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는 누아 작가는 어른부터 아이까지 모두에게 따듯한 것들을 고민합니다. 누아 작가의 작품은 자유로운 구름처럼 책 표지부터 아이돌 앨범 커버, 영화 포스터, 핸드폰 케이스, 수영복까지 다양한 형태를 넘나듭니다. 그는 영감을 찾기 위해 동심을 안은 채로 세상을 바라봅니다. 살아가는 모든 순간 아이와 같은 마음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누아 작가에게 ‘동심’에 대해 들어봤습니다.
실수로 그어진 선이
오히려 더 아름다워요
요즘 같은 시대에 손으로 그리고 만드는 작업을 고집하는 이유가 궁금해요
저는 안정적인 것보다 변수가 많은 과정을 즐기는 편이에요. 그 과정에서 서사가 만들어진다고 생각해요. 삐끗해서 잘못 그어진 연필선, 실수를 덮으려고 애쓴 흔적 등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것에 열광하죠. 그래서 실수와 고민이 다 담겨 있는 저의 작품도 누군가에게는 인간적으로 더 와 닿을 거라는 확실한 믿음이 있고요.
그리고 세상의 모든 편리함에는 반드시 대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자동차 덕에 편리하게 이동을 할 수 있게 됐지만 그로 인해 교통사고라는 게 발생하는 것처럼요. 디지털 작업도 편리한 만큼 잃게 되는 것이 있는 것 같습니다.
수작업과 관련해 소개하고 싶은 작업물이 있으시다고요
최근에 스윔웨어 브랜드랑 콜라보를 했는데 그 작업물도 모두 일절 디지털 후속 가공을 하지 않았어요. 사람들이 물속에 들어갔을 때 붓으로 터치한 느낌이 잘 구현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수영복이 물기를 머금고 물과 하나가 됐을 때 얼마나 아름다울까?’ 싶어서 굉장히 기대가 됐는데요. 실제로 많은 분들이 수영장에 가셔서 제 그림이 그려진 수영복을 입고 찍은 사진을 SNS에 올려 주셔서 봤는데 너무 행복해서 울었어요. ‘이래서 내가 계속 그림을 그리지’ 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별거 아닌 걸로도
이렇게 행복할 수 있다니
이러한 작업을 통해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으세요?
행복 별 거 아닙니다. (웃음) 예전에는 이런 질문을 받으면 위로나 응원의 키워드를 항상 얘기했어요. 근데 요즘은 단순해졌어요. ‘좋아하는 색 옷을 입어보세요! 행복해질 거예요.’ 이런 메시지가 전해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저는 매번 꽂히는 색이 다른데 요즘은 초록색이 너무 좋아요. 딱 마음에 드는 초록색 아이템을 구했다? 그게 뭐라고 하루 종일 기분이 좋아요. 제 작품을 보는 분들도 이렇게 좋아하는 색 만으로도 행복해지는 감각을 아시게 되면 좋겠어요.
학교에 다니고, 직장을 다니고, 아무것도 하지 않더라도 산다는 건 참 힘든 일이잖아요. 그런데 별거 아닌 걸로 행복해지려고 하면 또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 아니거든요. 뭔가 크게 결심해야 하는 거창한 것이 아닌 쉽게 할 수 있는 것들로 작은 행복을 자주 느끼셨으면 좋겠어요.
작가님 본인을 색으로 표현한다면 어떤 색인요?
지금 입고 있는 옷만 봐도 아시겠지만 (웃음) 분홍색이요. 저는 분홍 인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저 뿐 아니라 제 그림을 오래 보신 분들도 저를 보면 떠오르는 색으로 분홍색을 많이 꼽으시더라고요. 분홍의 사전적 정의는 ‘엷고 고운 붉은색’인데요. 빨강이 되기에는 약간 기개가 부족한데 은은한 분위기와 다정한 색감으로 사람들에게 매력을 선사할 수 있는 색이라고 생각합니다.
가끔 “왜 분홍색을 그렇게 많이 쓰세요?” 이런 질문도 받는데요. 분홍의 다정함이 좋아서 인 것 같아요. 최근에도 분홍색을 보면서 ‘어쩜 이렇게 색깔이 다정하지? 너무 예쁘다. 많이 써야지!’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빨강같이 강렬하진 않지만 은은한 분위기로 사람들을 사로잡는 작가가 되고 싶어요.
모든 걸 예쁜 눈으로
바라보는 연습하기
무엇에서 영감을 받으시나요?
저는 마음이 활짝 열려 있다면 세상의 모든 것에서 영감을 얻을 수 있다고 믿어요. 그리고 이렇게 마음이 열린 상태가 곧 동심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동심을 안고 세상을 바라보면 진짜 별것도 아닌 게 영감으로 다가와요.
미술은 전공도 했고, 오랫동안 해온 작업이라 나름의 기준이 생겨서 마냥 즐기지 만은 못하는 편이에요. 대신에 음악을 듣거나 영화를 볼 때는 그냥 좋은 것들이 많죠. 그래서 음악, 사람, 물건 등 모든 걸 보면서 그때마다 그것이 가진 아름다움을 온전히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하는 편입니다. ‘어쩜 저렇게 저마다 다 아름답지?’ 라는 생각도 일부러 많이 해요. 연습하듯이요.
예전에 비해 작품을 보는 평균 수준이 올라갔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만큼 작가가 정말 열광해서 빠져들었는지 아니면 그런 척만 한 건지도 금방 알아차리시는 것 같아요.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좋은 것들을 진심으로 느낄 줄 알아야 좋은 작품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작가님이 생각하는 ‘동심’이란 어떤 마음인가요?
아까도 잠깐 말씀드렸지만 ‘가장 열려 있는 상태’인 것 같아요. 열려 있으면 모든 가능성은 무한해진다고 생각합니다. 동심이 ‘아이 동(童)’을 써서 동심이잖아요. 어린 시절의 저나 주변의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생각해보면 편견도 없고 숨기는 것도 없죠. 그래서 동심을 지니고 있을 때 모든 가능성이 마음속에서 싹 틔울 수 있다고 생각해요.
아이러니하다고 느끼는 건 우리는 모두 어린이였는데 다들 처음부터 아주 현실적인 어른이었던 것처럼 수많은 가능성을 닫아두고 살고 있다는 거예요. 무언가를 의식해서 일 수도 있고 책임질 게 많아져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럴수록 동심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에게 동심이 필요한 순간이 있다면 언제일까요?
모든 순간이요. 본래 타고난 발랄함을 잃으면 너무 살기 힘든 세상이잖아요. 어떤 특정 순간에만 필요한 마음이 아니라 의식적으로 노력해서라도 모든 순간에 동심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대한민국이 여전히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라는 기사를 봤는데, 통계에 둔감해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일상 속 크고 작은 모든 것들을 아름답게 볼 줄 알아야 이 각박하고 치열한 경쟁 속에서 숨통이 트일 것 같아요.
동심을 유치한 것으로 치부할 땐 어떻게 지켜 나갈 수 있을까요?
동심을 유치하다고 치부하는 건 동심이라는 것에 대해 부정적으로 표현된 일부분만 이야기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최근에 읽은 책에 ‘반쪽짜리 진실이 가장 위험하다’라는 문장이 있었어요. 아이들의 몸짓과 표정을 보면 아이들은 거짓말을 할 거면 유쾌하게 해버리고 대부분 지나칠 정도로 솔직해요. 반대로 어른들은 교묘한 반 쪽 짜리 진실을 말하죠.
저를 보면서 느꼈는데 심지어 저 자신을 속일 때도 있어요. 아무도 보지 않는 일기장에도 거짓말을 적는다고 하잖아요. 정말 위험한 상태죠. 나에게도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면 그게 얼마나 위태로운 삶이겠어요. 그래서 동심을 유치하다고 말하는 분들께 되묻고 싶어요. 스스로에게 지금 솔직하게 살고 계신지.
그래서 저도 요즘 ‘나에게 먼저 솔직해지자’ 이런 생각을 많이 노력합니다. 사회생활을 하는 어른이 솔직해지는 건 엄청난 용기가 필요해요. 타인의 눈치도 봐야 하고, 내가 생각하는 나의 이미지에 어긋날 수도 있다는 불안도 뒤로 미뤄야 하죠. 대부분의 어른들은 그걸 잘 못하거든요.
어른도 모르는 게 많을 수 있고
실수할 도 있어요
동심과 함께한 잊지 못할 경험이 있다고요
일이나 사람 때문이 아닌 실체가 없는 힘듦을 겪던 시기가 있었어요. 보통 이럴 때는 굉장히 멋지게 앞으로 나아간 어른들을 찾잖아요. 근데 이상하게 괜히 그런 사람은 찾아가기 싫더라고요. 한참 고민하다가 문득 6살 아이한테 물어보면 무슨 대답을 해줄지 궁금한 거예요. 그래서 6살 짜리 조카를 찾아갔죠. 그리고 “보빈아 숙모가 보빈이한테 질문 좀 해도 돼?” 물어봤더니 “네!”하고 대답하길래 인터뷰를 하기로 마음먹고 전문 장비로 영상도 찍고 그 친구와 나눈 대담으로 책까지 냈죠.
아마 어린아이를 친구처럼 바라보는 마음이 없었다면 이런 인터뷰는 진행할 수 없었을 거예요. 이런 대화도 나올 수 없었을 거고, 이런 책도 못 만들었겠죠? 언젠가 이 책 이야기를 꼭 하고 싶었는데 이렇게 소개할 수 있어서 너무 기쁩니다.
책을 만들면서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 인상 깊었던 에피소드가 있었다면 몇 가지 얘기해 주실 수 있나요?
제가 “보빈이는 요즘 가장 큰 고민이 뭐야?” 저는 어른이니까 또 짐작을 한 게 6살의 고민이라고 하면 친구 이야기를 하거나 엄마가 유튜브를 못 보게 한다는 말을 할 줄 알았어요. 그런데 진짜 심각한 얼굴로 하는 말이 “숙모, 풍선에 자꾸 바람이 빠져요”라고 하는 거예요.
풍선을 불 때 공기를 넣는 힘이 약하니까 열심히 불어도 휙 빠지는 게 자기 인생의 최대 고민이라는 거예요. 그걸 듣는 순간 ‘그래 맞아, 나도 풍선이 안 불어지는 게 일생일대의 고민인 적이 있었지.’라는 생각이 들면서 제가 하고 있던 고민에 대해 답을 들은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그 자체로 큰 위로가 되더라고요.
그리고 또 하나 인상적이었던 기억이 보빈이가 1부터 20까지 쓰고 싶다고 해서 같이 숫자를 썼어요. 19까지 쓰더니 “숙모 20을 어떻게 쓰는지 모르겠어요”라고 하는 거예요. 우리는 모르는 게 있으면 주눅 들거나, 아는 척을 하거나, 모르는 걸 숨겨요. 근데 아이는 “숙모 20 어떻게 써요? 알려주세요”라고 솔직하게 말하죠. 살면서 어른도 모르는 게 있을 수 있고 실수할 수도 있고 부끄러울 때도 있잖아요. 그럴 때 너무 부끄러워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시간을 묵묵히 견뎌온 사람만이
창조적일 수 있다
작가님을 내면적으로 성장하게 해 준 사건이 있었나요?
특정한 사건보다는 제가 묵묵히 견뎌온 모든 시간들이 저를 성장하게 해 준 것 같아요. 에세이 작가 김동영 님의 책에서 본 건데요. ‘시간을 묵묵히 견뎌온 사람만이 창조적일 수 있다. 보통 사람들보다 어려움을 더 많이 겪고 그것을 더 많이 참아낸 사람들이 창조적이다’ 이 문장을 보고 많이 공감하고 또 감동했어요.
영화처럼 엄청난 귀인을 만나지 않아도, 누군가에게 무용담처럼 말할 만한 극적인 사건을 경험하지 않아도, 지금까지 묵묵하게 견딘 시간이 내면을 성장하게 해줄 거라는 말을 독자 분들께 전하고 싶어요. 서로에게 얘기할 수는 없지만 저마다 묵묵히 견디고 있는 게 분명히 있을 거예요. 가끔은 억울하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그 모든 게 내면이 성장하는 씨앗이 된다면 견뎌볼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며 그 시간을 통과하셨으면 좋겠어요.
작가님만의 방식으로 ‘마음 성장’을 정의한다면 어떻게 정의내릴 수 있을까요?
‘생래적인 발랄함을 계속 유지하려는 태도’가 곧 마음 성장인 것 같아요. 계속 몇 년 전의 저와 비교하는데요. 예전의 저는 굉장히 많은 공부를 하고 세상의 모든 소식을 빠삭하게 알고 있는 것이 제 내면에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요즘은 그냥 재미있고 좋은 것들을 즐기고, 항상 솔직한 마음을 갖기 위해 노력해요. 그리고 이런 노력이 제 내면을 성장하게 해주는 단단한 바탕 역할을 해줄 거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