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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의 미장센 : 내 삶을 영화로 써 본다면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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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 #위로
  • 신청기간 11/16~11/26
  • 참여기간 12/5~12/22
  • 모임일시 12/5 화요일 20:00
  • 참여방식 온라인 진행
  • 모집인원 50명
  • *이 워크숍은 무료로 진행됩니다.
 

워크숍 참가자 인터뷰

내 얘기를 시나리오로 써보면 알게 되는 것들

인터뷰이 | 스몰톡
방향치라 자주 길을 잃지만 새로 만나는 길을 오히려 즐기고, 편리함보다 거칠고 손이 많이 가는 것들을 좋아하는 아날로그형 디자이너입니다. 

“맛있는 걸 먹어도, 즐거운 것을 봐도,

아무런 감흥이 없는 상태였어요.”

표현하긴커녕 나조차 나를 외면했던 시간

2023년은 저에게 여러 모로 힘든 시기였습니다. 전혀 다른 분야의 업무를 총괄하게 되어서 부담감이 컸고, 업무량을 감당하는 것도 힘에 부쳤어요. 그런 와중에 개인적으로 슬픈 일을 겪기도 해서 많이 지쳐 있었죠. 저는 슬픔을 나누면 슬픈 사람 두 명이 된다고 생각했어요. 힘든 내색을 하면 주변 사람들에게 부정적인 감정이 전이될까 봐 표현하지 않았어요. 평일, 주말 구분없이 바쁘게 일하면서 한계치까지 달렸죠. 힘든 일을 잊으려고요. 그런데 정신없이 일하면 지나갈 줄 알았던 감정이 서서히 새어나왔어요. 잊힌 게 아니라 계속 쌓이고 있었다는 걸 뒤늦게 눈치챘죠.

 

‘내 삶을 영화로 써본다면’ 이라는 문구를 보고 내 인생은 어떤 영화로 그려질 수 있을까 상상해보게 되더라고요. 나를 들여다보는 시간이 필요했던 거죠.  원래 저는 의사표현이 확실하고 솔직했어요. 다만 사회생활을 하면서 상처 받은 관계를 여럿 겪다 보니 감정을 숨기게 된 거죠. 그렇게 하면 트러블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나를 드러내지 않고 사람과 거리를 두는 게 상처받지 않기 위한 저의 ‘생존 자원’이자 방어기제였는지도 모르겠어요. 그런 저를 보고 사람들은 ‘차분하다, 침착하다, 단단하다’고 했지만 내면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흔들리고 약해졌어요. 차분하고 잘 휩쓸리지 않는 게 아니라 나 하나도 벅차서 주변을 보지 못했고, 감정을 표현할 만큼의 에너지가 없었던 거죠. 

 

워크숍을 통해 돌아보는 과정에서 당시에는 몰랐던 감정들을 알게 되었어요. 제가 저를 잘 모르고 있었더라고요. 다른 사람들을 신경쓰면서 정작 나에게는 소홀했음을 깨달아서 미안했어요. 이전에는 스스로를 이해하지 못한 상태였으니 괴로움을 어떻게 해소해야 할지 몰라 답답하기만 했죠. 그런데 제가 왜 그랬는지 원인을 발견하고 나니 저를 위로하는 방법을 찾기가 수월해졌어요.

 

“아픔을 이겨내려 노력하는 과정에

다른 사람들도 함께 한다는 걸 느껴 

위로가 되었어요.”

내 경험을 시나리오로 쓰다 기억난 생생한 감정

첫날, OT에 참석하신 다른 분들을 보면서 나와 비슷한 분들이 많이 계시구나 하는 동질감을 느꼈어요. 나만 별난 게 아니구나 하는 마음에 안도했던 것 같아요. 사실 저를 힘들게 한 일련의 사건들은 살면서 누구나 겪는 일이라, 내가 너무 예민하다고 생각했거든요. 이것도 이겨내지 못한다는 게 무력하게 느껴졌어요. 그런데 오히려 아파보고 이겨내려 하는 지금 이 과정이야말로 살아가면서 누구나 겪는 것임을 알게 되었어요. 함께한 참여자 분들을 만난 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되더라고요.

 

처음에는 사실 제공해주신 툴킷을 받고서도 아무것도 못했어요. 툴킷 사용법을 설명해주셨지만 바로 이해가 안 됐거든요. 뭐라고 적어야 할지 막연해서 한참을 노트북 화면만 바라봤던 것 같아요. 내가 이 커리큘럼을 따라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걱정도 했어요. 조금씩 써 내려가보면서 재미있기도 했지만 ‘이렇게 하는게 맞나?’ 싶은 의구심도 들었어요. 주입식 교육에 익숙해서인지 스스로 생각해보라는 과제가 낯설었던 것 같아요.

 

매일 챗봇 알람이 뜨면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서 힘들었던 순간들을 계속 생각했어요. 그리고 그냥 적었어요. 잘하고 못하고를 생각하지 않고 일단 전부 쓰다 보니 조금씩 생각이 구체화되면서 그날의 감정이 생생해지더라구요. 그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지만 나의 감정을 알아가는 데 정말 많은 도움이 되었어요. 그리고 예상치 못한 걸 발견했죠. 제가 글쓰는 걸 좋아한다는 걸요. 이런 식으로 글을 써본 건 처음이라 어색했지만, 시나리오 쓰는 과정을 즐거워하는 제 모습에 놀랐어요. 덕분에 제가 좋아하는 것을 하나 더 알게 됐어요.

“내 감정과 행동을 관찰하며 

스스로를 이해하는 연습을 하고 있어요.”

캐릭터에 새로운 이름을 부여했을 때 획득하는 객관성

제 이야기를 시나리오로 바꾸는 과정이 참 좋았는데요, 특히 인물의 이름을 지어주었을 때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만화나 영화에서 과거나 미래를 엿볼 때 유체이탈 한 듯 하늘에 떠서 내려다보는 장면 있잖아요. 캐릭터에 이름을 부여하고 글을 쓸 때, 지금의 내가 시공간을 날아 캐릭터들을 하늘에서 관찰하는 신기한 기분이었어요. 나는 나니까 스스로에 대해 주관성을 배제하고 생각하기가 참 어렵잖아요. 그런데 새로운 이름을 지어주는 순간, 보다 객관적으로 상황이 보이더라구요.

 

시나리오화 하는 과정에서 감정을 서술할 때 행동이나 표정, 몸짓도 같이 써보라는 가이드가 있었어요. ‘화가 났다. 그래서 나는 얼굴이 붉어졌다.’ 이런 식으로요. 제가 너무 오래 감정 표현을 자제하고 살아서인지 언어적 표현 외에도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이 있다는 걸 잊고 지냈던 것 같아요. 워크숍을 통해서 그걸 다시금 깨닫게 되어서 좋았어요.

 

이제는 제가 느끼는 기분이나 감각 외에도 제 행동을 주의 깊게 살피게 되었어요. 단순히 ‘짜증나는구나’가 아니라 ‘어? 짜증을 내면서 손을 가만히 있질 못하네? 불안한가?’ 하면서 제가 느끼는 감정으로 인해 발현되는 행동을 관찰하면서 내가 어떤 심정인지 더 구체적으로 알아보려고 해요. 이 연습은 앞으로 제가 심리적으로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나 자신에 대해 잘 모르겠다거나, 스스로를 돌보는 데 소홀한 분들에게 더욱 추천하는 프로그램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