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한수희의 일기] 작은 기쁨

정말 어려운 게 삶이다. 바로 그 때문에 작은 기쁨이 필요하다.

한수희 작가

올 한 해도 끝이 났다.

이제 우리는 2026년을 살게 될 것이다. 이미 충분히 먹은 나이는 또 한 살을 더 먹을 것이다. 지난 1년을 또 얼렁뚱땅 넘겨버렸다는 사실에 허탈한 기분이 든다. 아니, 그건 아니지. 2025년에 나는 많은 일을 했다. 몇 년 동안 해야지, 해야지 하기만 했던 쿵후를 드디어 시작했고, 7년 만에 새 에세이집도 출간했다. 그것만 해도 내 인생에는 큰 진전이 있었던 셈이다.


하지만 슬픈 일들도 있었다. 지난 봄에는 시아버님이 한 달 동안의 짧은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나셨다. 그리고 가을에는 내 남동생이 그 뒤를 따랐다. 1년 동안 가족을 둘이나 잃은 것이다. 무엇보다 동생을 잃은 슬픔과 충격에서 나는 아직 헤어나오지 못했다. 다섯 살이나 어린 동생이 나보다 먼저 떠날 거라고는 상상조차 해본 적 없었기 때문이다.


동생은 건강하고 활기찼으며 행복했다. 운도 따랐다. 직업적으로도, 가정적으로도 최고의 시기였다. 건강 관리도 열심히 했고 정기 검진에서도 아무 이상을 발견하지 못했다. 동생과 그의 아내는 차근차근 미래를 준비하고 있었다. 이를테면 더 나은 커리어라거나, 노후라거나 하는 것들을. 그들 앞의 미래는 밝았다. 그런 동생의 심장이 멈춘 것은 한순간이었다. 누구도, 그 애 자신마저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내 동생은 네팔 카트만두에 살고 있었고, 우리는 소식을 들은 다음날 그 애의 마지막 모습을 보기 위해 카트만두로 향했다. 그런 일에 대해서, 그런 영화 같은 일에 대해서 나는 아무것도 몰랐다. 가족을 한순간에 잃게 된 사람의 마음에 대해서, 그가 맞닥뜨릴 일들에 대해서 나는 아무것도 몰랐다. 낯선 도시에서 우리는 매일 매일 고통스러운 일들을 처리해야 했다. 아침마다 퉁퉁 부은 눈을 씻으며 마음을 다잡았다. 생각하지 말자. 그냥 해야 할 일들을 하자. 생각하지 말자. 이런 일에 도대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여전히 알지 못하는 채로 우리는 동생의 영정 사진을 가지고 돌아왔다.


인생이 하나의 농담처럼 느껴졌다.

그 전까지 나의 삶은 일주일과 일주일과 일주일의 반복이었다. 일요일 오후부터 울적해지다가 월요일과 화요일은 그저 견디며 버텼고, 수요일부터 조금씩 희망에 부풀어오르다가 금요일 저녁이 되면 최고로 행복하고 토요일은 어영부영 지나가 버렸다. 이 인생 무슨 낙으로 살아야 하나 싶었다. 매일 한 잔의 커피와 한 캔의 맥주로 흥을 냈다. 가끔 여행이나 쇼핑, 외식으로 기분을 달랬다. 그러면서 숙제라도 하듯 미래를 걱정했다. 자기가 몇 살까지 살지 아는 사람은 없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게 내 일은 아닐 거라 생각했다. 내 미래는 벅차게, 아주 벅차게 길 것만 같았다. 그래서 나는 자주 불안했고 주로 막막했으며 가끔 희망찼다.


중년이 되니 인생이 하나의 거대한 농담처럼 느껴졌다. 나이든 부모님의 고집스러움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그러면서도 그들의 노화를 적절히 안타까워하고, 그러다가 결국 그들이 나보다 먼저 떠날 (가능성이 높은) 존재라는 실감나지 않는 사실에 마음이 조금 서늘해지는, 그런 씁쓸한 농담. 아마도 그런 일을 나는 내 동생과 함께 겪을 테고, 그럴 때 막내 특유의 무심함과 철없음에 속이 터질 수도 있었겠지. 그런데 이제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나는 혼자다. 나에게는 형제가 없다. 나는 내 부모님의 유일한 자식이 되어버렸다.


이건 현실이다. 부인할 수도, 무를 수도 없는 현실. 내 동생의 삶이 한순간에 끝났다. 그 애가 쌓아올린 모든 것들이 무너졌고, 그 애의 미래 역시 마치 그 애가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처럼 삭제됐다. 그런 것을 생각하면 길을 잃은 듯한 기분이 든다. 어쩌면 우리 삶은 농담이 아니라, 한낱 거짓말 같은 게 아닐까?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 소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에는 생일을 며칠 앞두고 차 사고로 혼수상태에 빠진 어린 아들 스코티를 지켜보는 부부가 등장한다. 병원에서 가슴을 졸이던 부부는 잠시 집에 들를 때마다 케이크와 스코티를 잊었느냐는 말만 하고 끊어버리는 이상한 전화를 받는다. 의사의 낙관과는 달리 아들은 곧 숨을 거두고, 절망에 빠진 부부가 집에 돌아오자 또다시 전화 벨이 울린다. 전화를 건 사람이 아들의 생일 케이크를 주문한 무뚝뚝한 빵집 주인이라는 걸 알게 된 순간, 그들은 분노에 차서 빵집으로 달려간다. 부부는 새벽녘 홀로 불을 밝힌 빵집에 들어가, 경계하는 주인에게 아들이 세상을 떠났다며 울부짖는다. 빵집 주인은 어쩔 줄 몰라 하며 부부를 자리에 앉히고는 커피와 갓 구운 빵들을 대접한다.


“내가 만든 따뜻한 롤빵을 좀 드시지요. 뭘 좀 드시고 기운을 차리는 게 좋겠소. 이럴 때 뭘 좀 먹는 일은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될 거요.”


부부는 밤새 그 빵을 먹으면서 빵집 주인의 인생 이야기를 듣는다. 그러다가 날이 조금씩 밝아온다. 그런 이야기다. 나는 이 이야기를 너무나 사랑해서 1년에 한 번씩은 읽어보곤 한다. 심플한, 냉정하게 느껴질 정도로 심플한 이야기 속에 숨은 희망의 냄새를 맡아보곤 한다. 마치 갓 구운 빵 냄새를 맡는 것처럼. 연말에 나는 이 이야기를 다시 꺼내어 읽는다. 내가 이런 이야기를 알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일이 무엇인지 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동생이 떠난 후에도 나는 매일 아침 커피를 내리고 빵을 토스트기에 넣는다.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느긋하게 아침을 먹는다. 출근해서 일을 하고 퇴근 후에는 간단한 저녁을 만든 뒤 쿵후 도장으로 향한다. 배운 동작들을 하나하나 연습하다 보면 한 시간이 훌쩍 지나 있다. 전에는 늘 집중하는 게 어려웠다. 이걸 하다 보면 저것 생각이 났고, 저걸 하다 보면 그걸 해야지 싶어서 마음이 바빴다. 마음은 늘 지금이 아닌 과거나 미래에 있었다.


어느 날 쿵후 연습을 하다가 내가 늘 다음 동작을 생각하며 마지막 동작을 대충 마무리해 버린다는 걸 알게 됐다. 아, 내 문제가 이거였구나. 마음이 딴 데 있다는 것이 바로 이거구나. 그때부터는 동작 하나 하나에 끝까지 마음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집중하는 건 어렵지만 마음을 기울이는 것은 해볼만 했다. 집중하기와 마음을 기울이기의 차이는 뭘까?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할 때마다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정신에도 힘이 들어간다. 금세 피곤해진다. 그래서 자꾸만 마음이 흐트러진다. 하지만 마음을 기울이는 건 좀 가볍다.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마음을 기울이는 건 뭐랄까, 감시보다는 다정함의 영역에 있는 것 같다. 내 몸의 움직임을 감시하는 것이 아니라 다정히 지켜봐주는 것.


쿵후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어두운 길에서는 늘 조금 운다. 그러다가도 집 근처 공원에 도착해서는 운동기구로 팔 운동을 조금 한다. 별 거 아닌데 꾸준히 몇 달을 했더니 팔에 근육이 생겼다. 역시 꾸준한 게 중요한 거구나, 하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빼먹지 말고 해야지, 하고도 생각한다. 집으로 돌아와서 샤워를 하고 TV 앞에 앉아서 좋아하는 드라마를 본다. 늦지 않게 침대에 누워 눈을 감는다.


바로 그 때문에 작은 기쁨이 필요하다.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소설 <올리브 키터리지>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올리브는 생이 그녀가 ‘큰 기쁨’과 ‘작은 기쁨’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에 달려 있다고 생각했다. 큰 기쁨은 결혼이나 아이처럼 인생이라는 바다에서 삶을 지탱하게 해주는 일이지만 여기에는 위험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해류가 있다. 바로 그 때문에 작은 기쁨도 필요한 것이다. 브래들리스의 친절한 점원이나, 내 커피 취향을 알고 있는 던킨 도너츠의 여종업원처럼. 정말 어려운 게 삶이다.


정말 어려운 게 삶이다. 바로 그 때문에 작은 기쁨이 필요하다. 어느새 단단해진 팔뚝을 만지며 기뻐한다. 새로 산 원두로 내린 커피를 마시며 기뻐한다. 매일 안부를 물어주는 친구의 메시지에 기뻐한다. 사춘기 아이의 드물게 활짝 웃는 얼굴에 기뻐한다. 어제보다 0.5kg 줄어든 체중계의 숫자를 보며 기뻐한다. 볕이 잘 안 드는 집에 잠깐 드는 겨울의 귀한 햇볕에 기뻐한다. 남편이 마감 세일로 사온 스시 세트를 보며 기뻐한다.


살아가는 일에는 목적이 없다. 살아 있으니까 사는 것뿐이다. ‘왜?’ 에 대해 집요하게 생각할수록 마음은 어두워진다. 그보다는 ‘어떻게?’ 에 집중한다. 그럴 때는 이런 작은 기쁨들을 생각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그러고 보면 이 글에는 지난 해 내가 이 칼럼을 통해 했던 이야기들이 모두 녹아 있는 것 같다. 다행이다. 나의 인생이 현재진행형이라서. 그때 그때 생각하고 느끼고 배운 것들을 잊지 않고 살아가고 있는 것 같아서.


올해처럼 ‘끝’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낀 적도 없는 것 같다. 역시 살다 보면 온갖 일을 다 겪게 되는 거구나, 하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그 끝에서 다시 시작하기로 한다. 동생이 떠났지만 나는 잘 살 것이다. 동생이 떠났기 때문에 나는 더 잘 살 것이다. 나에게는 남은 부모님을 돌봐야 할 책임이 있다. 그러나 그것 외에도 동생이 내게 알려준 것이 있다.


누구나 머리로는 아는 일, 하지만 진심으로 깨닫기는 힘든 일. 바로 오늘을, 지금을 살아야 한다는 것. 지금이 우리에게 주어진 전부이며, 우리가 가진 전부라는 사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기적이라는 사실. 그게 동생이 내게 남긴 메시지다. 그 귀한 메시지를 나는 끝까지 잊어버리거나 잃어버리지 않고, 죽는 날까지 소중하게 간직할 것이다.


[웃따의 마음 돋보기] 부모로부터 독립하기

부모에게 실망할 수 있는 선택권과 힘이 있다고 믿으니 마음이 무겁지 않습니다.

웃따 상담심리사, 유튜브 <상담심리사 웃따> 운영자

[큐레이션] 우리의 청춘을 떠올리게 하는 6가지 콘텐츠

어떤 콘텐츠가 여러분의 청춘을 불러낼까요?

이재현, 고선향, 임혜지 편집자 문학동네

[큐레이션] 인생 권태기에 추천하는 콘텐츠&공간

“앗, 인생 권태기가 와버렸다!”

황소연 선임 기자, 김윤지 기자 매거진 <빅이슈코리아>

[큐레이션] 정신과 후회 우회 영수증

여러분의 영수증에는 어떤 후회가 담겨 있나요?

정신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