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한정된 에너지를 고민하는 데 쓰는 대신 실행하는 데 더 많이 사용하면 원래의 목적이었던 ‘실행’에 더 충실할 수 있고, 실행하면서 생기는 새로운 문제들을 더 잘 처리할 수 있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고민으로 최적의 답을 찾으려는 노력보다는 고민을 잘하기 위한 방법론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건강하고 합리적이며 효율적인 고민을 위해 공간을 확보하는 방법과 고민의 문법을 깨닫고 실천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고민을 잘한다는 것은 효율적이고 빠르게 생각해서 판단을 내리고, 고민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내 마음을 최적의 상태로 만들어주는 것이다. 이는 다시 말해, 100퍼센트 완벽한 답을 찾아내려고 노력하는 것이 크게 의미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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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고 끝에 악수라는 말도 있잖아요. 고민에만 너무 많은 시간을 들이면, 내 마음이 좋은 답을 내기 어려운 상태로 나를 빠트리는 것입니다. 단지 오래, 깊이 숙고하는 것만이 고민을 잘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보다 내가 가진 에너지의 한계를 알고, 그 에너지를 고민과 실행에 각각 고르게 잘 분배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내 강연 중 하나에서 나는 연필을 꺼내 들고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그 연필을 부러뜨렸다. 그것이 삶이 우리에게 하는 일이기도 하다. 인간관계가 때때로 그렇고, 삶의 상황이 그러하기도 하고, 실패도 그렇다. 그것들은 우리를 무너뜨리고, 우리를 부러뜨린다. 때때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실수 때문에 스스로에게 너무 많은 벌을 가하고, 그래서 내면에서 부러진다. 그런 다음 나는 연필깎이를 꺼내, 부러진 연필의 나머지 절반을 깎기 시작했다. 부러졌다고 끝은 아니다. 그렇지 않은가? 그렇다, 우리는 실수를 했다. 그렇다, 우리의 약한 순간을 겪었다. 그렇다, 우리의 마음과 삶에서 미끄러졌다.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정말 중요한 것은 일어나서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살아 나가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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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실수를 하지 않았더라면, 그 실패를 겪지 않았더라면... 삶에 시련이 닥쳤을 때,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이런 생각들에 사로잡힙니다. 하지만 이는 이미 부러진 연필을 바라보며 그것이 다시 붙길 기대하는 것과 같습니다. 사건은 이미 일어났고, 우리는 그 이전으로 시간을 돌릴 방법을 알지 못합니다. 이 순간 중요한 것은 오직 부러진 연필을 다시 깎는 것입니다. 다시 일어나서 나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남을 쉽게 비판하지 않으면서 자기반성은 또 엄청 열심히 합니다. 자신을 돌아보는 건 좋지만 지나친 자기비판은 삼가는 것이 좋아요. 자신을 과소평가하게 되거나 자존감을 떨어뜨릴 수도 있기 때문이죠. ‘객관화한 자신을 조망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충분하답니다. 과도한 자기비판은 ‘자기 태만’의 한 형태로도 발전할 수 있어요. 자신을 비판함으로써 건강하지 못한 행동을 이어가는 것에 대한 당위성을 찾는 거죠. 이럴 때는 자신과 대화하는 연습을 해보는 것도 방법일 수 있어요. 스스로 묻고, 스스로 답하는 거죠. 그리고 쓰다듬어주세요. 내가, 나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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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한 사람일수록 스스로에게서 고칠 거리를 찾아내는 버릇이 들어 있지요. 잘못된 점을 바로잡는 것이니, 발전에 도움이 될까요? 꼭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나는 쓸모 없어, 또 이런 실수를 했네, 이 정도도 못 해내다니 가치가 없어. 이런 채찍질을 시작하는 순간 우리는 자신의 가능성을 과소평가하거나, 온당한 비판에도 더 방어적이 됩니다. 옳은 선택을 하기가 더 힘들어지죠. 스스로를 관리한다고 믿는 행동이, 실은 스스로를 방치하는 행위가 되는 것입니다.
습관적인 자기비판보다, 습관을 거스르는 자기연민이 더 도움이 됩니다. 부정적인 감정이 엮이지 않을수록 자신의 문제를 더 들여다보기 쉬워지니까요.
망할까 봐 두려워 아무 선택도 하지 않거나, 생각대로 되지 않은 일을 스스로 ‘실패’라 부르는 대신, 계속해 보고 싶다.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해줄 좋은 실패, 실은 좋은 경험들을. 그럼에도 좌절에서 빠져나오기 힘들 땐 ‘열린 결말’이라 생각해 보기로. 우리의 이야기는 아직 쓰이는 중이고, 살아가는 모두에게 인생은 열린 결말인 셈이니까. 이 경험이 나를 어떤 길로 이끌어갈지, 어디까지 데려갈지 지켜보는 마음으로 걷고 싶다. 덜 낙담하면서 더 씩씩하게. 결말이 정해지지 않은 한 편의 이야기 속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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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선택도 하지 않으면 실패도 없겠지만, 그 어떤 것도 달라지지 않습니다. 실패는 우리를 그 이후로 데려다 줍니다. 그 결과가 어떠하든, 우리는 실패 이전과는 다른 사람이 될 것임이 분명합니다. 그런 실패, 아니 경험들을 기꺼이 계속 감행해 보기로 합시다. 계속하기를 멈추지 않는 한,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실패는 '열린 결말'일 테니까요.
요가를 할 때는 어떤 동작이 안 된다고 하면 “너 이 동작 시작한 지 얼마나 됐어? 안 되는 건 당연한 거야. 안 되는 나를 받아들여야 하고” 라는 거예요. 그 단순한 메시지가 당시 제겐 충격으로 다가왔어요. ‘맞아, 안 되는 게 당연한데 나는 왜 못 받아들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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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되는 것이 당연합니다, 이제 막 시작했다면. 초심자의 어설픔을 자기 자신조차 용납하지 못할 때가 많지요. 못하는 자신을 견디지 못해서 그만 포기한 일도, 지레 시작조차 못해본 일들은 얼마나 많을까요. 첫 걸음마를 떼는 아이를 대견하게 바라보는 마음으로, 시작하는 자신에게도 조금 더 너그러워지세요. 그런 뒤에야 우리는 우리 자신의 더 많은 가능성과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운동이나 다이어트를 하려고 할 때마다 가장 걸림돌이 되는 것이 하나 있죠. ‘한두 번 빼먹기’입니다. (…) 연구 결과, 하루 이틀 빼먹은 것은 습관 형성 과정에 실질적 영향을 끼치지 않았습니다. 건강한 습관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행동의 반복이 필요하지만, 하루 이틀 놓쳤다고 해서 습관을 만드는 과정이 방해받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일주일 이상 손을 놓고 있으면 다시 할 가능성이 줄어들어 습관 형성에 방해가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어쩔 수 없이 하루 이틀 거르는 일이 생기더라도 포기하지 말고 공백이 길어지기 전에 다시 계획대로 실천해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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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관을 만들 때 반복이 중요하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뇌가 그 행동에 익숙해지도록 꾸준히 반복하는 게 중요하죠. 하루 이틀 정도 빼먹는다고 해서 큰 영향을 주진 않습니다. 하지만 그 때문에 낙심하고 손을 놓아버리거나, 한 두 번 누락을 용인한 것이 결국 장기적인 포기로 이어진다면 습관 형성에 실패하게 될 가능성이 큽니다. 한 번 정도는 쉬어가도 괜찮습니다. 오늘 못했으면 내일 하면 되니까요. 스스로를 몰아붙이다가 영영 손을 놓게 되는 것이 더 문제입니다. 그저 다시 하면 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종종 이런 말을 한다. “그래서 이직했는데 실수였더라고.” “결혼하자고 했는데 실수였어.” “로스쿨에 들어갔는데 실수였어.” 하지만 이 중에 진짜 실수는 없다. 실수란 안초비를 싫어하면서 안초비가 들어간 피자를 계속해서 주문하는 것이다. 실수란 파렴치한 인간인 것을 알면서도 그를 신뢰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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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대로 심사숙고한 결정이, 잘못된 결과로 이어졌다고 해서 실수라고 부르지는 맙시다. 잘못인 것을 알면서도 반복하는 것만이 실수입니다. 그 때의 우리 결정에는 분명 이유가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결정을 내릴 뿐, 결과를 통제할 수는 없습니다.
사람들은 항상 그런 사건들이 일어나면 자신의 행복도가 크게 바뀔 거라고 예측했다. 하지만 막상 그런 사건들을 경험한 사람들은 그 사건이 자신의 장기적 행복에 큰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고 답했다. 다시 말해 지금 우리가 보기에는 끔찍할 것 같고 치명타가 될 것 같은 사건들도 대개는 막상 닥치면 그렇게 큰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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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서 큰 좌절을 겪은 사람들의 행복도를 조사해 보았더니, 당장은 괴롭지만 장기적으로는 그 사건이 행복도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인간이 가진 놀라운 능력 중 하나인 '회복탄력성', 실패와 좌절로부터 회복하는 능력 때문이겠지요. 아마 우리가 지금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일도, 우리에게서 행복을 영원히 앗아가지는 못할 것입니다.
일이 잘못될 때도 모든 일이 잘될 때만큼이나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이렇게 무언가를 배울 수 있는데도, 그것을 계속 실패로 간주해야 할까? 실수를 하고 그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인간으로서 성장하고 배우는 데 꼭 필요한 부분이다. 실수에서 배우면, 경력과 관계에서 더 크게 성공할 수 있으며, 전체 삶에서도 그렇다. 실수를 무조건 피하려 하면, 목표에 도달하기 훨씬 어렵다. 자신을 추스르고 일어난 일을 살펴보면, 전진하는 데 가장 좋은 방법을 파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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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실패가 낫습니다. 적어도 실패를 통해서는 배울 것이 있을 테니까요. 그런 의미에서라면 실패가 성공보다 더 큰 의미를 가질지도 모릅니다. 성공보다 오히려 실패를 통해 배운 것이 더 많을 때도 있다는 걸, 우리는 경험을 통해 알고 있지요. 어쩌면 우리 삶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실패를 겪은 후에 그것에 대처하는 법, 그 실수를 수습하고 다시 나아가는 태도를 배우는 것이겠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책에서 한 문장을 만났다. ‘흔들리지만 가라앉지 않는다’라는 말이었다. 라틴어 원문으로는 ‘Fluctuat nec margitur’라고 한다. 그 당시에 내 심정이 아마 곧 침몰할 것 같은 난파선에 올라타고 있는 느낌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 문장 전체가 내 가슴 깊은 곳에 닻을 내렸다. 그리고 젊음의 시간 내내 큰 위안이 되었다. 그 전에는 흔들리는 것조차 용납하지 못하고 자책했지만 그 문장을 만나고 난 뒤로는 흔들리는 것을 허용할 수 있었다. 늘 제대로 길을 가야 한다고 다그쳤다면 이후로는 헤맬 수도 있고 방황할 수도 있음을 용납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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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흔들리는 중입니다. 삶이라는 여정 속에서 으레 겪어야만 하는 크고 작은 풍랑일 뿐이지요. 배가 침몰한 것도, 인생이 망한 것도 아닙니다. 배는 그리 쉽게 뒤집히지 않을 겁니다. 우리의 지난 여정이 증명하지요. 당장은 가라앉는 것 같아도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고, 지금 이 순간은 곤두박질치는 것 같아도 길게 보면 우상향 그래프를 그리고 있는 것처럼요. 흔들리지만, 가라앉지는 않을 겁니다.
나의 한정된 에너지를 고민하는 데 쓰는 대신 실행하는 데 더 많이 사용하면 원래의 목적이었던 ‘실행’에 더 충실할 수 있고, 실행하면서 생기는 새로운 문제들을 더 잘 처리할 수 있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고민으로 최적의 답을 찾으려는 노력보다는 고민을 잘하기 위한 방법론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건강하고 합리적이며 효율적인 고민을 위해 공간을 확보하는 방법과 고민의 문법을 깨닫고 실천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고민을 잘한다는 것은 효율적이고 빠르게 생각해서 판단을 내리고, 고민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내 마음을 최적의 상태로 만들어주는 것이다. 이는 다시 말해, 100퍼센트 완벽한 답을 찾아내려고 노력하는 것이 크게 의미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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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고 끝에 악수라는 말도 있잖아요. 고민에만 너무 많은 시간을 들이면, 내 마음이 좋은 답을 내기 어려운 상태로 나를 빠트리는 것입니다. 단지 오래, 깊이 숙고하는 것만이 고민을 잘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보다 내가 가진 에너지의 한계를 알고, 그 에너지를 고민과 실행에 각각 고르게 잘 분배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