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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업을 만드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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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길이 내 길일까? 의심이 들 때

이 길이 내 길일까? 의심이 들 때

조금 조금씩 나를 갉아먹는 질문 같은 건, ‘이 길이 내 길일까?’ 이 질문은 사실 답도 없고, 답을 찾기까지 좀 시간을 투자하고 바쳐야 하는 것 같아요. (그럼 그 답을 내리기까지는 15년 정도…) 저는 한 15년 차 되니까 내 길이 맞을까라는 의심까지 할 필요가 없어졌어요. 이만큼 했으면 이 길이 내 길이지 (웃음) 라는 생각도 있었고, 실은 스스로 이제 이 전체 업계에서 나만 할 수 있는 게 보인다, 나라는 사람이 갖고 있는 강점 같은 게 있긴 있다, 라는 주제 파악이 그 때 쯤 된 거죠.

playlife talk

일을 하다 보면 이 길이 내 길이 맞을까, 라는 질문은 누구에게나 찾아옵니다. 명확한 답은 없겠지만, 한 가지 만큼은 분명합니다. 시간을 들이지 않고서는 답을 낼 수 없는 질문이라는 것이지요. 지금 당장 답이 나오지 않는다고 해서 잘못된 게 아니라는 뜻입니다. 충분한 시간과 경험, 헌신만이 판가름을 내어줄 겁니다. 내 길을 찾는 데에 그만큼의 시간을 투자하지 않는다면 그것 또한 잘못된 길로 들어서기 쉬운 것 아닐까요. 그만큼의 시간이 이미 그 길을 내 길로 만들어 주는지도 모르고요.

내 일의 의미는 나의 언어로

내 일의 의미는 나의 언어로

내 일의 의미를 자신의 언어로 읽어내지 않으면, 그 일은 온전히 나의 것이 되어 주지 않고 희미해지고 마는 것 같다. (…) 나는 왜 그렇게 그게 좋았을까? 어떤 것에 끌렸을까? 그 시간을 새로운 시선으로 다시 바라보기로 했다. 바로 나의 ‘캐릭터’를 기준으로 지난 경험을 재해석해 보는 것. 나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무엇을 잘하고 싶어했고 무엇에 정성을 쏟았는지, 유독 그냥 넘어가지 못하고 매달렸던 일은 무엇이었는지.

playlife talk

내가 해 온 일들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따라 많은 부분들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 작업은 일에서의 주도권을 세우는 것이자, 나라는 일꾼의 강점을 확인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서로 다른 것처럼 보이는 일일지라도, 나라는 사람의 맥락에서는 분명히 하나로 꿰어낼 여지가 존재합니다. 해오는 동안에는 미처 깨닫지 못했더라도 내가 일하는 방식, 유난히 집요하게 몰두하는 영역,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부분이 분명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하는 일의 최종적인 의사 결정 권한은 내가 가질 수 없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내 일을 설명하고 해석하는 것은 오로지 나만의 권한이자 권리일 것입니다.

직업의 이름은 나의 업을 보장하지 않는다

직업의 이름은 나의 업을 보장하지 않는다

에디터이기 때문에 보장되는 건 없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오히려 그런 직업의 이름은 명사잖아요, 그 명사를 너무 쉽게 자기 가슴팍에 딱 달아놓으면, 내가 뭐하는 사람인지 더 이상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게 돼요. 이건 또 룰루 밀러 선생님이 하신 말이에요. (웃음) ‘무언가 이름을 붙이고 나면 그것에 대해 더 이상 생각하지 않게 된다.’ 오히려 아까 이야기한 것 같이, 내가 뭐하는 사람인지를 내 언어로 정의하는 게 훨씬 더 좋다고 생각해요. 저는 그게 생기고 나서부터 번민이 많이 줄었거든요.

playlife talk

직업의 이름이 곧 내가 하는 일을 설명해 주던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이미 정립된 명사로 스스로를 설명할수록, 오히려 내 일이 확장될 기회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 직업의 정의에 나의 일을 고립시키게 되는 셈이지요. 설명되지 않는 일에 대한 불안함은, 나만의 언어로 보다 정확히 정의해 내려는 관성을 창조해내기 마련입니다. 고정된 명사가 아니라, 서술하는 형용사로, 그래서 변화하는 동사로 꾸준히 재정의하는 것. 그것이 이 시대의 일에 필요한 태도인지도 모릅니다.

하고 싶은 일이 없어도, 별 일 아닙니다

하고 싶은 일이 없어도, 별 일 아닙니다

지금 시대에 ‘OO가 되겠다!’고 하나의 직업을 결정하는 게 훨씬 더 위험하다. 하고 싶은 일을 찾지 못하는 것은 잘못이 아닐 뿐만 아니라 정말 별 일이 아니다. 직업이 무섭게 사라지는 시대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다는 증거이다. “그게 안 된다면 이 쪽이지!” 하고 직책을 이동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다는 뜻이다.

playlife talk

하고 싶은 일을 찾았다면 그 또한 축하할 일이지만, 꼭 하고 싶은 일이 없다고 해서 크게 잘못될 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이거 아니면 안 돼!'라는 게 없다는 것은, 어쩌면 유연하게 내 일의 모양을 바꿀 수도 있다는 것이니까요. 그렇게 필요와 상황에 따라 이동하다 보면, 이게 내 일이구나 싶은 것이 찾아지기도 할 테지요.

두려움과 떨림은 새로움의 신호

두려움과 떨림은 새로움의 신호

나 잘하고 있는 걸까? 뭔가 정확하게 설명하기 어렵고 막연히 불안이 찾아오고 이럴 때 제가 잘 떠올리는 조언을 들었던 게 있는데 <유럽의 그림책 작가들에게 묻다> 인터뷰할 때, 연차가 40년 정도 되는 일러스트레이터인 세르주 블로크 작가님하고 인터뷰를 했어요. 그런데 그 작가님은 전세계 언론사들이 줄서서 삽화 받으려고 기다리는 유명한 작가님이거든요. 근데 그 작가님한테 “작가님도 자기 확신이 없을 때가 있나요?” 이런 걸 여쭤봤어요. 그랬더니 “매일 그러는데요.” (대답하더라고요.) “창작자한테 두려움과 떨림과 모호하다는 느낌은 좋은 신호예요.” 그러는 거예요. 창작자들은 뭔가 새로운 걸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잖아요. 기존에 존재하던 이 말로 서술해도 정확하지 않고, 난 지금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거야? 라는 건 뭔가 새로운 걸 한다는 뜻이라고 볼 수도 있는 거예요.

playlife talk

"창작자에게 두려움과 떨림은 좋은 신호예요." 매분매초 변화하는 세계에서 나만의 일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우리에게, 40년차 일러스트레이터 블로크의 말은 두 가지 깨달음을 전해 줍니다. 첫 번째는 쉽게 확신할 수 있는 일일수록 오히려 새로움과는 멀어진다는 것. 두 번째는 40년을 일한, 저명한 작가 또한 자신의 일을 매일 의심하고 망설인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불안과 모호함을 떨쳐내려고 애쓸 것이 아니었습니다. 두려움과 떨림은 누구도 가본 적 없는 새로운 길 위에 있다는 신호라는 뜻이니까요. 불안을 삶의 기본값으로 포용할수록, 우리는 날마다 새로워집니다.

트랙 위에서는 보이지 않는 것들

트랙 위에서는 보이지 않는 것들

달리고 있을 때는, 트랙 위에 있을 때는 보이지 않는 것들이 있는 것 같아요. 일에서 조금 떨어져야만 나 자신, 나의 일하는 모습, 그리고 내가 일에서 정말 좋아하고 잘하는 요소들이 무엇인지 알 수 있어요.

playlife talk

앞만 보고 숨가쁘게 달리는 와중에는 내 주변의 풍경도, 지나치는 사람들의 얼굴도 그저 배경이 되어버립니다. 그뿐만인가요. 내가 어디쯤에 와 있는지, 지금 내가 너무 숨이 차지는 않는지, 이 속도는 나에게 적당한지 생각할 여유도 없습니다. 그저 멈추지 않고 달리는 일만이 중요해지지요. 나의 상황을 조망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떨어져 나와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아무리 열심히 달려도 일이 잘 풀리지 않는다면, 그 때가 잠시 트랙에서 걸어나와 숨을 고를 때라는 신호일지 모릅니다.

직업과 인격의 상관관계

직업과 인격의 상관관계

직업을 선택할 때 자신의 인격을 알아두어야 하는 중요한 이유는 직업이 ‘일의 행복’과 깊이 관련을 맺기 때문이다. (…) 직업과 일의 성격상 자신의 본성과는 철저히 다른 인격으로 오랜 세월 동안 생활한다면 종국에는 본래의 자신을 잃을 수도 있다.

playlife talk

안정적인 환경, 높은 급여, 워라밸... 취업이나 이직을 할 때, 이런 조건들을 따져보는 데에는 익숙합니다. 하지만 내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것을 좋아하고 잘 하는지를 기준으로 직업을 따져보는 데에는 오히려 미숙합니다. 그러다보니 갖은 노력 끝에 들어간 직장인데도, 적성과 맞지 않아 퇴사를 고민하는 경우도 왕왕 있습니다.

하루를 두고 보아도, 인생을 통틀어서도, 우리는 대부분의 시간을 일을 하며 보낼 것입니다. 그러니 일터에서 행복하지 않다면 그것만큼 좌절스러운 일도 없겠지요. 진로 선택에 앞서 나만의 기준을 분명히 해 둬야 하는 이유입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게 유리하다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게 유리하다

되도록이면 되는 방향,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하는 방향으로 고민하는 게 유리하다고 생각해요. 단순히 ‘한 번 사는 인생이니까 마음대로 살자’가 아니에요. 한 개인에게 유리하거나 불리한 선택이 있다면 결국 유리한 쪽으로 가는 게 자연스럽겠죠.

playlife talk

사람이 어떻게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살아. 우리가 수도 없이 들은 말이죠. 그런데 하고 싶은 일을 하라니, 그 무슨 사치스러운 말인가 싶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사실은 반대였는지도 모르겠어요. 하고 싶은 일을 택하는 건 오히려 내게 유리한 방식을 찾아내는 전략적 선택일 수도 있다는 겁니다. 그렇잖아요. 하고 싶은 일을 더 잘 하기 위해 고민하는 데 에너지를 쓰는 게 효율적일까요,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해내기 위해 에너지를 쓰는 게 더 효과적일까요?

나를 거절하지 않는 방법

나를 거절하지 않는 방법

모두들 거절당하는 데 익숙해지면서 한 가지를 잊고 있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나 자신을 거절하고 있다는 거다. 특히 내 욕구,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거절한다. 난 다른 이에게도 거절당하는데 내 자신까지 거절해야 할까? 우리 삶의 목표는 무엇일까? 가족의 행복, 중요하다. 인류의 평화, 역시 중요하다. 하지만 내 자신의 행복도 마찬가지로 중요하다. 그러면 나를 거절하지 않는 방법은 뭐가 있을까? 내가 생각하는 방법은, 또다른 나의 캐릭터를 만드는 거다. 요즘엔 이걸 N잡러라고도 한다. 부캐라는 건 다른 이들이 봤을 때 ‘오, 이 사람은 저게 부캐구나!’라고 이야기할 순 있지만 내 스스로 미리 정하지 않고 꾸준히 하면 된다. 시간에 스며들다보면 나는 여러 캐릭터를 가지고 있을 테니까.

playlife talk

해야만 하는 일들에 떠밀려 하고 싶은 일은 항상 뒷전으로 밀어두었다면, 나 자신을 거절하는 데 익숙해진 탓입니다. 내 욕구를 실현하는 데에 꼭 거창한 다짐이나 전면적인 진로 변경이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내 욕구를 거절하는 데 익숙해진 상태라면 아마 하고 싶은 일이 무언지부터 고민이겠지요. 전부 다 정해둘 필요도 없습니다. 그저 일상에 스며들 정도로 꾸준히 해 나가기만 하면 됩니다.

자기다운 일은 의미 있는 삶의 조건이다

자기다운 일은 의미 있는 삶의 조건이다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이 자기가 누구인지를 드러낸다고 느낄 때, 인간은 의미를 경험한다. 일이 잘되면 기분이 좋지만, 그 일이 자기다운 일이면 의미가 경험된다. 우리가 성공, 성취, 효용, 효율 등 무엇을 이루는 것에만 집착하게 되면 순간적인 기분의 행복을 누릴지는 모르지만, 의미 있는 삶을 경험할 가능성은 줄어든다. 의미 있는 삶이란 자기다움의 삶이다.

playlife talk

소명이라고 한다면 너무 거창한 말일까요. 그러나 누구나 자신의 일에서 어떤 조그마한 의미라도 감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떤 일을 잘 하는 것은 성취감을 주지만, 그것만으로 내가 가치있는 존재라고 느끼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이 때의 의미는 개인적이어야 합니다. 사회가 중요하다고 여기는 의미가 아니라, 나에게 중요한 의미, 철저히 주관적인 의미여야 하지요. 보통 의미는 크고 무거운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다르게, 그런 의미는 일상적이고 평범할 수도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작은 도움을 주는 것, 사람들의 소소한 불편을 해결하는 것, 배우고 성장하는 이를 지켜봐 주는 것... 무엇이든, 나를 썩 괜찮은 사람이라고 느낄 수 있게 하는 그 모든 의미들 말이에요.

이 길이 내 길일까? 의심이 들 때

조금 조금씩 나를 갉아먹는 질문 같은 건, ‘이 길이 내 길일까?’ 이 질문은 사실 답도 없고, 답을 찾기까지 좀 시간을 투자하고 바쳐야 하는 것 같아요. (그럼 그 답을 내리기까지는 15년 정도…) 저는 한 15년 차 되니까 내 길이 맞을까라는 의심까지 할 필요가 없어졌어요. 이만큼 했으면 이 길이 내 길이지 (웃음) 라는 생각도 있었고, 실은 스스로 이제 이 전체 업계에서 나만 할 수 있는 게 보인다, 나라는 사람이 갖고 있는 강점 같은 게 있긴 있다, 라는 주제 파악이 그 때 쯤 된 거죠.

playlife talk

일을 하다 보면 이 길이 내 길이 맞을까, 라는 질문은 누구에게나 찾아옵니다. 명확한 답은 없겠지만, 한 가지 만큼은 분명합니다. 시간을 들이지 않고서는 답을 낼 수 없는 질문이라는 것이지요. 지금 당장 답이 나오지 않는다고 해서 잘못된 게 아니라는 뜻입니다. 충분한 시간과 경험, 헌신만이 판가름을 내어줄 겁니다. 내 길을 찾는 데에 그만큼의 시간을 투자하지 않는다면 그것 또한 잘못된 길로 들어서기 쉬운 것 아닐까요. 그만큼의 시간이 이미 그 길을 내 길로 만들어 주는지도 모르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