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UNSELING

결혼을 약속했던 사람에게 이별 통보를 받았어요

미래를 함께 하기로 약속한 사람과 이별하게 됐어요. 서로가 아닌 외부적인 요인이 원인이다 보니 마음을 정리하기가 쉽지 않네요. 저는 어떤 어려움도 함께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연인은 그게 아니었나 봅니다. 모든 생활 패턴을 연인에게 맞춰왔기에 배신감이 크고 무력감도 느껴져요. 제가 몸이 좋지 않아, 다시 누군가를 만나 연애를 하고 결혼까지 생각할 수 있을지 자신도 없고요. 일찍 결혼해서 젊은 아빠가 되고 싶었는데, 인생이 다 틀어진 것 같은 기분입니다.

*사연은 사연자가 특정되지 않도록 각색했음을 알립니다
유르디 이별의 상실감에 힘들어하고 있는 30대 남성
카운슬러 모은찬의 편지

안녕하세요. 유르디 님 모은찬 상담사입니다.
보내주신 사연을 통해 유르디 님께서 전 연인을 많이 아끼고 사랑한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자신을 상대방에게 다 맞추면서 연인의 허물까지 기꺼이 감싸안으셨지요. 그럼에도 그 끝이 이별이었다니, 배신감과 허망함을 떨쳐 내기 무척 힘드셨을 것 같습니다. 유르디 님께서는 “거지가 되어 길거리에 나앉더라도” 전 연인과 함께할 생각이었지요. 그렇기에 당시에 받은 충격은, 일반적인 이별로 인한 고통을 훨씬 넘었으리라 짐작돼요. 헤어진 후에 찾아오는 고민 또한 그만큼 깊을 수밖에요. ‘내가 이런 사람을 두 번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누군가에게 내 진심을 다 드러낸 후에 또다시 상처받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에 충분히 공감이 됩니다.

왜 이런 기분이 들까요?

누군가와 깊이 관계를 맺다 보면, 생판 남이던 사람을 자신의 삶과 마음에 서서히 들이게 됩니다. 내 생각과 감정, 일상에 상대방의 생각과 감정, 일상이 포개지며 다채로워지는데요. 만일 상대가 결혼을 약속하고 동거하며 보금자리를 함께 가꿨던 사람이라면, 삶과 마음의 굉장히 넓은 영역을 공유하고 계셨을 거예요. 그런데 이별하고 나면 내 삶에 상대방이 떨구고 간 터럭 한 올만 발견해도 괴로워지지요. 둘이 일군 일상의 텃밭에서 상대방의 흔적을 다 지우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문제는 관계가 길고 깊을수록 사소한 습관, 취미, 말투, 반사적으로 드는 생각과 느낌이 원래 나의 것이었는지 상대의 영향인지 모호해진다는 점이에요. 상대방의 흔적을 지우는 일이 곧 나의 일부를 지우는 일과 같죠. 이러한 연유로 저는 이별을 ‘작은 죽음’이라고 생각합니다.

 

평생 죽음과 임종에 대해 연구했던 스위스의 정신과 의사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는, 인간이 큰 상실을 경험할 때 겪는 감정의 변화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어요. 1) 현실을 거부하는 부정 단계, 2) ‘나한테 왜 이런 일이!’와 같이 슬픔을 표출하고 분노하는 단계, 3) ‘내가 만약 ~했더라면…’이라고 후회하며, 상실을 피하거나 만회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타협 단계, 4) 현실을 자각하며 상실로 인한 깊은 슬픔에 잠기는 우울 단계, 5) 상실을 완전히 받아들이면서 마음이 고요해지는 수용 단계.

 

우리가 이별을 수용하고 다시 앞으로 나아갈 힘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엎치락뒤치락하면서 부정, 분노, 타협, 우울 단계에 충분히 머물러봐야 합니다. 그러면 내 삶에 남아 있는 옛 사람의 흔적을 굳이 도려낼 필요 없이, 가볍게 넘기거나 감싸 안을 수 있는 날이 서서히 찾아올 거예요. 함께했던 세월을 후회하지 않을 수 있게 될 때, 자연스럽게 새로운 사람을 만나야겠다는 마음이 고개를 들 것입니다. 조급해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애도의 5단계


우리가 죽음을 포함한 모든 상실의 과정에서 보이는 다섯 단계의 반응

부정 – 분노 -타협 – 우울 – 수용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1. 다음 만남을 위한 마음의 준비

유르디 님께서 1~4단계 애도의 시간을 보내며 이별을 수용하게 되기까지 도움이 될 만한 작업을 추천해드리려 합니다. 내가 과연 다른 누군가를 만날 수 있을지 머리로 고민하는 대신에, 새로운 사람을 위한 마음의 자리를 행동으로 준비하는 것인데요. 옛 연인의 흔적을 지우고, 마음의 상처가 덧나지 않도록 스스로의 마음상태를 점검해볼 수 있습니다.

 

간단하게는 선물 받았던 물건이나 편지를 버리고, 함께 찍은 사진이나 주고받은 문자 등을 지우는 작업도 좋고요. 개인적으로는 전 연인의 취향에 맞췄던 인테리어를 유르디 님이 원하는 대로 바꿔보면서 주변 환경에 변화를 주는 것을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이와 같은 행동들은 상대를 마음 속에서 서서히 흘려보내는 하나의 의식(ritual)이 되어 정화 작용을 일으킵니다.

 

현실을 부정하고 싶은 마음, 분노, 후회, 슬픔의 감정이 촉발될지도 몰라요. 하지만 힘들더라도 이러한 감정을 또렷이 인식하며 그 감정에 충분히 머물러보는 것이, 상실을 수용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데 도움이 될 거예요. 정리되지 않은 감정들은 새로운 연인을 만날 때 알게 모르게 분출되면서 관계를 방해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예전에 무작정 묻어 뒀던 감정이 있다면 꺼내서 잘 보듬어주시기 바랍니다.

 

이별 경험에 꼭 나쁜 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이별을 밑거름 삼아 성장하기도 하지요. 유르디 님께서도 자신의 연애 스타일에 관해 더 잘 알게 되었다거나 새롭게 가치관이 정립된 부분이 있지 않으신가요? 나는 어떤 사람과 잘 맞는지, 앞으로 상대방의 어떤 태도나 생각을 중요하게 고려할 것인지, 내가 연인 사이에서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점은 무엇인지 정리된 바가 있으실 것입니다. 또한 과거의 연애에서 스스로에게 어떤 부족함이나 아쉬움이 남는다면, 다른 사람을 만날 땐 이를 반복하지 않겠다고 다짐하실 수도 있습니다. 가령 앞으로는 상대방에게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맞추는 대신, 상대방이 유르디 님께도 한 발자국 맞춰줄 것을 요구하는 것이지요. 이별로부터 배우고 얻는 게 생기는 셈입니다.

 

2. 나는 사랑받을 만한 사람입니다

사실 제가 사연을 읽으면서 가장 씁쓸했던 점은 따로 있습니다. 유르디 님께서 몸이 편찮으시고 나중에 병원 신세를 져야 하는 상황인지라 “다른 사람을 만나는 것이 죄스럽다”고 표현하신 부분인데요. 유르디 님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무엇이든 할 준비가 되어 있으셨으면서, 왜 그 반대는 안 될 일이라고 생각하시나요? 혹시 전 연인을 만나는 동안에도 비슷한 죄책감을 안고 계셨을까요? 그 죄책감을 만회하고자, 사회 적응력이 부족한 전 연인을 더 열심히 돌보며 헌신하셨던 것은 아닌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유르디 님의 필요는 언제나 뒷전으로 밀려나지 않았나요? 자신의 욕구는 무시한 채 상대방의 욕구만을 채워주는 관계 방식은 결국 상대를 불편하게 만듭니다(불편함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라면 착취적인 관계를 의심해볼 수 있겠지요). 상대방도 처음에는 배려심이 넘치는 태도를 긍정적으로 바라보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배려가 마음의 짐으로 다가오기 마련입니다. 아무리 잘해줘도 “전 연인의 마음을 채우지 못했던 느낌”이 여기서 비롯된 게 아닐지 감히 짐작해봅니다. 건강한 관계는 서로 주고받고 서로를 채워줄 수 있는 균형 잡힌 관계니까요.


연인 간에 자신의 필요를 온건히 주장할 수 있으려면, 나는 사랑받을 만한 자격이 충분한 사람이라고 확신할 수 있어야 합니다. 먼저 유르디 님 자신에게 “나는 사랑받을 만한 자격이 충분해!”라고 크게 말해보세요. 어떤 느낌이 드시나요? 거부감이 들거나 울컥할 수도 있고, ‘네가?’ 하면서 스스로를 제3자의 입장에서 폄하하는 마음이 들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는 펜을 들고, 내가 사랑받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이유를 3가지만 적어볼게요.


그 다음 유르디 님께서 굉장히 능력 있는 변호사를 고용했다고 상상해보겠습니다. 변호사가 그 이유 하나하나에 최선을 다해 반박한다면, 어떤 근거를 들어 어떻게 변호할지 떠올려보세요. 그리고 핵심 내용을 추려서 적어보세요. 예를 들어 건강상의 문제로 자신이 사랑받을 수 없다고 생각하신다면 다음과 비슷한 방식으로 반박할 수 있을 거예요.


“나는 내 건강 상태를 잘 알기 때문에 무리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관리를 해나가고 있어. 나이가 들어갈수록 친구들 중에도 어딘가 아픈 사람이 많아질 텐데, 젊을 때부터 불편한 몸에 적응해야만 했던 경험은 나이가 들어서 오히려 빛을 발할 수도 있지. 젊어서 날아다녔던 친구들이 당황하며 오히려 내게 조언을 구할지도 모를 일이야. 주변 사람들에 대한 이해심이 넓은 것 또한 내가 신체적 불편과 그로 인해 지치고 괴로운 마음을 이미 경험해봤기 때문이야.”


사연에 구체적인 내용이 드러나지 않아 임의로 적어봤으니 참고만 하시고, 유르디 님 본인의 이야기를 기록해보시기 바랍니다. 이제 지금까지 적은 글에 완전히 공감하는 태도로 다시 한번 유르디 님 자신에게 크게 말씀해주세요. “나는 사랑받을 만한 자격이 충분해!”라고요.



3. 죄책감 극복하기

제가 하나 더 짚고 넘어가고 싶은 점은 ‘결혼’과 ‘아이’에 대한 유르디 님의 생각입니다. “혼자 살려면 살 수 있으나 결혼과 손자를 기대하신 어머니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점이 가장 걱정된다고 언급하셨는데요. 나중에 결혼을 고려하게 만드는 사람이 눈앞에 다시 나타난다면, 내가 왜 결혼하고 싶은지에 대해 스스로 질문하고, 자신의 선택에 대해 확신을 꼭 얻으시면 좋겠습니다. 물론 젊은 아빠로 사는 게 목표였고, 과거에 “이 사람과 결혼해야지”라는 결심이 섰을 때는 유르디 님께서도 고민을 많이 하셨을 것이라 믿습니다. 하지만 혼자 살아도 충분한데, 단지 어머니에 대한 죄책감이 들까 봐 결혼을 선택하시는 거라면 개인적으로 그 선택을 말리고 싶습니다. 부모에 대한 죄책감을 덜고자 배우자에게도 자신의 부모에게 효도할 것을 강요하는 경우를 많이 봐왔기 때문입니다.


죄책감은 실제로 잘못을 저지른 경우가 아니라면 안 느끼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어머니께서도 유르디 님을 진정 사랑하신다면, 본인의 마음에는 큰 아쉬움이 남을지언정 아들이 죄책감으로부터 자유로운 선택을 내리기를 바라실 것입니다. 그럼에도 죄책감이 남는다면 이를 혼자 떠안는 것은 또 유르디 님의 자유입니다. 하지만 다른 누군가에게 이를 함께 지자고 하는 것은 모두를 힘들게 하는 길임을 명심하세요. 제가 넓은 오지랖으로 과도하게 해석한 부분이 있을 수 있겠다는 걱정이 들기도 하는데요. 만약 그렇다면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하지만 정말로 어머니에 대한 죄책감이 뿌리 깊게 내려 있다는 판단이 서신다면 해당 주제로 전문가에게 상담을 받아보시길 권해 드립니다. 모쪼록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유르디 님, 이별 후 지금은 어떤 단계를 지나고 계신가요? 사랑하는 동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 사람은 이별 후에도 비교적 미련이 남지 않는다고 합니다. 반면에 밀고 당기기를 하거나 머리로 계산하며 사랑한 사람은 미적지근했던 태도 뒤로 미련이 많이 남는 법이고요. 유르디 님은 누군가를 위해 자신을 아낌없이 내어줄 수 있을 만큼 사랑할 용기와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이라는 것을 언제나 잊지마세요. 동시에 유르디 님이 새로운 분을 만나게 되신다면 그때는 더 많이 웃고, 상대방뿐 아니라 자기 자신도 아껴줄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전 연인을 어떤 모습으로 기억하고 있나요?

  •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지는 그리움
  • 두 번 다시는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상처
  • 고마운 마음만 가득한 은인
  • 생각하면 얼굴이 화끈해지는 부끄러움
  • 완벽히 이해하지 못한 수수께끼

늦게 잠들고 지각하는 일이 자꾸 반복돼요.

채채 공공기관 근무 중인 30대 직장인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버섯돌이 공공기관 근무 중인 30대 직장인

창업을 앞두고 고민과 걱정이 멈추지 않아요.

이율 창업을 준비 중인 30대 여성

제 모든 선택이 자꾸 후회스러워요.

스리랑 서울에서 광주로 이직한 마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