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UNSELING

독립해야 할 때인데, 겁이 나는 자신이 한심합니다.

고등학생 때 중증 우울증 진단을 받았고, 3년간 치료에 매진하다보니 대학은 자연스레 포기했습니다. 공부에 꿈은 없었지만 심리학은 좋아서 학점은행제를 했어요. 그러다 취준생이 되었고, 부모님은 취업과 독립을 재촉하시는데 저는 아직도 겁이 나요.

가정환경이 엄했고 가부장적이어서 저는 집안의 희생양 역할이었어요. 밖에서 좋은 사람이 되느라 가족에게 스트레스를 푸는 아버지의 희생양. 부모님의 사랑은 절대적이다, 집은 따뜻한 곳이다 이런 감각을 느껴보지 못해서인지 낯선 사람이 무서워요. 자꾸 마음 한 켠에서는 부모도 좋아하지 않은 나를 누가 좋아할까, 응원받지 못하는 기분에 괴롭고 절벽 위에 버티고 선 것만 같아 두렵습니다. 정신과 진료를 받아가며 어머니는 점점 제 편이 되어 주셨지만, 누군가의 응원이나 격려, 따뜻함 같은 게 처음이라 어머니의 지지보다는 아버지의 책망에 더 흔들립니다.

저는 회피형이라 무슨 일만 생기면 도망가 버려요. 면접날에도 그래 버리면 어쩌죠? 누군가의 응원을 듣는 것도 낯설고 갑작스레 어른이 되야하는 것도 무섭습니다. 그럼에도 뒤에선 재촉하니까 저는 덜덜 떨면서도 멈춰있을 수가 없네요. 제가 참 백수한량에 한심해 보일 것을 알지만, 그래도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었어요. 제가 무언가를 해낼 수 있을까요?
Y 취업준비가 겁나는 20대 여성
카운슬러 김혜령의 편지

안녕하세요 Y님. 사연을 읽는 내내 대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내느라 애 많이 쓰셨어요. 특히 ‘절벽 위에 버티고 선 것만 같다’는 말이 아프게 와 닿았는데요. Y님을 안전한 공간으로 옮겨주고 싶은 마음이에요.

왜 이런 기분이 들까요?

 

부모의 영향력은 영원하지 않아요

체감하시는 것처럼 가족의 영향력은 생각보다 큽니다. 가정환경이 엄하고 가부장적이라고 하셨지요. 가족 내에서 수용과 지지보다는 비난과 같은 따가운 말들을 많이 들으셨던 것 같아요. 아마도 그런 외부자극이 Y님의 기질과 만나 더욱 취약해지지 않으셨을까 생각이 듭니다. 어린 시절, 가까운 타인이 나를 보는 시선이나 말들은 자아감의 일부가 됩니다. 현재는 그 자아가 무척 여리고 작아져 있는 거지요.

부모님이 안전하고 따뜻한 울타리가 되어주셨다면 좋았겠지만, 그렇지 않다보니 늘 불안하고 위태위태했을 거에요. 잔뜩 겁을 먹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강아지가 떠오릅니다.

 

성인이 될 때까지는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부모님이 만든 세계 속에서 부모님이 주는 것을 수동적으로 흡수하게 됩니다. 이건 누구에게나 예외 없이 적용되는 사실이에요. 중요한 건 Y님은 성인이 되었고 이제는 자신의 선택과 행동을 통해 부모님의 영향력을 줄일 수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과거에 어떤 일들이 있었건 지금, 그리고 앞으로가 중요하다는 걸 우선 명심하세요.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1. 내 안의 목소리 걸러내기

우리 내면에는 항상 잔소리꾼이 있어요. Y님에게는 ‘정신차려’, ‘얼른 취업하지 않으면 넌 낙오자가 될 거야’, ‘넌 아무것도 한게 없으니 형편없는 인간이야’ 같은 목소리일 수 있겠지요. 그 목소리들이 Y님을 재촉하는 것일테고요. 그러나 어떤 말들이 Y님을 괴롭히건, 또 아버지가 뭐라고 말하시든 그건 그저 ‘말’일 뿐입니다. Y님 자신이 아니에요. 아버지의 비난도, Y님 내면의 잔소리도 자신이 붙잡지 않으면 그저 잡음에 지나지 않습니다. 흘러가는 바람일 뿐이에요.

그러니 Y님에게 필요한 건, 자신을 움츠러들게 만드는 목소리들을 걸러내고 자신을 북돋워주는 목소리와 믿음을 키워가는 거에요. 이제 Y님이 스스로의 부모가 되어서 무한한 격려와 지지를 해줄 때입니다.

기억하세요. 내 안의 수많은 말들 가운데 어떤 말을 믿을지는 자신의 선택입니다. 어떤 말을 붙잡고 사느냐에 따라 앞으로의 삶의 방향이 달라질 거에요.

 

2. 작은 시도를 끊임없이 하기

취업을 하지 않고 있는 자신을 ‘백수 한량’이라고 표현하셨어요. 일을 하지 않는 것은 본인의 선택입니다. 다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을 때 두려움은 가장 압도적이기 때문에 너무 힘드실 것 같아요. 또 깊은 우울증을 겪은 이후 계속해서 외부 활동과 관계를 최소화해 오셨으니,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게 더욱 어렵게 느껴질 거에요.

어설프더라도 뭔가 시도를 하고 있을 때 사람은 활기를 얻습니다. 자연히 자신감도 생기고요. 마음이 단단해지려면 경험을 쌓고 끊임없이 움직여야 해요. 회피할 때는 여러 가지 이유를 댈 수 있지만, 뛰어들 때는 아무 이유 없이 눈 딱 감고 ‘그냥’ 하는 겁니다. 피하지 않기 위한 방법은 그저 하는 수밖에 없어요. 무섭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일단 몇 번의 시도를 경험하고 나면 이해하실 겁니다.

Y님에게는 충분히 지금의 어려움을 풀어 나갈 힘이 있습니다. 이미 많은 고비를 지나왔고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어요. 그러니 스스로를 믿고 한 발짝 씩만 내딛어 보세요.

 

내면의 목소리를 문장으로 써보세요

  • 자신을 아프게 하고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하는 문장 세 개와, 자신에게 힘을 주는 문장 세 개를 써 보세요. 
  • 각각의 문장에 O와 X표시를 하세요. 예를 들어,

나는 한심한 사람이야. (X)
나는 느리지만 조금씩 나아지고 있어. (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