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의 시작이 완벽하지 않아서 오늘 하루를 포기하고 싶을 때, 정해진 규칙과 루틴을 지켜야 한다는 강박에 매달릴 때,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끝내지 못하는 스스로를 습관적으로 책망할 때가 있다. 그럴 때에는 대충이라도 해 보는 것이 어떨까. 설거지가 하기 싫으면 물로 대충 헹궈 싱크대 위에 쌓아두고, 침구를 교체할 힘이 없으면 룸 스프레이를 대충 뿌리고 자기. 원두를 갈아 커피를 내려 마시기 귀찮으면 여행용 드립백을 꺼내 대충 마시기. 일하기 싫으면 메일함의 급한 연락만 먼저 해결해 놓기. 완벽할 필요는 없다고 스스로 되뇌면서 백 마디 투정과 수많은 핑계도 대보자. 그렇게 대충 하다보면 어느새 하나씩 채워져 완벽에 가까운 때가 올 것이고, 그럼 또 아무렇지도 않게 끝까지 해내고 있는 나를 발견할 것이다.
playlife talk
거창한 계획만 잔뜩 세워두고 실천하지 못해 흐지부지 되었던 경험, 그런 자신을 자책했던 기억은 누구에게나 있지요. 그건 내게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계획을 완벽하게 해낼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잘못된 것입니다. 계획은 기본적으로 '해야 하는' 일이고, 해야 하는 일은 하기 싫은 게 당연합니다.
대충이라도 해낸다는 마음으로 시작해 봅시다. 완벽하게 해내지 않으면 소용없다는 생각은 잠깐 접어두고요. 관성이라는 게 있잖아요. 뭐라도 일단 시작하게 되면 하는 방향으로 관성이 붙을 것입니다. 어질러진 물건만 치우자는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어느 새 깨끗한 집을 보기 위해 청소기를 드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처럼요.
얼마 전에 했던 북토크에서 새해 목표에 대한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나는 이렇게 말했다. 나의 가장 큰 적은 나고, 가장 큰 지지자도 나고, 나를 죽이는 것도 나고, 나를 살리는 것도 나라서 나를 잘 돌봐야겠다고, 나를 잘 돌보면 나머지는 저절로 굴러가게 되어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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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목표가 무엇이든 간에, 나 자신을 돌보는 게 중요한 것은 그 목표를 세우는 것도, 이루는 것도, 망치는 것도 결국 다 나 자신이기 때문이 아닐까요. 내가 원하는 것을 정확히 알지 못하고, 남들의 기준에 맞춰 세운 목표는 오래가지 못하겠지요. 목표 달성 자체에만 몰두하며 스스로를 괴롭힌다면 그 또한 지속할 수 없을 것이고요.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애쓰는 것도, 결국은 내가 조금이라도 더 잘 지내길 바라는 마음과 맞닿아 있습니다. 그러니 새해에는 누구보다 나 자신의 안녕을 기원하고, 챙기고, 유지하기를.
창피함을 적처럼 두려워하는가, 아니면 기회의 신호로 받아들이는가에 따라 당신의 미래는 크게 달라진다. 창피함에 대한 ‘면역’을 기르면 당신은 더 많은 일에 도전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부끄러움은 젊은 세대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몇 살이 되어도 창피를 무릅쓸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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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도전은 필연적으로 나의 미숙한 부분을 마주하게 만들죠. 그건 매우 부끄럽고 창피한 감정을 동반합니다. 나이가 들수록 새로운 시도가 불편한 건 그래서입니다. 잘 모른다고 말하는 건 무능한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나도 처음이야, 나도 잘 몰라'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야말로 진정한 능력일지 모릅니다. 그렇게 여러 번 거듭해서 창피함에 익숙해진 사람은, 새로운 분야와 시도를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게 되니까요.
하고 싶다는 기분을 다시 일으켜보려고 노력하기도 하고, 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동력으로 삼아보려고 시도하기도 했는데, 결과적으로 지금의 나는 그냥 ‘한다’는 쪽에 무게를 두려고 애쓴다. 하기로 한 일을 그냥 한다. 기분을 앞세워서도 안 되고, 억지로 나를 강제해서도 안 된다. 나야, 하기로 했으니까 이건 하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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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은 하기 싫은 것이 당연합니다. 가끔 잘 풀릴 때는 즐겁고, 멋지게 해냈을 때는 뿌듯할 때도 있지만, 그건 지난한 과정 속에서 이따금 벌어지는 이벤트일 뿐이죠. 일은 기본적으로 단조로운 반복, 타인과의 갈등, 해결해야 하는 문제로 가득한 극기훈련의 과정입니다. 정말 지독하게 일하기 싫은 날에도, 일이니까 어쨌든 해내야 합니다. 그럴 때는 무슨 대단한 각오를 세우려고 하지 말고, 그냥 하는 것에 의의를 두세요. 기분은 지나가지만 결과는 남습니다.
내가 나와 헤어져야 할 때도 있습니다. 지금의 나를 지킬 것인가, 새로운 나로 변할 것인가. 변화를 그렇게 바랐던 사람도 변화를 두려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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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아이가 처음 엄마와 떨어져 사회 속으로 들어갈 때 울음은 불안을 넘어 공포에 가깝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우리는 불안을 견디는 방법을 익히지만 새로움은 언제나 두렵습니다. 불안을 낮추기 위해 변화는 점진적이어야 좋지만, 어떤 일은 단호한 결단과 당장의 변화가 필요하기도 합니다. 되돌아갈 여지없이 떨쳐버려야 하는 나쁜 습관, 나의 자존감을 갉아먹는 해로운 관계는 당장, 단호하게 버려야 합니다.
모든 두려움이 다 게으름은 아니지만 두려움 가운데 상당 부분은 게으름이 원인이다. 즉, 현실을 변화시키는 데 따른 두려움, 현재 위치에서 더 나아가면 무언가 잃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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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성에 안맞는 일을 하는 것, 해로운 습관을 지속해서 건강을 해치는 것, 독이 되는 대인관계를 이어가는 것은 엄청난 스트레스 입니다. 그럼에도 익숙함에 중독되어 불편감을 끊을 수 없게 된 것은 아닌가요?
해로운 환경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우리는 중독자와 같은 어려움에 빠진 것일지도 모릅니다.
회복탄력성을 높이려면 내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들을 보다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뇌가 필요하다. 나에게 일어나는 크고 작은 고민거리나 어려운 일들을 순간순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대처할 수 있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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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담한 현실을 긍정으로 치환하라니 코웃음부터 나옵니다. 생각을 바꿔볼 엄두가 나지 않는 일은 일단 내버려두자고요. 버스를 놓친 일, 상대방의 작은 실수, 좋아하지 않는 점심 메뉴. 이런 일들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연습을 하다보면 어느날 높은 허들도 뛰어넘을 수 있을 것입니다.
새해 첫날부터 새로워져야 한다는 부담감에 열렬히 계획을 세우지만 이행되는 일은 잘 없다. 연초부터 실망하는 일은 너무 가혹해서 우리는 서로의 이른 실패를 쉬쉬한다. 그래서 1월과 2월은 카페나 식당의 임시개업 기간 같은 거다. 가게의 효율을 살피는 시기. 숨가쁜 계획들을 재정비하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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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이 지나가고 2월로 접어드는 시점, 연초의 다짐은 희미해지고 야심차게 세운 새해 계획들은 슬슬 흐지부지되기 시작합니다. 실망이 곧 체념으로, 결국엔 포기로 연결되기 가장 쉬운 때지요. 하지만 애초에 기대가 과했는지도 모릅니다. 사람이 한 순간에 바뀌는 법이란 없는데 말이예요. 2월은 잠시 숨을 고르는 시간으로 삼아봅시다. 열의에 넘쳐 세운 계획이 무리였다면 현실적으로 수정하고, 꼭 지키고 싶은 것들만 남기는 거예요. 지켜야 한다는 강박, 의지가 부족했다는 자책으로 스스로를 괴롭히는 대신, 재정비하는 시간을 통해 꾸준한 실천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사람의 지각, 판단, 특이한 감정, 정신활동, 그리고 심지어 도덕적 선호와 같은 능력들도 오직 선택을 거듭하는 과정을 통해서만 단련될 수 있다. 그저 관습이 시키는 대로 따라 하기만 하는 사람은 아무런 선택도 하지 않은 것이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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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하루 동안 약 4만 5천 가지 생각을 한다는데, 그 중 지금 기억나는 생각은 얼마나 될까요? 인공지능이 대신 지각하고 판단하는 편리함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관습을 떠올리는 일조차 이제 번거롭게 여기는 '생각불구자'가 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안전함과 편리함을 이유로 이미 갖추어진 방식과 기술에 의존한다면 점점 아무런 선택도 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 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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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이 없으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무엇이 필요한지, 무엇이 위협인지 알 수 없고, 당장 대처해야 할 일과 중요치 않은 일, 다른 대안을 찾을 수 있는 일을 구분할 수 없게 됩니다. 그렇기에 일단 매사 과민반응 하고 보는 것이겠지요. 과민반응은 혹시 일어날지 모를 위험에 대처하는 방식 중 하나입니다. 목적이 없다는 것은 우리 인생에 잠재적인 위험이 되는지도 모릅니다.
하루의 시작이 완벽하지 않아서 오늘 하루를 포기하고 싶을 때, 정해진 규칙과 루틴을 지켜야 한다는 강박에 매달릴 때,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끝내지 못하는 스스로를 습관적으로 책망할 때가 있다. 그럴 때에는 대충이라도 해 보는 것이 어떨까. 설거지가 하기 싫으면 물로 대충 헹궈 싱크대 위에 쌓아두고, 침구를 교체할 힘이 없으면 룸 스프레이를 대충 뿌리고 자기. 원두를 갈아 커피를 내려 마시기 귀찮으면 여행용 드립백을 꺼내 대충 마시기. 일하기 싫으면 메일함의 급한 연락만 먼저 해결해 놓기. 완벽할 필요는 없다고 스스로 되뇌면서 백 마디 투정과 수많은 핑계도 대보자. 그렇게 대충 하다보면 어느새 하나씩 채워져 완벽에 가까운 때가 올 것이고, 그럼 또 아무렇지도 않게 끝까지 해내고 있는 나를 발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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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한 계획만 잔뜩 세워두고 실천하지 못해 흐지부지 되었던 경험, 그런 자신을 자책했던 기억은 누구에게나 있지요. 그건 내게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계획을 완벽하게 해낼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잘못된 것입니다. 계획은 기본적으로 '해야 하는' 일이고, 해야 하는 일은 하기 싫은 게 당연합니다.
대충이라도 해낸다는 마음으로 시작해 봅시다. 완벽하게 해내지 않으면 소용없다는 생각은 잠깐 접어두고요. 관성이라는 게 있잖아요. 뭐라도 일단 시작하게 되면 하는 방향으로 관성이 붙을 것입니다. 어질러진 물건만 치우자는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어느 새 깨끗한 집을 보기 위해 청소기를 드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처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