을 바라보며 그것이 다시 붙길 기대하는 것과 같습니다. 사건은 이미 일어났고, 우리는 그 이전으로 시간을 돌릴 방법을 알지 못합니다. 이 순간 중요한 것은 오직 부러진 연필을 다시 깎는 것입니다. 다시 일어나서 나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불확실함을 견디기 어려운 당신에게

불확실함을 견디기 어려운 당신에게

‘불확실성에 대한 수용’은 모든 창의적 작업에 매우 중요하게 작용한다. 그런데도 막상 어른이 되면 불확실한 상태를 견디기 힘들어 한다. 대신 확실한 것을 추구해야 한다는 강박을 느낀다. 잘 알고 검증된 환경에서만 안정감을 느끼고, 새로운 일을 시도하기보다는 확인된 길을 가는 편을 선호한다. 하지만 ‘불확실하고 불분명하고 모순되는 상황 속’에서 우리의 숨어 있는 창조적 능력이 발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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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서 불확실성을 제거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어디 우리 삶이 계획을 세운대로만 흘러가던가요. 정답 없음, 규칙 없음, 확신 없음이야말로 삶의 기본값입니다.

이토록 불확실한 세계 속에서 단 하나 확실한 것이 있다면, 불확실성을 받아들이고 대응하는 유연함이 더 유리하다는 사실입니다. 미래를 예측할 수는 없지만, 어떤 일이 벌어지든 헤쳐나갈 수 있다는 태도는 우리를 더 나은 자신으로 인도할 테니까요.

흔들리지만 가라앉지 않는다

흔들리지만 가라앉지 않는다

그러다가 어느 책에서 한 문장을 만났다. ‘흔들리지만 가라앉지 않는다’라는 말이었다. 라틴어 원문으로는 ‘Fluctuat nec margitur’라고 한다. 그 당시에 내 심정이 아마 곧 침몰할 것 같은 난파선에 올라타고 있는 느낌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 문장 전체가 내 가슴 깊은 곳에 닻을 내렸다. 그리고 젊음의 시간 내내 큰 위안이 되었다. 그 전에는 흔들리는 것조차 용납하지 못하고 자책했지만 그 문장을 만나고 난 뒤로는 흔들리는 것을 허용할 수 있었다. 늘 제대로 길을 가야 한다고 다그쳤다면 이후로는 헤맬 수도 있고 방황할 수도 있음을 용납할 수 있었다.

playlife talk

우리는 모두 흔들리는 중입니다. 삶이라는 여정 속에서 으레 겪어야만 하는 크고 작은 풍랑일 뿐이지요. 배가 침몰한 것도, 인생이 망한 것도 아닙니다. 배는 그리 쉽게 뒤집히지 않을 겁니다. 우리의 지난 여정이 증명하지요. 당장은 가라앉는 것 같아도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고, 지금 이 순간은 곤두박질치는 것 같아도 길게 보면 우상향 그래프를 그리고 있는 것처럼요. 흔들리지만, 가라앉지는 않을 겁니다.

구부러진 스프링 펴기

구부러진 스프링 펴기

다 포기하고 싶은 날들이 내게도 있습니다. 아무 것에도 애착을 가질 수 없는 날들이. 그럴 때마다 생각합니다. 죽음으로, 죽음으로 향하는 내 안의 나선 경사로를 어떻게든 피해야겠다고. 구부러진 스프링을 어떻게든 펴야겠다고. 스스로의 비틀린 부분을 수정하는 것, 그것이 좋은 예술가가 되는 길인지는 몰라도 살아 있는 예술가가 되는 일임은 분명합니다. 매혹적으로 보이는 비틀림일수록 그 곁에 어린 환상들을 걷어내십시오. 직선으로 느리게 걷는 것은 단조로워 보이지만 택해야 하는 어려운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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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의 앞날을 헤아릴 수 없는 막막함이 찾아올 때가 있습니다. 점점 깊이 가라앉는 수렁에 빠진 듯한 기분. 무수히 빠져나오려 노력했지만 보답받지 못할 땐, 다 내려놓고 절망 앞에 순순히 투항해 버리고 싶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울에 지고 싶지 않다는 마음 또한 분명히 나의 것입니다. 구부러진 스프링을 펴야겠다고, 스스로의 머리채를 끄집어 올려서라도 일어나야겠다고 마음먹는 사람 또한 분명히 나입니다. 그렇게 조금씩 나 자신을 다잡는 순간들이 모이면, 언젠가는 반드시 새로운 길을 내게 될 것입니다. 우울의 하강나선 대신, 직선으로 곧게 뻗은 길을.

‘일비일비’하지 않는 것

‘일비일비’하지 않는 것

실패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래왔듯 (일희일비는 고사하고) 일비일비 할 필요는 없음을 꼭 말해주고 싶습니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일과 하지 않아도 되는 생각과 신념들에서 부드럽게 물러서고 당신의 삶을 그렇게까지 싸잡아서 0 혹은 1 단 두 가지의 결과로 규정하지 않고 해야 하는 일에는 할 수 있는 만큼만 (당신과 당신의 사람들이 불행하지 않을 만큼만) 전력을 다하고 그 이후로는 운명의 시간으로 떠나보내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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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실패를 하지 않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실패에 어떻게 대처하느냐일 것입니다. 말마따나 실패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니까요. 실패했다고 해서 내가 해온 일들이 모두 0으로 돌아가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100%가 아니면 0%, 성공 아니면 실패로 가름해 버리는 데 너무 익숙해져 있지요. 결과라는 것은 때로는 내가 어찌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입시다. 50%, 또는 70%만큼 이뤄낸 것이 있다면 그것 또한 성취로서 충분히 인정해 줍시다. 그리하여 언젠가 도달할 100%를 위해.

불행을 줄인다고 더 행복해지지 않는다

불행의 요인들을 줄이는 것은 마치 찬물 꼭지를 잠그는 것과 비슷하다. 이것으로 샤워물이 덜 차가워질 수는 있지만 더 따뜻해지지는 않는다. 우리가 인생에서 추구하는 많은 삶의 조건들은 이 샤워기의 찬물 꼭지와 비슷하다. 물을 덜 차게, 즉 삶을 덜 불편하게 만드는 효과는 크지만, 물을 뜨겁게 만드는 데는 한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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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고통을 피하는 것만으로는 행복해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저 덜 차가운 물이냐, 더 차가운 물이냐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요. 이 찬물 꼭지를 완전히 잠가 버릴 방법도 없습니다. 고통을 제거할 수는 없잖아요. 우리의 삶을 훈훈하게 만들 방법은 찬물을 잠그는 것이 아니라 뜨거운 물을 더 충분히 부어주는 데 있습니다. 나는 언제 행복한 사람인지를 알고, 내가 행복할 수 있는 조건을 적극적으로 찾아나서고, 행복의 요소들을 더 자주 공급해 주는 일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