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한수희의 일기] 잘 듣는 귀를 갖고 싶어

나는 계속 귀를 기울이고 있을게. 네가 있는 곳쪽으로.

한수희 작가

말이 늘어난 사람의 뒤늦은 질문

나는 기본적으로 내향적이고 말수가 적은 편이지만, 가까운 사람들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듣기보다 말하는 타입이다. 솔직히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다. 심지어 질문도 많이 한다. 침묵이 불편해 진행자를 자처하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누군가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는 항상 내 입을 꿰매고 싶다. 가만히 있을 걸. 그냥 들어만 주면 될 걸.


내 친구는 말이 없다. 그 애는 들어주는 사람이고 나는 말하는 사람이다. 무려 50년 가까이 그런 관계로 지내왔다. 내 친구에게 넌 말이 없잖아, 라고 말했을 때 그 애는 이렇게 답했다. 난 할 말이 없어. 할 말이 없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아아, 나에게도 할 말이 없던 시절이 있었지. 누구에게나 과묵한 한수희로 통하던 젊은날이 있었지. 그때는 왜 할 말이 없었을까? 아는 게 없어서였다. 음, 무식이 이유였구나.


언젠가 우치다 다쓰루가 젊은이의 수줍음에 대해 이렇게 쓴 적이 있다.


어떻게 해도 ‘진정한 마음’을 말로 표현하지 못해 무엇을 말해도, 무엇을 해도 ‘이런 건 나답지 않다’는 답답함만 남고, 그 때문에 자신이 내뱉은 말에 대한 책임을 끝까지 질 수가 없어서 했던 말을 철회하고, 말끝을 흐리는 이런 모습이 ‘젊음’의 특징입니다. – <소통하는 신체> 중에서

나는 그 문장에 밑줄을 그었다. 누군가 내게 ‘네 젊은날은 썩 나쁘지 않았어’ 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지금은 안다. 그때의 내 속은 텅 비어 있었다기보다는 오히려 너무 많은 것들로 가득해서 대체 무엇부터 어떻게 끄집어내야 할지 몰랐다는 것을. 마구 뭉쳐 있는 생각과 감정들을 하나하나 풀어내 언어화하는 방법을 몰랐다는 것을. 그때의 나는 무식하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미숙했던 것이다.


내게 할 말이 생긴 것은 20대 중반이 넘어서부터였는데, 그제야 내가 너무 무식하다는 자각이 들었고, 그래서 책을 읽고 신문을 보며 뭐라도 좀 알기 위해 노력했다. 말을 잘하려면 생각을 말로, 문장으로 만드는 과정에 익숙해져야 한다. 외국어를 배우는 것과 마찬가지다. 많이 읽고 많이 말할수록 는다. 생각을 문장으로 변환하는 시간이 단축된다.


그런데 그건 과연 좋기만 한 걸까? 전보다 말을 잘하게 된 나는 알지 못하는 것들을 쉽게 아는 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 말은 내 생각보다 더 빠른 건 아닐까? 주저하는 말이야말로 귀한 말이 아닐까? 나는 하지 않아도 좋은 말들을 대량 생산하고 있는 건 아닐까?


이해한다는 말의 오해

얼마 전 우리 가족은 힘든 일을 겪었다. 힘듦은 현재진행형이다. 나는 멀리 있는 가족 S와 통화를 했다. 술에 취한 그는 나쁜 생각이 든다는 이야기를 했다. 내가 뭐라고 했겠는가? 나는 화를 냈다. 그리고 그에게 일장연설을 했다. 전화를 끊고 나서야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내가 그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그저 들어주는 것뿐이었는데. 그런데 내게는 들어주는 귀가 없다. 나에게는 입뿐이다.


내가 불안장애로 깊은 우울에 빠져 있을 때, S와 별반 다를 바가 없는 상태였을 때, 내게 가장 도움이 되었던 것은 아무 말없이 들어주는 친구들이었다. 네 얘기라면 언제까지라도 들어줄 수 있어, 네 손을 잡아주고 너를 안아줄 수 있어, 네 곁에 있어줄 수 있어, 라는 무언의 메시지를 보내는 이들이었다. 나는 그런 이들 덕분에 그 수렁에서 빠져나왔다. 그런데 왜 S에게는 그렇게 해주지 못했을까?


어쩌면 나는 이 상황에서도 ‘나’를 중심에 두고 있었던 건 아닐까? 주연은 따로 있는데 조연인 내가 주인공 역할을 가로챘던 것은 아닐까? 그를 이해하려 하기보다는 나의 입장을 피력하는 데 최선을 다했던 것은 아닐까? 그때 나는 이해라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했다. 나는 지금껏 이해를 상대의 생각에 동의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상대의 생각에 동의할 수 없었기 때문에 내게는 상대를 이해한다는 것이, 그에게 반박하거나 조언하거나 충고하거나 훈계하지 않고 그저 들어주기만 한다는 것이 힘들었다.


그러나 이해는 그런 것이 아니다. 이해는 그의 생각에 동의하는 것도 아니고 그의 감정에 전적으로 동기화되는 것도 아니지만, 그럼에도 당신의 생각을 있는 그대로 존중한다는 것이다. 내가 주인공이 되려는 마음을 내려놓고, 상대에게도 상대의 입장이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이다. 내가 했어야 했던 건 그래요, 당신은 그런 마음이 들 수도 있겠군요, 참 힘들겠습니다, 하고 그의 마음을 헤아려보는 것이었다. 그것뿐이었다.


언젠가 S와 다시 대화를 하게 된다면, 나는 끝없이 들어줄 것이다. 그가 아무리 허튼 소리를 해도 듣고 또 들어줄 것이다. 잘 들어주는 귀가 될 것이다. 그렇게 다짐했지만 왠지 자신이 생기지 않는다. 가만히 들어주기,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일까? 이놈의 입을 멈출 수 있을까?


얼마 전 <우연의 질병, 필연의 죽음>이라는 책을 읽다가 흥미로운 구절을 발견했다.


(…) 받아주기, 이해, 귀 기울이기 같은 표현들이 상징하듯 다양성 사회는 사람들이 악수하면서 연결되거나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받아주는, 정지 화면 같은 모습으로 그려지곤 합니다. (받아주려면 정지해야 하니까요.) 연결, 유대 같은 말들도 마찬가지라 점과 점이 이어진 모습(연결선)으로 강조되곤 합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점과 점이 연결되는 도식을 위에서 내려다본 사람들이 네가 연결하는 법은 잘못됐어, 이렇게 해야 해, 하고 주장할 수 있는 것입니다. – <우연의 질병, 필연의 죽음> 중에서


말기 암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은 젊은 철학자 미야노 마키코는 의료인류학자 이소노 마호와 서신을 교환한다. 그들의 미래는 피할 수 없는 미야노의 ‘죽음’이라는 거대한 벽에 가로막혀 있다. 두 사람은 이 죽음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그때 그들은 병에 걸린 사람과 병에 걸리지 않은 사람 사이의 관계 맺기가 어려운 이유를 찾아낸다. 둘 사이에 요구되는 것이,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받아주는 일방적이고 정지된 형태의 소통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그들은 이런 이야기를 덧붙인다.

멈춰 서서 악수하거나 상대를 받아준다고 관계성이 만들어지지는 않습니다. 함께 운동하여 계속 선을 그리면서 세계를 통과하는 것, 그러는 와중에 서로를 기분 좋게 하는 언동을 발견하고 그 발견을 발자취로 남긴 다음 다시 한 걸음을 내딛는 것, 관계성을 만드는 것이란 바로 이렇게 앎과 깨달음을 끊임없이 불러일으키는 움직임(운동)이 아닐까요. – <우연의 질병, 필연의 죽음> 중에서


함께 운동하여 계속 선을 그리면서 세계를 통과한다. 그의 말을 들어준다. 그의 입장을 상상해 본다. 그리고 나도 말한다. 때로는 실수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사과하고 후퇴한다. 그리고 다시 한 발짝 앞으로 내딛는다. 그 역시 자신에게 어떤 말이 필요한지 모를 수도 있다. 그렇게 서로가 위로를 주기도 하고 상처를 주기도 하면서, 상처를 받기도 하고 위로를 받기도 하면서, 새로운 것들을 배우면서 관계는 조금씩 조금씩 앞으로 나아간다. 두 사람 사이에서 새로운 세계가 만들어진다.


아마 앞으로도 나는 ‘잘 들어주는 사람’이 되기는 힘들 것 같다. 여전히 내게는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다. 세간에는 나이 들면 무조건 입은 닫고 지갑은 열어야 한다는 말도 있다. 하지만 이런 노인론은 왠지 신뢰가 가지도, 따뜻하게 느껴지지도 않는다. 나는 자주 실수하고 자주 사과하고 자주 반성하고 자주 새로워지는 나이든 사람이 되고 싶다. 나도 나이든 사람이 되는 건 처음이라서 잘 모르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있어, 의 자세로 나아가고 싶다.


그런 마음으로, 힘들어하고 있는 S에게 말 대신 짧은 편지를 쓴다.


귀를 기울이겠다는 약속

S, 어떤 말이 너를 상처주지 않을까? 어떤 말이 너에게 힘이 될까? 나는 고민하며 말을 고르고 있어. 가만히 있는 게 낫지 않을까? 괜히 네 아픔을 들쑤시는 건 아닐까? 돌이킬 수 없는 크나큰 상실 앞에서 우리는 모두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어.


이 일이 일어났을 때 내게 가장 큰 위로가 된 것은, 뜻밖에도 이런 말이었어. “괜찮아?” 그리고 “뭐라고 위로해야 할지 모르겠어.” 오직 그 두 마디만이 진심을 담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어. 그렇게 서툴고 조심스러운 말들이 내게 가장 큰 힘이 됐어. 그건 내가 이런 일을 겪고 나서야 처음으로 알게 된 사실이야. 그래서 나는 매일 마음속으로 네게 말을 걸어. 너 괜찮아? 오늘은 좀 어때? 그 말을 진짜로 들려줄 수 있다면 좋을 텐데, 그 말들이 또 너를 힘들게 하지는 않을까 나는 주저하고 있어. 너는 내가 아니니까. 나도 네가 될 수는 없으니까.


여전히 나는 너를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모르겠어. 하지만 나는 널 늘 생각하고 있어. 언젠가는 네가 꼭 다시 행복해지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어. 그래서 나는 지금 귀를 기울여. 네가 있는 곳 쪽으로 귀를 기울이고 있어. 네게서 어떤 신호가 오지 않을까 기다리고 있어.


그러나 그 전까지 나는 기다리기만 할 자신이 없어서 이렇게 글을 써. 듣고만 있을 수는 없어서 이렇게 글로 써서 네게 전해지길 바라고 있어. 나는 또 말실수를 할지도 몰라. 내 말이 너에게 가시가 되어 박힐지도 몰라. 그런 위험을 무릅쓰고, 나는 너와 연결되기를 바라고 있어.


그때까지, 우리 그저 하루 하루를 잘 보내자. 그리고 연결되어 있자. 그리고 나는 계속 귀를 기울이고 있을게. 네가 있는 곳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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