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반대되는 것이 필요합니다.
어둠과 빛, 빛과 어둠. 그림에는 이 둘이 있어야만 하죠. 빛에다 빛을 더해도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어둠에 어둠을 더해도 마찬가지죠.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가끔씩 슬픔이 있어야 행복이 찾아올 때, 그걸 느낄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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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이라고 느낄 만큼 슬럼프나 좌절, 슬픔을 맛본 사람들은 오히려 그 지점에서 마음이 편안해 진다고 합니다.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이 무서웠는데, 막상 서고 보니 그냥 땅일 뿐이고, 발밑에서 느껴지는 단단함이 오히려 안도감을 주는 것입니다. 적어도 어딘가로 떨어질 걱정은 덜었으니 말입니다.
게다가 이제 2층에서도 고도를 체감하니, 아마 행복민감성이 조금 높아질지도 모릅니다.
번아웃 치유 과정에서 주의할 점은 ‘나는 왜 이 모양 이 꼴일까?’, ‘내가 왜 이런 상태가 된 거지?’라며 자책하지 않는 것이다. 복잡한 생각이나 되새김질로 시간을 채우지 않는 것이다. 또 ‘빨리 극복해서 맡은 일도 잘하고 인정받아야지’라는 생각으로 회복을 서둘러서도 안 된다. 조급함은 자신을 몰아세우고 피로하게 만들어 뇌를 쉬지 못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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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어버린 열정을 채워본 기억이 있나요? 처음 가졌던 열정이 어디서 왔는지 생각해보면, 내가 채운 것이 아니라 목표를 이루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났을 것입니다. 열정을 되찾겠다며 일을 더 많이 하고 계획적으로 살아보지만, 남은 에너지만 다 타 버릴 뿐이지요.
게임을 하다가 에너지가 바닥이 나면 다시 차오르기를 기다려야 합니다. 한 시간에 한 칸씩.
열정이 차오르는데도 그런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뇌 기능 측면에서 번아웃에 가장 취약한 환경은 매일 똑같은 일을 똑같은 순서로 하는 상동증(stereotypy)이다.
당신이 5년 동안 한결같이 출퇴근한 방식, 10년 동안 한결같이 걸렀던 아침 식사, 20년 동안 취미생활 없이 단조롭게 보낸 휴일 등 지겹도록 똑같은 일상의 루틴에 0.1퍼센트만큼의 변화가 조금씩 쌓인다면 우리는 고인 물의 고착 상태에 균열을 일으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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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을 때 보폭을 늘리기, 교복처럼 입던 출근복장에 머플러 더하기, 점심 먹는 식당 바꾸기.
0.1 % 정도의 변화가 될 만한 일들이 번아웃을 해결해주지는 않겠지만, 조금 새로워진 머리는 생각치도 못한 돌파구를 찾아낼지도 모릅니다.
힌디어에 ‘킬레가 또 데켕게’라는 격언이 있다. ‘꽃이 피면 알게 될 것이다.’ 라는 뜻이다. 지금은 나의 미래를 장담할 수 없고 설명할 길이 없어도 언젠가 내가 꽃을 피우면 사람들이 그것을 보게 될 것이라는 의미이다. 자신의 현재 모습에 대해, 자신이 통과하는 계절에 대해 굳이 타인에게 설명할 필요가 없다. 타인이 아니라 자신에게 증명하면 된다. 시간이 흘러 결실을 맺으면 사람들은 자연히 알게 될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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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나만큼 걱정해 줄 사람은 없습니다. 나의 행복이 나만큼이나 중요한 사람도 없습니다. 나에 대해 나만큼 진지하고 오래 고민하지 않은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에 흔들리지 말고, 사람들의 조급한 질문에 덩달아 조급해지지 않고 묵묵히 가던 길을 간다면, 내가 꽃 피우는 계절이 분명 올 것입니다.
무기력은 하고 싶어도 에너지가 바닥이 나 아무것도 못 하는 상태입니다. 그런데 무기력에서 쉽게 벗어날 수 있다고 섣불리 낙관할수록 부수적인 일에 에너지를 탕진하고, 결국 더 무기력한 상태에 빠져 버리게 됩니다. 차라리 이 무기력이 오래 지속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자신에 게 시간을 주세요. 무작정 바쁘게 살지 말고 진짜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 진지하게 물어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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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력하다는 것은 에너지가 바닥날 만큼 열심히 살았던 증거이거나, 내 삶이 행복하지 않다는 신호이기도 합니다. 무기력한 자신을 너무 걱정하거나 몰아세우지 말고, 그저 그 상태에 잠시만 머물러도 괜찮을 것입니다. 다만, 무기력에 슬픔, 허무, 절망, 공허를 덧씌우지는 말아야 합니다.
이제는 압도감에 버거워지면 뒤로 후퇴합니다. 싫다고 말할 줄도 알게 되었습니다. 제 에너지를 다 뽑아가는 사람이 주변에 있을 때는 그 사람의 부정적인 에너지를 막아내는 보이지 않는 장벽을 칩니다. 또한 저만의 신성한 공간을 만들었고, 일요일은 그저 내가 나로서 존재하도록 허락하는 재생의 시간으로서 온전히 떼어놓았습니다. 저의 평온을 침범하는 누군가가 이 시간을 방해하거나 위협하거나 하면 저는 쉽게 짜증이 나는 민감한 상태가 되어버리고 맙니다. 한 마디로 제가 절대 되고 싶지 않은 사람이 되고 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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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사람 중의 한 명인 오프라 윈프리의 말입니다. 일요일은 그 누구도 방해할 수 없는 철저히 나만의 시간으로 만들라는 조언입니다.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자기만의 시간, 자기만의 영역을 만드는 것은, 타인에게 벽을 치고 선을 긋는 일과는 분명히 다릅니다. 오히려 온화하고 친절한 나를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인 거죠. 일주일 중 하루는 철저히 나를 위한 장벽을 치세요. 그건 가장 좋은 버전의 자기 자신이 되는 일입니다.
특히 변화가 있거나 새로운 걸 할 때는 익숙하지 않은 상황에서는 긴장을 많이 하기 때문에 아무도 안 괴롭혀도, 자기 스스로 긴장하고 있는 거에요. 집에 오면 그 긴장을 완화시키려고 누워있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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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게 집에만 오면 자꾸 눕고 싶어지고, 현관문이 열리자마자 침대로 직행하게 된다면, 내가 유독 게으른 탓일까요? 꼭 그렇지는 않을 수도 있습니다. 긴장감이 높고 변화에 예민한 사람들은, 새로운 환경의 변화에 적응하는데 에너지가 더 많이 쓰이기 때문일 수 있다고 해요.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 자신에게 조금 더 관대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일단, 오늘의 나에게 잘 해주자고요.
삶을 감탄사로 채우고 싶다면 내가 가진 것, 내가 누리는 것들과의 첫 만남이 내 삶에서 사라졌다고 상상해보라. 당연해 보이는 것을 놀라운 감탄사로 받아들이는 것. 행복의 비결은 거창한 데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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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후회할 때는 주로 '~하지 않았더라면' 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내가 잘 한 일에 대해서는 그런 식으로 곱씹지 않습니다. 내가 이미 이룬 것일수록, 그 일의 가치를 과소평가하게 되는 거죠. 내가 누리는 일상을 당연한 것으로 여길 수록, 삶에서 감탄할 일은 점차 줄어들 따름입니다.
앞으로는 내가 '~하지 않았더라면' 얻지 못했을 수많은 것에 대해 더 자주 생각해 봅시다. 이미 누리고 있는 행복을 발견하는 좋은 방법이 될 것입니다.
고통을 피하려고 삶에 무관심해봤자 고통은 더 커질 뿐이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행복이 아니라 살아 있는 것이다. 고통은 인생의 최악이 아니다. 최악은 무관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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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관심은 마취효과가 있습니다. 상처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고통이 잠깐 멈추는 것입니다. 잠깐은 사용해도 괜찮겠지요. 그런데 다 나았다고 착각을 하고 상처를 내버려두면 결국 마취약도 소용없을 만큼 곪게 됩니다.
고통을 느껴야 어디를 손봐야 할 지 알 수 있습니다. 직면하고 싶지 않은 일은 아마 나의 성장을 위해 가장 중요한 일일 것입니다.
인간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아갈 수 있어도 단 한 가지, 마지막 남은 인간의 자유, 주어진 환경에서 자신의 태도를 결정하고, 자기 자신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만은 빼앗아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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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은 얼마든지 있고, 내가 처한 환경을 바꾸는 것도 쉽지는 않습니다. 재난은 예고하고 닥치지 않으며, 하나를 해결했다 싶으면 또 다른 문제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항상 기회는 남아있지요. 다른 것은 몰라도, 삶을 대하는 태도만큼은 내가 결정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내게 주어진 이 유일한 자유를 누리지 않을 이유도 없습니다. 그 자유를 누군가에게 내어주지 맙시다. 내가 어느 길을 택할지는 온전히 내게 달렸습니다.
항상 반대되는 것이 필요합니다.
어둠과 빛, 빛과 어둠. 그림에는 이 둘이 있어야만 하죠. 빛에다 빛을 더해도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어둠에 어둠을 더해도 마찬가지죠.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가끔씩 슬픔이 있어야 행복이 찾아올 때, 그걸 느낄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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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이라고 느낄 만큼 슬럼프나 좌절, 슬픔을 맛본 사람들은 오히려 그 지점에서 마음이 편안해 진다고 합니다.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이 무서웠는데, 막상 서고 보니 그냥 땅일 뿐이고, 발밑에서 느껴지는 단단함이 오히려 안도감을 주는 것입니다. 적어도 어딘가로 떨어질 걱정은 덜었으니 말입니다.
게다가 이제 2층에서도 고도를 체감하니, 아마 행복민감성이 조금 높아질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