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때로 걱정은 무의식적으로 발생하기 때문에, 불안의 정도가 심해질 때까지 아예 인식하지 못하기도 한다. 심지어 실제로는 걱정을 하고 있으면서 오히려 계획을 세우거나 문제를 해결하는 중이라고 믿는 경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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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이 높은 사람들은 때때로 걱정과 계획을 혼동하기도 한다는 것이지요. 혹시 일어날 지 모르는 변수에 대처하기 위한 계획을 세운다고 믿지만, 사실은 극히 일어날 확률이 적은 일을 걱정하고 있을 뿐인 것처럼요. 걱정과 계획을 구분하는 법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그 계획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되는가? 실제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착수하기보다 계획 세우기만을 반복하며 미루고 있는 것은 아닌가?
걱정에 시달리는 사람들은 자신이 맡은 임무를 체계적으로 분리하여 일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낀다. 그렇기 때문에 머릿속으로 목표만 떠올려도 불안이 동반된, 걱정이라는 형태의 심리적 압박을 느끼는 것이다. 또한 시간을 분배하고 조정하는 데 매우 미숙하기 때문에 분명한 계획을 세웠는데도 이를 제대로 이행하지 못한다. 사람들이 만성적인 걱정에 시달리는 마지막 이유는, 타인에게 ‘아니’라고 거절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며 책임을 위임하거나 남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데 많은 심적 부담을 느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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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이 많은 사람들은 1) 일을 체계적으로 분리하지 못하고 2) 시간 관리를 어려워하며 3) 거절을 두려워한다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걱정이 많고 불안이 높은 사람일수록, 이 세 가지를 꾸준히 연습하면 걱정을 줄일 수 있다는 의미도 될 것입니다.
나는 이메일에 대한 집착도 끊고 이 워드 문서에서도 잠시 물러났다. 영상으로 편안한 수면 요가를 따라하고, 건강하게 먹고, 최대한 연결을 끊었다. 강아지와 함께 바닷가로 긴 산책도 나갔다. 그러고는 깨달았다. 아무 의미 없어. 그만 좀 전전긍긍하자. 내가 걱정하는 그 어떤 문제도 내 삶의 무언가를 뿌리째 흔들지는 못할 거라고. 나는 여전히 강아지와 산책을 나갈 수 있을 테고, 바다를 바라볼 수 있을 거라고. 그리고 여전히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거라고. 불안이 물러났다. 마치 집중 수사망에 걸린 범죄자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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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요하게 따라다니는 불안을 물러나게 하려면, 내가 스스로 먼저 한 발 물러나야 합니다. 아직 오지 않은 미래, 벌어지지 않은 문제에 대한 비현실적인 상상들로부터. 나쁜 일은 생길 수도, 생기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우리가 그 불안한 예측에 휩싸이는 순간 그것은 이미 내 현실 안으로 들어와 문제가 되어 버립니다. 언젠가 우리는 실패하고, 좌절을 겪고, 불행을 맞닥뜨릴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우리의 인생을 완전히 망쳐버릴 것인지는 아직 알 수 없는 것입니다. 걱정으로부터 내가 한 발짝 물러나 그저 바라보는 순간, 불안은 우리로부터 물러날 것입니다.
스트레스 피하기는 예기불안을 극복하는 올바른 방법이 아니라 오히려 또 다른 형태의 회피가 될 뿐이다. 그리고 회피는 유연한 삶을 살아가고 도전에 직면해 자신감을 키울 기회를 제한한다. 다시 말해 모든 형태의 불안은 스트레스에 민감한 영향을 받지만 스트레스가 원인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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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한 사람들은 자신을 불안하게 만드는 자극들을 피하고 싶어합니다.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새로운 도전 같은 것들이요. 겁이 많은 자신에게는 과한 일이라고 생각하지요. 그러나 이는 도전을 통해 성공의 경험을 쌓고,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쌓는 기회를 스스로에게서 빼앗는 것과 같습니다. 불안에 맞설 힘을 기르는 게 아니라, 불안의 요소를 미리 제거해 버린 것입니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스트레스 상황을 요리조리 피해 다니며 살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예기불안은 가만히 내버려두었을 때 오히려 진정된다. 만약 그것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거나 해결하고자 애를 쓰면, 즉 계속 반추하거나 회피하면 예기불안은 더욱 심해진다. 빨리 진정해야 한다는 절박감과 압박을 느끼는 가운데 예기불안을 가라앉히려고 열심히 노력하는 것은 마치 “빨리 잠들지 않으면 가만 두지 않겠어”라고 자신에게 소리를 지르는 것만큼이나 역설적이고 불합리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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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장하지 말아야지, 생각한다고 긴장이 사라지는 일은 없습니다. 오히려 긴장된 자신을 지나치게 의식해 더 긴장하게 되는 결과만 불러올 뿐이죠. 불안도 그렇습니다. 감정은 생각으로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한 걸음 뒤로 물러나서, 그저 지금의 불안을 수용해 주는 것이 오히려 더 빠르게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입니다. '내가 지금 불안해 하는구나. 그럴 수 있어.' 불안은 지금의 일시적인 감정일 뿐, 나 자신이 아닙니다. 감정과 나를 분리해서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탁월한 인간은 항상 ‘다음’이나 ‘너머’를 꿈꾼다. ‘다음’이나 ‘너머’는 아직 알려져 있지 않다. 그래서 불안할 수밖에 없다. 그 불안이 힘들어서 편안함을 선택하면, 절대로 ‘다음’이나 ‘너머’를 경험할 수 없다. 이때 불안을 감당하면서 무엇인가를 감행하는 것이 ‘용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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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도전은 언제나 두렵습니다. 실패하면 다시 시작하면 된다는 말은 나이가 한 살씩 먹을수록 남일이 됩니다. 무언가를 완전히 새롭게 시작하기에는 너무 늦어버린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은 대학졸업을 앞두고도, 사회초년생 때도 했습니다. 아마 4~50대에는 '이젠 정말 늦었다' 생각할지 모릅니다. 적당한 때는 언제일까요? 아마 용기를 내지 못하는 사람에게 '지금'은 언제나 너무 늦은 때일 것입니다.
불안은 잘 이용하면 인간이 계속 무언가를 하게 만들어주는 아주 좋은 에너지가 되기도 한다는 거에요. 그런데 누구는 이 불안의 노예가 되기도 한다는 거죠. 불안에 매번 져서 불안이 예상되는 것만으로도 또 불안해져서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들이 있지요.
불안한 사람들은 모호하고 막막하니까 불안한 거에요. 불안할 때는 일을 잘게 쪼개야 하는 거예요. 하나씩 해치울 때 마다 에너지가 생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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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감정은 다 쓸모가 있다고 합니다. 불안을 느끼지 않았다면 아마 지금보다 더 많은 사고를 쳤겠지요. 그리고 지금보다 덜 노력했을 것이고요. 불안이 알아서 적당히 느껴지면 좋을텐데, 그 조절이 정말 어렵습니다.
잘 해내고 싶은 마음이 클 수록 불안은 비례해서 커지는 것 같습니다. 그 마음을 버리려는 노력도 불안을 다루는 방법이 되지 않을까요?
특정한 상황에서 불안감을 느끼는 것은 그 상황에 대처하는 능력이 미숙하기 때문이다. 이럴 때는 누구나 예민해질 수밖에 없다. 자신의 무기가 전쟁에서 이길 만큼 완벽하지 못하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불안감을 호소하는 사람들에게 무턱대고 자신감을 가지라고 충고하지 않는다.
대신 위기 상황에 대비해야 할 것들을 짚어보며 함께 대화를 나눈다.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에 더 불안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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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은 누구나 느끼는 보편적인 감정입니다. 세계적인 운동선수들에게 실전에서 떨지않는 비법을 물어보면 끊임없는 연습이라고 대답하는 것을 종종 듣습니다. 불안을 극복하는 가장 빠른 방법은 모르겠으나 가장 정확한 방법은 '익숙해지기'인 것이지요. 불안은 우리를 성실하게 만들어줍니다.
때때로 걱정은 무의식적으로 발생하기 때문에, 불안의 정도가 심해질 때까지 아예 인식하지 못하기도 한다. 심지어 실제로는 걱정을 하고 있으면서 오히려 계획을 세우거나 문제를 해결하는 중이라고 믿는 경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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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이 높은 사람들은 때때로 걱정과 계획을 혼동하기도 한다는 것이지요. 혹시 일어날 지 모르는 변수에 대처하기 위한 계획을 세운다고 믿지만, 사실은 극히 일어날 확률이 적은 일을 걱정하고 있을 뿐인 것처럼요. 걱정과 계획을 구분하는 법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그 계획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되는가? 실제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착수하기보다 계획 세우기만을 반복하며 미루고 있는 것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