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UNSELING

나만 자리 잡지 못한 것 같아 초조해요.

올해 34살 되는 청년입니다. 저는 살면서 한 가지 일을 꾸준히 해 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원하는 일을 찾아가고 싶어 이직과 퇴사를 반복했어요. 그러다가 건설 기능 자격을 취득해, 지방의 토목 건설사에서 일을 배우기 시작했고요. 그러나 노동에 맞는 보수를 받지 못했고, 잦은 현장 야근과 육체 노동을 3년 가까이 버티다 너무 힘들어 퇴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공황과 우울 진단을 받아 6개월을 쉬었습니다.

어떻게든 이겨내고자 목조주택 제작팀에 들어갔고, 그 곳에서 좋은 사람들을 만나 손 감각도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저는 어릴 적부터 미적, 예술적 직업을 하고 싶어했어요. 탐색 도중 인테리어 페인팅 직군을 알게 되어 유명한 팀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빨리 작업하라는 압박감과 실력이 뛰어난 경력자 동료들에게 밀린다는 스트레스가 커졌어요. 완벽주의 성격 탓에 계속 해결될 때까지 붙잡고 있다 보니 동료들의 질타도 있었고요. 계속 빨리 하라는 압박, 동시에 내가 잘 따라가지 못한다는 생각에 주눅이 들고 심리적 압박이 컸어요.

공황이 다시 생겨 지금은 일을 정리하고 좌절감에 쌓여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앞으로 대체 어떤 일을 하면서 먹고 살아야 하나? 내게 맞는 일이 대체 무엇일까? 나이는 계속 먹어가는데 왜 자리를 잡지 못하지? 남들과 너무 비교가 된다… 심장에 바위 수십 개가 꽉 박혀 있는 것처럼 답답합니다.
soulmagazine 자리 잡지 못해 불안한 30대 남성
카운슬러 김혜령의 편지

안녕하세요 soulmagazine 님,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기회를 찾고 일을 해왔는데 의지와는 달리 잘 풀리지 않을 때 얼마나 좌절스럽고 막막하셨을까요. ‘심장에 바위가 박혀있는 답답함’이라는 표현에서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가늠이 되었어요.

왜 이런 기분이 들까요?

 

우울과 불안을 끌어당기는 완벽주의

soulmagazine 님께서는 스스로 완벽주의적 성향이 있다고 하셨는데요, 경험하고 계시는 것처럼 완벽주의적 특성은 불안이나 우울과 관련이 높습니다. 특히 스스로에게 높은 기준을 부과하는 ‘자기지향적 완벽주의*’ 의 태도가 스스로를 괴롭히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일에서뿐만 아니라 여러 방면에서 영향을 주고 있을 거에요. 뭐든 완벽하게 해내지 않으면 넘어갈 수 없다는 생각, 스스로가 의지박약이라는 생각 아래에 일과 자기자신에 대한 엄격한 기준이 느껴집니다. 무엇보다 ‘이 나이에 이 정도는 이뤄놨어야 한다’ 는 생각은 스스로를 불안하고 우울하게 만드는 가장 큰 비합리적인 신념이 아닌가 해요.

 

이러한 태도는 문화적인 영향, 혹은 가정환경의 영향이 있을 수 있습니다. 특히 한국은 특정 연령에 대해 그에 맞는 이상적인 모습을 강요하는 사회적인 분위기가 있으니까요.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지요. 사람들이 사는 모습은 너무나도 다양해요. 수능 시험이나 공무원 시험을 5년 넘게 도전하는 사람, 누구나 선망하는 전문직을 내려놓고 불안정한 직업에 도전하는 사람, 오래 다닌 직장을 그만두고 사업을 시작하는 사람, 마흔이 다 되어 무작정 혼자 해외로 떠나는 사람 등 자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들을 따라 저마다의 선택을 하며 살아가고 있어요. 특정 나이에 무엇을 얼마만큼 쌓았는지와는 상관없이 말이지요.

 

어떤 모습도 옳다 그르다 판단할 수 없습니다. 삶에는 정답이 없고 각자의 기준과 가치가 중요할 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덜 불안하고, 덜 우울하게 살 수 있도록 나와 일에 대한 기준을 조금 낮춰보는 것은 어떨까요. 나 자신과 일에 대해 엄격함을 조금 내려놓는 방향으로요.

 

‘자기지향적 완벽주의’란?

심리학자 플렛(Flett)과 휴잇(Hewitt)은 완벽주의를 세가지 측면 즉, ▲자기지향적 완벽주의, ▲사회적으로 부과된 완벽주의, ▲타인지향적 완벽주의로 나누었습니다. 그 중 자기지향적 완벽주의는 스스로의 행동이나 결과물에 지나치게 높은 기준을 부과하는 것을 뜻합니다.

 

현실과 꿈을 조율하는 일의 어려움

어린시절부터 미적, 예술적 직업에 대한 욕구가 있었다고 하셨어요. 아마 다른 많은 분들 또한 ‘순수하게 하고 싶은 일’과 ‘현실적으로 해야만 하는 일’ 사이에서 고민이 많으시리라 생각됩니다. 현실만 보고 밥벌이를 하자니 내가 원하는 것을 내려놓기가 쉽지 않고, 그렇다고 원하는 것을 쫓으려니 먹고사는 일도 중요한지라 꾸준히 하기가 쉽지는 않아요. 어느 쪽이든 일을 잘해서 인정도 받고 큰 보상을 받는 단계까지 가는 건 아득하게 느껴지고요.

 

결국 어떤 선택을 해도 고단하고 힘들기는 매한가지일 거에요. 힘듦의 종류가 다를 뿐이겠지요. 두 가지를 동시에 충족시킬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면 ‘어떤 것을 쫓을까’ 보다 ‘어떤 것을 포기할까’를 우선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어요. 시기와 상황마다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다를 것이고, 또 덜 중요한 것들을 제외하고 나면 내가 정말로 집중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보이기 때문입니다.

 

정답은 없습니다. 내가 어떤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지 삶의 가치관과 우선순위에 따라서 선택하면 됩니다. ‘내가 예술적인 것을 하고 싶긴 하지만 당장은 돈을 버는 게 중요해’라고 판단한다면 당분간은 그런 일자리를 찾아 몰두해 볼 수 있겠지요. 하지만 ‘난 그래도 돈만 보고 일하는 건 못할 것 같아’라고 한다면 수입이 적거나 여건이 어렵더라도 예술적인 부분을 충족시킬 수 있는 분야를 꿋꿋하게 해나가면 됩니다. 그 선택에 따르는 고충들을 기꺼이 감당해나가면 되는 거지요. 물론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닙니다. 계속해서 난관에 부딪힐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우선순위와, 포기할 수 있는 것을 명확하게 파악하고 나면 선택한 길에 대한 확신이 높아져 지속하는 힘이 더 커져있을 겁니다.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완벽주의 내려놓기 연습

근본적인 변화를 위해서는 일에서도 삶에서도 ‘이 정도는 해내야지’라는 마음을 내려놓는 연습이 필요할 것 같아요. 한 심리학 연구에서는 ‘의도적인 실수’가 완벽주의를 내려놓는 데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합니다. 의도적으로 실수를 저지른 후 그 경과를 지켜보는 것을 통해 ‘일을 그르쳐도 하늘이 무너지지는 않는다’는 것을 몸소 경험하고, 또 그 사실을 직접 확인하게 되면 스스로의 실수와 미숙함을 포용할 수 있다고 합니다.

 

자신의 행동과 그로 인해 일어나는 일들을 거리를 두고 지켜보세요. 서투름과 실수는 일과 삶에서 필수 불가결한 과정이라는 것을 천천히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말이죠. 일에서도 삶에서도 ‘이러이러하게 해야만 해’ 혹은 ‘이런 사람이 돼야만 해’ 라는 믿음과 강박을 내려놓고 여러 가지 방식으로 도전하고 시도하며 충분히 실수할 수 있도록 허용해주시기 바랍니다.

 

중요한 건, 그런 시행착오 속에서 배우고 깨닫기를 멈추지 않아야 합니다. 주변 사람들이 주는 피드백을 충분히 수용하면서 자신의 성장에 활용하세요. 다른 사람의 강점을 관찰하면서 흡수해도 좋고요. 그렇게 경험을 통해 계속해서 변화하고 나아지는 겁니다. 그 과정 자체에 가치를 둘 수 있다면 더 이상 스스로 한심해하는 완벽주의자가 아닌 천천히 성장하는 사람이 되어 있겠지요.

 

지나온 시간의 가치를 인정해주기

‘나이가 더 들기 전에 얼른 자리를 잡아야한다는 생각’ 때문에 조급해진 마음이 너무나 이해가 됩니다. 자리를 제대로 잡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 과거에 했던 일들이 몽땅 쓸모없어 보이고 가치를 잃게 되지요. 하지만 나이라는 ‘숫자’에 연연할 필요는 없습니다. 때때로 새로운 무언가를 익히고 성장하고자 할 때는 오히려 나이에 대한 감각이 방해가 될 때도 많아요.

 

나이가 주는 가장 큰 가치는 눈에 보이는 이력이 아닌 그 시간만큼의 경험입니다. 어떤 일이든 열심히 노력해 본 경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부딪혀 보았다는 사실, 시행착오를 통해 몸소 알게된 것들, 어떤 일도 쉽지 않다는 겸손한 깨달음 등은 몸과 마음에 새겨져 있지요. 사회 초년생이나, 경험치가 적은 사람들은 가질 수 없는 내적 자원이에요. 그 경험과 배움이 앞으로 어떻게 도움이 되고 연결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니 ‘나이만 먹고 자리를 잡지 못했다’는 생각 대신에 해를 더하며 쌓아온 자신의 경험의 가치를 인정해 주세요. 상처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노력한 과거의 자신을 격려해주세요.

 

무엇보다 그 시간을 통해 획득한 최고의 자산은 ‘나에 대한 정보’입니다. 여러 가지 시도와 상처 속에서 나는 어떤 사람인지 데이터가 쌓여왔기 때문이에요. ‘나는 이런 부분이 좀 약하구나’, ‘나는 이런 건 잘 포기할 수 없는 사람이구나’ ‘의외로 나는 이런 부분을 좋아하네?’ 등등 직접 뛰어들지 않았으면 알 수 없었을 나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져 있다는 뜻이지요. 그러한 정보는 앞으로 나아갈 길에 단단한 토대가 되어줄 것이고요. 물론 경험해봤기에 더 두렵다는 것도 잘 압니다. 그렇기에 나이가 들수록 도전과 시도는 더 빛나고 대단해지는 거겠지요. 부디 건투를 빕니다.

 

생각이 많아질 때, 짧고 굵은 운동 루틴

나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파도처럼 밀려올 때 부정적인 생각의 고리를 끊어내는 습관이 필요합니다. 우울하거나 불안한 생각을 알아차렸을 때 일단 멈추고 몸을 움직이세요. 몸이 무거울수록 생각이 많아지기 때문입니다. 몸을 가볍게 만들면 자연스럽게 생각의 무게도 가벼워져요. 무작정 뛰는 것도 좋고, 스트레칭도 좋지만 어느 정도 강도가 있는 동작으로 자기만의 짧은 루틴을 만드는 것을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