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슬픔도 괴로움도 언젠가는 과거가 된다

현재의 슬픔에 매몰되지 마세요. 다가올 미래를 위해 지금을 포기하지 마세요.

임화선 변호사

만남은 필연적으로 시기와 형태에 상관없이 이별이라는 결말로 이어집니다. 약 2쌍 중 1쌍이 이혼한다는 대한민국에서 이혼과 조세·금융 전문 변호사로 20년 가까이 커리어를 쌓아온 임화선 변호사는 말합니다. 지금의 감정에 매몰되기보다 객관적으로 상황을 바라보는 태도가 필요하다고요. 힘든 순간에도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말을 되뇌이며 일상의 소소한 행복과 낭만을 좇는 임화선 변호사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드라마 같은 삶은 아니지만

플레이라이프 독자들에게 자기 소개 부탁드립니다.

조세·금융과 이혼·상속 전문 변호사 임화선이라고 합니다. 변호사로 일한지는 어언 20년이 되어가네요. 

 

변호사라는 직업을 선택하신 계기가 있으신가요?

선배 변호사님들의 자유로우면서도 멋진 모습? (웃음). 법학 전공을 하면서도 변호사를 해야겠다는 생각은 크게 없었습니다. 당시에는 노는 게 더 좋았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어느 순간 친구들이 하나 둘 사법시험을 공부하는 모습을 보고 휩쓸려서 준비를 하게 됐죠. 그때는 다른 선택지가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법조인이 되자 마음만 먹었지 사법 연수원 2년차 까지도 명확한 방향을 정하지 못하다가, 로펌에서 변호사 실무수습을 하게 되면서 마음을 먹게 됐습니다. 선배 변호사 분들이 너무 여유 있고, 멋있어 보이더라고요.

 

실제로 변호사가 되어보니 어떠셨나요? 로망과 일치하는 부분이 있던가요? 

많이 다르더라고요. (웃음) 신입 변호사 시절을 회상하면 ‘과로’, ‘야근’ 같은 단어 말고는 떠오르는 게 없는 것 같아요. 말 그대로 서면에 파묻혀 지내다 보니 ‘이게 맞나’ 싶었던 적도 많았죠. 지금 생각해보면 어떻게 버텼는지 모르겠어요. 20년차가 되고 보니 이제서야 제가 그때 봤던 멋있는 선배들 같은 여유가 생긴 것 같아요. 오래 걸렸네요.

변호사님이 주로 다루시는 두 분야가 조세·금융과 가사(이혼) 분야인데요. 조세·금융은 숫자와 명확한 기준에 의거해서, 이혼은 사람 간의 갈등이 주가 되는 분야로 느껴지는데요. 언뜻 보기에 상반되게 느껴지는 두 분야를 동시에 전문하시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그렇게 보실 수도 있지만 법 안에서 근거와 논리를 가지고 다툰다는 점을 놓고 보면 두 분야가 크게 다르진 않습니다. 같은 카테고리의 다른 제품 같은 느낌이죠. 각기 다른 재미가 있는 것 같은데요. 조세 분야는 법률을 제대로 해석하고, 적용했는지를 따지는 쪽인데 초임 변호사 시절부터 관련 소송을 많이 해와서 지금도 선호하는 편이에요.

 

가사 소송은 협업을 통해 한 건, 두 건 한 게 시작이었는데요. 제가 기혼이다 보니 남일 같지 않게 느껴지는 부분이 많더라고요. 그렇게 사건을 점점 더 많이 하다 보니 이제는 조세보다 이혼과 같은 가사 사건을 더 많이 하게 됐네요. 

누군가의 이야기에서

배우는 시간

의뢰인을 만나고, 이야기를 듣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을 것 같은데요. 이런 과정에서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으시나요? 

전혀 받지 않는다고 하면 거짓말이긴 하지만 안 받는 편이긴 한 것 같아요. 다들 이 얘기를 하면 놀라시던데 제가 원래도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는 덕이 큰 것 같아요. 그리고 그 과정 자체를 즐기는 것도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어디서 이렇게 다른 삶을 살아온 사람의 내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겠어요. 그 과정에서 스스로 깨닫고 배우는 점도 많아요.


굳이 따지자면 24시간 일 생각을 멈출 수 없다는 점이 스트레스 라면 스트레스 일 것 같아요. 변호사의 일에서 다양한 경우의 수와 방법을 고민해야 하는 과정이 제일 중요한 부분이기도 한데, ‘어떤 식으로 변론을 하지’, ‘어떤 증거를 어떻게 활용하면 좋지’ 같은 생각이 하루 종일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거죠. 잠들기 전까지 생각하던 사건이 꿈에도 나오니까요.

 

퇴근을 했어도 하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이실 것 같은데 그럴 때는 어떻게 하시나요? 

생각을 일부러 멈추려고 하는 건 불가능하니까 환기를 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쓰죠.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니까 친구나 지인을 만나서 일상적인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자연스럽게 일은 잊혀지고, 그 대화에 빠져들면서 머릿속이 정리가 되더라고요. 운동도 해요. 확실히 몸을 쓰면서 움직이는 순간에는 다른 잡념이 끼어들 틈이 없어서 좋더라고요. 최근에는 테니스를 시작했는데 강력 추천합니다. 

의뢰인에게서 배우는 것들이 있다고 말씀해 주셨는데 이 부분에 대해 조금 더 설명해주실 수 있으실까요? 

일을 하다 보면 ‘정말 소송까지 필요할까, 충분히 합의가 가능할 것 같은데’ 싶은 사건들도 있는 반면에 ‘어떻게 지금까지 소송을 하지 않으셨을까’ 싶은 사건도 있습니다. 그 모든 경우에서 배움을 얻는 것 같아요. 의뢰인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의뢰인처럼 인내할 수 있었을까’, ‘의뢰인처럼 자아성찰을 할 수 있었을까’ 같은 것들을 깨닫게 될 때도 있고요. 또, 저는 사건의 당사자가 아니니 사건을 객관적으로 바라봄으로써 문제 해결을 위해 가져야 할 마음가짐이나 태도 등을 배우게 될 때도 있습니다. 

“엄마가 자랑스러워”

라는 이야기를 들을 때 

법조계 하면 굉장히 보수적인 곳이라는 생각이 먼저 떠오르는데요. 그런 업계에서 여성으로써 커리어를 이어가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을 거라는 생각도 듭니다. 

아무래도 변호사 일이 업무량이 많고 불특정다수의 사람들을 상대하다 보니, “여성변호사가 버틸 수 있겠어”라는 인식이 많은 것은 사실이에요. 제가 변호사를 시작한 20년 전만 해도 여성 변호사 숫자 자체도 적었지만 로펌 채용비율도 굉장히 낮았습니다. 하지만 여성 변호사는 변호사로서 요구되는 꼼꼼함과 공감능력이 기본적으로 좋은 분들이 많고, 그 외 여성변호사만의 장점이 많아서 차츰 바뀌고 있는 것 같아요. 저희 로펌만 해도 지금은 신입변호사들 중 여성변호사 비율이 더 높습니다.

 

 

워킹맘이시라고 들었습니다. 일과 가정을 동시에 신경 쓴다는 게 쉽지 않은데 이와 관련해 겪는 고충이 있으시다면 어떤 것이 있으실까요?

저희 큰 아이가 지금 대학생인데요. 지금도 큰 아이가 어릴 때 어땠는지 떠올려 보면 기억이 잘 나지 않습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변호사를 처음 시작했을 때는 거의 매일 새벽까지 일을 했었습니다. 결혼과 출산을 이른 나이에 한 편인데요. 아무래도 양육이나 가정생활에 많은 관심을 둘 수 없었고 죄송하게도 전적으로 부모님이나 주변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었어요.

 

첫째 아이가 젖먹이이던 시절에는 야간조사까지 예정되어 있는 검찰청 조사 입회를 할 때 유축기를 가지고 다니면서 여성 직원 휴게실에서 모유 유축을 하며 재판을 다녔던 기억이 납니다. 같이 있어주는 시간이 많지 않다 보니 무엇이라도 해주고 싶은 마음이었죠.

 

대부분의 워킹맘이 그렇듯이, 아이가 아프거나 돌봄에 공백이 생겼을 때 즉각적인 대처가 어려워 곤란했던 적도 많았어요. 특히 회의나 상담은 어찌어찌 미뤄도 재판은 출석을 해야 해서 미룰 수 없는 경우가 많다 보니 더 그랬죠. 법원에 아이를 데리고 가서 법정 밖 대기의자에서 기다리라고 한 적도 있었어요.

이렇게 바쁜 엄마에 대해 자녀분은 뭐라고 하나요?

아이가 어릴 때 꿈을 물어본 적이 있었는데 “정시 퇴근해서 가족들이랑 저녁을 먹는 사람”이라고 답했던 게 아직도 기억에 많이 남아요. 많은 생각이 들었죠. 그런데 조금 크고 사춘기가 오더니 오히려 바쁜 엄마를 반기더라고요. (웃음) 요새는 엄마 대단하다, 존경스럽다 같은 말을 해주는데 이루 말할 수 없이 뿌듯하고, ‘잘 버텼다.’라는 생각이 들고 그렇습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스스로도 ‘과로’라고 느끼셨을 만큼 일을 많이 하셨는데 일이 싫거나 놓고 싶으셨던 적은 없으셨나요? 

사실, 스스로 돌이켜봐도 그 전까지 인생에 큰 어려움이 있었다고는 느끼지 않고 살았어요. 그러다 몇 년 전, 큰 일을 한 번 겪었는데 정말 너무 힘들더라고요. 누군가의 위로나 격려도 마음 깊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힘듦을 겪으면서 ‘일을 포기할까’ 라는 생각도 했었습니다. 그런데 주변에서 오히려 일을 더 놓지 말라고 하시더라고요. 지금 이 힘듦에 매몰되지 말고, 다른 쪽으로 신경을 돌려야 한다고요. 어떻게 보면 일로 도피를 한 거죠.

 

그런데 그게 저에게는 도움이 됐어요. 집중해서 서면을 읽다 보면 나에게 벌어진 일, 감정은 모두 사라지고 일만 남는 순간이 오는데 그 시간들을 통해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어요. 그리고 서면 속 다양한 사건들을 보면서 모두 자기만의 힘듦이 있고, 이걸 감내하며 사는구나 싶더라고요. 그게 또 위안이 되기도 했습니다.

언제 ‘내가 괜찮아졌구나’라고 느끼셨나요?

이렇게 말하고 있는 순간에 제일 크게 느끼는 것 같아요. 그때는 ‘이것도 다 지나 갈 거야’라는 위로가 전혀 와닿지 않았었는데, 지나고 보니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이제 알 것 같달까요. 물론 완벽하게 괜찮아 졌냐고 하면 그건 아닌 것 같아요. 그러기는 어렵겠죠. 과거에 겪은 일이 없던 일이 되는 건 아니니까요.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텨내고 보니 이렇게 내어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날이 오는구나 싶어요.

 

 

변호사님에게 마음 성장이란? 키워드나 문장 어떤 것으로 답변해도 괜찮습니다.

욕심은 조금 내려놓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면서 스스로 칭찬해주기. 많이들 이야기하지만 실제로 실천하기는 어려운 말들 인 것 같아요. 앞서 말한 일을 겪고 난 뒤 삶을 바라보는 태도가 조금 달라졌어요. 승소, 패소처럼 결과로 이야기하는 업을 가지고 있다 보니 스스로를 몰아치고, 엄격하게 대한 시간이 길었습니다.

 

 

그런데 내가 잘하고, 이뤄낸 것들에 대해 스스로 칭찬해 준 적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나를 좀 아껴주고, 칭찬해 줘야겠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요즘은 스스로 ‘그래, 잘했어’ 하면서 칭찬도 해주고, 쓰다듬어도 주고 그러고 있습니다. (웃음)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건네고 싶은 말이 있다면?

어떤 힘듦을 견뎌내고 계신 분들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버텨내고 나면 새로운 삶의 국면을 만나게 된다는 이야기를 드리고 싶어요. 현재의 슬픔에 매몰되지 마시고. 다가올 미래를 위해 지금을 포기하지 마세요. 그러다 보면 어느 날 오늘을 추억하고 있는 스스로를 만나는 날이 올 테니까요

스무 개의 일을 거쳐 찾은 나의 일

"방황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요. 젊은 사람이 조금 방황하는 건 당연한 거잖아요.”

김스튜 도배사

기록에서 얻는 내일의 동력

“힘듦을 극복한 기록이 나중에 새로운 일을 도전하는 힘이 되는 것 같아요.”

반지수 일러스트레이터

잘하고 싶은 마음보다 일단 ‘시작’하는 마음으로

“작은 목표를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다 보면 ‘끝’도 있더라고요”

서귤 작가

행복은 아주 작은 것에서부터

“살아가는 모든 순간, 아이와 같은 마음이 필요해요”

누아 일러스트레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