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위가 절정에 달한 여름날, 청소년기후행동의 김보림 활동가를 만났습니다. 그는 폭염이라는 개인적인 위기의 경험에서 출발해 4년반에 걸친 기후소송을 주도한 인물입니다. 2024년 8월 아시아 최초로 청소년 주도의 기후소송에서 승소하며 헌법불합치 결정을 이끌어내고, 2026년 4월 환경 분야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골드만 환경상’을 수상하며 그 공로를 국제적으로 인정받았습니다. 플레이라이프는 김보림 활동가의 빛나는 성취 너머의 단단한 내면에 주목하고자 합니다. 생각을 행동으로 옮긴 실행력, 기후운동이라는 긴 여정을 걸어가는 지속가능성에 대한 그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늦었지만, 골드만 환경상 수상을 축하합니다. 처음 수상 소식을 들었을 때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어떻게 나를 알고 상을 주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웃음). 헌법소원이 긴 시간 끝에 결과가 나왔지만, 결정만이 나왔을 뿐이지 정책 변화가 이뤄진 것은 아니었거든요. 기후운동 자체가 미디어에 많이 노출되지 않았던 터라 인정받는다는 게 생소하기도 했어요. 시간이 좀 지나서는 많은 사람들과 함께 목소리를 내고 행동한 것들이 떠올랐어요. 그 과정을 조명하고 가치를 드러내라고 주신 상이라고 생각해요.
골드만 환경상에 대해 생소한 분들이 많을 것 같아요. 선정 과정에 대해 조금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골드만환경재단이 전 세계 풀뿌리 환경운동가에 수여하는 상인데, 대륙별로 한 명씩 선정해서 총 여섯 명에게 시상하는 걸로 알고 있어요. 담당자들이 대륙별로 노미네이트할 인물을 찾는 과정을 진행하고, 자체적인 심사 과정도 거쳐요. 제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기 위해 제 주변 사람들을 인터뷰하기도 했다고 들었어요.
2024년 8월,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나오기까지 4년 반이 넘는 시간이 걸렸어요. 이 승소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 궁금해요.
헌법재판소에서 나온 결정은 “국가는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할 의무를 가진다. 기후 위기는 위험 상황이고, 그 안에서 국가는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해야 한다”라는 게 기본 골자였어요. 2030년 이후의 중장기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설정하지 않은 탄소중립기본법은 미래 세대의 환경을 침해한다는 헌법불일치 판결을 받은 거예요. 앞으로 우리나라의 기후 위기 대응의 방향이나 방식을 결정할 때 사람들의 삶이 고려되어야 함을 인정한 거죠.
기후행동이라고 하면 대부분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는 정도의 실천을 생각하잖아요. 활동가 님을 움직인 힘은 무엇이었을까요?
저도 처음에는 비슷했어요. 환경에 관심이 있고, 쓰레기 줄이기 활동을 하는 동아리에 가입하는 정도였어요. 그러다가 2018년에 역사적인 폭염이 찾아왔어요. 집안에서 더위로 숨진 사람들의 뉴스가 보도되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어요. 집처럼 일상적인 공간에서, 잠을 자다가도 폭염에 사람이 죽을 수 있다는 걸 처음 알게 된거죠. 이때부터 기후는 제게 아예 다른 문제로 다가왔어요. “도대체 나는 뭘 할 수 있지?” 같은 고민이 깊어졌고,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기후 운동이라는 형태로 발전했어요.
처음 거리에 나서거나 낯선 사람들과 함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을 때, 두렵지는 않으셨나요? 스스로를 의심하는 시간은 없었는지 궁금합니다.
기후 위기는 단 한 번도 나아진 적이 없거든요. 얼마나 심각한지, 얼마나 사회를 위험하게 만드는지 같은 리포트만 계속 나오다 보니 무력감이 컸어요. 무엇보다 기후운동이라는 게 구체적으로 어떤 형태인지 모호하다는 점이 저를 더 불안하게 했던 것 같아요.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면서 깨달은 건 ‘삶에서 마주한 기후 위기’를 말해야 한다는 점이었어요. 그렇지 않으면 기후 위기 대응 관련 의사결정 구조 안에서 사람들의 삶이 대변되지 않더라고요. 내가 사람들과 만들고 싶은 변화가 어떤 형태인지 구체적으로 그릴 수 있게 되면서 단단해지고 있어요. 스스로에 대한 믿음도 생겼고요.
사회적인 분위기가 잘 먹고 잘 사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보니, 기후 위기에 대한 논의는 후순위로 밀려나기도 해요. 이에 대한 우려의 마음도 있을 것 같아요.
우리나라는 제조업 중심의 국가이고, 지금도 많은 의사결정들이 기후 위기를 악화시키는 방향으로 이뤄지고 있어요. 위험을 감지하거나 그것이 실제로 재난으로 나타났을 때, 우리는 ‘불운’이라는 단어로 안타까움을 말해요. 저는 나고 자라온 환경 속에서, 안전에 대한 취약성이 개인의 몫으로 머무는 경우를 많이 봤어요. 기후 관련 정책의 결정 안에 탄소를 어떻게 줄일지에 대한 논의는 있지만, 이 문제가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그 안에서 어떤 사람이 더 큰 위험에 닥치는지에 대한 이해는 없죠. 이런 부분들에 목소리를 내는 게 우리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더 많은 사람들의 공감과 동참을 끌어내려면 설득력 있는 메시지, 사람들이 호응할 수 있는 캠페인 등 전략적인 부분도 중요할 것 같아요.
저도 납득이 돼야 움직이는 사람이거든요. 단순히 도덕적으로 훌륭하니 가치가 있다는 말로는 설득이 되지 않다는 걸 알고 있어요. 기후 위기가 제 삶에 닥친 문제라고 인식한 것처럼, 사람들도 비슷할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구체적인 맥락과 우리가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을 공유하고 있어요. 그 관점에 동의하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나만 아는 언어가 아니라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청소년기후행동에서 청소년들과도 함께 활동하고 계시는데요. 한국사회에서 청소년 활동가들이 겪는 어려움은 무엇인지, 반대로 청소년이라는 정체성이 주는 장점은 무엇인가요?
처음 운동을 시작했을 때 그런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그린피스나 환경운동연합 같이 큰 단체가 있는데 거기 들어가면 되는 거 아니야? 왜 새로 단체를 만들어?”. 저는 기존에 사회운동의 주체로 여겨지지 않았던 사람들, 그렇지만 문제를 감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목소리를 낸다는 점이 중요했어요. 누구나 주체가 될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될 때, 변화가 더 잘 생겨날 수 있다고 믿었죠.
결과적으로 청소년들의 활동이 기후 위기를 현시점의 문제로 끌고 오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해요. 그동안 기후운동은 미래 세대를 위한 활동이라는 인식이 있었거든요. 지금 우리가 이야기하는 기후 위기가 미래의 일이 아닌 당장 마주한 위험이라는 메시지를 명확히 줄 수 있었어요.
지속가능성이 중요한 시대잖아요. 활동가 님께서 기후운동을 이어오면서 알게 된 지속가능한 활동의 조건이나 방식이 있을까요?
당장의 상황에 따라 대응하면 무언가를 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게 돼요. 그러면 사람들이 피로감을 느껴요. 진짜 필요한 건 ‘논의’인데 말이죠. 한쪽이 주장한다고 해서 변화가 생기지는 않아요. 다양한 사람들이 한 테이블에 앉았을 때, 한 사람이 큰 목소리를 내는 형태보다는 옆에 있는 사람에게 나의 관점을 공유하고 동의하는 과정이 중요해요. 결국 기후 위기도 ‘상상’이 중요하거든요.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을 얼마나 구체적으로 상상하고 그림을 그릴 수 있느냐가 변화의 가능성을 높인다고 생각해요.
활동가는 누군가의 평가나 가르침을 받는 직업은 아니잖아요. 지금까지 활동하면서 스스로를 닦달하거나, 반대로 인정해 준 부분들은 어떤 것들이었나요?
저도 이 일을 시작하기 전에는 수동적인 성격이었어요. 시키는 거 잘하고, 말 잘 듣는 사람이었죠. 활동가의 길을 선택하고 나서도 제가 하는 일을 사람들에게 설명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곤 했어요. 활동을 하면서 벽에 부딪히는 경험을 하다 보니 위축되기도 했죠.
처음으로 큰 변화를 맞은 건 기후 헌법소원이었어요. 살아오면서 얻은 가장 큰 성취였으니까요. 골드만 환경상을 수상한 것도 저를 많이 변화시켰어요. 지금처럼 다양한 곳에서 제 이야기를 전할 기회가 많아졌거든요.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 정리하는 시간이기도 했고, 동기부여가 많이 됐어요.
무력감이 찾아올 때, 활동가 님은 그 감정을 어떻게 다루시나요?
감정의 실체를 찾으려고 노력해요. 왜 이런 감정이 느껴지는지, 왜 지금 에너지가 빠지고 있는지요. 제가 하는 일을 좋아하지만 그래도 번아웃은 오거든요. 다이어리나 노트북에 생각을 써 내려가면서 정리해요. ‘잘하고 싶은데 돌파구를 찾기 어려워서 막막하구나’,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생각해서 압도됐구나’라는 식으로 저랑 대화하는 거죠.
활동가 님을 성장하게 만든 아이템은 무엇인가요? 그 아이템을 선택하신 이유도 궁금해요.
국민 5,289명의 목소리가 담긴 국민참여의견서를 가져왔어요. 헌법소원 진행했을 때, 참여자분들이 자신이 감각한 기후 위기에 대한 경험을 나눠주셨어요. 왜 헌법재판소에서의 결정이 나에게 필요한지에 대한 내용들을 엮은 책이에요. 이 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제가 많이 성장했어요. 엄마와 처음 사회적 말하기를 시도하기도 했죠.
보통 이런 작업을 할 때는 사회 운동에 관심이 있거나 범주화된 사람들을 초대하거든요. 농민에게 식량 위기에 대해 묻는 식이요. 그런데 저는 주체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기후 위기를 뭐라고 생각하는지, 감각한 적이 있는지, 권리라는 걸 느껴본 적이 있는지에 대해 차근차근 물었고, 발언문으로 정리했어요. 이 작업을 하고 나니, 제가 함부로 취약성을 재단하거나 나열하는 것보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여주는 게 훨씬 힘 있게 느껴졌어요. 표지가 꼬질꼬질하잖아요. 그만큼 제가 항상 곁에 두고 되새겨보는 의견서에요.
앞서 말씀하신 것처럼, 많은 청년들이 기후 불안을 경험하고 있어요. 먼저 행동에 옮겨본 사람으로서, 어떤 이야기를 해주고 싶나요?
감각한다는 건 변화할 수 있다는 증거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혼자만의 고민이나 불안으로 감정의 형태를 내버려두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 활동을 하다 보면 고립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아요. 미래에 대한 비관적인 생각을 하는 분들도 많고요.
국민참여의견서에 오천 명이 넘는 사람들의 말을 모으고 정리하면서 알게 된 사실은, 사회적 정서가 ‘불안’이라는 거었어요. 기후 위기가 불안을 키우고 있다는 걸 느꼈죠. 시위에 참여하거나 거리 밖으로 나와서 목소리를 내지 않아도 괜찮아요. 막연하게 불안해하기보다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자리에서 화두를 꺼내고 대화를 나누는 것들이 변화의 시작이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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