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UNSELING

친구와의 관계가 어려워요

친구와의 관계에서 결핍을 느껴요. 오늘 진짜 재미있었던 게 맞나? 지금 즐거워하고 있나? 왜 표정이 안 좋아 보이지? 말 실수했나? 아 그때 왜 그런 행동을 했을까? 라고 친구와 만나는 중에도 갑자기 불안감이 덮쳐올 때가 있어 오히려 오버를 하기도 하고 눈치를 보게 돼요. 그래서 친구들을 만날 때 즐겁지만 때로는 많이 지치기도 해요.

중학교 때 왕따를 당한 적이 있어요. 그때 무슨 놀이처럼 돌아가면서 한 명씩 차례로 왕따를 시켰는데 소심한 탓에 제 차례가 끝나고도 다시 전처럼 다가가질 못하겠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혼자 다니게 됐고요. 다행히 학년이 바뀌면서 마음 맞는 친구들을 만났지만 15년이 지난 지금도 사람들을 완전히 믿기 힘들어요.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이 좋은 사람들인 것은 믿고 있는데 가끔 덮쳐오는 이 불안감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30대 여성
카운슬러 김아라의 편지

안녕하세요, 수님. 김아라 상담사입니다. 학창시절 또래관계에서의 왕따 경험이 마음 속에 깊이 박혀 오랫동안 수님을 괴롭히며 자유롭지 못하게 만들고 있네요. 지금 내 곁의 사람들이 좋은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한 번씩 덮쳐 오는 불안으로 얼마나 애쓰고 계신지가 느껴집니다. 그럼, 지금부터 수님의 고민을 깊이, 또 조심스레 들여다보겠습니다.

왜 이런 기분이 들까요?


사람들은 믿을 수 없는 존재야! 애착 불안과 내적 작동 모델



우리는 나, 타인, 세상에 대한 어떤 믿음 또는 신념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애착 이론에서 말하는 ‘내적 작동 모델(internal working model)’은 어린 시절 중요한 타인으로부터 형성된 기대와 신념을 말하지요. 사람은 누구나 가까운 관계 안에서 안전함을 느끼고 싶어 하는데요. 또래관계가 매우 중요한 시기인 중학교 시절, 집단에서 배제되는 경험은 “타인은 믿을 수 없는 존재야”, “사람들은 결국 나를 버릴 수 있어”와 같은 불안정한 모델을 만들 수 있습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기대와 신념은 이후 사람들을 대하는 자동적인 기대와 감정 반응으로 또 다시 작동하게 됩니다. 마음 속에 불안이 깊숙이 자리잡고 있다가, 이따금 ‘혹시 나를 싫어하면 어쩌지?’라는 두려움으로 깨어나게 되는 것이죠.



이런 애착 불안은 실제 상황과는 상관 없이 작동하기도 합니다. 친구가 잠시 피곤해 보이거나 표정이 무미건조할 뿐인데도, 마음 속에서는 ‘내가 뭘 잘못해서 그런가?’라는 걱정으로 연결될 수 있지요. 현재 경험하는 안전한 관계에서도, 불안으로 인해 작은 신호(표정, 말투, 침묵 등)가 큰 위협으로 해석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과도하게 눈치를 보거나, 오히려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애쓰다 더 지치게 되곤 하지요.



애착은 어린 시절 주양육자와의 관계에서 형성되어 이후 관계에도 영향을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요. 하지만 청소년 시기는 또래관계가 정체성 형성과 자존감에 큰 영향을 미치는 시기인 만큼, 이 때의 타인과의 관계 경험 또한 우리의 애착 체계에 큰 영향을 준답니다. ‘나는 어떤 사람이고, 다른 사람들은 나를 어떻게 대할까’에 대한 기본적인 믿음을 만드는 것이지요. 만약 그 때 안정적이지 못한 경험을 했다면, 성인이 된 지금도 인간관계 속에서 비슷한 긴장과 불안을 느낄 수 있습니다.





작은 바람에도 화끈거리는 상처의 기억



더 나아가, 학창 시절에 겪은 따돌림 경험은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내고, 흔적처럼 남아 지금까지 영향을 줄 수도 있습니다. 마음 속에 강한 기억으로 자리잡는 것이지요. 어떤 기억은 쉽게 잊히지만, 강렬한 감정을 느끼게 했던 기억은 사소한 일에도 쉽게 소환됩니다. 과거의 아픈 경험이 남긴 상처는 살랑이는 바람에도 화끈거릴 수 있다는 것이지요.



중학교 시절 왕따나 집단 배제 경험은 단순한 기억이 아니라, 정서적 충격이 강하게 각인된 외상 경험이 될 수 있습니다. 외상적 사건은 반복해서 떠오르는 기억이나 신체적 긴장, 불안 반응 등을 남길 수 있는데요. 수 님에게 정서적으로 충격이 큰 사건이었다면, 지금 여기에서 재경험하는 반응이 크게 나타날 수 있습니다. 지금의 친구들이 나를 배제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잠깐의 침묵이나 사소한 표정 변화가 과거의 기억과 연결되면서 불안이 올라오는 것이지요.



외상 경험은 불안을 일으키는 자극을 회피하게 만들거나, 자극에 민감해지게 만들고, 또한 과잉 경계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수 님이 보이는 친구들과 만나며 눈치를 보는 것, 혹은 과도하게 오버하며 상황을 통제하려는 행동 패턴이 생기는 것도 외상적 기억에서 비롯된 자연스러운 반응일 수 있다는 것이지요. 중요한 점은 이런 반응이 과거 상처의 흔적이라는 것을 이해하며 스스로를 탓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는 나를 자꾸만 점검하고 평가해, 사회적 자기 검열



인간은 사회적 존재이기에, 타인과 자신을 끊임없이 비교하며 자신의 가치나 위치를 평가합니다. ‘나’라는 인식은 ‘타인 또는 대상’이 있기에 가능한데요. 자아정체성을 만들어가는 시기인 청소년 시기에는 타인과의 비교를 통한 ‘나’를 깊이 바라보게 되고, 이로 인해 자기 검열이 더욱 많이 일어나게 됩니다. 더욱이 청소년기에는 또래관계가 중요한 발달과업이기 때문에, 그 시기에 배제나 거절의 경험을 겪으면 ‘나는 남들보다 부족한가?’라는 자동적인 자기평가가 생겨날 수 있습니다.



이는 성인이 된 이후에도 ‘내 말이 재밌었나? 내 행동이 괜찮았나?’와 같은 불안으로 이어질 수 있는데요. 과거 경험으로 학습된 자기 검열 반응인 것이죠. 이것은 일종의 사회 불안인데, 사회적 상황에서 스스로를 점검하는 것이 지나치게 강화된 상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사회 불안이 생겨나면 ‘내가 말 실수하지 않았나?’와 같은 생각이 과도하게 떠오르고 자신을 모니터링하는 데에 에너지를 많이 쓰게 됩니다.



이 상태에서는 대화 중에도 머릿속에서는 끊임없이 자기검열이 일어나기 때문에 실제 타인과 대화하는 그 순간을 온전히 즐기기 어렵습니다. 상대의 반응을 읽느라 바쁘고, 신체는 긴장상태를 유지하니 즐거움 보다는 피로감을 느끼기 쉽겠지요. 또한 만남 후에는 그 때의 상황을 반복적으로 되감기 재생하면서 ‘내가 왜 그랬지?’, ‘그 말을 괜히 했어’와 같은 후회를 하게 되기도 합니다.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불안을 알아차리고, 수용하기



불안이 올라올 때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은, 내가 느끼는 그 감정이 ‘불안’임을 알아차리는 일입니다. 그리고 “아, 내가 친구들의 표정을 살피고 눈치를 보고 있는 걸 보니, 나 지금 불안하구나. 옛날 일이 떠올라 다시 불안해졌구나.”라고 스스로 말해주는 것입니다. 감정은 억누르거나 부정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명명해줄 때 해결되곤 합니다. 이처럼 감정에 이름을 붙이는 행위(labeling)는 감정의 강도를 낮추고 자동적으로 일어나는 반응에서 벗어나게 도와줍니다. 불안이라는 감정에 ‘불안’이라는 이름을 붙여주면, 불안이 마음을 지배하는 대신 관찰할 수 있는 하나의 경험으로 변화하게 되는 것이지요.



이 때 심호흡을 깊게 하거나, 몸의 긴장을 풀며 잠깐 쉬어 가는 것도 큰 도움이 됩니다. 몸과 마음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각성된 몸의 긴장을 이완시킴으로써 불안을 조절해나가는 것이지요. 불안한 감정이 올라올 때 몸의 감각을 살피고, 몸을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이와 더불어 친구들을 만나고 돌아온 뒤 감정 일기를 쓰며 그 때의 생각, 감정, 행동을 메모하면, 나의 패턴을 파악하는 데에도 도움이 됩니다.



여기에 하나 더, 불안을 느끼는 나를 비난하지 말고 다정한 시선으로 바라봐주세요. 내가 느끼는 불안은 ‘나의 문제’라기 보다, 과거 아픈 경험에서 비롯된 것임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게 나를 탓하기보다 ‘내가 그만큼 관계를 소중히 여겨서 불안이 찾아오는구나’라고 바라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감정에 대한 수용적인 태도는 불안을 제거하지는 못하더라도, 불안에 사로잡히지 않게 해줄 것입니다.



과거의 불안한 관계가 아닌, 현재의 안정된 관계를 바라보기



기억해야 할 점은, ‘그 때의 나’와 ‘지금의 나’를 구분하는 것입니다. 이는 또한 ‘현재의 안정된 관계’는 ‘과거의 불안한 관계’와 다르다는 사실을 계속 인지하는 것이지요. 앞서 살펴봤듯, 과거의 아픈 경험은 현재에도 영향을 주어 불안을 재경험하게 합니다. 그러나 이로 인해 현재의 안정된 관계를 기쁘게 누리지 못하고 계속 불안해 한다면 이보다 속상하고 억울한 일이 있을까요?



신뢰는 믿을 만한 말을 듣는다고 해서 생기는 것도 아니고, 오랜 시간을 함께한다고 생기는 것도 아닙니다. 신뢰는 반복되는 관계적 확인을 통해 쌓입니다. 자신의 취약성을 노출했을 때 상대의 반응이 안전하게 확인되고, 그러한 일들이 반복되어야 생긴다는 것이죠. 아직 신뢰하지 못하는 대상에게 취약성을 노출한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지만, 결국 안전감과 유대감을 쌓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답니다. 서로에게 취약성을 노출한 이후에 쌓이는 두터운 신뢰는 흔들리지 않는 깊은 안정감을 만들어 줄 거예요.



취약성을 노출할 때는 가벼운 것부터 시작해보세요. 예를 들어 가까운 친구에게 “나는 가끔 모임에서 불안해”라고 이야기해볼 수 있어요. 그 다음 친구의 반응을 관찰하고, 내가 예측한 반응이 맞는지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친구가 과거의 친구들처럼 나에게 반응하는지, 아니면 다정하고 따스하게 반응하는지를 주의 깊게 살펴보세요. ‘아 솔직해도 관계가 유지되는구나, 지금의 내 관계는 더 이상 불안한 관계가 아니구나’하는 경험이 쌓이면 나의 내적 작동 모델이 변하게 될 것입니다.



만약 반대로 부정적인 반응이 나온다면요? 그 관계는 이전의 관계처럼 내 곁에 두지 않고, 더 안전한 신뢰 관계를 열심히 찾아 나가면 됩니다. 두려움을 넘어 반복적으로 긍정적인 관계 경험이 쌓이면, 점차 신뢰하고 안전한 관계가 내 주변에 얼마나 많은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불안은 회피할수록 더 커집니다. 불안을 다루는 핵심은 결국 직면, 직면입니다!



자기 중심 회복하기



사회적 상황에서 외부 평가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 필요한 것은, 외부의 시선이 아닌 ‘나’에 주의를 기울이는 일입니다. 친구와 함께 있을 때 ‘상대가 나를 어떻게 볼까?’보다 ‘나는 지금 이 순간에 즐거운가?’와 같이 나의 즐거움, 나의 감정, 나의 생각, 나의 가치에 집중하는 것이지요.



모임에 가기 전, “오늘은 친구들의 표정이나 분위기를 살피고 관찰하기보다 내 이야기에 집중해보자”, “오늘은 친구의 얘기에 온전히 웃어 주기, 또는 충분히 위로해주기”와 같은 목표를 세워보는 것도 좋습니다. 이러한 방법은 자동적으로 나를 점검하는 자기 검열을 줄여줄 수 있습니다. 혹은 모임을 마친 후, ‘내가 말실수 하지는 않았는지, 내가 너무 오버한 것은 아닌지’와 같이 되감아 재생하는 것 대신, ‘내가 즐거웠던 순간’에 대해 메모를 하고 일기를 써보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이처럼 타인의 시선이나 평가가 아닌, 자기를 중심으로 돌아오고 회복하는 일, 초점을 타인이 바라보는 나가 아닌 그저 나로 돌아오는 일은 관계 속에서 불안을 줄여주고, 자존감을 높여줄 수 있습니다. ‘내’가 중심에 있을 때 타인의 반응은 참고자료일 뿐이기에, 진짜 내가 될 수 없기 때문에 점차 외부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지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친구들과의 시간을 더 편안하고 즐겁게 누릴 수 있겠지요.



수 님의 불안은 결핍의 증거라기보다, 과거 상처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관계를 잘 유지해 나가려는 용기 있는 마음의 확증이라고 느껴집니다. 그 용기를 지켜가면서, 한 발짝 더 나아가 나의 취약성을 드러내며 신뢰할 수 있는 관계를 깊이 경험하기를 응원합니다!



학창 시절, 내가 또래 관계에서 겪었던 어려움은?

  • 친구들이 나를 좋아할까 눈치를 보면서 마음 속으로는 늘 불안했다.
  • 내 의견을 숨기거나 친구들에게 대부분 맞추는 편이었다.
  • 상처가 두려워 일부러 거리를 두고 혼자 지냈다.
  • 나를 이해해주는 소수의 관계에서 안정감을 찾았다.
  • 관계에서 실수하면 오랫동안 자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