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나’를 알아가는 시간

한 번쯤은 나를 돕는다는 마음으로 스스로에게 휴식을 선물하세요.

유보라 '라이프컬러링' 대표

‘나’다운 삶을 살기 위해서는 ‘나’는 어떤 사람인지 관찰하고, 알아가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래야만 스스로에게 맞는 속도로 삶의 방향을 찾을 수 있으니까요. 휴식 전문가이자 자아발견 문화를 제안하는 브랜드 ‘라이프컬러링’을 만들어 대중과 만나고 있는 유보라 대표는 ‘정확하게 쉬는 것’이 ‘나’를 관찰할 좋은 기회가 된다고 이야기합니다.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번아웃과 무기력을 계기로 ‘나’와 끊임없이 대화하고, 그 과정에서 깨달은 ‘휴식’의 중요성을 다양한 방법으로 알리고 있는 유보라 대표를 만났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고
‘나’를 찾고 싶어서 나선 길

온/오프라인에서 휴식 전문가로 불리며 강연도 하고,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새롭게 발견하는 브랜드 ‘라이프컬러링’ 대표로도 일하고 계세요.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을 하시나요?

저는 휴식 연구가로 활동하면서 사람들이 ‘나다운 일상’을 만들어가도록 돕는 여러 가지 활동을 하고 있어요. 번아웃이나 무기력에 빠진 직장인을 대상으로 기업 강연과 워크숍을 하기도 하고, 나만의 휴식법을 찾는 ‘휴식 보드게임’이나 ‘나’와의 대화를 시작할 수 있는 ‘컬러루틴 노트’ 등 자아를 탐구하고 발견할 수 있는 도구들을 개발해 필요한 사람들에게 가이드를 제공합니다. 그리고 ‘제철휴식’이라는 뉴스레터를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다양한 휴식법을 전파하고 있어요.

 

7년 동안 여행회사의 마케터로 일하다가 퇴사를 하셨어요. ‘나다움’을 찾기 위해 퇴사를 결심하신 걸까요?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어서 퇴사했으니 ‘나다움을 찾는 과정’이었다고 이야기할 수 있겠네요. 여행회사에서는 여행 콘텐츠를 제작하는 일을 했는데요. 제가 가진 콘텐츠 제작 능력을 활용해 개인 블로그도 함께 운영했어요. 평소 인테리어 분야를 좋아하고, 관심이 많아서 관련 내용을 위주로 포스팅했는데, 포털사이트 메인에 자주 올라가고, 팬도 늘어나더라고요.

 

회사 이름이 아닌 제 이름으로 만든 콘텐츠가 다른 사람들의 인정을 받으니 뿌듯했고, 재미있었어요. 블로그 포스팅을 할 때는 신나는데, 회사에서는 기계처럼 일하고 있더라고요. 관성적으로 하는 일에서 벗어나 진짜 제가 좋아하는 것을 할 때가 왔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퇴사 이후에 다양한 일을 하셨어요. 그중 마음 성장에 도움이 된 것이 있으셨나요?

인테리어 분야의 인플루언서로 활동하면서 공간을 좋아하는 제 적성을 살려 게스트하우스도 함께 운영했어요. 그때 외국인 손님들과 대화하기 위해 일주일에 두 번씩 영어 과외를 받았는데, 이 시간이 제 마음을 엄청나게 성장시켰어요. 과외 선생님이 상담심리학을 전공하신 분이어서 마음과 관련된 이야기를 많이 나눴거든요. 선생님과 대화를 나누면서 어떤 일이든 해내기 위해 치열하게 살았던 제 모습이 알고 보니 번아웃 상태였다는 것을 알았고, 그제서야 제 일상이 무너져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좀 더 다정하고 안전한 방법으로
들여다본 ‘나’의 모습

일상이 무너졌을 때,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일상이 무너지니 무기력이 찾아왔어요. 이틀을 꼬박 쉬어도 몸과 마음이 회복되지 않더라고요. 무기력이 심할 때는 12시간 내내 누워만 있었어요. 아무것도 하기 싫더라고요. 이 시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가장 먼저 했던 일은 ‘남편에게 제 상태를 이야기하기’였어요. 믿을만한 사람과 대화하는 것이 저의 힘든 상태를 인정하는 데에 도움이 되더라고요. ‘내가 지금 힘들다’라는 걸 인정하니까 다음 단계로 나아갈 힘이 생겼어요.

 

그 후에는 차분히 ‘나’와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어요. 요리나 보드게임 같이 제가 좋아하는 활동들을 하면서 ‘나’는 어떤 것을 할 때 즐거워하는지 탐구했죠.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할 때마다 무기력한 마음이 서서히 사라졌어요. 어떤 방법도 도움이 되지 않은 날도 있었는데요. 그럴 때는 저의 하루를 종이에 컬러 펜으로 표시하면서 기록했습니다. 수면, 공부, 산책, 요리 등 하루 동안 했던 활동을 각각의 컬러 블록으로 표시했어요.

 

일상을 컬러 블록으로 표시하면 기분이 나아졌나요?

하루에 있었던 일들을 컬러 블록으로 시각화하니까 무기력하다고 생각했던 하루 중에도 제가 좋아하는 시간이 잠깐이라도 있었다는 걸 알 수 있었어요. 엉망이라고 생각했던 하루였는데, 그래도 좋았던 순간이 있었다는 사실이 위안이 되더라고요. 기쁨, 분노, 고요 등 다양한 결의 시간이 제 삶에 존재한다는 걸 확인할 수도 있었고요. 좀 더 다정하고 안전한 방법으로 저를 들여다보는 기분이었어요. 무기력이 심했던 시기에는 무리하게 애를 써서 괜찮아지려고 하지 않았어요. 한 번에 무기력을 극복할 자신이 없더라고요. ‘나’에게 편한 방법으로 조금씩 제 삶의 모습을 찾아갔어요.

컬러 블록으로 루틴을 그리면서 몸과 마음을 회복했던 이야기를 책 <나의 일주일과 대화합니다>에 담았어요. 루틴이 유행인 시대를 살지만 그보다 더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 ‘나를 다정하게 바라보는 마음’이라고 쓰여진 책의 구절이 인상깊었어요. 

요즘은 루틴을 만들어서 그걸 잘 실천하는 것을 ‘갓생’이라고 이야기하잖아요. 그런데 루틴이든 ‘잘 쉬는 법’이든 이론적으로 잘 안다고 해서 실천할 수 있는 건 아니더라고요. 저에게는 루틴을 짜고 실행할 때 어떤 마음인지가 더 중요했어요. 강박적으로 루틴을 지켜야 한다는 마음으로 스스로를 몰아붙이면 지속적으로 그걸 실천하기 어려웠어요. 실패했을 때 패배감도 컸고요. 작고 간단한 루틴이어도 ‘나를 돌보는 마음’을 갖고 실행하면 성취감과 만족감의 밀도가 훨씬 높아지더라고요. 그래서 어떤 행동을 하든 항상 ‘나를 다정하게 바라보는 마음’을 가지게 됐어요.

 

‘나’를 다정하게 돌보려면 스스로에게 ‘적절한 휴식’을 주는 것도 중요하겠네요.

맞아요. 휴식을 다르게 생각하면 ‘내가 유일하게 주도적으로 쓸 수 있는 시간’이에요. 자기 결정권을 갖는 시간이라 온전히 ‘나’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죠. 그때 ‘나’와 소통하면서 내가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은 무엇인지 다양하게 실험해 볼 수 있어요. 그 과정에서 ‘나다운 삶’의 모습을 알고, 좀 더 자아가 단단해진 자신을 발견할 수 있죠.  

그렇다면 휴식전문가인 보라님은 평소에 어떻게 쉬세요?

저는 휴식을 크게 빈둥대면서 쉬는 ‘빈둥 휴식’, 내 삶을 관찰하는 ‘관찰 휴식’,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는 ‘놀이 휴식’ 3가지 개념으로 나누고, 제 상태에 맞는 휴식법을 골라요. 평소의 저는 자극 추구형이라 일상에서 멈춤이 필요할 때는 식물을 돌보며 빈둥거려요. 요즘 제 모습과 생활을 주제로 가족이나 친구와 대화하면서 휴식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요. 또 한 달에 한 번씩 친구들과 보드게임을 하는 ‘보드게임 DAY’를 만들어서 즐겁게 놀기도 해요.

 

사람마다 자신에게 맞는 휴식법이 다를 거에요. 제가 방금 이야기한 세 가지 휴식법에 들어갈 수 있는 활동들을 찾아보세요. ‘내가 이 활동을 했을 때 어떤 기분이 들까?’를 생각하면 좀 더 찾기 쉬울 거예요. 그냥 생각 없이 쉬는 것과 내가 결정해서 쉬는 것은 만족도에서 큰 차이가 납니다.

정확한 휴식을 위해서
‘쉼’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하기

어른들도 인생에서 방학이 필요한 순간이 있잖아요. 하지만 현실적으로 방학처럼 길게 쉴 수 없으니까 ‘쉴 때 잘 쉬는 것’이 중요할 것 같거든요. 그런데 보라 님은 ‘잘 쉬는 것보다 정확하게 쉬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셨어요. 정확하게 쉬려면 어떻게 쉬어야 할까요?

‘나’의 상태를 잘 알아야 정확하게 쉴 수 있어요. 내 삶에서 어떤 욕구가 결핍되어 있고, 어떤 것이 필요한지 ‘나’에 대한 관찰을 먼저 해보세요. 육체적으로 피곤한데 휴식 시간에 몸을 쓰는 활동을 하면 정확하게 쉬는 것이 아니잖아요. 내가 좋아하는 방식으로 쉬면 10분을 쉬더라도 충분히 쉬었다고 느낄 수 있어요.

 

사람들이 스스로 잘 쉴 수 있어서 일과 휴식의 균형을 잘 맞추면 좋을 것 같은데, 그게 참 어려워요. 어떻게 쉬어야 하는지 잘 모르는 사람은 가장 먼저 무엇을 하면 좋을까요?

먼저 ‘쉼이 필요하다’라는 본인의 상태를 인정해야 해요. 그래야 진정한 휴식을 취할 수 있어요. 그리고 나서는 지난 한 주 동안 재미있었던 일이 무엇이었나 떠올려보고, 그 이유를 생각해 보세요. 한동안은 이런 생각을 하면서 자신에게 맞는 휴식법을 찾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재미있는 일이 없었다면 반대로 일상에서 하기 싫은 일, 덜어내면 좋은 것과 그 이유를 생각해 보세요. 

 

이 과정을 거쳐서 스스로에게 맞는 휴식법을 찾았다면 그걸 실천해 보세요. 휴식법을 찾는 일련의 과정이 피곤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나를 아는 일’은 인간이 에너지를 투자할 가치가 있는 작업이라고 생각해요. 하루가 달라지고, 그날들이 모여서 삶이 긍정적으로 변하니까요.

 

주말을 잘 보내는 것도 잘 쉬는 방법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주말을 잘 쉬는 방법’이 있을까요?

주말에 하고 싶은 활동이 있다면 시간을 정해놓고 기꺼이 해보세요. 시간을 정하는 것이 핵심이에요. 그 시간 동안 몰입할 수 있어서 휴식의 밀도가 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거예요. 반대로 어떠한 활동도 하고 싶지 않다면 주말 동안 스스로를 괴롭히고 소진하는 일은 하지 마세요. 일상에서 부정적인 활동과 감정을 덜어내는 것도 잘 쉬는 방법입니다. 

한 번쯤은 나를 돕는다는 마음으로
스스로에게 휴식을 선물하는 일

삶에서 ‘방학’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요?

‘다정한 강제성’이라고 생각해요. 어른은 ‘쉴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잖아요. 가족, 사랑, 일 등의 가치보다 우선순위에 ‘휴식’을 둬야 비로소 쉴 수 있으니까요. 어른의 삶에는 저절로 방학이 주어지지 않으니, 여유를 만들려면 어느 정도 강제성이 있어야 해요. 대신 그 강제성은 ‘나’를 다정하게 생각하는 용기에서 비롯되어야 그 쉼이 의미가 있어요. 한 번쯤은 나를 돕는다는 마음으로 스스로에게 휴식을 주는 일, 그것이 방학이라고 생각합니다. 

 

보라 님이 생각하는 ‘마음 성장’은 무엇일까요?

‘내가 나로 사는 것이 편안한 상태’요. 최근에 한 예능프로그램에서 국내 정상급 MC가 프리랜서로 일하고 난 뒤에 한 번도 제대로 쉰 적이 없다고 이야기하는 것을 봤어요. 불안과 인정 욕구 때문에 스스로를 몰아붙이던 지난날의 제 모습이 겹쳐 보이더라고요. 제가 삶에서 만족을 느낄 때는 몰아붙이면서 일하는 ‘나’보다 자아 관찰을 통해 편안한 상태로 있던 ‘나’의 모습이었어요. 내가 ‘나’로 존재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편할 때, 그때 마음도 한 뼘 더 자란다고 생각해요.

변화는 오히려 안정을 위한 선택이에요

“예전에는 머무르는 데서 안정을 찾았다면, 이제는 안정을 찾아서 나아가는 편 같아요.”

정병연 커뮤니티 매니저

누구나 멍때릴 시간이 필요해요

“중요한 건 자기의 속도를 찾는 것 같아요. 모두 같은 박자로 달릴 필요는 없잖아요?”

웁쓰양 작가

자연스러운 것, 소소한 것, 즐거운 것

"후배들에게 ‘연습하기 싫으면 연습 안 해도 돼.’ 얘기합니다. 음악은 즐거울 때 해야 효용성이 제일 커지거든요."

하림 음악가

기록에서 얻는 내일의 동력

“힘듦을 극복한 기록이 나중에 새로운 일을 도전하는 힘이 되는 것 같아요.”

반지수 일러스트레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