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서늘한여름밤의 마음 편지] 낭만은 혼란과 불안 속에 있다

지금까지 알던 삶이 다시 낯설게 느껴지는 경험, 나는 여기에 낭만이 깃들어 있다고 믿는다.

서늘한여름밤 서늘한여름밤 리다이브 코칭심리연구소 대표, 작가

삶에서 가장 낭만적이었던 순간은 내 인생이 무너졌다고 생각할 때 찾아왔다. 미친 듯 열심히 준비해 들어간 첫 직장을 고작 3개월 만에 퇴사했다. 꿈을 찾아 한 퇴사가 아니었다. 그냥 견딜 수 없어 도망쳐 나온 것에 가까웠다. 퇴사하고 다시 좋아하는 일을 찾고 싶었지만, 어디서부터 어떻게 찾아야 할지 감도 오지 않았다. 인생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고, 나는 매일 드라마만 보며 하루를 보냈다.

 

 

비일상을 마주할 때 찾아오는 낭만

어느 날 아무 계획도 없이 집 밖으로 나섰다. 어디로 가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알지 못하는 채로. 길에는 벚꽃이 만개해 있었다. 예뻤다. 멈춰 서서 벚꽃을 봤다. 나는 가야 할 곳도 해야 할 것도 없었다. 그냥 서서 벚꽃이 바람에 흔들리는 것을 바라봤다. 그 후로 나는 낭만이라는 단어를 들을 때마다 그 순간으로 돌아간다.

 

여행, 사랑, 음악. 우리가 낭만을 생각할 때 흔히 떠올리는 것들이다. 새로운 사랑을 만날 때의 설렘, 여행지의 낯선 풍경에서 느껴지는 감각들, 좋은 리듬을 만났을 때 새롭게 보이는 주변 풍경들. 이들의 공통점은 비일상성에 있다. 지금까지 알던 삶이 다시 낯설게 느껴지는 경험, 나는 여기에 낭만이 깃들어 있다고 믿는다.

 

인생의 낭만을 막는 것들: 두려움과 혼란

우리는 대개 현실에서 낭만을 찾을 수 없기 때문에 이를 동경한다. 일상에서 낭만을 자주 경험하지 못하는 이유는 아마 낯선 세계가 주는 두려움과 혼란 때문일 것이다. 낯선 여행지에서 우리는 길을 잃을까 노심초사하게 되고, 어떤 음악은 우리를 원치 않는 기억으로 데려가기도 한다. 새로운 사랑은 설렘도 있지만, 불안한 마음으로 상대의 연락을 기다리는 시간까지 포함한다.

 

낯선 것이 주는 여러 가지 변수 때문에 우리는 안전한 선택을 선호할 때가 많다. 가야 할 곳과 해야 할 것이 명확한 삶을 선택한다. 그런 삶을 살아가며 우리는 낭만을 스쳐 지나간다. 가야 할 곳에 빨리 도달해야 한다는 마음만을 갖고 낭만을 위해 가던 길을 멈추지 않는다. 퇴사하기 전, 내가 무수히 많은 벚꽃을 그저 스쳐 지나갔던 것처럼.

 

 

달콤하지만은 않은 낭만적 생활

벚꽃을 바라본 이후로 나는 퇴사 이후 시간을 낭만적으로 살아가려 했다. 나에게 익숙했던 현실적인 삶이 끝나버렸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했다. 대학원을 막 졸업한 모범생의 삶이 아닌, 다른 삶의 방식을 찾아야 했다. 아침에 일어나 전시회에 가고 싶은 기분이 들면 미술관으로 향했다. 한량 같은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갑자기 낮술을 마시기도 했다. 아이패드에 낙서를 끄적이기도 했다 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시간이 생겼고, 하고 싶은 것을 하나씩 해 나갔지만, 생각했던 모든 순간이 낭만적인 것은 아니었다.  도대체 앞으로 뭘 해서 먹고살지 몰라 불안감에 엉엉 우는 날들도 많았다. 사회에 내 자리는 단 한 곳도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숨이 막힐 때도 있었다. 나는 내가 이런 삶을 만나게 될 줄 몰랐다. 내 삶에 답이 없어질 줄 몰랐다.

 

세상은 도망치지 말라고 말한다. 답이 없는 삶이 회피에 대한 벌인 것처럼. 그러나 삶의 모든 순간에 답이 있을 수는 없다(만약 모든 순간에 답을 알고 있다면 나에게 알려달라). 삶의 모든 시간이 자기 발견이자 발전을 위한 시간이 될 수는 없다. 때로 우리는 도망쳐야 하고, 길을 잃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익숙했던 내 삶이 막막한 여행지가 되는 때를 맞이해야 할 때도 있다. 다만 그 순간에도 우리는 선택할 수 있다. 겁먹고 길 잃은 이방인으로 그 순간에 압도될 것인지, 아니면 호기심 넘치는 여행자가 되어 그 순간을 마주할 것인지.

 

모호하고 불확실해서 매력적인 것

안전한 삶을 포기하고 무작정 낭만을 찾아 떠났던 나는 그 이후로도 내 삶은 낭만적인 모험의 연속이었다(삶이 쉽지 않았다는 뜻이다). 아이패드에 끄적이던 낙서는 그림일기가 되어 나는 10년 차 창작자가 되었고, 사업이라는 새로운 세상에 뛰어들었고, 장렬히 망했고, 박사과정에 도전했고, 학문이라는 거친 바다에서 겨우 익사를 면하고 있다. 나는 여전히 한 치 앞을 보지 못하며, 앞으로 내가 과연 무엇을 하며 살아가게 될지 잘 모르겠다. 그래도 괜찮다. 모든 것을 다 아는 여행에는 설렘과 낭만이 없다. 낯선 풍경에 감탄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무지가 필요하다. 오늘의 두려움과 혼란은 내일 만나게 될 낭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니까.

 

 

삶에서 낭만을 찾는 서늘한여름밤의 팁 5

• 특별한 교훈을 얻으려고 하지 말 것

여행을 다녀온다고 새로운 나를 찾을 수는 없다. 낭만은 결과에 있지 않다. 순간의 경험을 만끽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 낯설고 익숙하지 않은 것에 도전해 보기

아주 작은 것이라도 좋다. 매일 가던 길을 벗어나 새로운 골목으로 걸어가 보자. 호기심을 가지고 동네를 바라보는 것. 충분히 낭만적이지 않은가? 

 

• 행위가 아닌 지금 내 기분을 살펴줄 것

낭만은 행위에 있지 않다. 나의 감상에 있다. 지금 내 기분이 설레고 몽글몽글하고 살아있는 것 같다면 그 어떤 행위라도(예를 들어 유튜브에서 새로운 음악을 찾아보는 것) 낭만적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 가능하다면 함께 즐겨볼 것

낭만은 혼자 즐기는 것도 좋지만,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즐길 때 더 배가 될 수 있다. 혼자 길을 잃으면 두렵지만, 함께 길을 잃으면 한바탕 웃는 좋은 추억이 되는 것처럼.

 

• 나 자신에게 시행착오를 허락할 것

낭만으로 가는 지름길 같은 것은 없다. 내가 바라는 낭만을 찾기 위한 다양한 시행착오를 허락해 주자. 낭만은 정답이 없는 곳에 있을 테니까.

 

 

글. 서늘한여름밤

고려대학교와 동대학원에서 심리학을 전공했고, 광운대학교 코칭심리 연구소 선임연구원을 거쳐 현재 리다이브 코칭심리연구소 대표로 활동 중이다. 책 <어차피 내 마음입니다> <제 마음도 괜찮아질까요?>를 썼다. 인스타그램 @seobam_breez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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