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고난 기질 차이를 인정하자!”
주변을 보면 다들 혼자서도 잘 지내는 것 같고 민감하지 않은 것 같은데 왜 이렇게 나만 예민하고 소심한 걸까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우리는 이럴 때 스스로의 인격과 존재를 너무 쉽게 자책하게 돼요. 하지만 알아야 할 것은 사람은 날 때부터 관계에 대해서 타고나는 기질의 차이가 있다는 거예요. 그건 좋고 나쁨으로 구분되거나, 성숙함과 미숙함으로 구분되지 않아요. 그저 생김새가 다른 거죠.누구는 매우 독립적이고, 사회적 민감성이 낮고, 사고중심적인 기질로 태어나지만 그만큼 배려심이나 공감능력도 떨어져요. 반대로 누구는 관계 중심적이고, 사회적 민감성이 높고, 정서적 활동이 활발한 사람으로 태어나요. 그래서 배려나 공감도 잘하는데 문제는 상대방도 나처럼 배려와 공감을 해줘야 깊은 우정, 사랑하는 사이라고 느낀다는 거예요. 그래서 상처도 잘 받고 쉽게 서운해져요.
저는 관계 중심적이고 사회적 민감성이 높은 사람으로 태어났는데 그렇게 살면 저 자신이 너무 힘드니까 애써 모른 척했던 것 같아요. 자신을 쿨하고 독립적인 사람이라고 인지하면서 굳이 친한 친구를 만들지 않고 학창시절을 보냈어요. 중고등학교 때 여학생들이 흔히 만드는 단짝 친구를 원하지 않았고 혹시나 저에게 단짝으로 붙으려는 친구가 있으면 너무 부담스러워서 밀어낸 적도 많았어요. 그래서 주변 사람들도 저를 쿨하고 독립적인 사람으로 생각했어요.
“우리는 기울어진 관계가 아닐까?’ 하는 데서 오는 불안”
근데 심리학을 공부하고서 저의 진짜 모습을 찾다 보니까 예전의 제 모습은 상처받기 싫었던 방어기제였던 것 같아요. 공부를 하고 나이도 들고 하면서 저 자신을 다시 보니까 한 두 명의 친구에게 집착을 하고 있더라고요. 상대방과 함께 할 때 너무 저 자신이 충만해지고 만나면 헤어지기가 싫고 전화든 톡이든 계속 이야기하고 싶어 했어요. 연결을 통해 안정감과 힘을 얻는 사람이었던 거예요. 하지만 제가 좋아하는 친구는 사회적 민감성이 낮고 독립적인 사람이라서 그런 저를 다 받아주지 못했어요. 좋아한다는 표현도 부족하고 시크한 사람이라서 이런 저를 서운하게 할 때가 많았죠.
항상 저 혼자만 친구를 좋아하는 것 같은 느낌을 떨칠 수가 없었고 마치 짝사랑을 처절하게 하는 것 같은 쓸쓸하고 외로운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죠. 저는 마음을 주는데 그 친구는 아닌 것처럼 느껴졌어요. 그러다가 제가 서운함을 표하면 항상 제가 불안하고 복잡한 사람이라서 그렇다는 말만 돌아왔어요. 모든 것이 제 탓으로만 치부되었고 그럴 때마다 저도 제가 정말로 문제 있어서 그렇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쿨한 그 친구를 더욱 동경했고 닮고 싶어 했죠. 갑과 을이 있다면 저는 을이었던 거예요. 동등한 관계가 아니고 기울어진 관계였기에 뒤돌아 씁쓸한 느낌을 지우지 못했던 거예요.
“나를 지키는 게 우리를 지키는 것!”
그러다가 어느 날, 그 친구가 저와 놀러 가기로 했던 약속을 어겼어요. 나중에 그 이유를 상세히 알게 되었을 때 별 일 아니었다는 걸 알고 그저 내가 우선순위에서 밀린 것이라는 사실에 그간의 모든 설움이 폭발해서 아주 크게 싸우게 됐어요. 저는 그 약속을 한 달 전부터 혼자 준비하면서 예약도 다 해놓고 물질적, 정신적 에너지를 이미 많이 쏟은 상태였거든요. 그후에 저는 결심하게 되었어요.
“나를 잃으면서 지켜야 할 관계는 없다. 나 자신보다 소중한 관계는 없다.”상대방을 사랑한다는 이유로 자기를 잃어버리는 것은 진정한 우정도, 진정한 사랑도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저 자신을 되찾기 위한 시간을 한 달가량 갖게 되었어요. 그 친구가 나빠서도 아니고 그저 제가 너무 상대방에게 기울어져 있는 게 문제였던 거니까요.
일단 연락을 끊었어요. 그 친구가 왜 답장하지 않냐고 물어봤을 때는 ‘내 중심을 되찾기 위해 시간을 좀 갖고 더 이상 너의 반응에 흔들리지 않을 만큼 내가 괜찮아지면 연락을 하겠다.’고 알려주었어요. 정말로 끊어버릴 게 아니라면 배려가 있어야 해요. 대화에서 상대를 탓하지 않는 것, 그렇다고 나를 탓하지도 않는 것은 매우 중요해요.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닌 서로의 다름 때문이라고 인정하고 이 다름을 맞출 수 없다면 서로가 상처받지 않도록 약간의 거리를 두어야 하는 거죠. 나를 잃지 않을 수 있도록 말이에요.
쉽지는 않았어요. 그 친구와 일상을 공유하던 시간이 그립기도 했지만 한 달이라는 시간을 타협하지 않고 어떻게든 혼자서 버텼어요. 그렇게 한 달가량이 지나서 우리는 조금의 어색함도 없이 그저 반갑게 다시 만났어요. 그 이후에도 갈등은 여전히 있었어요. 그러나 서로를 통해 배우는 점이 분명히 있었고 둘이 비슷해서 친한 게 아니라 달라서 서로를 좋아하고 있다는 것을 떠올렸어요. 갈등이 있을 때마다 무조건 상대에게 맞추면서 저자세가 되지 않으려고 했고, 저 자신을 우선에 두고 소진되지 않는 선택을 하려고 했어요. 그리고 전처럼 모든 일상과 감정을 공유하려고 하지 않았고 말없이 혼자 담아두는 시간을 늘려갔어요. 또한 그 친구가 답장을 하든지 안 하든지 온라인상의 연결이 꼭 그 친구의 마음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고 애썼어요. 그렇게 저 자신을 잃지 않으면서 상대방의 마음을 신뢰하려는 노력을 통해 지금은 아주 안정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어요.일생에 이런 믿을만한 친한 친구를 둘 수 있다는 것이 정말 감사하다고 느껴요.
“애정의 깊이는 연락 횟수와 비례하지 않아요”
관계에 민감한 사람들은 온라인상의 연락이나 소통에 많은 의미를 부여한다고 해요. 그런데 어떤 사람은 전혀 그렇지 않거든요. 굳이 연락하지 않아도 마음에 늘 똑같은 사랑으로 담아두는 사람도 있어요. 상담을 하다보면 본인도 빨리 답장을 하지 않으면서 상대방의 답장이 느릴 때 불안해하는 사람들이 있더라고요. 그러는 당신은 왜 답장을 빨리하지 않느냐고 물으면, 너무 즉각 대답하면 거기에 매달려 있는 모습을 들키는 것 같다고 말해요. 밀당 같은 건가 봐요.
그런데 저는 애착관계, 깊은 관계의 기본은 진실함이라고 믿거든요. 솔직함이요. 의도하지 않고, 유도하지 않고, 떠보지 않고, 밀당하지 않고, 투명하게 소통하는 태도가 그 관계의 신뢰를 더 두텁게 해주고 더 깊은 관계로 나아가게 해주는 것 같아요. 제가 그 친구와 잠시 거리두기를 할 때 쓸데없는 거짓말로 둘러대지 않았어요. 바쁘다, 정신없었다, 연락 온지 몰랐다, 이런 하얀 거짓말들을 하지 않았어요. 그건 별로 안 친하고 신뢰가 깊지 않은 상대에게 하는 태도이고 내가 정말 좋아하고 친하게 생각한다면 저는 솔직해야 한다고 믿어요. 그게 상대방에 대한 배려인 거죠.
요즘은 피상적인 관계가 참 많은 것 같아요. 유튜브나 방송에서 전문가들이 나와 친구를 너무 가까이하지 말고 혼자 잘 지내는 것이 건강하다고 말하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인간은 날 때부터 사회적인 뇌를 가지고 태어나고 어머니의 자궁 속에서 공생관계로 태어납니다. 인간은 혼자 지낼 수 없어요. 다만 질투나 시기, 은근한 경쟁과 비교, 사회 적응을 위해 겉으로만 잘 지내고 마음이 오가지 않는 피상적 관계는 필요 없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정말 진실한 애착관계, 깊은 소통의 관계, 마음을 터놓고 눈빛만으로도 위로를 주고받는 안정된 관계는 꼭 필요한 것 같아요.
그런 관계로 나아가기 위해 저도 많은 눈물과 설움의 시간들을 보내었고 그럼에도 그 친구를 놓을 수 없었던 건 진심으로 좋아했기 때문이에요. 저는 이런 게 진심이라고 생각하고, 진심은 결국 가닿는 것 같아요. 서로 눈치만 보면서 겉핥기만 하는 그런 관계에 에너지를 쓰지 말고 평생 내 편이 되어줄, 나 또한 평생 응원해주고 싶은 그런 관계를 만들어보세요. 그 어떤 스펙이나 재물보다 가장 큰 것을 얻은 사람일 거예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