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책을 만나려면 실패가 필요하듯이 - 플레이라이프

김새섬

지식공동체 그믐 대표

좋은 책을 만나려면 실패가 필요하듯이

지금은 독서 커뮤니티 그믐의 운영자인 김새섬 님은, 15년 동안 외국계 기업의 재무팀에서 치열하게 일하던 회사원이었습니다. 이직 실패를 겪고 아무 것도 못할 것 같았던 상태로 떠난 제주에서, 오히려 아무 것도 계획하지 않아서 만날 수 있는 행복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죠. 높은 연봉만을 바라보며 달리던 새섬 님에게, 실패는 삶에 다른 질문을 가져왔습니다. ‘죽기 전 날, 나는 무엇을 가장 후회할까?’

김새섬 님이 찾은

마음 성장의 세 가지 단서

• 계획 없는 일상 속의 행복

퇴사 직후 우울증을 앓았던 때, 계획 없이 제주도에 내려갔어요. 지겨우면 바깥에 나가고, 배고프면 밥 먹는 식으로 여행하면서 기대하지 않았을 때만 느낄 수 있는 행복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 실패를 통해 답을 찾아간다

좋은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은 좋은 책을 고르는 방법과 비슷해요. 고르고, 읽고, 실패를 반복해 보아야만 내게 좋은 책을 알게 되는 것처럼요.

 

• 죽기 하루 전을 상상하기

도전이 두려울 때마다 죽기 하루 전을 상상했어요. 그때 무언가를 괜히 했다고 후회하기보다는 해보지 않은 것에 대해서 후회할 것 같더라고요.

“꼭 무언가를 계획하고 이뤄야 만족스러운 게 아니고,

기대하지 않았을 때만 느낄 수 있는

행복감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어요.”

버는 돈이 곧 나의 가치라고 생각했어요

지금은 독서 모임 플랫폼을 운영하고 있지만, 전에는 책과 거리가 먼 일을 했어요. 외국계 기업의 재무팀에서 숫자를 다루던 사람이었죠. 저의 신념은 ‘돈이 모든 걸 말한다.’였어요. 더 큰 연봉이 곧 저의 가치에 대한 인정이라고 생각했어요. 한 15년 정도를 조금 더 높은 연봉, 조금 더 좋은 회사만 바라보며 달렸죠.

다니던 회사가 더 큰 회사에 인수되었고, 조직 규모가 달라지다 보니 팀장에서 팀원으로 직책이 바뀌었어요. 제 권한이 축소되고 할 수 있는 게 많이 없어졌다 보니 ‘다시 팀장에 도전하자.’ 생각이 들었어요. 새로운 회사의 매니저 직급으로 이직에 성공했지만, 막상 회사를 옮기고 보니 제 생각과 달리 업무의 양도 어마어마하고, 매니저의 책임감도 너무 무거웠어요. ‘내가 우물 안 개구리였구나, 내 주제를 몰랐나 봐.’ 이런 생각까지 들더라고요. 밤을 새우면서 노력했지만 결국 도망치듯 퇴사했어요. 스스로에 대한 실망감, 잘못된 선택을 한 것 같은 후회가 머리 속을 가득 채웠죠.

 

계획하지 않았을 때만 느낄 수 있는 행복

퇴사 직후 우울증을 앓았어요. 아무것도 못 할 것 같다는 마음에 집에만 있었죠. 그 모습을 보다 못한 남편이 저를 제주도에 데려갔어요. 검색이나 준비도 없이 숙소만 겨우 예약했어요. 정보를 찾아볼 기운도 없었거든요. 숙소에만 있다가 지겨우면 바깥에 나가고, 배고프면 밥 먹고, 그런 식으로 슬렁슬렁 여행했어요.

 

한번은 어떤 카페에 들어갔는데 주인장분이 잠깐 카페를 맡아달라고 하셨어요. 많이 당황했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다른 손님은 안 오고 길고양이들만 들락날락했어요. 그런 경험이 되게 따뜻하고 소중했어요. 꼭 무언가를 계획하고 이뤄야 만족스러운 게 아니고, 기대하지 않았을 때만 느낄 수 있는 행복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거든요. 지난 삶을 마치 계획된 여행처럼 살았다는 생각을 했고, 그렇게 계획하지 않더라도 내 삶이 충만하고 즐거울 수 있겠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돈을 많이 벌고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20년을 보냈는데, 문득 ‘사람이 살아가는데 그렇게나 많은 돈이 필요한가?’ 생각이 들었어요. 이제는 젊었을 때 선망했던 맛있는 음식, 멋있는 옷에 대한 욕망을 채울 수 있는데도 오히려 그런 것들에 대한 관심이 사라졌어요.

“내가 원하지 않는 책을 읽어도

감동받을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어요.”

억지로 읽기 시작한 책을 3일 만에 다 읽었어요

마음이 흔들리던 시기에 여러 활동을 찾던 중 독서 모임에 참여했던 적이 있어요. 신청하고 보니 읽을 책이 정해져 있더라고요. 제니퍼 이건의 [깡패단의 방문]이라는 책이었죠. 슬쩍 찾아보니 재미없어 보이고 읽기 싫었어요. 첫 모임부터 안 가는 게 괜찮을까 싶어서 억지로 읽기 시작했죠. 그런데 눈물 펑펑 흘리면서 3일 만에 책을 다 읽었어요. 그때 내가 원하지 않는 책을 읽어도 감동받을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어요.

 

그런데 독서 모임에 가보니 막상 그 책을 추천했던 사람은 별로였다고 하더라고요. 똑같은 책을 읽고도 사람들의 생각이 다 다르다는 게 신기했어요. 다양한 의견을 접하는 것이 책을 깊이 읽는 데에 큰 도움이 되더라고요.

 

함께 읽을 때의 경험을 온라인에서도 이어가고 싶었어요

제주도에 있을 때 내가 무엇을 사랑하는지, 앞으로 어떤 일을 하며 살아갈지 고민했어요. 그러다 문득 그 때의 독서 모임을 떠올렸어요. ‘그거 참 좋았는데, 코로나 때문에 같이 만날 수 없어서 중단한 게 아쉽네.’ 그래서 한자리에 모이지 않고도 사람들과 독서 경험을 나눌 수 있는 온라인 독서 커뮤니티인 ‘그믐’을 구상했죠.


처음에는 ‘과연 요즘 시대에 책을 읽는 사람들이 있을까?’ 스스로도 확신이 없었어요. 그런데 막상 그믐을 만들고 보니 책을 읽는 분들이 여기저기에 숨어 계셨더라고요. 특히 해외 접속자가 많아서 놀랐어요. 해외에 계시지만 여전히 한국 책을 즐겨 읽는 분들이 저희 커뮤니티를 많이 찾아 주시더라고요. 여전히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하는 분들이 많다는 것을 깨닫고 굉장히 뿌듯했어요.

“나 같은 사람이 300년 전에도 있었네.’ 생각이 들고,

내가 사는 세상을 좀 더 이해하게 돼요.”

책은 어떻게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가

오랜 시간의 흐름과 싸워서 이긴 작품들을 읽을 때면 기분 좋은 충격을 받아요. ‘나 같은 사람이 300년 전에도 있었네.’ 생각이 들고, 내가 사는 세상을 좀 더 이해하게 돼요.

 

‘숏폼’이 인기가 많은 시대지만 책은 어쩔 수 없이 롱폼이에요. 몇 시간을 각 잡고 앉아서 읽어야 하니까 힘들 수밖에 없죠.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인생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기도 해요. 다른 매체는 내가 직접 노력하지 않아도 볼 수 있지만 책은 내가 직접 눈을 굴려야 글씨를 읽을 수 있어요. 그런 경험을 반복하다 보면 주체적으로 생각하고 몰입하는 힘을 기를 수 있어요. 그러한 경험들이 삶을 단단하게 해준다고 믿어요.

 

그믐의 커뮤니티에 ‘좋아요’가 없는 이유

어느 날 인터넷 뉴스를 읽던 중 ‘좋아요’가 많은 댓글을 보면 ‘이 의견이 맞아.’ ‘좋아요’가 적은 댓글을 보면 ‘이건 소수 의견이야. 읽을 필요 없어.’라고 판단하는 스스로를 발견했어요. 내용을 읽기도 전에 ‘좋아요’ 수를 보고 옳고 그름을 판단한 거죠. 숫자만으로 가치를 판단하는 게 너무 무섭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그믐을 만들 때 ‘하트’나 ‘엄지’같은 ‘좋아요’ 기능을 과감하게 생략했어요. ‘좋아요’에 의존하기보다 주체적으로 판단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누구의 의견이든 다 똑같이 한 사람의 생각일 뿐이니까요.

“실패와 시련 속에서 조금씩 답을 찾아가는 여정이

곧 삶이 아닌가 생각해요.”

좋은 책도, 좋은 삶도 실패가 필요해요

도서관에 가서 마음 내키는 대로 책을 5권 정도 빌려보세요. 표지가 예뻐서, 제목이 마음에 들어서 등 어떤 이유라도 상관없어요. 집에 가서 쓱 훑어보면 아마 책 5권이 다 별로일 거예요. 그럼 읽지 말고 반납하시면서 다시 또 5권을 마구잡이로 빌려보세요. 반복하다 보면 어느 날 ‘재밌는데?’ 싶은 게 있을 거예요. 그 책을 힌트 삼아 비슷한 책을 하나 둘 읽다 보면 책을 고르는 눈썰미가 생기거든요. 좋은 책을 고르는 방법은 좋은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과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아무리 위인들, 잘 나가는 사람들이 방향을 제시해 줘도 각자의 삶은 다 다르니까 실패와 시련을 겪을 수밖에 없어요. 그 속에서 조금씩 나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여정이 곧 삶이 아닌가 생각해요.

“다른 배가 없어서 조금 무서울 때도 있어요.

하지만 무엇보다 제가 원하는 방향으로

배를 몬다는 기쁨이 굉장히 커요.”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항해하는 기쁨

예전에 제가 중요하게 여겼던 ‘돈’이라는 가치는 사실 사회가 정해준 가치였던 것 같아요. 사람들이 다 남쪽으로 가니까 남쪽에 뭐가 있는지도 모르고 제 배를 남쪽으로 몰았던 거죠. 어느 날 문득 저의 보물섬은 북쪽에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북쪽으로 저의 배를 돌린 거죠. 주위에 다른 배가 없어서 조금 무서울 때도 있어요. ‘정말 북쪽에 보물섬이 있는 게 맞을까?’ 의심이 들기도 하고요. 하지만 계속해서 흔들리는 불안한 마음이 곧 삶 아닐까 싶어요. 무엇보다 제가 원하는 방향으로 배를 몬다는 기쁨이 굉장히 커요. 폭풍우가 몰아치는 날이 있다면, 날씨가 잔잔할 때 따뜻한 햇살이 주는 행복도 있거든요.

“뭘 하더라도 어려움은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무엇을 하냐인 거죠.”

삶의 마지막 순간에 난 무엇을 후회할까

독서 플랫폼을 만들게 되면서 새로운 일을 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컸어요. 그럴 때마다 죽기 하루 전 날을 상상했어요. 마지막 순간에 제 인생을 돌아본다면 ‘아, 그거 괜히 했네.’라는 후회보다는 ‘그거 해봤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라는 후회를 하게 될 것 같더라고요.

 

가끔은 마지막 순간을 떠올릴 때 오히려 오늘을 살아갈 힘을 얻는 것 같아요. 뉴스를 보면 AI 때문에 내 일자리가 없어질 것 같고, 당장 내일 큰일이 날 것 같기도 하잖아요. 삶을 하루, 이틀 단위가 아니라 긴 단위로 생각하면 오히려 다시 용기를 얻을 수 있을 거예요.

 

회사를 그만두고 처음에는 ‘이제부터 좀 쉬면서 지내볼까?’ 생각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쉴 자신이 없었어요. 처음 몇 달은 정말 즐거울 것 같은데, 계속 무한정으로 쉰다는 것도 또 다른 괴로움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뭘 해도 괴롭고 뭘 안 해도 괴로울 수밖에 없다면 무언가를 하는 게 낫겠더라고요. 실패하든 성공하든 좋아하는 일을 하겠다고 마음먹었어요. 뭘 하더라도 어려움은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무엇을 하냐인 거죠.

김새섬 님의 ‘내 마음을 성장시켜 준 것들’

• 매년 12월 31일에 쓰는 유서

한 해의 마지막 날, 남편과 와인과 과메기를 먹으면서 유서 형식으로 내가 남기고 싶은 글을 써요. 죽음이라는 것을 같이 이야기하면 오히려 삶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더라고요.

• 오프라인 북 토크

매월 음력 29일마다 ‘그믐밤’이라는 북 토크 행사를 주최하고 있어요. 온라인으로 이야기던 분들과 직접 만나 작은 공간에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힘과 영감을 얻어요.

• 29분 타이머 집중법

포모도로 집중법을 응용한 집중법이에요. 29분 동안 타이머를 맞춰두고 집중해서 일을 하다가 29분이 되고 타이머가 울리면 무조건 일어나서 스트레칭하거나 물을 마셔요. 뭐든지 적당히 끊어 가는 것이 중요하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