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불안할 때 종이를 꺼내 글을 쓰라. 말은 언제나 글보다 빠르다. 게다가 마음이 급할수록 말은 더 빨라진다. 불안이란 녀석은 스피드에 편승하는 속성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자.
글은 말에 비해 속도감이 현저히 떨어지는 작업이다. 행동의 스피드가 줄어들면 생각의 속도도 조절이 된다.
playlife talk
일기쓰기를 숙제로 받은 순간부터 글쓰기는 부담스럽게 느껴진 것 같습니다. 과제, 보고서에 짓눌리면서는 더 그랬겠지요.
빈 종이에 문장을 채워넣는 일을 할 자신이 없다면, 단어부터 써보면 어떨까요? 감정의 이름을 찾아주는 것부터 시작해 봅시다.
집에서의 생활을 단단히 만들어 삶의 무게중심을 안으로 이동시키는 일은 어디로 도망치지 않아도 괜찮은, 밖에서 나를 증명받지 못해도 변치 않을 거라 믿어지는 일상을 만드는 일이었다. 요즘의 나는 적당한 책임감을 가지며 일하되 너무 무리해서 잘하려 하지 않고, 적당히 내가 먹을 만한 음식을 만들어 나눠 먹고, 산책하고, 이웃을 만나는 일상에 뿌리내리고 있다. 이런 매일 덕분에 자꾸만 다른 것에 기웃거리고 싶던 마음이 간결해졌다. 남의 삶을 덜 부러워하게 됐고, 누가 뭘 배우는지, 어떤 것을 읽는지, 늘 미어캣처럼 살피던 시선이 둔감해졌다. 불안이 줄고, 불안해서 하던 소비가 줄고, 소비가 줄어드니 경제적 걱정도 막연했던 크기에서 손에 잡히는 크기 정도로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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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도 과소비라는 게 있는 것 같습니다. 왠지 필요할 것 같아서, 다른 사람들은 다 가진 것 같아서, 실상 내가 원하는지도 잘 모르는 것들을 마음 안에 가득 쟁여둡니다. 그뿐인가요. 남들을 곁눈질하고 자신을 자책하는 데에도 마음의 용량은 쓰입니다.
밖으로만 향하던 주의를 내 안으로 거둬들이는 순간, 불필요한 마음의 소모도 줄어듭니다. 내 마음이 진실로 향하는 곳이 어느 쪽인지, 내가 나 자신에게 물어봐 주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뇌는 습관이 된 감정을 더 확대하고 강화합니다. 뇌가 ‘불안’이란 감정에 습관이 들어 있으면, 우리는 불안을 유발하는 일에 더 신경을 쓰고, 안 좋은 일이 발생하면 실제보다 훨씬 큰 걱정과 불안을 느낍니다. 오늘 내가 느낀 감정은 실제 오늘 일어난 사건들과 일치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뇌는 익숙한 감정을 어디서 다시 느낄지 주위를 살핍니다. 오늘 일어난 수많은 일 중에 그 감정에 어울리는 일을 찾아 의미를 부여하고 확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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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가 익숙한 감정이 무엇인지에 따라 우리가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도 바뀝니다. 마치 확증편향에 빠진 사람처럼, 불안한 감정의 근거가 되어줄 수 있는 사건들만을 취사선택하는 것입니다. 불안이 느껴질 때는 다시 한 번 스스로에게 물어보세요. 이 걱정은 사실인가? 걱정하는 것은 내게 얼마나 효과적인가?
‘불확실성에 대한 수용’은 모든 창의적 작업에 매우 중요하게 작용한다. 그런데도 막상 어른이 되면 불확실한 상태를 견디기 힘들어 한다. 대신 확실한 것을 추구해야 한다는 강박을 느낀다. 잘 알고 검증된 환경에서만 안정감을 느끼고, 새로운 일을 시도하기보다는 확인된 길을 가는 편을 선호한다. 하지만 ‘불확실하고 불분명하고 모순되는 상황 속’에서 우리의 숨어 있는 창조적 능력이 발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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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서 불확실성을 제거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어디 우리 삶이 계획을 세운대로만 흘러가던가요. 정답 없음, 규칙 없음, 확신 없음이야말로 삶의 기본값입니다.
이토록 불확실한 세계 속에서 단 하나 확실한 것이 있다면, 불확실성을 받아들이고 대응하는 유연함이 더 유리하다는 사실입니다. 미래를 예측할 수는 없지만, 어떤 일이 벌어지든 헤쳐나갈 수 있다는 태도는 우리를 더 나은 자신으로 인도할 테니까요.
감정에 스위치가 있다면 고민할 때마다 스위치를 꺼버리면 좋겠지만 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이럴 때는 발생과 통제를 나눠서 생각해보자. 지금 일어난 감정은 어쩔 수 없다. 이보다 일단 발생한 감정을 잘 조정하고 통제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그래야 감정이라는 큰 파도에 휩쓸리지 않을 수 있다. 나는 이것을 ‘방파제 세우기’라고 부른다. 고민에 집중하기 위해서 내 마음의 해안가에 방파제를 세우는 것이다. 그래야 먼 바다에서 밀려오는 커다란 감정의 파도가 고민의 터전을 쓸어가버리지 않을 수 있다. 그러려면 내 행동을 통제하고, 감정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 패턴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 어떤 감정을 경험하면 그 감정이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하고 감정과 뒤섞인 생각들이 내 의식을 통과하게 한다. 그러면 마치 필터에 걸러지는 것처럼 감정과 생각이 어느 정도 분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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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하다는 감정 자체가 더 큰 불안을 유발하기도 합니다. 불안해 하지 마, 라고 자신에게 강요해봤자 더 불안해지는 것처럼요. 첫번째 불안은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뒤이은 불안은 불필요하고 실체 없는 감정입니다.
이럴 때는 발생과 통제를 나누어 생각하는 게 도움이 됩니다. 이미 발생한 것, 어쩔 수 없는 감정은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생각과 행동에 더 집중합니다. 그러려면 내가 지금 왜 이런 기분이 드는 것인지 정확히 알고, 스스로의 자동적인 행동 패턴을 파악하고 있어야 하죠. 의식이라는 필터를 통해 감정에 거리를 두고 바라봅니다. 그러면 감정이 더 큰 파도로 몰아치지 않고, 2차 3차 연쇄적으로 발생하는 감정을 걸러낼 수 있게 됩니다. 방파제의 역할이 그러한 것처럼요.
저한테는 확실히 효과가 있었어요. 긍정과 부정의 단계를 폭망부터 대박까지 일곱 개로 칸을 나눠 부정과 긍정 구간으로 결과를 구체적으로 적는 거죠. 실은 제가 원래 아주 부정적이고 불안수치가 높은 사람이라 그걸 해소해보고자 만든 방법인데, 써보면 부정이나 긍정의 끝에 해당하는 일은 실제 일어날 확률이 거의 없어요. 극단적인 상태에 관해 고민할 필요가 없다는 거죠. 예를 들어 공무원 시험을 준비한다면 가장 극단적인 부정은 ‘영원한 불합격’이에요. 가장 대박은 ‘단번에 합격’이고요. 이 둘은 사실 거의 일어나지 않아요. 그런데 우린 마치 그럴 것처럼 걱정하고 불안해하죠. 결국 가운데 놓인 타협 칸의 좌우에서 결과가 나오거든요. 운동을 하면 근육이 붙듯이 생각도 그래요. 극단적인 생각으로 자신을 괴롭힐 필요가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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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그 어떤 사건도 상상하는 만큼의 행복을 주지 못하고, 걱정하는 만큼의 불행을 가져오지 않는다.” 프랑스의 사상가 라 로시푸코의 말입니다. 우리의 불안은 실제 사건보다는 먼저 앞질러 가는 생각에서 촉발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대박'이 나기도 쉽지 않겠지만, 그렇다고 '폭망'할 확률도 극히 낮습니다. 최악의 경우를 미리 상상하며 현재를 불안에 빠트릴 이유가 없는 이유입니다.
막연한 불안이 올라올 때는 최악부터 최고까지, 상상하는 모든 경우의 수를 일단 적어보세요. 눈으로 확인하면 생각의 실체는 더욱 분명해지고, 불안은 작아집니다.
미래를 생각 않고 사는 듯 보이는 나를 향해 사람들은 종종 ‘불안하지 않냐’고 묻는다. 재수 공부를 하지 않고 도서관에 다녔던 그때와 비교하자면, 지금 나는 거의 불안하지 않다. 그렇게 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변화는 ‘내게 안정적인 삶’이 무엇인지 스스로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알고, 그대로 행하는 삶이다. 또 내 삶에 닥친 문제를 헤쳐나갈 힘이 있는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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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하다는 감정은 생존을 위해 발달시켜 온 인간의 능력입니다. 하지만 대체로 불안하지 않아도 될 환경 속에서 거짓 경보를 자주 울려대는 감정이기도 하지요. 나의 불안을 자극하는 수많은 이유들을 직시해 봅시다. 정말로 내가 불안할 만한 이유가 있는 것과, 단지 불편할 뿐인 것을 가려내 보는 거지요. 막연히 불안 속에 잠겨 있을 때보다, 훨씬 더 감당할 만한 크기의 불안이 될 것입니다. 내게 진정으로 중요한 것들이 무엇인지를 가려낼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불안에 맞서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따라서 열심히 산다는 건 진취적인 행동이 아니라 철저히 방어적인 행동이었다. 열심의 증거를 강박적으로 쌓고 그 증거로 쌓은 옹벽 뒤에서 안도감을 느끼려 하지만, 불안을 두려워하는 사람의 눈에는 자꾸만 증거의 탑이 위태롭고 빈약하게만 보인다. 미래의 성공을 보장할 법한 조금 더 견고하고 확실한 증거를 찾고자 혈안이 된다. 그러다 보면 더욱 자신을 강하게 몰아세우는 쳇바퀴에서 내릴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멈춤은 곧 실패를 의미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것은 더 고난도의 도전이라기보다는 더욱 철저한 방식의 회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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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고의 착각'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인내하고 고생한 만큼 보상이 올 것이라는 맹목적인 믿음을 지칭하는 용어인데요. 공부하는 수험생 자녀를 둔 부모가 덩달아 일상을 포기하는 것이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노력 없이 이룰 수 있는 성공은 없겠지만, 엉뚱하게 스스로를 괴롭히며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열심히 산다는 그 자체에만 몰두하면, 왜 열심히 살아야 하는지, 그렇게 열심히 살아서 닿고자 한 목적지가 어디였는지도 모른 채로 달리는 상태가 됩니다.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지, 그 질문에 답하는 것이 어려워서 열심히 살면 뭐라도 되겠지 생각했는지도 모릅니다. 그 질문이 가장 중요한 것인데도 말이에요.
전화를 해야 할 때, 거절하면 어떻게 하나 걱정해본 경험이 있는가?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조금 이따가 걸지, 뭐.’ 하고 시간을 미루거나 아니면 계속해서 일을 만들어 ‘도저히 전화를 걸 만한 시간이 없었어.’라고 회피해버린 적은 없는가? 이러한 것들은 걱정과 관련된 전형적인 행동반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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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으로 드러난 문제는 전화를 미루는 작은 행동이지만, 사실 진짜 문제는 거절에 대한 불안일 수 있습니다. 그 부분을 인지하고 직면할 때 우리는 진정한 원인을 가려낼 수 있을 것입니다. 일이 많아서 전화를 걸지 못했는지, 아니면 무의식 중의 불안감이 전화 걸기를 미루게 했는지.
거절하기와 요구하기는 걱정이 지나친 사람들이 가장 피하고 싶어하는 행동이다. 그러나 자꾸 피하다 보면 결국 다른 사람의 일에 쓸데없이 에너지를 쏟으며 자신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일이 아닌 타인이 원하는 일을 하느라 시간을 낭비하게 된다. 대중 앞에서 말하기를 어려워 하고, 자신이 필요하거나 원하는 것을 요구하지 못하고, 타인의 요청을 거절하지 못하는 행동은 모두 걱정에서 도망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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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독 타인의 요구를 거절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요청을 거절했을 때 돌아올 반응이 두렵거나, 나의 요구를 관철하려고 할 때 생길 갈등을 걱정하기 때문이지요. 타인의 요청에 끌려다니기만 한다면 나의 욕구는 뒷전이 되고 맙니다. 적절한 선 긋기는 다른 사람을 실망시키는 일이 아니라, 나 자신을 돕는 일입니다.
마음이 불안할 때 종이를 꺼내 글을 쓰라. 말은 언제나 글보다 빠르다. 게다가 마음이 급할수록 말은 더 빨라진다. 불안이란 녀석은 스피드에 편승하는 속성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자.
글은 말에 비해 속도감이 현저히 떨어지는 작업이다. 행동의 스피드가 줄어들면 생각의 속도도 조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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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쓰기를 숙제로 받은 순간부터 글쓰기는 부담스럽게 느껴진 것 같습니다. 과제, 보고서에 짓눌리면서는 더 그랬겠지요.
빈 종이에 문장을 채워넣는 일을 할 자신이 없다면, 단어부터 써보면 어떨까요? 감정의 이름을 찾아주는 것부터 시작해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