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크숍 참가자 인터뷰
내가 나와 함께한다면, 외롭지 않아요
인터뷰이 | 이레
대학교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있는 이레입니다. 글과 영상, 환경운동에 관심이 많습니다.
“진로 고민과
일상의 부침 속에서
나다운 하루하루를
꾸려나가기 어려웠어요.”
마음이 흔들리는 나날, 돌파구가 필요했어요
학부 졸업을 앞두고, 졸업 이후의 삶과 진로에 대한 고민 때문에 마음이 무겁고 막막했어요. 이 감정들을 잘 다루는 것도 숙제였고요. 돌파구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인스타그램에서 본 플레이라이프 워크숍을 신청했습니다. 그래도 전부터 있던 우울증과 불안장애 증상이 3년간의 약물과 상담 치료 등으로 일상생활에 무리가 없을 정도로 완화되어, 이전에는 할 수 없었던 일들을 하나둘 새롭게 시도하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거든요. 그러나 예상보다 길어진 여름, 그리고 정치 및 기후위기 관련 소식들에 계속해서 영향을 받았어요. 이런저런 일상의 부침들 속에서 무리하지 않고 나답게 하루하루 꾸려나가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첫번째 줌 모임 이후부터는 ‘자기대화일지’를 쓰는 미션을 수행해야 했어요. 평소 블로그에 일기를 올리곤 했지만 매일 ‘감정’에 대해 기록하는 것은 처음이라 조금 걱정했죠. 과연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할 수 있을지 반신반의하며 반은 호기로, 반은 큰 기대 없이 일단 시작해보았습니다.
“부정적인 감정에
익숙한 삶이었는데,
기록을 통해 발견한 ‘평온함’이
낯설고도 반가웠어요 ”
내가 나와 함께하고 있다는 느낌이 자라났어요
저는 감정을 이모티콘으로 기록할 수 있는 어플을 통해 일지를 작성했어요. 매일의 감정에 어떤 이름을 붙이는 게 적절할지 궁리하다, 문득 제가 이전보다 ‘평온함’을 더 많이 느끼고 있음을 깨달았어요. 제 상담 선생님께서 평온함이 낯설게 느껴지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고 얘기해주신 적이 있거든요. 오랫동안 우울이나 불안처럼 소위 ‘부정적인’ 감정이 익숙한 삶을 살아왔기 때문에, 이 평온함이 낯설고도 반가웠습니다. 자기대화일지를 쓰면서, 일상에서 평온함을 찬찬히 느껴보고 그 느낌에 ‘머무르는’ 기회가 생겨서 좋았습니다. 또한 마음이 평온하지 않은 날에도 의심, 두려움, 불안, 걱정 등의 감정들과 함께 나란히 앉아 가만히 머물러 있는 연습을 해볼 수 있었어요. 이건 쉽지만은 않았어요. 그래도 일단 문제가 된다고 생각한 감정들에 저항이나 기대 없이 충분히 머무르고 나면, 구름이 걷히듯 어느새 그 감정들이 물러나고 다음 날에는 또 다른 일들이 펼쳐진다는 것을 경험과 기록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자신의 감정과 마음을 되묻고 헤아리는 과정에서 ‘내가 나와 함께하고 있다는 느낌’이 자라났어요. 제가 저 자신을 바라보고, 시간을 들여 정성껏 질문하고, 인내심 있게 그 답변을 기다리는 법을 연습하면서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침대에 누워서 쉰 하루, 마트에서 식재료를 사서 간단하게 밥을 차려먹은 하루,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일정을 소화한 하루, 긴장되고 떨리는 면접을 보고 온 하루 등 모든 날들에 제가 저와 함께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어서 외롭지 않았습니다.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조금 더 생겨난 것 같아요.
진로 고민에 있어서도 보다 유연해질 수 있었습니다. 미래에 대한 걱정, 다른 사람의 시선, 크고 무거운 선택에 대한 압박에서 ‘지금의 나 자신’으로 초점을 옮겨와 부담이 적은 일부터 시도해보았어요. 졸업 논문을 쓰기 위해 읽어야 하는 텍스트의 한 단락을 읽고, 듣고 싶었던 수업을 한번 들어보고, 미뤄왔던 중요한 연락을 하고, 가고 싶었던 행사에 가보는 식으로요. 하루하루 작은 일을 해내면서, 가야 할 곳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감각이 생겨났어요. 자연스레 미래에 대한 막연한 걱정이나 불안이 조금씩 줄어들더라고요. 하루하루의 성실한 기록과 매일 제가 내린 선택이 쌓여 결국 나를 나답게 만들어준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숨 쉬는 게 편안해졌어요.
이 감각을 기억하면서
잘 헤쳐나가보려고요.”
매일 달라지는 감정과 생각을 기록으로 남겨보세요
첫 온라인 모임을 시작하면서 튜터 님이 숨을 천천히 쉬어보자고 하신 순간이 기억에 남네요. 예전에 숨을 깊게 들이쉬는 연습을 했을 때는 금방이라도 울음이 나올 것 같았고 진창에 빠져 있는 느낌이었거든요. 그런데 시간이 흘러 이번에 숨을 깊게 마셔보았을 때는 달랐어요.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일이 꼭 푹신한 안락의자에 앉은 것처럼 편안한 거예요. 이 ‘괜찮은 느낌’이 낯설기도 했지만 반갑고 기쁘기도 했어요. 설령 언젠가 다시 숨 쉬는 게 편안하지 않게 느껴지더라도, 이 감각을 기억할 수 있다면 잘 헤쳐나갈 수 있을 거란 생각도 들었습니다. 워크숍을 하고부터 숨을 의식적으로 쉬어보는 순간이 많아진 것 같아요.
자기대화일지를 쓰면서 보낸 3주는 개인적으로 무척 바쁜 기간이었어요. 새 학기의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다양한 소식과 변화를 마주하는 과정에서, 순간순간의 느낌과 생각을 기록으로 남길 수 있었다는 게 저에게는 특히 좋았습니다.
이 워크숍은 열린 마음과 호기심을 지닌 분, 그러면서 삶에 작은 돌파구로서 자기 자신을 만나보고 싶은 분들께 추천합니다. (불안이나 우울이 너무 심각할 때는 작은 의무조차 부담이 될 수 있기에 상담이나 약물 치료가 먼저 필요할 수 있어요.) 워크숍에 참여하는 동안 자기대화일지 기록 여부를 매일 사진으로 인증하기 때문에, 약간의 강제성을 환영하시는 분이라면 더욱 잘 맞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