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한수희의 일기] ‘청춘’이라는 이름의 코어 운동

나의 청춘은 내 정신의 코어 근육을 키워준 시기였다.

한수희 작가

스물하나인가 둘일 때의 일이다. 나는 대학에서 영화를 전공하고 있었는데, 동기 중에 좀 특이한 여자애가 있었다. 어느 날 그 애가 뜬금없이 YMCA에서 아이들에게 연극을 가르치는 봉사활동을 같이 해보자고 했다. 학점 인정이 되는 활동이었다. 아이들에게 연극을 가르치는 데는 전혀 관심이 없었지만, 그 여자애가 하자고 하니 왠지 재미있을 것 같아 생각 없이 신청했다. 그러다 얼마 후 그 여자애가 사라져 버렸다.

수업을 며칠 앞두고 담당자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는 내게 수업을 진행할 수 있기는 한 거냐고 물었다. 나는 미안하지만 못할 것 같다고 했다. 벌써 20년도 훨씬 전의 일인데 그 여성의 화난 목소리가 생생하게 기억난다. 그는 수업 날짜를 다 잡아놓고 이렇게 무책임하면 어쩌느냐고 따졌다. 아니, 따졌다기보다 그건 훈계에 가까웠다. 무책임하고 개념 없고 예의도 없는 대학생을 향한 훈계. 나는 거듭 죄송하다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한숨이 나왔다.

아아, 나의 20대는 어쩜 그렇게 무책임했을까? 그건 내가 지금껏 책임이란 것을 져본 적 없이 살아왔기 때문이었다. 내게 있어 아이와 어른의 구분 기준은 이렇다. 책임지지 않아도 좋은 사람은 아이다. 책임져야 하는 사람, 기꺼이 책임을 떠안아야 하는 사람은 어른이다. 나이는 성인이었음에도 나는 아무것도 책임질 준비가 돼 있지 않았으므로 아직 아이였다. 시간이 훌쩍 지나 30대 중반에 나는 청소년들에게 영화 만들기를 가르치는 일을 몇 년 했는데(이번에는 도망가지 않았다), 아직 10대임에도 책임감 넘치는 아이들을 만날 때마다 깜짝 놀라곤 했다. 어머, 이 아이들은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어머, 나는 어떻게 그랬을 수가 있지?


그때 그 연극 수업을 억지로 떠맡았다면 어땠을까? 내 인생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어떻게 달라지긴, 망신이나 당했을 것이다. 할 줄 아는 것도 없고 준비한 것도 없었으니. 하지만 그런 망신, 당해도 싸지 않았을까? 배우고 깨닫는 것도 있지 않았을까? 돌이켜 보면 나의 20대는 온통 망신으로 도배돼 있다. 주구장창 입고 다녔던 어울리지도 않는 이상한 옷들, 어떤 남자 선배에게 좋아하는 마음을 들켰다가 단번에 차인 밤, 카페에서 아르바이트 할 때 저지른 온갖 기행, 선배의 영화에서 했던 역사에 남을 발연기, 내가 만든 말도 안 되는 19금 영화, 면접 보는 자리에서 했던 잘못된 말들, 예의범절을 몰라 저지른 크고 작은 실수들……. 그게 다가 아니다. 내가 여기에 차마 쓸 수 없는 망신의 목록들만 모아도 책 한 권은 만들 수 있을 것이다.(하지만 만들지 않을 것이다.) 절친 둘을 제외하고는 대학 동창은 전혀 만나지 않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내 망신 오브 망신을 죄다 목격했을 걔네들을 어떻게 다시 봐?

그런데 몇 년 전에 인스타그램으로 메시지 한 통이 왔다. 대학 동기였다. 나보다 두 살이 많은 그는 내 첫 영화에서 촬영을 맡은 일이 있다. 내 첫 영화 역시 망신 리스트에 올라 있었기 때문에 우리의 친분은 거기까지였다. 얼마 후 우리는 20년 만에 다시 만나 고량주를 마셨는데, 그가 나와 똑같은 악몽을 꾼다는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 내가 20년째 꾸고 있는 악몽은 다시 대학으로 돌아가 시험날 강의실을 못 찾는 꿈이었다. 영원히 대학을 떠나지 못하는 끔찍한 꿈이었다. 그만큼 내게는 대학 시절이 힘겨웠다. 남들은 다 알아서 잘 사는 줄 알았다. 나만 그런 줄 알았다. 그날 나는 그에게서 지방에서 올라와 기댈 데 하나 없이 외로웠던 나만큼이나, 2년 늦게 대학에 들어와 어린 선배들로부터 은근한 무시와 괴롭힘을 당하던 그 역시 힘들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제야 알았다. 그때의 내가 가지지 못했던 것은 재능이나 자신감이나 외향성 같은 것이 아니라, 내가 힘든 만큼 타인도 힘들 수 있다는 사실을, 내가 상처받는 만큼 타인도 상처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거였다. 그 사실을 그때 알았더라면 내 고통이 세상을 뒤덮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지는 않았을 텐데. 내 20대가 망신으로 도배된 이유는 서툴러서만도 아니고, 촌스러워서만도 아니었다. 그건 내가 나 자신밖에 몰랐기 때문이다. 그 모든 망신의 근원에는 나만 아는 내가 있었다.


놀랍게도 이제 내 아이들이 20대가 되었거나 20대를 앞두고 있다. 요즘 나의 불안은 그 애들이 내가 겪은 그 망신을, 그 상처를, 그 설움을 똑같이 겪지나 않을까 하는 것이다. 나는 마치 처음 혼자서 유치원까지 가보겠다는 아이의 뒤를 몰래 쫓던 오래 전처럼 안절부절하며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지금 내가 저 애들을 위해 해야 하는 건 뭘까? 뭘 해야 저 애들이 조금이라도 덜 힘들까? 아니, 뭘 하려는 것보다는 하지 않아야 하는 건 아닐까?

그래서 나는 나 자신에 대해 생각해 본다. 내 청춘을 돌이켜 본다. 그 시절 나는 힘껏 팔을 뻗어 닿아보고 싶었다. 내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알고 싶었다. 그 감각은 오로지 스스로 찾고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이라서 나는 그렇게 장엄한 망신의 역사를 썼던 것이다. 굳이 하지 않아도 좋을 일을 해서 남들을 당혹스럽게 하고 나 자신을 수치스럽게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넘어져보지 않고 어떻게 걷는 법을 알 수 있겠는가? 굳이 하지 않아도 좋은 일을 하지 않고서 어떻게 자신의 한계를 알아낼 수 있단 말인가? 망신 한번 없이 어떻게 어른이 될 수 있단 말인가?


내 인생에서 20대를 뚝 잘라내 버린다면 그건 척추가 없는 연체동물의 인생 같을 것이다. 플랭크는 10초도 못하지만 나의 청춘은 내 정신의 코어 근육을 키워준 시기였다. 수없이 실패하고 넘어지던 시기, 망신의 시기, 내 인생의 흑역사, 나의 청춘은 내가 그럭저럭 무사히 어른이라는 시기에 안착하게 해준 고마운 시기였다. 그래서 나는 내 아이들에게 이 정도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을 것이다. 그땐 원래 힘든 거야. 다 그랬어. 그래도 지나가. 다 지나가. 그러나 나는 그 뒤의 이야기는 해주기 힘들 것 같다.

To. 청춘의 시기를 보내고 있는 내 아이들에게


불안정한 청춘의 시기가 지나가면 뭔가 확실해진 것처럼 보이는 시기가 오긴 해. 그러나 그건 눈속임일 뿐이야. 어느 순간 다시 방황이 시작되지. 그런데 지금의 방황은 젊을 때와 달라. 우리에게 미래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 그 사실이 순간 순간 가슴을 옥죄어. 책임져야 할 것은 많고 얻을 것은 점점 적어지는 나이. 그러고 보면 인간의 삶이란 건 방황하고 또 방황하는 일의 연속인지도 모르겠어. 비관적으로 보면 그렇지.


나는 오늘 새벽 눈을 떠서 그런 고민에 잠겨 있었어. 요즘 날씨가 무척 더운데 오늘 아침은 창밖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너무 시원하더라. 그래서 운동화를 신고 밖으로 나갔지. 여름 아침의 바람이 어떤지 아니? 시원하고 따뜻해. 바람에서 호의가 느껴져. 바람도 호의를 품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돼. 하늘은 새파랗고 구름은 누군가 슥슥 붓질을 해놓은 듯해. 초록색 잎들이 바람에 흔들려. 너무 아름다워. 이렇게 아름다운 세상이구나, 라고 생각해. 문득 나는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다름 아닌 세상으로부터. 문득 내 고민이 자몽만 한 크기에서 달걀만 한 크기로 줄어들어. 고민은 사라지지 않아. 죽는 날까지 계속되겠지. 하지만 세상은 나를 사랑해. 나도 세상을 사랑하고. 그건 확실해.


엄마가 너희들 나이 즈음에 저지른 망신 중에는, 앞서 말한 첫 단편 영화를 찍던 날 너무 당황해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다가 결국 한 컷도 찍지 못하고 해산한 일도 있었어. 그날 나는 나만 바라보고 있는 스태프들 앞에서 사라져버리고만 싶었지. 나 자신이 너무나 실망스럽고 부끄러웠어. 어떻게 하지? 나 어떻게 하지? 나 이 인생을 잘 헤쳐나갈 수 있을까? 이런 나로 어떻게 계속 살아야 하는 거지?

무거운 마음을 질질 끌고 집으로 터덜터덜 돌아가는 길이었어. 문득 고개를 들어보니 해질 무렵의 하늘이 너무나 크고 너무나 넓은 거야. 그리고 아름다웠지. 내 마음은 이렇게 지옥인데, 하늘은 정말이지 무심하게 느껴질 정도로 아름다웠어. 순간 나 자신이 아주 아주 작은 존재처럼 느껴지더라. 그건 상심 같은 느낌이 아니라, 무언가의 일부가 된 듯한, 무언가에게 보호받는 듯한 그런 느낌이었어. 그렇다고 그게 내 고민을 해결해준 건 아니었어. 그럼에도 하늘이 아름다웠다는 사실은 분명히 기억하고 있어. 그래, 돌이켜보니 나는 그때도 세상을 사랑하고 세상으로부터 사랑받았던 거야. 세상은 나에게 끊임없이 그런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던 거야. 그런 것을 잊지 말렴.
그런 것을 잊지 말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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