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이 되면 올 한 해를 회고하는 각종 리스트가 유행을 한다. 하루를 살아내는 것만으로도 바쁜데 유행하는 리스트의 모든 질문에 답할 자신도 없고, 어쩐지 막막한 기분이 든다. 나처럼 연말 회고를 시작하려고 보니 막막함부터 느껴지는 분들을 위해 더도 덜도 말고 딱 5가지로 정리해봤다. 압박감이 느껴지는 연말정산이 아닌, 즐거운 추억여행의 느낌으로 한 해를 떠올려보자.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자랑스러운 나
회고를 위해 1월 1일부터 지금까지 모든 일을 하나 하나 되짚어볼 필요는 없다. 2024년을 떠올리면 지금 어떤 기분이 느껴지는가? 뿌듯하고 보람찬 느낌? 아니면 아쉬움과 후회? 나는 올 한 해를 떠올리면 스스로에 대한 자랑스러움이 느껴진다. 올 한해는 박사학위 논문을 위해 살았다. 하지만 생각대로 일이 풀리지 않아 택시 안에서 엉엉 울었던 적이 두어 번 있었고, 모든 게 망했다는 기분에 친구에게 전화한 적도 있었다. 결과 역시 뜻대로 얻지 못한 연구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구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해낸 자신이 무척 자랑스럽다. 남들은 결과만 알지만, 나는 그 모든 과정을 지켜봤기 때문이다.
하기 싫은 것을 해내는 힘을 발견하다
올 해를 한 장면으로 요약한다면 어떤 장면이 떠오르는가? 그때 풍경 속에서 나는 누구와 함께 있고,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가? 나는 서재에서 혼자 논문을 쓰고 있는 모습이 떠오른다. 사실 나는 지독하게 외로움을 잘 느끼는 사람이라 그런 시간을 견딜 수 있을까 무척 걱정을 했었다. 물론 실제로도 외로웠다. 그런데 내가 배운 건 나는 외로움을 싫어하지만 견딜 수 있다는 것이다. 싫은 것이 좋아지기는 어려울 수 있다. 다만 이 경험을 통해 나는 내 안에는 싫은 것을 견딜 수 있는 힘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도 나를 믿지 못했던 순간, 나를 믿어준 너
연말만큼 감사한 사람들을 떠올리기 좋은 시기가 있을까? 연말은 평소 연락하고 싶지만 망설여졌던 사람에게 연락할 좋은 기회가 되어준다. 지금 당장 한 사람에게 연락해 감사의 말을 전할 수 있다면 누구에게 하고 싶은가? 나는 나의 좋은 친구 M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연구 결과가 내 생각대로 나오지 않아 엄청나게 낙심해서 M에게 전화를 걸어 “내 연구 망한 거 같아. 실패야”라고 털어놓자 M이 해준 말이 나는 두고 두고 기억이 남았다. “아니야. 아직 실패라고 판단하기는 일러.”
나 자신에게 감사하는 것 3가지
1년을 회고할 수 있다는 건, 올해를 무사히 살아냈기에 가능한 일이다. 한 해를 살아낸 나 자신에게 감사한다면, 어떤 것에 감사하고 싶은가? 첫 째는 온갖 역경에도 불구하고, 잘 버텨준 것이다. 둘째는 부적응적 완벽주의자의 정서조절과 자기자비라는 내 연구 주제에 부끄럽지 않게 나 자신에게 친절하고 연민 어린 태도로 돌봐 주려고 노력한 것이다. 마지막은 매일 치실 하는 습관을 들인 것. 이 세 가지 덕에 올 한해를 잘 보낼 수 있었다.
뜻대로 되지 않아도 괜찮아
기적이 일어나 올해 1월 1일로 돌아가 나 자신과 1분 간 대화할 수 있다면 어떤 말을 남기고 싶은가? (단, 로또 번호 등 미래에 일어날 일을 직접적으로 알려줄 수는 없다!) 나는 다시 돌아간다면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그 어떤 것도 내 예상대로 되지 않는다. 근데 그래도 괜찮다.”
좋은 마무리는 좋은 시작으로 이어진다. 1년 후의 나는 지금의 다섯 가지 질문에 어떤 대답을 하고 싶을까? 지금과 다른 대답이 되려면 내년에는 어떤 새로운 시도들을 해봐야 할까? 지금의 추억 여행이 내년의 설렘으로 이어지길 기원한다.
지난 1년을 기분 좋게 추억하는 서늘한여름밤의 5가지 질문
• 지난 한 해를 떠올렸는데 떠오르는 감정은 무엇인가요?
• 올해 내가 겪었던 가장 인상 깊은 경험과 그 경험을 통해 무엇을 배웠나요?
• 올해 감사한 사람은 누구인가요?
• 나 자신에게 감사한 3가지를 꼽는다면 무엇인가요?
• 올해의 첫 날로 돌아간다면 나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나요?
글. 서늘한여름밤
고려대학교와 동대학원에서 심리학을 전공했고, 광운대학교 코칭심리 연구소 선임연구원을 거쳐 현재 리다이브 코칭심리연구소 대표로 활동 중이다. 책 <어차피 내 마음입니다> <제 마음도 괜찮아질까요?>를 썼다. 인스타그램 @seobam_breez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