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지금의 행복을 미루는 동안 저는 점점 행복이란 맛을 잃어버리겠군요. 그래서 나중에 큰 행복이 와도 그게 행복인 줄 모르고, 불쾌하게 받아들이고, 환상 속의 행복을 위해 다시 긴장과 불안감 속으로 들어가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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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오늘의 행복을 내일로 유예하는 데 익숙해져 있습니다. 대학만 가면, 취직만 하면, 승진만 하면... 아이러니한 건 오늘 견디고 버틴만큼 미래에 더 큰 행복이 주어지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고통과 인내에만 익숙해진 사람은, 응당 행복을 느낄 만한 순간에도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게 됩니다.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맛을 안다고 했던가요. 지금 여기에서 더 자주, 우리는 행복을 누려야 합니다. 오늘부터 남김없이 느껴봅시다, 행복.
옳은 일, 가치 있는 일을 지치지 않고 계속하는 힘은 어디에서 나올까? 원대한 가치나 흔들리지 않는 신념도 중요하지만 전부는 아니다. 세계를 놀라게 할 대단한 결과물도 결국 무수한 일상들이 쌓아올린 결과다. 심리학자들은 한결같이 말한다. 어떤 일을 한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은 신념과 가치지만, 하루하루를 계속 이어가게 만드는 힘은 웃음에서 나온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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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웃음을 유예하지 않습니다. 행복은 닿지 않을 내일이 아니라 오늘 여기에 있는 것이니까요. 그저 하루를 잘 살아내는 것입니다. 오늘의 하루를, 내일을 위해 포기하거나 버텨내야 하는 시간으로 여기지 않는 것입니다. 오늘 이 하루 자체로도 충만하고 온전하게 잘 보냈다고 느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심플하게 사는 것은 검소하면서도 현명하고 우아하게 살아가는 방법이다. 심플한 삶은 ‘충분하다’라는 마법과 같은 단어로 요약된다. 충분하다는 것을 개인적으로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행복의 기준도 달라진다. 모든 욕구를 충족시키려고 하는 사람에게 결코 충분함이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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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지가 많아질수록 우리는 자유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혼란스러워지곤 합니다. 수많은 콘텐츠의 홍수 속에서 고민만 하다, 정작 콘텐츠 볼 시간을 다 써 버리고 마는 우리의 모습을 떠올려 보세요. 만족하는 삶을 위해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무언가를 채우는 일이 아니라 이걸로 충분하다는 감각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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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무엇으로 행복해질까요? 행복에 대한 수많은 연구가 공통적으로 가리키는 것은 '관계'입니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보내는 충만한 시간, 나아가 공동체가 나를 지탱해줄 거라는 믿음이 행복의 열쇠였습니다. 누군가와 관계를 맺고, 유대감을 쌓는 것이 우리 삶의 질에 가장 큰 영향을 준다는 것이지요. 당신은 지금, 누구와 어떻게 연결되고 있나요?
(휴식의 한자말 중) ‘숨쉴 식(息) 자는 ‘스스로 자(自)’ 자와 ‘마음 심(心)’ 자로 되어 있습니다. 자기 마음으로 돌아온다는 거죠. 억지로 하기 싫은 걸 하는 것, 시키는 것만을 하는 게 아니라 내 마음으로 돌아와서 내가 즐겁고, 좋아하고 기쁜 활동을 하는 것, 그게 숨쉴 식(息) 자죠. 멈춤이나 쉼도 필요하지만, 사실은 채움이 필요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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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식에 대한 가장 큰 오해 중 하나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만이 휴식이라는 생각일 겁니다. 무작정 쉬는 시간을 늘린다고 삶의 활기가 채워지는 것은 아니죠. 무기력하게 늘어져 있던 시간을 잘 쉬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중요한 것은 내 마음을 충만하게 해 주는 적극적인 휴식 활동을 하는 거예요.
당신이 아무 대가 없이도 즐거웠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흙장난하는 아이처럼, 내가 그 활동 자체에 푹 빠져 몰두했던 경험을 찾아 봅시다. 그것이 바로 여러분이 마음 깊은 곳에서 바라는 진정한 휴식일 거예요.
살다 보면 어렵고 슬픈 일들이 많지만, 그래도 때때로 충만함과 만족감을 주는 행복한 일이 생긴다. 그런 행복은 오래가지 않아도 괜찮다. 잠깐이지만 아름다운 향기가 난다. 정착할 수 있는 고향이 생긴 기분, 꽃과 나무와 땅과 샘과 친구가 된 기분, 한 뼘 땅과 50여 그루 나무들과 화초와 무화과나무와 복숭아나무를 책임지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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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대단한 성취, 꿈을 이뤘을 때의 강렬한 기쁨 같은 것들로만 내 행복을 정의한다면, 우리는 영원히 불행한 상태에 머물러야 할 지도 모릅니다. 그런 것들에 내 행복을 의존하기엔 그 확률이 너무 낮지요. 아무리 강렬한 성취도 오래 지속되지 못하고요. 세계적인 문호 헤르만 헤세에게도 행복감을 주는 것은 노벨문학상 수상 같은 거대한 업적이 아니라, 오히려 스스로 오래 가꿔 온 꽃, 나무, 땅, 샘 같은 것들이었나 봅니다.
삶을 감탄사로 채우고 싶다면 내가 가진 것, 내가 누리는 것들과의 첫 만남이 내 삶에서 사라졌다고 상상해보라. 당연해 보이는 것을 놀라운 감탄사로 받아들이는 것. 행복의 비결은 거창한 데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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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후회할 때는 주로 '~하지 않았더라면' 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내가 잘 한 일에 대해서는 그런 식으로 곱씹지 않습니다. 내가 이미 이룬 것일수록, 그 일의 가치를 과소평가하게 되는 거죠. 내가 누리는 일상을 당연한 것으로 여길 수록, 삶에서 감탄할 일은 점차 줄어들 따름입니다.
앞으로는 내가 '~하지 않았더라면' 얻지 못했을 수많은 것에 대해 더 자주 생각해 봅시다. 이미 누리고 있는 행복을 발견하는 좋은 방법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문제와 걱정거리들, 고쳐야 할 것들에 주의를 집중하는 경향이 있는데 감사거리를 생각함으로써 그 주의의 방향성을 살짝 조정할 수 있습니다. 그 하루의 톤, 기분을 내가 주도해서 만들어가는 것이지요. 내게 이미 주어진 것들을 새롭게 보게 되고 의욕과 기분을 살짝 끌어올린 상태에서 하루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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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듣는 음악이 하루종일 귓전에 맴돌고, 가족과 다투며 시작한 하루는 하루종일 제대로 일이 안풀리기도 합니다. 긍정적인 마음으로 시작할 수 있다면 우리의 하루는 긍정의 영향을 온종일 받을지도 모릅니다.
바쁜 아침시간이지만 감사일기 몇 줄을 쓰기 위한 시간을 내어 보면 어떨까요?
항상 반대되는 것이 필요합니다.
어둠과 빛, 빛과 어둠. 그림에는 이 둘이 있어야만 하죠. 빛에다 빛을 더해도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어둠에 어둠을 더해도 마찬가지죠.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가끔씩 슬픔이 있어야 행복이 찾아올 때, 그걸 느낄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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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이라고 느낄 만큼 슬럼프나 좌절, 슬픔을 맛본 사람들은 오히려 그 지점에서 마음이 편안해 진다고 합니다.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이 무서웠는데, 막상 서고 보니 그냥 땅일 뿐이고, 발밑에서 느껴지는 단단함이 오히려 안도감을 주는 것입니다. 적어도 어딘가로 떨어질 걱정은 덜었으니 말입니다.
게다가 이제 2층에서도 고도를 체감하니, 아마 행복민감성이 조금 높아질지도 모릅니다.
린드 아주머니는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런 실망도 하지 않으니 다행이지, 라고 말씀하셨어요. 하지만 나는 실망하는 것보다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게 더 나쁘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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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가 두려워 꿈꾸기를 포기하면 실패감을 경험하지 않겠지만 인생이 더이상 앞으로 한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게 됩니다. 눈 앞의 불편을 피하려고 정말 중요한 것을 포기한 적은 없나요? 어떤 결정을 눈 앞에두고 고민 중이라면 생각해 봅시다. 사실은 고민할 이유가 없는 일인지도 모르니까요.
제가 지금의 행복을 미루는 동안 저는 점점 행복이란 맛을 잃어버리겠군요. 그래서 나중에 큰 행복이 와도 그게 행복인 줄 모르고, 불쾌하게 받아들이고, 환상 속의 행복을 위해 다시 긴장과 불안감 속으로 들어가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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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오늘의 행복을 내일로 유예하는 데 익숙해져 있습니다. 대학만 가면, 취직만 하면, 승진만 하면... 아이러니한 건 오늘 견디고 버틴만큼 미래에 더 큰 행복이 주어지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고통과 인내에만 익숙해진 사람은, 응당 행복을 느낄 만한 순간에도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게 됩니다.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맛을 안다고 했던가요. 지금 여기에서 더 자주, 우리는 행복을 누려야 합니다. 오늘부터 남김없이 느껴봅시다, 행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