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는 언어로 이루어진다. 관계의 언어는 크게 ‘판단의 언어’와 ‘헤아림의 언어’로 나뉜다. 전자의 기반은 마음읽기, 후자의 기반은 마음 헤아리기다. 마음읽기는 판단적이고 자기보호가 우선인 반면 마음 헤아리기는 비판단적이고 상호교류가 중요하다. 판단의 언어는 딱딱하고 차갑고 닫혀 있다. 그에 비해 헤아림의 언어는 부드럽고 따뜻하고 열려 있다.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듣는 사람이 이렇게 느껴야 한다. 마음 헤아리기가 발달하면 말투도 달라진다. 헤아림의 말은 타고난 재능이 아니다. 수많은 헤아림의 상호작용이 자연스럽게 내면화된 결과이거나 관계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에서 비롯된 노력의 산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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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의 마음을 다 안다고 생각하면, 더 이상 궁금하거나 물어보지 않을 것입니다. 당신은 지금 이럴 것이다, 짐작만으로 결론을 내리고 대화하겠죠. 이것은 마음읽기입니다. 판단이 끝난 상태죠. 하지만 '나는 아직 상대의 마음을 모른다'고 생각하면, 다시 한 번 물어보게 될 것입니다. 상대의 의사를 궁금해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이 개입됩니다. 이것이 '마음 헤아리기'입니다. 앞서 판단하지 않는 자세죠.
판단하지 않는 게 가능하냐, 의문을 가질 수 있겠습니다. 판단은 부지불식간에 떠오르는 생각이니까요. 말 그대로 판단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잠시 유보하는 것입니다. 판단이 기정사실화되기 전에, 이것은 나만의 판단이라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이지요. 그러면 다른 시나리오에도 열려 있게 됩니다. 그렇게 오해 대신 이해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생깁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다른 사람들과 엮일 수밖에 없다. 이렇게 맺어진 관계는 좋을 수도 있지만, 숨통을 조이는 올가미가 될 수도 있다. 어쩌면 우리는 다시 숨을 쉬기 위해 매듭을 쥔 손을 풀어야 할지도 모른다. 우리가 당기면 매듭은 풀어지지 않을 테니까. 때로는 기억을 더듬어 매듭진 부분을 섬세하게 찾아봐야 할지도 모른다. 분명한 건, 매듭으로부터 도망가는 것은 정답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우리가 도망치려고 애쓸수록, 매듭은 더 우리를 조여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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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누구나 지독하게 뒤엉킨 관계들을 한둘쯤 숨기고 있습니다. 마구 꼬이고 뒤틀려서 도대체 어디서부터 손대야 할지 엄두도 나지 않는 관계 말이지요. 켜켜이 쌓인 문제들을 다시 들추어낼 자신도 없고, 숱하게 상처를 주고받으며 어느 순간 체념해 버렸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회피는 답이 아니라고 합니다. 꼬여버린 매듭에서 달아나려 할수록, 매듭은 우리를 옥죄기만 할 뿐이니까요. 해결되지 않은 관계의 과제는 언제고 불쑥 튀어나와 우리를 다시 잡아챌 것입니다. 관계의 줄을 가까이 당기기만 하는 일 또한 실패로 끝날 것입니다. 매듭이 더 단단하게 조여들 뿐이겠지요. 매듭을 풀 때의 마음가짐을 기억하시지요. 성급하지 않게, 인내를 가지고 한 올 한 올을 풀어내야 합니다.
캐나다 캘거리 대학교의 이기범 교수가 연구를 통해 인간관계의 진리를 결정지어 주었습니다. 그것은 그 사람이 나와 성향이 같은지 다른지가 아니라, 진실한가 진실하지 않은가를 살펴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심리학에서 ‘진실하다’는 ‘진정성이 있다’는 뜻이고, 이것은 곧 상대에게 자신의 진짜 의도를 숨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진짜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다는 말이지요. 사실 나머지는 나와 달라도 무방합니다. 그러니 누군가와 친해지고 싶다면 나의 의도를 솔직하게 얘기해야 합니다. 그리고 나이가 들수록 이를 솔직하면서도 주책스럽지 않게 이야기할 수 있는 사회적 품위가 필요하겠지요. 저는 이 두 가지가 우리가 나이를 먹어 가면서 지녀야 할 최고의 사회적 능력이자 가장 중요한 능력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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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잘 맞는 사람이 아니라, 진솔한 사람이 좋은 친구의 조건이라는 것입니다. 끊임없이 상대의 의도를 재야 하는 관계는 피로할 것이고, 서로에게 솔직할 수 없다면 갈등을 적절하게 해결하기도 어렵겠지요. 좋은 친구를 곁에 두려면, 나부터 진솔한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더불어 주책이나 무례를 솔직함으로 착각하지 않는 지혜도 필수입니다.
또 다른 고전적인 심리학 연구에서는 대학원생들의 컴퓨터 화면에 지도교수의 사진이 잠깐 스쳐 지나도록 했다. 그 뒤 자신의 연구 아이디어에 대해 생각해보고, 그것이 얼마나 훌륭한지 스스로 평가하라고 했다. 교수의 사진을 본 대학원생들은 사진을 보지 않은 동료들보다 자기 아이디어를 더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누군가 위에서 자신을 평가한다는 시선이 느껴지면, 인간은 본능적으로 더 긴장하고 위축하게 된다. 이를 통찰한 알베르 카뮈는 이런 말을 남겼다.
“행복해지려면 다른 사람을 지나치게 신경 쓰지 마라 To be happy, we must not be too concerned of 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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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자면 타인의 시선에 많이 좌우될수록, 행복감은 더 줄어든다는 것입니다. 남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저 사람이 싫어하진 않을까를 자주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불행하게 느낄 확률이 더 높습니다.
스스로는 좋다고 생각했던 것도, 다들 별로라고 생각하면 더 이상 만족스럽게 느껴지지 않지요. 상황은 그대로인데도요.
때로는 남의 말에 적당히 신경을 끌 수 있어야 덜 불행합니다. 나만의 줏대를 지킬 줄 알아야 더 행복합니다.
거절하기와 요구하기는 걱정이 지나친 사람들이 가장 피하고 싶어하는 행동이다. 그러나 자꾸 피하다 보면 결국 다른 사람의 일에 쓸데없이 에너지를 쏟으며 자신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일이 아닌 타인이 원하는 일을 하느라 시간을 낭비하게 된다. 대중 앞에서 말하기를 어려워 하고, 자신이 필요하거나 원하는 것을 요구하지 못하고, 타인의 요청을 거절하지 못하는 행동은 모두 걱정에서 도망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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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독 타인의 요구를 거절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요청을 거절했을 때 돌아올 반응이 두렵거나, 나의 요구를 관철하려고 할 때 생길 갈등을 걱정하기 때문이지요. 타인의 요청에 끌려다니기만 한다면 나의 욕구는 뒷전이 되고 맙니다. 적절한 선 긋기는 다른 사람을 실망시키는 일이 아니라, 나 자신을 돕는 일입니다.
있는 그대로 말하기는 주변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 자신의 약점을 서슴없이 드러낼 때 특히 그렇다. 이는 반직관적이다. 우리는 자신의 바람직하지 못한 면을 드러내면 사람들이 떠나갈 거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내 성격적 결함이나 일탈 행위를 알면 거리를 둔다는 게 논리적으로는 타당해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는 반대다. 솔직할수록 사람들은 더 가까이 다가온다. 당신의 엉망인 모습을 통해 자신의 약점과 됨됨이를 돌아보고 의심, 두려움, 나약함이 자신만의 약점이 아님을 알게 되면 안심하고 마음의 문을 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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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약점은 최대한 숨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의 가장 좋은 모습, 최고의 순간만을 선별해 소셜 미디어에 전시하는 데 익숙해졌지요. 하지만 그러는 동안,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은 점점 존재할 자리를 잃고 있습니다. 겉으로 보여지는 자신과 감춰진 자신과의 괴리에서 더 큰 좌절감을 느끼기도 하고요. 타인에게 잘 보이려는 이 모든 노력이 다 오히려 반대의 효과를 낳고 있다면요?
진실에 더 가까운 것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내보이는 사람에게 우리는 공감과 인간미를 느낀다는 사실일 겁니다. 인간은 모두 자기 자신의 결함과 문제를 품고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지요. 솔직할수록 우리는 서로 더 가까워집니다. 타인뿐만 아니라 나 자신과도요.
많은 사람이 관찰자가 내리는 평가에 연연하면서 그들의 눈높이에 나를 끼워 맞추려고 한다. 제3자가 내리는 평가를 자신에 대한 객관적 평가로 받아들이고는 의문을 갖지 않는다. 이렇게 평생 관찰자 시점에 맞춘 인생을 살다 보면 주체로서의 나는 없어지고 객체로서의 나만 남게 된다. 내 삶의 기준과 의미와 목적이 내가 아닌 제3자가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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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자의 평가는 그저 그 한 사람의 평가일 뿐입니다. 틀릴 수도 있고, 바뀔 수도 있는 것이에요. 관찰자가 누구냐에 따라서도 달라지지요. 그러니 타인의 시선에 연연할수록 삶의 기준이 휘청일 수밖에 없습니다. 시점을 바꿔 봅시다. 3인칭 관찰자 말고,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요. 내 삶은 내가 주인공이 되어 살아가야 하지요. 중요하지 않은 사람은 내 삶의 서사에서 내보내세요. 그저 '행인 1'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는 작가는 없습니다.
만약 아이가 세 살이 넘었는데도 혼자 있는 능력이 발달하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 누군가를 자신의 옆에 두기 위해서 자기가 아닌 상대에게 집중한다. 심한 경우 상대의 관심을 끌려고 ‘거짓 자아’를 형성한다. 여기서 말하는 혼자 있는 능력이란 혼자 있는 시간을 잘 견디는 능력이 아니라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길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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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혼자서도 즐거울 수 있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혼자가 괴로운 사람은 어떻게든 홀로 남지 않기 위해 타인에게 자신을 맞추려고 노력하겠지요. 다만 혼자도 잘 지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관계를 필요로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관계를 더 잘 맺기 위한 방법이지요. 혼자를 견디지 못해서 타인을 필요로 하는 사람은, 관계맺기 자체에만 몰두하느라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잃을 것입니다. 반대로 혼자서도 잘 지낼 수 있는 사람은 누구와도 잘 지낼 수 있습니다.
자기주장 훈련 전문가인 허버트 펜스터하임은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정도가 자존감의 정도를 결정한다”라고 말했다. 놀라운 사실은 자기표현을 잘할수록 다른 사람들 또한 당신을 좋아한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자기표현을 해서 많은 것을 잃을까 봐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정말이다. 게다가 가장 좋은 점은 자기다운 삶을 살게 된다는 사실이다. 자기표현은 단지 거절이나 부탁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자기 삶의 근원적 욕구를 찾고 이를 표현하는 것으로 확장된다. 당신은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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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주장이 강한 사람은 미움을 사기 쉽다고 생각하지요. 주장이 강해서가 아닙니다. 상황적 맥락을 읽지 못하거나, 상대의 입장을 무시하거나, 전달 방식이 적절하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죠. 자기 표현을 분명하게 하는 것과 자기 입장만 내세우는 것은 전혀 다른 것입니다.
자기 표현을 잘 하는 사람은 오히려 매력적입니다. 잘 표현할수록 자기 감정이나 욕구도 더 명확히 알게 되고요. 혼자 참느라 생기는 엉뚱한 억하심정도 쌓이지 않습니다. 혹시 내 의견을 이야기하는 게 너무 어렵게 느껴지나요? 시작은 제일 간단한 것부터 연습해 봅시다. '아무거나 괜찮아' 말고, '난 OO가 먹고 싶어!' 라고.
경전에, 코끼리가 화살을 무시해버리듯 사람들의 불손과 무례를 어느 정도는 감당해야 할 준비를 해야 한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나빠서가 아니라 그 사람들도 우리와 똑같이 자기 마음을 통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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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역시 누군가에게 의도하지 않은 무례를 범하고 때로는 의도를 가지고 상대방을 불쾌하게 만드는 말을 했으며, 불만을 일부러 조금 흘려보낸 적이 있을 것입니다. 불손하고 무례한 사람을 만날 때 자신의 크고 작은 불손과 무례를 떠올려본다면 상대방을 이해하기 조금 더 쉬워집니다. 그런 모습이 나에게도 있다고 생각하면 무례함에 맞서고 싶은 마음을 누그러뜨릴 수 있을 것입니다.
관계는 언어로 이루어진다. 관계의 언어는 크게 ‘판단의 언어’와 ‘헤아림의 언어’로 나뉜다. 전자의 기반은 마음읽기, 후자의 기반은 마음 헤아리기다. 마음읽기는 판단적이고 자기보호가 우선인 반면 마음 헤아리기는 비판단적이고 상호교류가 중요하다. 판단의 언어는 딱딱하고 차갑고 닫혀 있다. 그에 비해 헤아림의 언어는 부드럽고 따뜻하고 열려 있다.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듣는 사람이 이렇게 느껴야 한다. 마음 헤아리기가 발달하면 말투도 달라진다. 헤아림의 말은 타고난 재능이 아니다. 수많은 헤아림의 상호작용이 자연스럽게 내면화된 결과이거나 관계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에서 비롯된 노력의 산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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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의 마음을 다 안다고 생각하면, 더 이상 궁금하거나 물어보지 않을 것입니다. 당신은 지금 이럴 것이다, 짐작만으로 결론을 내리고 대화하겠죠. 이것은 마음읽기입니다. 판단이 끝난 상태죠. 하지만 '나는 아직 상대의 마음을 모른다'고 생각하면, 다시 한 번 물어보게 될 것입니다. 상대의 의사를 궁금해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이 개입됩니다. 이것이 '마음 헤아리기'입니다. 앞서 판단하지 않는 자세죠.
판단하지 않는 게 가능하냐, 의문을 가질 수 있겠습니다. 판단은 부지불식간에 떠오르는 생각이니까요. 말 그대로 판단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잠시 유보하는 것입니다. 판단이 기정사실화되기 전에, 이것은 나만의 판단이라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이지요. 그러면 다른 시나리오에도 열려 있게 됩니다. 그렇게 오해 대신 이해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생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